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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시장처럼 산업이 된 ‘사이버성폭력’

사이버성폭력 현황,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게 듣다②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불법촬영 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하는 행위와 같은 ‘사이버성폭력’에 대응하려면, 온라인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연대활동이 필수적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랑 대표는 현재 이 세계가 ‘여성의 몸을 가지고 놀며 소비하는 거대한 온라인 성매매 시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서랑 대표에게서 사이버성폭력의 특성과 복잡한 구조, 우리가 좀 더 집중해서 깊이 파고들어야 할 문제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이버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연대체를 꾸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계신데요, 이 연대활동은 어떻게 진행하게 된 건가요?


“피해자들의 피해촬영물이 당장 눈앞에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해외라서 (추적도, 삭제도) 안 된다는 경찰의 대답은 늘 같고, 해결하려는 시도를 안 하길래 너무 답답해서 그러면 우리가 직접 해 보자, 하고 시작했어요.


▶ 대만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지원하는 여성인권단체 TWRF와 교류한 현장.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최근에 대만과 미국을 방문해 MOU(업무 협약)를 체결했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프로세스도 공유했어요. 만약 미국, 한국, 대만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교차되었을 때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하는 걸 주요 내용으로 하려 했죠. 미국 측과 이야기하다가 관련한 연방법(불법촬영 피해영상 관련한 법안으로, 이를 통해 이윤을 얻는 자를 처벌할 수 있다. 불법포르노 사이트 운영자들이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됨)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미 미국 의회에 우리의 의견서도 전달했어요.


미국 단체에서는 ‘우리에게만 중요한 이슈인 줄 알았는데 한국의 여성들에게도 심각한 사안인지 전혀 몰랐고, 너무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고 했어요. 한국에서도 서명을 받아 미국에 보낼 예정이에요. 처음엔 ‘세계 여성 행진’(Women’s March)처럼 모여서 공론화하는 행진을 하려 했었는데 지금은 퍼포먼스보다는 당장 이 법을 통과시키는 게 너무 중요해서, 곧 이 법안 서명운동을 시작하려고 해요”


-대만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대만도 한국처럼 불법촬영 영상 문제가 심각한가요?


“대만은 불법촬영 이슈보다 ‘온라인그루밍’(아동, 청소년과 친밀한 관계를 쌓은 뒤 유인하거나 통제를 통해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착취하고, 이를 발설하지 못하게 협박하는 유형의 범죄를 그루밍 성범죄라고 함) 문제가 심각한 것 같더라고요. 성인들이 아동, 청소년한테 어플리케이션 같은 걸로 접근해서 촬영물을 얻어내거나, 성적으로 착취하고,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피해자를 심적으로 조정하는 그런 문제들이요.


대만 단체는 30년 역사를 가진 반성폭력 운동단체인데요, 최근 2년 전 즈음부터 사이버성폭력 관련 팀을 별도로 꾸려 운영 중이라고 해요. 국가마다 어떤 유형의 사이버성폭력이 성행하는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다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어요.”


▶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들. 맨 왼쪽이 서랑 대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사진


-SBS에서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웹하드 불법동영상의 진실-” 편을 보면 국내 피해촬영물이 일본으로 넘어가 포르노물로 가공되어 국내로 다시 넘어온다는 내용이 나오죠. 일본과도 활동에 있어서 공조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일본 단체와도 비디오콜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 일본에서는 불법촬영만으론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일본에선 조금 다른 형태의 사이버성폭력이 문제가 되었고요. 젊고 어린 여성을 대상으로 ‘연예인 시켜주겠다’고 유혹한 뒤에 집단 강간을 한다든지, 포르노 영상을 찍어서 유포하고 판매하는 식의 사기와 성폭력이 뒤섞인 그런 범죄가 일어나고 있거든요. (관련 기사: 성인비디오 업계 성폭력피해 사례 속출 http://ildaro.com/7983)


그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가 두 곳 정도 있어요. 이 곳에서 다른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도 돕긴 하는데 주요 업무는 아니죠. 그리고 일본에서는 리벤지포르노(헤어진 연인 등에게 보복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 피해 방지 법안이 발의되긴 했는데요, 최대 형량이 2년 정도고 벌금도 낮아요. 데이트 과정 중에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사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신고도 잘 없다고 해요.


한편으로 일본 단체들은 활동가들의 연령이 좀 높은 편이에요. 그래서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텐데, 아직은 좀 어려움을 느낍니다.”


-국제연대망을 구축하는 것 못지않게, 당장 도움을 요청해오는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일이 여전히 주요 업무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올해 4월에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생겼잖아요? 업무 부담이 좀 덜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지원센터가 생겼다고 해서 우리의 업무가 줄어든 것 같진 않아요. 상담 건수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다만 지원센터가 생기면서 그 동안 도움을 받지 못했던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부분이 있어요. 예전에는 여성긴급상담전화 1366에 전화해서 ‘디지털, 불법촬영’ 이런 말을 하면 대응을 못 했었는데요. 이제 지원센터(women1366.kr/stopds)로 연결이 되죠.


아직 사이버 공간의 성폭력에 대해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사회적으로 차츰 배워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당한 일이 사이버성폭력인줄도 알지 못했다가 이제야 인지하고서 신고하는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고가 줄어들 것 같진 않아요. 더 많은 지원센터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 불법촬영 피해영상 삭제를 지원한 활동가 인터뷰 영상 중에서. (출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페이스북 페이지)


-불법촬영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며서 가장 힘들거나 답답하게 느끼는 점은 뭔가요?


“관련 법 개정이 안 된다는 게 제일 답답해요. 스스로 찍은 촬영물을 유포하는 건 지금 법 적용이 안 돼요. 그것 때문에 기자회견도 했었죠. 관련 수정 법안이 올라가서 통과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침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진행되는 재판이 있어서 ‘빨리 적용되면 다음 재판 때 소급적용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뭐가 또 결렬되어서 다음번으로 미뤄졌다는 거예요. 그 사이에 재판은 끝났어요. 결국 가해자 무죄로요.


법 하나 개정되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데, 계속 바로 코앞에서 벽에 부딪히는 거예요. 발의는 맨날 한다고 나오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어요. 그 글자 몇 개 바꾸는 게 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데, 그게 안 되는 게 너무 답답해요.


그리고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해요. 우리 단체가 그걸 다하기는 너무 벅차죠. 계속 야근을 반복하게 돼서, 이번에 인원을 한 명 충원하기로 했어요. ‘월급을 늘릴 순 없지만 사람은 늘려야겠다’ 싶어서요. 근데 사실 현재 인원에서 세 명은 더 늘려야 저녁에 퇴근할 수 있어요. 상담 전화가 오는데, ‘오늘은 세 명 상담을 받았으니까 그만해야지’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또 피해자 분에게는 법률 지원과 삭제 지원, 심리치료가 다 필요한데 ‘바쁘니까 삭제 지원만 해드릴게요’ 이럴 수도 없잖아요. 매일 매일의 일이 우리 통제권 밖이라는 게 힘들죠.”


-사실 그런 활동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사업을 책임지거나, 재정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부에 성폭력상담소로 등록하면 세 명 분의 인건비가 나와요. 그런데 서울시와 두 달 정도 피해지원 활동을 사업화해봤는데, 실적을 요구하고 어떤 통제 아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그래서 후원을 늘리는 방법을 별도로 찾더라도,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사업화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


또 정부나 지자체랑 하게 되면, 거기서 원하는 피해지원의 방향이 정해져 있어요. 거기 규격에 맞춰서 피해지원을 재단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사이버성폭력은 기존의 성폭력과는 다르잖아요. 프로세스도 완전히 다르고, 성격도 다른 상황인데, 행정은 일괄적이니까… 우리가 그 규격 안에 맞춰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거죠.”


▶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 청원


-불법촬영물의 유포와 같은 사이버성폭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분노하지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막막해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정부와 국회, 그리고 형사사법기관이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


“이 문제 해결의 열쇠는 ‘사이버 공간에서 유통 근절’에 있다고 생각해요. 유통을 근절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일단, 지금 사이버성폭력은 성매매와 비슷한 구조거든요. 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에서죠.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사고 싶은 사람과 팔고 싶은 사람이 거기로 가면 돈도 벌 수 있고 욕망도 채울 수 있죠. 이렇게 돈을 버는 구조가 만들어지니까 깨지지 않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시장을 규제하고 불법으로 형성된 시장을 깨뜨리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유통이 근절되었을 때, 그 문화도 해체될 수 있다고 봐요. 피해촬영물을 ‘보는 것’이 ‘폭력’이라는 인식을 가져올 수 있게 ‘유통을 근절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또 실질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서 그것이 더 이상 어떤 ‘취향’이 아니라 ‘폭력’으로 남는 거죠. 그래야 오프라인에서 여성의 치마 속을 찍는 행위의 빈도가 줄어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 공간에서 욕망을 배우잖아요. 포르노그래피적으로 재현된 피해촬영물들을 보면서 욕망을 학습하죠. 피해촬영물이 사고 팔리며 그것이 전시되는 공간을 깨뜨렸을 때, 돈이 오가는 성착취 문화를 깨뜨릴 수 있다고 봐요. 유통 플랫폼 근절이 핵심인 것 같아요.


지금 변형 카메라를 어떻게 탐지할 것인지 연구하고, 더 많은 돈을 써서 탐지 기기를 늘리고, 더 정밀한 탐지 기기를 만들어 내고, 그걸 사람들에게 배포하려고 하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일까요? 그건 계속해서 기기를 쫓아가는 방법이잖아요. 절대 인간이 승리할 수 없어요.”


▶ 지난 5월 25일 광화문 앞에서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정책 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 중인 한사성 활동가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이버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면서 다양한 장면과 피해를 목격한 활동가로서, 이 사안에 대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웹하드 카르텔, 그 시장을 깨뜨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끝난 뒤로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가 있어요. 방송 다음 날 청원이 6만명 넘게 진행되었는데 그 뒤로 좀 정체 중이거든요. 청원에 꼭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계속 관심도 가져야 하고요.


사이버성폭력이 무엇으로 구성된 폭력이냐고 했을 때, 그것을 ‘소비하는 문화’와 ‘바라보는 시선’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해요. 문화와 시선으로 구성된 폭력이라면 이걸 어떻게 깰 수 있을까요? 문화와 시선을 만드는 건 결국 개개인의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그 문화를 깨뜨리는 첫 시발점이 되는 것. 예를 들어, 단톡방에 무슨 연예인 유출 사진이나 영상이 올라왔을 때 ‘피해촬영물이니까 보지 말라’고 얘기하며 침묵을 깨는 사람이 되는 것, 작은 일 같지만 큰 실천이죠. 또 누군가 사이버 공간에서 성적인 괴롭힘을 당할 때 신고하거나, 당장 내리라고 댓글을 쓴다든지, 그런 행동들이 쌓이고 쌓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젠더 상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오프라인 공간에선 면 대 면으로 대면하니까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관계의 윤리 같은 게 있잖아요. 근데 온라인 공간은 그게 굉장히 흐릿하고, 특히 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너무나 무분별한 폭력의 장이 되고 있어요. 온라인 공간의 상식을 적립해 나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숙제인 것 같아요. 앞으로 이 공간이 줄어들 일은 없잖아요. 지치지 말고 계속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한다>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며, 현재 9만4천여 명이 참여했고 8월 28일 마감된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22420?navigation=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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