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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책’을 선택한 이유

<세계 아동청소년 인문교육 시리즈>에 담긴 이야기③


※ 네팔의 어린이노동자들의 인권과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활동해 온 ‘바보들꽃’에서, 세계의 일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맞춤형 교재를 계발해 <세계 아동청소년 인문교육 시리즈>를 내놓았습니다. 네팔어, 영어에 이어 한국어로도 출간된 이 총서에 얽힌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싣습니다. 필자 송하진 님은 사회문제의 대안을 만들기 위한 실천과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으며, 2006년부터 ‘바보들꽃’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네팔 곳곳의 교사들과 교장들을 만나다


“먼 길 다니시려면 힘들겠어요.”

“멀리 다니는 건 괜찮은데… 사람들이 이야기할 기회만 준다면 멀리 가는 건 상관없어요.”


기사를 쓰며 오랜만에 네팔에 상주하고 있는 “바보들꽃 희망의 언덕”(이하 바보들꽃)의 한국인 간사와 통화를 했다. 바보들꽃은 오랜 기간 네팔의 어린이노동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활동해왔다. 최근에 네팔의 지방도시인 룸비니에서 네팔어로 출간한 <세계 아동청소년 인문교육 시리즈> 교재를 소개하고 교육할 기회가 있었단다. 언뜻 길도, 차편도 좋지 않은 네팔에서 장거리 출장 다니기 힘들겠다는 말을 던졌는데, 대답으로 너무 멋진 말을 들었다.


그녀는 여러 과정 중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생각나는 건 힘든 일 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면서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어디든 가서 교재를 소개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 2014년 네팔 어린이노동자 캠프에서, 바보들꽃이 계발한 네팔어 교재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했다. ⓒ바보들꽃


바보들꽃은 <세계 아동청소년 인문교육 시리즈>가 출판된 작년부터 네팔에서 교재를 소개하고, 교사들 대상으로 교재 활용법 시연을 통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와 교육단체 등과 만나 교재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접촉점을 늘려가고 있다.


2월에는 카트만두 외곽 도까 지역의 두 학교에서 24명의 선생님들과 만났고, 3월과 5월에는 멜람치라는 지역에서, 그리고 지난 6월에는 네팔의 룸비니 지역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룸비니 지역에서는 사립학교연합회에 속한 30개 학교가 그 대상이었는데 학교의 교장들이 모여 교재 사용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다. 일선 교사가 아닌 교장이 나와서 교육을 받는다니, 의아하지 않는가?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네팔의 교육 시스템과 환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상교육이라고는 하지만 ‘교육의 질’ 낮아


네팔은 크게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그리고 그러한 교육 기회가 없는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운영되는 마을학교(Community School, 마을 주민들이 돈을 모아 선생님을 고용해서 일부 학년 혹은 한 두 학급만 운영하는 형태) 등으로 나뉜다.


공립학교는 국가에서 운영한다. 때문에 네팔의 서민층 혹은 빈곤선에 있는 아이들이 일반 공립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말은 무상교육이라 해도 추가로 들어가는 제반 비용이 적지 않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시험을 칠 때도 돈을 내야한다. 교복, 교과서 구매 등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도 크다. 그래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가정도 있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한 벌의 교복을 몸이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입는 경우가 많다.


교사들의 경우, 공립학교 교사는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고 연봉도 네팔의 타 직장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점 때문에 교사의 자격 요건이 아닌 ‘인맥’을 통해 교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 교육 과정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아 교육의 질이 낮은 편이다.


▶ 네팔의 학교. 서민층, 빈곤층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는 교육의 질이 낮다. ⓒ바보들꽃


이처럼 공교육이 취약한 탓에, 네팔에는 사립학교가 많다. 학생들은 더 많은 돈을 내고 사립학교에 다닌다. 학교 입장에서는 다른 학교와 경쟁해 학생을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공교육에 비해 높다. 그러나 워낙 많은 학교들이 난립해 있는 상황이라 재정적으로 힘든 사립학교도 있다.


사립학교 교사는 공립학교에 비해 지위 보장도 안 되고 연봉도 낮다. 교사들은 더 좋은 일리,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쉽게 옮겨 다니고, 학생들은 교육의 연속성을 보장받기 힘들다. 그래서 룸비니의 사립학교연합회에 소속된 학교들은 학교를 떠나지 않고 가장 오래 남아있을 교장 선생님들이 먼저 <세계 아동청소년 인문교육 시리즈>를 활용한 수업을 받고, 이를 일선교사들에게 교육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도권에서 가장 먼 ‘마을학교’가 아이들이 접근하기는 가장 쉽지만, 가장 열악한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교사의 자질도 일반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청년이나, 그나마 글을 알고 가르칠 수 있는 마을 주민이 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2015년 일어났던 네팔 대지진 이후에는 이러한 상황들이 더 심각해진 곳들이 생겼다. 하지만 피해가 복구되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바보들꽃은 지난 지진 당시 긴급구호 활동을 하며 만났던 인연들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3월과 5월에 교육을 진행했던 멜람치 지역도 지진의 피해를 복구 중인 지역으로, 마을학교와 방과 후 교실 등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해외원조가 긍정적인 효과만 낳은 건 아니야


이처럼 네팔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잠시 살펴보는 것만도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각의 복잡함을 넘어 마음이 타들어가기 일쑤다.


네팔은 인프라와 산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빈곤 문제가 심각해, 해외 원조와 해외NGO등의 활동으로 사회의 빈 곳을 채워왔다. 그 과정에서 생긴 몹쓸 인습 탓에, 교육을 지원받는 입장이면서도 바보들꽃 측에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바보들꽃은 아동 교육을 지원함에 있어서 아이들 스스로와 부모의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동의 학업에 필요한 도움 이외에 과도한 돈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지원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번 교육 과정에서도 교사 교육을 실시하는데 학교 등이 금전적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반기던 곳들도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냉담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해나가는 건, 아이들을 위해 이러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교육을 요청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바보들꽃은 일차적으로는 교재의 취지에 공감하고 교육의 의지가 있는 교사들을 찾고 이들을 교육해서, 좋은 교육이 아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꼭 바보들꽃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이 교재를 교육해본 사람들을 통해서 교육 내용이 전파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진정 이 교육 과정에 힘이 있어서 교사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레 그 영향이 옮겨 갈 것이라 믿는다. 사실 겉으로는 ‘아동 교재 확산’이라는 모습으로 다가가지만, 교사들이 먼저 ‘좋은 삶’에 대해 고민하고 건강한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적 삶에 대한 지향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6월에 진행된 룸비니 지역 교육에서는 은행의 직원이 의외로 그 주인공이 되었다. 룸비니 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 교육 지원을 하는 은행의 사회적 지원사업 담당자가 우연히 바보들꽃 교사 교육을 시찰하러 왔다가 교육 내용을 접하고, 이런 교육이 네팔의 곳곳에서 필요하다며 추가로 교육을 요청한 것이다. 6월에 이뤄졌던 룸비니에서의 교육은 우선 교재 제1권인 <나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를 활용한 교육이 이루어졌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다른 권에 대한 교육도 진행하고 주기적인 교육 모니터링과 재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 <세계 아동청소년 인문교육 시리즈>를 활용하여 아이들과 함께 할 수업 내용을 연구하는 꾼지국립초등학교 교사들. 선생님들도 각자 자화상을 그리고 발표를 했다. ⓒ바보들꽃


인도적 문화교류를 통제하는 네팔의 권력층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최근 네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물리적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을 제외하고 교육, 종교, 문화 부분의 해외 지원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네팔은 2006년 민주화 운동으로 국왕이 물러나고 신정일치의 왕정국가에서 세속국가가 되었다. 종교적 제약으로 인해 막혀있던 문화적 교류도 보다 활발해졌고, 새로운 문화가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이끌었다. 실례로 최근에 만난 한 네팔인 친구는 더 이상 젊은 사람들 사이에 카스트 등에 대한 차별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사회, 종교 기득권 세력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국가의 권력층으로 남아있는 상위 카스트 계층은 전통적 생활 관습을 지키려는 보수적 입장을 강화하면서, 인도적 문화교류에 있어서도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보들꽃도 네팔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고, 활동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멀고 길게 느껴지는 교육의 길을 택한 이유


좀 더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보고 싶지만, 이 모습 그대로가 현재 네팔의 현실이자 바보들꽃이 처한 상황이다. 좀처럼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지지만 좁은 틈을 뚫고서라도 희망의 싹을 틔워내 보고 싶은 사람들이 분투하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과연 이런 사업에 동참해 함께 좁은 길을 걸어가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후원을 한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학교를 지어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나에게 감사하다고 편지를 써줄 아이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다행히도 아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진 후원자들 덕분에 아동 교육 지원 사업은 지속되어 올 수 있었지만, 아동에 대한 ‘직접 지원’이 아니라 ‘간접적인 지원’을 통해 변화의 씨앗을 뿌려 먼 훗날의 열매를 바라보는 교육 사업은 네팔에서나 한국에서나 그리 매력적인 사업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바보들꽃은 아동의 숫자를 늘리고 단체의 규모를 키운다 해도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닌 현상에 대응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다는 걸 알기에, 아직은 멀고 좁게 느껴지는 길로 가보려는 것이다.


▶ <세계 아동청소년 인문교육 시리즈> 6권의 교재 구성 ⓒ바보들꽃


지금은 바보들꽃이 주로 관계 맺어 왔던 네팔 지역의 사업에 한정되어 있지만, 앞으로 이 교재가 더 많은 세상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참고로 이 교재를 사용해 아이들에게 좋은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학습하고 싶은 타 국가의 활동가와 교사들이 있다면, 주저 없이 문의 해주기 바란다. 국가에 따라서는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할 수도 있다. 곧 영어 버전의 교재도 E-Book형태로 출간할 예정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나라에서 자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재에 대한 안내와 판매가 진행되고 있다. 학교와 대안학교, 방과 후 교실 등에서 판매된 교재의 수익금 전액은 네팔의 학교에 교재를 보급하고 교사들을 교육하는 활동에 쓰인다. 혹은 바보들꽃에 5만원을 기부하면, 네팔어 교재 한 세트를 네팔의 학교에 보내 줄 수 있다. 바보들꽃은 판매 수익금과 기부 활동을 통해 올해 말까지 네팔의 학교 5백 곳에 교재를 보급할 계획이다. 교육에서 소외된 네팔의 아이들이 더 좋은 삶을 꿈꿀 수 있도록, 이 기사를 읽는 분들의 참여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세계 아동청소년 인문교육 시리즈> 소개 페이지: http://book.foolwildflower.or.kr

※ 바보들꽃 문의: 02-337-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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