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밥 짓기, 무려 밥 짓기[머리 짧은 여자 조재] 아직은 이벤트, 밥 지어 먹기 부모님의 별거 이후 집에서 눈에 띄게 침체된 공간은 주방이었다. 새삼스럽고 진부한 스토리다. 주방이 곧 엄마의 공간이었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엄마가 떠나고 남은 가족들의 주식은 라면이 됐다. 내 몸의 3할은 라면이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직접 반찬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어쩌다 한 번씩 찌개를 끓이거나 두부조림 같은 간단한 반찬을 만들었다. 엄마는 가끔 연락해서 그 소식을 듣고 ‘잘 했다’고, ‘네가 여자니까 그렇게 가족들을 챙겨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여자니까, 누나니까 집안을 살뜰히 챙기라는 충고는 페미니즘의 ‘페’자도 몰랐던 시절에도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내 행동은 의도와 상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1) 어찌보면 별일 아닐, 밥해먹기에 대하여 제도교육에서 벗어나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갓 상경하여 대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무살 청년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그리고 그 좌충우돌 실험 속에서 터득한 ‘여연표’ 요리법을 소개합니다. www.ildaro.com 집을 나오며 밥그릇을 챙기다 ▲ 서울에 올라올 때 가지고 온 밥그릇. 이 그릇에 밥을 담아 먹을 때마다 음식을 먹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다시 생각하곤 한다. © 일다 집에서 나와 서울에 올라올 때, 밥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도드라지는 조그맣고 알록달록한 그릇이다. 독일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