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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당신은 용감하게 자신을 지켰습니다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폭력 대처 사례 분석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셀프 디펜스(Self-Defense) 교육을 할 때면 참가자들에게서 여러 질문이 쏟아진다. 그중에는 자신이 겪은 폭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질문도 많다. 참가자들의 질문은 우리의 교육을 더 현실적으로 만드는 토대가 되고, 이 칼럼을 쓰는 계기도 된다.


이 글은 지난 6월, 군포탁틴내일에서 진행한 성교육 자원활동가 양성 과정 교육을 하며 받았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충해서 정리한 것이다. 이 내용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준 참가자의 공이다. 나는 그의 사례를 분석하고 정리했을 뿐이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


“자. 이제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해주세요.”


“선생님! 저 질문 있어요. 오늘 수업은 공격자가 앞에 있을 때 방어하고 거리를 벌리고 피신하는 연습을 했잖아요. 그런데 공격자가 뒤에서 덮치는 경우도 있잖아요. 아주 오래전 일인데, 제가 뒤에서 머리채를 잡혀서 몇 미터 끌려가다 구해진 적이 있어요. 그때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


“당시에 어떻게 그 상황에서 풀려나셨나요?”


“제가 집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낌새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막 가고 있는데, 제가 빨리 가면 (뒷 사람도) 빨리 가고… 그래서 나를 쫓아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거예요. 그런데, 무서운데도 그 순간에 제가 집으로 가면 내가 사는 곳이 어딘지 알려져서 더 위험해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한 200미터 떨어진 친구 집으로 갔어요. 친구 집 문을 막 두드리는데, 따라오던 남자가 제 머리채를 뒤에서 확 잡아당겼어요. 마침 친구 아버지가 문단속을 하려고 나오셨다가 제 소리를 듣고 친구 오빠와 함께 저를 구해주셨어요.”


▶ 뒤에서 머리채를 잡아서 끌고 가는 공격에 대한 방어법 ⓒKrav Maga Global


폭력 대처 사례 분석


우리는 셀프 디펜스 교육을 위해 공격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다루고 있다.


하나는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이다. 가장 흔한 유형이다. 대체로 아는 관계에서 위계를 활용해서 이뤄진다.


다른 하나는 포식자와 같은 공격이다. 실제로는 전자에 비해 훨씬 더 적은 유형이지만, 많은 여성들이 이런 유형의 공격을 훨씬 더 두려워하고 있다. 흔히 불시에, 낯선 사람이, 기습처럼, 사냥처럼 이뤄진다.


하지만 이것은 교육을 위한 분류일 뿐 불변의 공식은 아니다. 즉 항상 정확히 둘 중 하나로 구분되진 않으며, 잔인함의 정도로 구분하는 것도 아니다.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이 더 무섭고 집요할 수도 있다. 집단으로 행하는 경우 특히 더 심각할 수 있다.


이 사례는 두 번째 유형에 해당된다. 마치 “묻지마 공격”(random attack)처럼 ‘낯선 사람’, ‘불시에’, ‘사냥하듯 공격’이란 요소들이 두 번째 유형과 일치한다.


사례자는 위험 상황에 매우 잘 대처했다. 그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직감을 믿고 위험을 확인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그는 느낌이 이상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접했을 때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고 진상을 곧바로 느껴서 아는 것을 직감이라고 한다. 뇌에서 정보를 너무 빨리 처리해서 의식이 못 따라가는 것이다. 이런 직감, 특히 위험에 대한 직감을 무시하지 말자.


그는 직감을 따라 정말 자신이 위험한 지 확인하기로 했다. 평소대로 걷다가 빨리 걸어가 보기로 한 것이다. 걸음을 재촉하며 빨리 걷자 뒤따라오는 남자의 걸음도 같이 빨라졌다. 직감을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로 위험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우리는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느낌이 들면 돌아서 확인할 것을 권한다. 기본적으로 위험이 뒤에 있는 것보다 앞에 있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수업에서 공격자를 앞에 둔 상태에서 방어하고 거리를 벌리고 피신하는 연습을 한다.


확인하지 않으면, 막연한 불안감을 계속 키우기 쉽다. 확인하는 행동이 뒷사람에게 무례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가던 길을 멈추거나 뒤돌아서는 행동은 신체와 이동의 자유에 해당될 뿐 뒷사람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


실제적인 위험이 아니었다면, 막연한 불안감을 없애고 안심할 수 있다. 때로는 실제적인 위험이었으나, 확인하는 행동이 공격자의 계획을 변경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둘째, 개인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았다.


너무나 무서웠지만, 이대로 집으로 향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이 번쩍였다. 본능적으로 내가 사는 곳을 알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남자가 내가 사는 집을 알게 되면 나중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집을 지나쳐 200미터 떨어진 친구 집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 가능한 개인정보를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공격자가 이름이나 연락처, 사는 곳 등을 알게 되면 스토킹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확실한 사후 조치가 필요하다.


경찰에 신고한다. 휴대폰, 체크카드, 신용카드 등을 빼앗겼다면 바로 분실 신고를 한다. 신분증 또는 열쇠를 빼앗겼다면, 잠금 장치를 바꾸고 안전해졌을 때 집에 들어간다. 집 외에 다른 머물 곳이 있다면, 당분간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좋다.


피해자 임시숙소 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경찰청은 2014년 4월부터 범죄 피해를 입은 후 성폭력, 가정폭력, 침입절도, 보복 등이 우려돼 마땅히 거주할 곳이 없는 피해자에게 긴급피난처로 임시숙소를 지원하고 있다. 안정성과 쾌적성이 검증된 숙박시설에서 주거지 내 관할 경찰서의 도움으로 짧게는 1~2일, 최대 5일까지 머무를 수 있다.


셋째, 조력자를 구했다.


친구의 집 대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기로 했다. 그러면 친구와 친구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문을 두드리는 순간, 따라오던 남자가 뒤에서 머리채를 잡고 확 잡아당겼다. 머리채가 잡힌 채 뒤로 몇 미터 끌려갔다. 다행히 문단속을 하러 나온 친구의 아버지가 저항하는 소리를 듣고 친구의 오빠와 함께 뛰쳐나와 구해주었다.


-> 위험 상황을 혼자 대처하고 해결할 수도 있지만, 조력자를 구할 수 있다면 더 좋다. 사례자의 경우, 다행히 가까운 곳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1인 가구도 많고, 가까운 지인이나 이웃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막다른 곳이나 외진 곳이 아니라 넓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 가능한 뒤쫓아 오는 공격자 뿐 아니라 내가 있는 곳,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넓게 보라. 그래야 공격자를 피하려다 차에 치이는 것과 같은 더 위험한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도와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것도 필요하다.


▶ 서울시에서 여성안심지킴이 집을 홍보하는 공식 포스터 ⓒ서울시


24시간 운영되고 24시간 CCTV가 녹화되고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도움을 구하는 것도 좋다. 서울시는 2014년 2월부터 24시간 편의점을 활용해 여성안심지킴이 집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안심지킴이 집은 112와 핫라인 신고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필요한 경우엔 편의점 점주나 점원이 카운터에 설치된 비상벨과 무다이얼링(전화기를 내려놓으면 112로 연계되는 시스템)을 통해 신고하고 경찰이 신속하게 출동한다.


공평한 관점이 필요하다


폭력이 존재하는 한, 폭력에 대해 모르고 안전과 평화를 도모할 수는 없다. 폭력에 대해 알지 못할수록,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더 커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례자는 셀프 디펜스를 배운 적이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위험 확인하기, 개인정보 노출하지 않기, 조력자 구하기를 실행했다. 세 가지 모두 매우 중요한 셀프 디펜스 행동이다.


나는 그에게 사례 분석에 덧붙여, 할 수 있는 셀프 디펜스 테크닉을 알려주는 것으로 답변을 마쳤다.

▶ 폭력 상황과 피해자의 대처에 대해, 공평한 관점이 필요하다


나도 독자들에게 질문이 있다.


사례 속의 여성을 피해자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위험에서 자신을 용감하게 지켜낸 사람으로 볼 것인가? 미디어는 어떻게 묘사할까? 그리고 무엇이 공평하게 보는 것일까.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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