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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이의 주인공은 게이일까요?” 퀴어영화연구자 인터뷰

후조시 문화연구기획 <후조시, 상냥하게 가르쳐 줘> 6화


※ 필자 소개: 요오드, 철가루, 비이커로 이루어진 퀴어문예창작집단 ‘물체주머니’는 2014년 <영혼을 위한 백합수우프>, 2차백합 동인지 <돌아오세요 305호에>를 발행하였고, 문예지 <소설퀴어>를 준비 중이다. (*후조시: Boys’ Love를 향유하는 사람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① 퀴어 영화 연구자 김경태님과의 대화


“게이는 BL을 보면 어떠냐”는 질문은 “여자는 (여/남 간의) 포르노를 보면 어떠냐”는 질문처럼 무례한 게 아닐까 우려된다.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판타지가 나한테 어떠냐니. 그렇지만 여/남 간 섹스와 Boys Love 역시 창작물에 등장하는 하나의 소재라면, 그것을 더 ‘잘’ 이해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질문이라면, 함께 묻고 답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비이커와 요오드는 지난여름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서 <야오이를 통해서 본 퀴어영화> 강좌를 진행하신 김경태 선생님을 만났다. 김경태님은 자신의 삶이 투영된 서사 장르를 쫓아 처음 야오이를 접했고, 이제는 남성동성애 영화를 분석하는 틀로 야오이를 활용한다고 밝힌다. 김경태님과의 대화를 통해 후조시 문화에서 한 걸음 떨어져 BL을 보는 또 다른 시각과 의미를 공유해본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중앙대학교에서 올해 논문 『친밀한 유토피아: 동시대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가 욕망하는 관계성』(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2017)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나이는 서른아홉이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행성인’에서 <야오이를 통해서 본 퀴어영화> 강좌를 진행하셨는데요, 어떤 경로로 열리게 된 강좌인가요.


“20대 초반, 그러니까 2000년대부터 ‘동성애자 인권연대’(‘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전신, 이하 동인련) 회원으로 활동을 했었어요. 게이 커뮤니티는 2000년도 1월쯤에 처음 나갔어요. 그 전까지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인정을 하고 2000년대에 나와, 종로와 이태원을 매주 빠지지 않고 다니면서 신나게 놀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노는 것에 회의가 드는 거예요.


그때 마침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어났고, 그가 부정의하게, 부당하게 방송에서 퇴출되는 상황을 보면서 분노를 한 거죠. 동인련 기반으로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는데, 거기서 활동하실 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 그냥 무작정 찾아갔죠. 가자마자 전단지 돌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인련 활동가로 흡수가 됐어요. 2001년 군대 가기 전까지 1년 동안 활동하다가, 그때부터 인연이 되어 계속 들락날락 하면서 현재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중이에요. 지난여름 강좌는 박사 논문 완성하고, 행성인 운영위원장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여름에 가볍게 회원들 대상으로 강의를 좀 해줄 수 있냐고 물어 와서 하게 되었습니다.”


- 야오이라는 장르를 알게 된 경로는 어떻게 되나요?


“2000년도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다룬 서사 장르를 접하기가 힘든 시기였잖아요. 근데 그때 모든 장르를 통틀어서 가장 유명했던 게 <뉴욕뉴욕>이라는 만화였어요. 그건 정말 교본과도 같았죠. 모든 게이들이 그건 진짜 눈물을 쏟으면서 보거든요. 저는 만화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 커뮤니티 내에 소문이 나서 보게 됐는데요. <뉴욕뉴욕>은 야오이나 BL은 아닐 수 있어요.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루기 때문이죠.


▶ 라가와 마리모 <뉴욕 뉴욕> 1~4권(대원씨아이, 2002). 섹슈얼리티로 인해 부닥치는 동성애자들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야오이와 다르다고 회자된다. 현재 절판되어 e북으로 접할 수 있다.


그때 제가 야오이 만화를 찾은 이유는 판타지로서 그걸 소비하는 게 아니라, 내 삶이 투영된, 혹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해답이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이런 서사 장르를 계속 찾는 거예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죠. 그걸 계기로 연결이 되는 거죠. 그 다음으로 뒤따르는 게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 같은 만화 또 찾아보고. 고전이라고 불릴 수 있는<바나나 피쉬>. 자꾸 회자되는 만화를 찾아본 거죠. 연구를 하면서 유명한 BL만화를 찾아봤는데, 저는 완전히 몰입해서 보는 게 좀 힘들더라고요. 현실 퍼센트를 따지자면 판타지 50에 현실 50은 있어야지 몰입을 하겠더라고요. 그 이상, 70프로 넘어가는 판타지로 구성된 BL물은 소비하기 힘들더라고요. 그게 한계인 거 같아요. 제가 당사자니까 완전히 판타지로 소비하는 건 힘들더라고요.”


- <뉴욕뉴욕>은 BL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는데 놀랍네요. 게이들이 많이 본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그땐 BL이라는 장르도 몰랐을 거예요. 팬픽은 알고 있었죠. H.O.T.나 신화, 이런 팬픽에 대해서는 얘길 들었는데 저는 소비하진 않았거든요. 아마 많은 게이들이 그럴 거예요. 사실 제 주변에서 BL보는 사람은 없거든요. 차라리 ‘타가메 겐고로’(게이, BDSM, 에로틱 만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일본의 만화가)를 보지. 물론 이쪽 공유 사이트를 보면 BL만화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는 거죠. 근데 그게 다수는 아닌 것 같아요.”


- <뉴욕뉴욕> 이후 <앤티크>, <바나나 피쉬> 등은 어떻게 와 닿았나요?


“어릴 때는 별 감흥이 없었죠. 현실과 너무 달라 보였고, 일반적으로 게이들이 [야오이를] 비난하는 시각, 그런 식으로 저도 외면을 했겠죠. 어릴 때는 그냥 현실의 답을 찾기 위해서 만화를 본 건데 전혀 다른 이야길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퀴어영화를 찾아봤죠.”


- 2009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블로그 <레인보友>에 쓰신 글에, 처음으로 조카의 슈퍼주니어 팬픽 회지를 본 얘기가 있던데요.


“예. 그때 보고 놀랐어요.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는데, 약간 흥분이 되더라고요. 시각적인 게 없이 그냥 활자만으로도 그렇게… [감응할 수 있다는 게] 그게 그 힘인 거 같아요. 실존하는 인물들이니까 선명하게. 팬픽을 왜 봐? 이랬는데 보고 나서는 이해가 갔죠.”


-재밌었던 다른 BL 작품들을 추천한다면?


“<동급생>, <러버스 키스>도 괜찮았어요.”


②남성 동성애를 분석하는 틀로서 ‘야오이’의 발견


- 야오이를 연구대상으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 같은 경우 야오이를 향유하는 층은 아니거든요.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라, 영화를 분석하기 위한 틀로서 야오이를 가져온 거예요. 남성 동성애 이미지를 분석하는 방법론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이게 아닐 텐데, 이 이상의 무엇이 있을 텐데, 그래서 분석틀을 찾다가 야오이를 발견한 거죠. 이론적으로 아, 이런 논의들이 있구나,를 발견하고 작업한 추후에 유명한 야오이 만화를 찾아봤습니다.”


- 지난 강연이나 그간 논문에서 BL보다 ‘야오이’라는 용어를 꾸준히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참고한 이론들에서 주로 야오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어요. 아무래도 야오이가 시기적으로 오래된 용어고, 그때는 야오이가 더 친숙했거든요. 또 BL은 ‘보이즈 러브’, ‘남자들의 사랑’이라는 말 그대로 그 장르를 단순히 설명해주는 거지만, 야오이는 스스로를 자조 섞인 목소리로 표현해내는 방식이잖아요. 그 자체가 어떻게 보면 전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야오이라는 표현을 계속 썼는데, 퀴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잖아요.


퀴어도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뜻으로 썼었는데 그게 정착이 된 것처럼. 극적 상황이 없고(야마나시やまなし), 이야기의 완결이 없고(오치나시おちなし), 이야기의 의미가 없는(이미나시いみなし) 그런 것들이 하나의 장르가 된다는 건, 되게 아방가르드한 장르잖아요.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대중서사 장르와는 차별화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실험적인 서사일 수도 있는 거고. 그걸 좀 긍정적으로 독해하고 싶어서 야오이라는 용어를 쓴 것 같아요.”


③게이 문화와 BL 문화의 교차점


▶ 타가메 겐고로 <PRIDE>(古川書房, 2004). 그의 만화에 등장하는 베어 스타일 남성들은 BL의 미소년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 작품은 남성적인 탑이 자신보다 더 남성적인 교수에 의해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마조히즘 성향을 찾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 게이 커뮤니티 혹은 남성 성소수자 공간에서는 대부분 BL에 관심이 없나요?


“그러니까, 덕질을 하진 않죠. 성적 판타지를 느끼기 위해서는 BL을 볼 시간에 [게이] 포르노를 보는 거죠. 소위 포르노에는 서사가 결핍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서사가 되게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때 BL이나 이런 서사 장르를 찾아보면서 보완하는 거지 대체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 후조시(腐女子), 여성들이 게이를 대상화하는 듯한 BL을 소비하는 것에 대해 어떤 게이들은 직접적으로 불쾌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렇죠.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겠죠.”


- 어떤 분은 야오이의 강간 판타지가 되게 불편하다고 하셨어요. 본인의 안 좋은 경험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강간 당하고 게이가 된다는 시나리오가 말이 되냐는 비판이었죠.


“저도 그런 부분은 아직까지는… 그걸 생산적으로 독해하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폭력성에 대해서는 계속 걸리는 것 같아요. 사실 폭력성만 따지면 타가메 겐고로가 훨씬 심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은 폭력이잖아요. 그것과, 사랑하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차이가 있는 거니까요. 오히려 사랑과 폭력이 결부된 게 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보여주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라서. 왜냐면 그건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 폭력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불편해서 잘 못 보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야오이를] 소비하는 층에서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오히려 제가 더 궁금하더라고요.”


- 야오이 서사에서 인물들의 관계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야오이는] 어떻게 보면 서사가 단출하잖아요. 둘 만의 관계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니까. 쉽게 간과하거나 축소해서 묘사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는 것 자체에 저는 의의를 두고 있어요. 그게 사실 핵심이잖아요. 성적인 결합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까지 어떻게 친밀한 관계를 구축해 가는가, 그 과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전 좋거든요. 동일한 성끼리 관계를 맺어가는 것, 성차를 지우고 현실이 이미 그 관계를 규정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그러니까, 개인 대 개인이 오롯이 마주하고 서로의 아픔이나 그런 걸 치유해주고, 이런 과정들이 되게 좋더라고요.”


-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너라서 좋은 거야’라는 서사가 호모포빅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성차를 지우고 ‘진정한 사랑’을 향해가는 둘의 관계에 집중하는 이야기는 오히려 단순한 선호로서의 게이 섹슈얼리티를 비가시화하는 것 아닐까요?


“이건 재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문제 같아요. 창작자가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기사 (2화 “후조시, 우리에게도 역사가 있다”)에서 언급하신, 테레즈는 동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라 캐롤이 필요한 거라는 이동진 평론가 말처럼, 동성애를 지워버리는 그런 주장이 예전 같으면 되게 불편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야오이를 보면서 한 바퀴 돌아, 그게 전복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물론 이동진 평론가가 그런 전복성을 고려했냐면 아닌 것 같은데, 동일한 표현이라도 내포하는 의미가 많이 다른 거죠. 그게 연구하는 사람의 몫인 것 같아요. 동성애를 지워내지만 대신 그 자리에 더 전복적이고 더 가능성 있는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걸 계속 설득해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 타가메 겐고로 같은 작가의 작품 역시 판타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BL이 판타지라는 말에, 게이가 만드는 창작물은 과연 다른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요즘은 게이들을 위한 웹툰 플랫폼이 따로 나오잖아요. 까만봉지(kkatoon.com)인가. 그건 게이들은 공감이 가는 판타지예요.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그 판타지가 달라요. 야오이에서 보는 판타지는 너무 많이 나갔는데 이건 있음직하다는 게 있어요. 핍진성(逼眞性, 진실에 가까운 정도)이라고 할까. 타가메 겐고로 같은 경우에도 가학성을 드러내는 만화고, 되게 판타지적인 만화지만, 그걸 현실적으로 보완하는 다른 요소들이 있어요. 예컨대 그래픽적인 요소.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든지, 시대적인 배경을 구체화한다든지, 그 판타지성을 상쇄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게 아, 있음직하다, 라고 느껴지는 거예요. 근데 제 입장에서 특정한 야오이, 비엘 만화 같은 경우는 사람 같지 않은… (일동 웃음) 엉겨 붙으면 뭐가, 이게 신체의 어느 부위지? 저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림체 자체에서도 어떤 판타지성이 묻어난다고 해야 하나.”


▶ 퀴어만화 플랫폼 까만봉지(kkatoon.com) 메인 화면. 주로 성인용 게이 만화들이 연재되고 있다.


- 남자아이돌을 덕질하는 게이는 팬덤 내 후조시 문화와 확실히 거리가 있는 건가요?


“예. 일단 집단으로 덕질을 하진 않는 것 같아요. 일례로 ‘프로듀스101’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주변 게이들이 많이 보더라고요. 지지하는 멤버, 고정픽이 있고요. 근데 그걸 드러내놓는 것의 부끄러움, 집단으로 한다는 것의 부끄러움,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친해야지 이야기하고 그런.”


- 탑/바텀이라는 용어와 다르게, 야오이에서는 공/수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이런 용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게 재밌었던 게, 게이들이 안 쓰는 용어들이 많잖아요. 공/수 같은 표현도 그렇고. 공/수야 뭐, 현실의 탑/바텀과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그 외에 ‘이렇게 야한 몸을 하고 있어…’ 야한 몸이라는 표현도 처음 들어봐요. 야한 몸이 뭐지? ‘가고 싶어, 가고 싶어’라고 하던데 왜 가고 싶다 그러지? ‘가게 해줘’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이게 번역투 같은 건가요? 일본어를 한글로 그대로 번역한 듯한 표현들이 있더라고요. 낯선 용어들. 성행위 중에 보여주는 용어들이 되게 독특하더라고요. 그것도 의미가 있을 텐데. 재밌는 건 게이 커뮤니티에서 탑/바텀에 대한 정형화된 타입들이 있잖아요. 스테레오 타입들. 당연히 수라면 여성스러울 거다. 외모로 너 바텀이지, 놀리고. 근데 ‘평마박때’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평소에는 마짜(맞다, 바텀) 같은데, 박탈 때는 때짜(때리다, 탑)자인 거.”


- 낮져밤이(낮에는 지고 밤에는 이기는) 같은?


“그렇죠. 평소에는 여성스럽고 수 같은데 섹스를 할 때는 탑이 되는. 그래서 평마박때. 평때박마, 이런 표현들이 있어요. 넌 평때박마야, 평마박때야, 이런. 확률적으로 공처럼 생겼으면 정말 공일 확률이 높긴 한데 그게 완전히 들어맞는 건 아니죠. 근데 BL에서는 비교적 명확하지 않나요?”


- 비교적 명확한 편이죠. 후조시들이 공에는 남성성, 수에는 여성성을 투입하면서 젠더 이분법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니 공/수 표기를 아예 없애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삽입 아니면 공/수가 의미 없는 거잖아요, 그죠? 근데 BL에서는 그게 더 중요하잖아요. 성격까지도 규정하고 스토리 전개에도 영향을 미치니까. 현실적인 욕망과 비교해보면, 섹스 포지션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이분화된 성을 따라서 그런 건 아니거든요. 물론 내가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서 난 탑을 해야 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있을 거예요. 순전히, 삽입 당하는 것보다 삽입하는 게 더 좋아, 더 많은 쾌락을 느낄 수 있어, 라고 해서 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혹은 이걸 ‘수동적인 탑’이라고 하는데, 탑을 하기 싫은데 상대방이 그걸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 혹은 나는 탑을 하고 싶어. 하지만 성기가 너무 작아서 할 수 없어. 바텀을 해야 돼…. 현실에는 삽입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이 있을 수 있는데, 다르죠. 되게 남성적인데도 바텀이라는 사람이 있고, 정말 여성스러운데 탑이라는 사람도 있고.


지난 기사에 쓰신 것(1화 “후조시(腐女子)를 모르다니요!”)처럼 그건 정말 도구일 뿐인 것 같아요. 유희를 위한 도구, 그게 추세인 거 같아요. 나는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 탑을 해야 돼, 이렇게 얘기하면서 탑하면 사실 안 좋은 소리 듣죠. 그게 게이들한테 환영받는 입장은 아니죠. 나는 일말의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서 탑을 해야 돼, 이러면 욕먹죠.”


- 게이 문화에서 탑/바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게 된 기점이 있었나요?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인 거죠. 페미니즘의 영향도 있고요. 게이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자 하는 성향이 좀 강한 편이에요.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속으로는 그렇더라도 겉으로는 표현을 안 하죠. 말을 더 조심하게 되고. 요즘 사람들이 더 무섭더라고요.(일동 웃음) 수업 시간에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앤티크> 이런 걸 보여주고 시험 답안을 받아 보면, 막 비난을 해요. ‘동성애자들의 삶을 미화시켜 놓고, 현실을 외면하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들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되어 있어요. 제가 제일 걱정하는 겁니다. 오히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학생들은 없어요. ‘동성애자를 재현할 때는 현실과 똑같이!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재현해야 한다.’ 딱 그렇게 쓰는 거예요. 그래서 <앤티크>도 안 되고, <왕의 남자>도 안 되고, 다 안 되는 거예요. 그런 학습이 잘 되어 있는 거 같아요.”


▶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은 김조광수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게이와 레즈비언이 위장 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민규동 감독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는 요시나가 후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다. 구체적 분석은 김경태 박사논문 『친밀한 유토피아: 동시대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가 욕망하는 관계성』의 Ⅱ장(게이 공동체와 나르시시즘), Ⅴ장(우정의 재발명과 대안적 관계성)을 각각 참고.


④BL과 재현의 윤리적 문제들


- 정치적인 올바름 얘기를 하셨는데, 비슷한 현상으로 트위터에서도 BL 속 재현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젤을 안 발랐는데 삽입이 어떻게 가능하냐, 관장은 안 하냐 등 섹스의 현실적인 면을 삭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죠.


“근데 영화에도 그런 거 안 나와요.(일동 웃음) 관장하고, 젤 하고, 그러면 코미디가 되는 거예요. 장르가 바뀌죠. 되게 막 욕정이 끓어오르고 다급한 순간인데 잠깐만, 이러곤 화장실 갔다 오고. 이거는 하아, 심각한데요. 관장도 건강상 하면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관장하는 게 예의처럼 생각되는데, 그건 충분히 합의하에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영화에서는 보통 [젤이 아닌] 침을 바릅니다, 급하기 때문에.


정말 사실적으로 섹스를 재현하자면 그냥 포르노를 보면 되죠. 그런 거는 창작의 상상력을 위축시키는 거예요. 어차피 한정된 시간 안에 무언가를 묘사해내고 표현해내야 하는데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돼서 하나하나 다 넣어버리면, 서사 장르에도 흐름이라는 게 있는데 흐름을 탁탁 끊어버리고 표현의 한계가 될 수밖에 없죠. 진짜 그런 얘기가 있나요?


- 네, 그리고 ‘나는 게이로서 왜 이런 장면이 안 나오는지 의아하다’는 이야기가 돌면, 후조시들이 반성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 같아요.


“그걸 넣고 싶으면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해서 재밌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관장과 젤 바르는 걸 가지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넣는다거나 서사적으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거 다 안 보여주잖아요.(일동 웃음) 왜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화장실 한 번도 안 가? 이런 식이라면 정치적 올바름이 너무 과도하다는 거죠.”


- 당사자라고 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남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없나요?


“[남성이] 스스로 성적 대상이 되기를 불편해한다는 말 안에는 남성적인 권위를 상실한다는 느낌이 있는 거죠. 그렇게 소비되는 것 때문에 불편한 거죠. 제 생각에 그건 남자는 소비의 주체인데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욕망이 있는 거예요. 저는 전혀 그런 불편함은 없어요.”


- BL이 게이나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착취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으시는 건가요?


“네. 이건 재현 장르잖아요. 그게 현실과 똑같든 안 똑같든 간에, 이성애적이지 않은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많이 생산되는 건 좋은 거죠. 없는 것보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담론이 많아야 그 안에서 새로운 얘기들이 나오니까요. 비이성애적인 창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봐요. 제가 되게 관대한 편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요.(웃음)”


- 지난여름 행성인 강의에서 BL의 중성적인 인물들이 재밌다고 하셨습니다. “남자이면서 게이가 아닐 수도 있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게이일 수 있는, 이런 것들이 제3의 성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야오이의 재현이 되게 퀴어하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부연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BL은 현실 속 게이와 다르다, 이미 그 인물 자체가 현실 속 게이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 속 게이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낼 필요가 없다는 거죠. 기존의 현실 속 성차들이 제거되고, 최소한으로 등장하는 거잖아요. 두 명의 사람이, 성별에 부여되는 규범적인 역할들로부터 자유롭게 서로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니까. 그런 중성적인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BL재현에서 현실과 판타지의 비율을 이야기하셨는데, 황금 비율은 5대 5인가요.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서는 5대 5죠(웃음). 저는 7대 3이 좋은 것 같아요. 현실 70에 판타지 30. 거기까지는 볼 수 있는데, 그 이하로는 못 보고요. [판타지와 현실을]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엄밀하게 수치화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BL을] 동기로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작인이 될 수 있으면 좋은 거니까. 단순히 게이 섹슈얼리티를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비율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⑤여성없는 세계, 비엘에 대한 페미니즘 비판 재고


- “야오이 문화는 동성애가 아니라 여성 섹슈얼리티의 은유적 확장이자 우회적 반영”이기에 “동성애 재현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야오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수용자인 여성 독자에게 주목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2009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블로그 레인보友) 야오이 텍스트에 갇혀서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의 이분법적 대립”에 봉착하기보다, “그것을 소비하는 여성들이 처한 ‘성적 소수자’로서의 입지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또한, “엄밀히 말해 야오이는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차’를 배제하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흥미로웠습니다.(김경태, 「야오이를 전유한 동아시아 남성 동성애 영화 재고: <꽃보다 게이>, <열일곱 살의 하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중심으로」, 영상예술연구, Vol.19, 2011)


한편, 정말로 여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2015년 문화연구자 손희정 선생님께서 “부녀자(후조시)는 주류 미디어와의 긴밀한 관계 안에서 완전히 소비자화한 여성 하위문화의 성격을 함께 보여”주며, “특히 ‘부녀자 문화’가 향유하는 남성동성사회성 및 남성 동성애 코드는 적극적으로 여성혐오를 드러낸다”고 비판했습니다.(손희정, 「페미니즘 리부트: 한국 영화를 통해 보는 포스트-페미니즘, 그리고 그 이후」, 『문화과학』 83호, 2015) 호모소셜리티를 동경하고 여성이 없는 텍스트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그런 작품을 재생산하는데 돈을 부어주는 문제적 팬덤 현상으로 지적하셨습니다.


“손희정 선생님의 관점은 시대적인 맥락과 결부돼 있다고 봐요. 이 장르만의 문제, 비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타의 문화예술 장르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BL도 그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거죠. 현실적인 구조의 면에서요. 하다못해 서구의 문화환경이었으면 좀더 관대하게 BL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현실과 이론 사이의 간극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한쪽에 힘을 적극적으로 실어줘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대중문화에서 계속 여성의 비중이 적어지고 있잖아요. 그 와중에 또 이런 하위문화에서도 계속 여성이 배제된 채, 심지어 여성이 배제된 것을 향유하는 계층도 또 여성이고. 그런 것들이 더 문제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같은 맥락이죠. 제가 현실이랑 다르더라도 게이 섹스가 재현되는 장르가 풍성해지는 것은 좋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는 어떻게 되었든 여성들이 계속 등장하는 장면들이 나와야 하는데 [여성이] 가시화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거죠. 게이는 게이 이전에 남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게 문제인 거죠. 또 역으로 생각하면 야오이, BL에 나오는 남자는 남자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사실 제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다른 관점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서로 이렇게 대화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 BL이 이성애 규범성을 해체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동성애 규범성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요.


“동성애 규범성(homo-normativity)*은 동성애자들의 동화주의적 욕망이죠. 동성애자들도 똑같이 군생활하고, 똑같이 결혼하고, 이성애자들이 사는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를 다 누려야 한다는, 그런 욕망에 문제 제기를 하는 거죠. 왜 게이들의, 동성애자들의 삶의 목표가 결혼이어야 하는가. 그 얘기를 하는 거죠. 그 규범성.


※동성애 규범성: 미국의 역사학자‧퀴어활동가 리사 두건이 <twilight of Equality>(2003)에서 제시한 ‘새로운 동성애 규범성’(new homonormativity)은 성소수자들의 정치가 이성애 규범적 가정들 및 제도들과 경합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지지하고 결혼(가정), 소비(시장), 군대(애국심)에 대한 접근을 통해 이성애자의 거울쌍인 ‘행복한 동성애자’의 모습으로 축소되는 현상을 비판하는 개념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국내 역서 <평등의 몰락>(현실문화, 2017)을 참고.


논문에도 인용한 건데 BL에 여성이 배제되는 것은 그 안에서 여남 간의 로맨스는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결혼이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로 나타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건 우리 부모님들, 우리가 늘 주변에서는 보는 풍경인 거죠. 비엘을 소비하는 데는 이성애 로맨스 각본을 거부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거예요. [BL은] 이미 구조적으로 아이를 낳고 살 수 없는 관계인 거잖아요. 그 안에는 정말 뜨거운 열정, 뜨거운 사랑만이 존재하는 거죠. 그게 최종적인 목표가 되는 거죠.”


▶ 미국 ABC 드라마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에 나타나는 “비장애, 성인, 백인, 중산층, 아이를 입양해서 재생산을 이뤄가는 게이 커플”의 이미지는 성소수자의 삶의 양식이 ‘건강한 이성애 커플’과 다를 게 없다는, 혹은 다를 게 없어야 한다는 동성애 규범성을 형성한다.


- 영화의 경우 게이영화 혹은 성소수자 영화와 비엘영화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영화들의 전망은?


“퀴어영화의 정의에 대한 문제인데, 저는 매우 포괄적으로 봐요. 대안적인 관계를 욕망하는 영화는 다 퀴어영화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성소수자만 나온다고 해서 퀴어영화가 아니라. 표면적으로는 남녀가 사랑하더라도 혹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족구성원으로 영화에 등장하더라도, 그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퀴어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규범적인 관계랑 다르게 변주하거나 비틀면, 그것도 퀴어영화가 될 수 있는 거죠. 또 역으로, 급진적으로 생각하면 동성애 규범적인 관계에 안주하는 그런 퀴어영화들은 오히려 대안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이성애 관계보다 덜 퀴어적일 수도 있는 거죠.”  (인터뷰: 비이커, 요오드)


※ 이 연재의 제목인 <후조시, 상냥하게 가르쳐 줘>는 이도 기호우(井戸ぎほう) 1차 BL만화책 <상냥하게 가르쳐줘>(やさしくおしえて)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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