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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시작합니다!

[이민영의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벽 패널로 출발한 비전화카페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대도시 서울에서 내 손으로 건축물을 짓는다니!


햇빛 식품 건조기와 퇴비 제조기를 만들며 공구의 이름과 사용법에 익숙해질 무렵, 건축도 해봄직하다는 마음이 모락모락 일어났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내 손으로 건축물을 짓는 것과 더불어, 볏짚과 흙을 재료로 비전화(非電化) 방식으로 짓는 경험은 흔치 않다. 비전화제작자 1기들 상당수가 지원 동기로 첫 손에 꼽은 기술 역시 스트로베일 공법의 비전화카페를 짓는 일이었다. 목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이제는 건축도 해볼 수 있겠다 자신감이 붙었다.


▶ 비전화카페 설계도  ⓒ그림: 후지무라 야스유키


비전화카페는 전기와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카페로서 온전하게 운영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시민들과 공유하는 장소이자, 비전화제작자들의 비빌 언덕이면서 작은 일들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벽은 2×4 경량목재를 가능한 규격화된 크기를 활용해 조립하는 패널(Panel) 공법으로, 지붕은 부재들을 삼각형 형태로 뼈대를 만들어 얹는 트러스(Truss) 구조로 짓기로 정했다. 기초는 독립기초, 줄기초, 매트기초 중 무엇으로 할지 설계사의 자문을 좀 더 구해보기로 했다.


규모가 커진 목공, 벽 패널 만들기


터 파기로 건축을 시작하게 될 줄 알았는데 건축 허가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어 벽 패널을 먼저 만들기로 했다.


비전화카페가 선택한 2×4 경량 목구조는 단기간에 수많은 이민자가 유입되던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누구나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집이 필요해지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건축 초짜인 비전화제작자들이 도전해볼 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편에 속하는 건축법이다.


목공이 손에 익어 벽 패널을 만드는 일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2×4 목재로 벽이 될 틀을 만들고 공기유압으로 못을 박는 네일 건으로 OSB(Oreinted Strand Board) 합판을 덮으면 벽이 완성된다.


▶ 비전화카페 벽 패널 설계도  ⓒ그림: 김재윤


창문 유무와 돌출된 입구 구성을 위해 서로 다른 모습의 4개의 패널을 만들었다. 낱개의 패널은 목재 절단을 최소화할 수 있는 크기로, 창문과 문의 위치를 고려해 하중을 분산할 수 있도록 목재의 위치를 선정한다. 창문과 문이 있는 패널의 경우 헤더(Header)를 받칠 수 있도록 트리머(Trimmer)를 설치하고, 개별 패널의 크기가 크지는 않기 때문에 버팀대(Brace)는 두지 않고 일일이 횡하중과 수직을 잡아주었다. 테트리스처럼 모양을 맞춰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벽체를 만들다보니 소목과 대목의 차이점이 조금씩 체감된다. 문방구나 가구처럼 작은 규모의 나무를 다듬는 소목은 정교하고 미세한 차이와 감각에 예민해야 하는 반면, 집과 같이 큰 건축물을 만드는 대목은 전체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햇빛 식품 건조기나 퇴비 제조기를 만들 때는 1~2mm의 차이가 눈에 쉽게 띄기도 하고 작은 틈 때문에 끼워 맞춰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세심하게 대해야 하는데, 패널을 만들 때는 체격이 큰 목재를 쓰기 때문에 개별 목재의 뒤틀림으로 수평이 맞지 않은 부분은 없는지 등에 신경 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첫 만남은 항상 어색하고 어렵다


막상 작업에 돌입하니 나 홀로 머릿속으로 그려온 작업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 저 큰 목재를 내가 옮기고 자르고 박고 평행을 맞출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56㎡ 1층 건물에 사용되는 목재와 구조물 정도는 12명의 제작자가 힘을 모으면 웬만해서 해결 못할 일은 없다. 도리어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은 새로운 문법에 적응하는 일이다.


외국어 학습의 첫 걸음이 단어 암기이듯, 새롭게 등장하는 건축용어에 또 다시 혼미해졌다. 벽체의 창문 위편을 부르는 헤더(Header)처럼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단어는 금방 익히는데, 벽체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스터드(Stud)처럼 처음 듣는 용어는 오늘 내 입으로 수차례 불러놓고 내일이면 또 까먹는다.


건축의 문법에도 능숙해져야 한다. 경량 목구조는 미국에서 개발된 목조건축법이라 인치(inch)법을 쓴다. 스터드 간 간격은 평균 16인치로 하는데 스터드들이 놓일 위치를 가늠하면서, 미터법만 써왔던지라 계산을 여러 차례 하고도 확신이 들지 않고 검산하고 또 해보곤 했다.


평면의 설계도로는 와 닿지 않는 건축물의 규모를 상상하며 구조와 위치별 명칭을 연결해 외우는 작업은, 무엇이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선행되어야 하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진급할 때마다 권수가 늘어나는 교과서를 보며 암기해야 할 것이 늘어났다는 부담감에 설렘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종종 막막함이 느껴졌다. 체득하며 익힐 수 있고 매일 반복하니 자연스레 익혀질 일인데 무의식적으로 조급해졌다. 건축이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일을 접할 때마다 당면하던 나의 습관이자 한계다. 출발선 앞에서 쉽게 움츠러들던 나를 건축을 접하며 다시 마주한다.


▶ 벽체 창틀에 설계도를 올려놓고 수치계산 삼매경인 필자 ⓒ사진: 조채윤 


암기는 어쩌면 쉽고 단순하다. 이 목재와 저 목재를 연결할 때에 어느 두께와 길이의 못을 선택할지는 외울 사안이 아니다. 목재의 두께와 두 개의 목재가 안정적으로 고정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수치를 감안해 못의 길이를 정하고, 고정의 필요강도에 따라 못을 쓸지 나사못을 쓸지를 선택하는 일이 별 것 아닌 듯 보여도 한결 까다롭다. 누군가가 일일이 일러주기 민망한, 이 구조물의 쓰임이 무엇인지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실상 살면서 당면하는 일들은 늘 이랬다. 원칙은 알아두되 불변의 기준이란 거의 없다. 여건에 맞게 부드럽고 여유 있게 대처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막연함이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나가도, 동요하지 말고 차분하게 정석 책을 뒤져가며 원리를 논리적으로 따져봐야 할지, 내가 백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머리를 쥐어짜다 지치면 깜지라도 쓰면서 기초정보를 달달 외울지, 두 팔 다 들고 빠르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지도 아쉬움 남기지도 말고 행동한다. 해보고 아니면 수정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고 배웠는데, 그리고 사실 그렇게 하는 편이 내게도 가장 좋았는데, 왜 그 일이 여태 잘 되지 않는지. 건축보다 더 큰 과제는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는 나 자신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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