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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다 지켜요”의 의미

[머리 짧은 여자, 조재] 내가 원두인지 원두가 나인지



지난 8월, 카페 극성수기에 해당하는 여름 시즌부터 일을 시작했다. 카페 오픈 전부터 밀려드는 손님에 허덕이는 하루하루. 비좁은 공간에서 커피 자판기가 된 것 마냥 커피를 내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된데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틈틈이 해야 하는 매장관리다.

 

과일, 일회용품, 원두, 기타 재료, 소모품 등 물건을 부족하지 않게, 하지만 좁은 공간에 넘치지 않게 차곡차곡 채워 놓는다. 또 여러 과일을 자르고, 다듬고, 무게를 재고, 얼리고, 정리하는 것도 하루 일과다.

 

이 모든 것은 따로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없는 틈틈이 눈치껏 해내야하는 일이다. 이 카페에서 손님이 없는 시간이란 길어야 5분 남짓. 종일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일해도 매장관리가 수월하지 않다. 매장을 관리한다기보다는 내 앞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해치우다보면 퇴근할 시간이 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처음엔 나의 무능함에 자책했다. 아무리 신경 쓰며 일해도 꼭 한 가지씩 문제가 생겼다. 재료가 부족하다든지, 곰팡이가 피는 경우도 있었다. 하여간 이걸 신경 쓰면 저게 문제를 일으키고, 저걸 신경 쓰면 요게 문제를 일으키는 식이었다.

 

나중에는 이 반복되는 상황이 정말 내가 문제라서 생기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애초에 최소한의 인원으로는 최소한의 관리만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사장님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관리를 요구했다. 사람을 더 고용해야 마땅한 노동환경이지만 천오백 원, 이천 원 하는 커피를 박리다매로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면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결국 사람을 갈아서 이윤을 남기는 셈이다.

 

▶ 내가 원두인지 원두가 나인지  ⓒ머리 짧은 여자, 조재

 

가장 큰 문제는 사장님이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관리자라는 사실이다. 카페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 직원의 업무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전에 일하던 직원이든, 다른 지점의 직원들이든 어떻게든 꾸역꾸역 매장을 굴러가게 만드니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매장이 그만큼 굴러가는 건 직원들이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일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걸 알 턱이 없다. 그러니 만날 “할 만하지?” “여기만큼 좋은 조건도 없어”, “아직 부족해”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이겠지.

 

눈에 보이는 업무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오죽하면 단골손님들이 “여기는 일이 많나 봐요. 직원들이 쉬는 걸 본적이 없네요” 라며 오히려 우리를 걱정해줄까.

 

면접 볼 때 사장님은 말했다. “우리는 법은 다 지켜요.” 근무 전, 순진하게도 나는 그 말을 얼마나 신뢰했던가.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말을 재해석한다. 여긴 법‘만’ 지킨다. 법에는 노동 강도가 이만큼일 때 일손이 이만큼 필요하다는 내용 같은 건 없으니까.

 

기계적으로 법 테두리를 따르는 그에게 직원들은 어떤 존재일까. 함께 일하는 동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를 매일 갈아치우는 원두보다는 나은 존재로 여기고 있기를 바랄뿐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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