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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첫 경험

<치마 속 페미니즘> 너는 보물이 아니라 인간이야



학교와 집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인생이 낙오된다는 협박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여성인 나에게는 협박 하나가 더 생겼다. ‘몸을 함부로 굴리고 다니면 걸레가 된다’. ‘여자가 손해니까 몸조심하라.’

 

학교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온갖 거짓말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학교라는 ‘우리’에 우리를 가두어놓고, 여러 가지 금기를 정하고 그걸 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잠들기까지, 아니 잠든 후에도 아버지의 욕설과 발소리, 문을 쾅쾅 닫는 소리가 지배하던 집은 내게 또 하나의 ‘우리’였다.

 

친구들과 밤거리를 걸어 다녔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별들을 구경하면서 싸한 밤공기를 마시는 건 내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자유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해방구, 연인이라는 관계는 나를 인간 취급 해주는 공간이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 나는 일방적으로 욕을 먹지도, 아이 취급을 당하지도 않았다.

 

▶ <기억 A memory> ⓒ 정은의 빨강그림판

“무덤 끝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

 

열다섯 살 때 두 살 연상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종종 부모님 없는 그의 집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거나, 인생고민을 털어놓다가 장난을 치다보면 날은 어두워졌다. 어느 날 남자친구가 말했다. “화이트데이에 뭐해? 우리 맥주 한잔 때리자!”

 

그의 집에 여느 때처럼 찾아간 날, 그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이미 한잔을 한 상태였던 그들은 나와 남자친구를 축복해주며 맥주를 따라줬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들 사이에서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곧 한껏 기분에 취해 맥주를 들이켰다. 몸에 힘이 풀리고, 어지러워졌다. 화이트데이인데. 이런 중대한 기념일을 망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방에 들어가 혼자 쉬기로 했다.

 

누워서 얼마나 잤을까. 그가 방으로 들어와서 토닥여주었다. 토닥이던 그가 내 옆에 눕고, 서로를 마주본 우리는 서로의 몸 구석구석을 만졌다. 그의 손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더니, 속옷 속으로 손이 들어왔다. ‘이게 뭐지? 지금 이 상황은?’ 초등학교 때 봤던 ‘내 몸은 보물이에요’ 성교육 비디오가 생각났다. “싫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어. 게다가 지금은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말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물었다. “좋아?” 좋지 않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싫다고 했다가 그가 싫어하면 어떡하지? 분위기를 깨는 게 아닐까? 역시 싫다. 그런데 술기운 때문인지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거실에는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강제도 동의도 아닌 흐지부지한 상태에서 이질적인 그의 성기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순결’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쳐 놓았다. 엄마의 얼굴이 방 천장에 두둥실 떴고, 걱정스런 눈으로 내게 또박 또박 말하고 있다. “여자는 순결을 지켜야 해.” 그는 삽입을 한 후, 그 다음 키스를 했다. 첫 경험이고, 첫 키스였다.

 

순결주의를 주입받았던 나는 순결한 섹스를 상상하곤 했다. 예쁜 침대와 이불, 따뜻한 불빛 속에서 나누는 섹스. 그러나 내가 있는 곳은 그늘진 비좁은 방 안이다. 누런 곰팡이가 천장 모서리마다 보이는 방.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이불,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내가 나를 보고 있다. 시체처럼 누워서 힘없이 흔들리는 다리를 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건 데이트 강간, 약물강간이었다. 나는 저항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와 단 둘이 한 방에 있는 것도 좋았고, 뽀뽀를 나누거나 손을 잡고 포옹을 하는 건 좋았지만, 섹스를 원하진 않았다. 그러나 내 발로 그의 집에 찾아갔고, 그가 주는 술을 다 받아마셨다. 모든 것이 나의 과실 같았다. “무덤 끝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라고 되뇌였다.

 

‘걸레 같은’ ‘더러운 짓’을 내가…

 

어둑해진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방 불을 켜고 속옷을 주워 입었다. 피가 묻어나왔다. 이게 처녀막인가? 붉은 피는 생명이자 죽음의 상징이라고 했던가? 핏자국은 내게 “너는 처녀가 아니야. 너는 이제 끝났어.” 라고 선고하고 있다.

 

남자친구는 괜찮냐며 나를 다독였지만 그가 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더러워졌어.’ 생각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고 뻐근한 골반을 움직이며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언니와 마주쳤다. 언니는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비누향기가 나는 언니와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걸음걸이가 이상해보이지 않을까? 나한테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더러워. 친구들도 나를 더럽다고 말할 거야.’ 집으로 돌아가 비누로 몸을 벅벅 긁고 뜨거운 물로 한참을 헹궜다.

 

▶ <여자의 몸> ⓒ 홍승희

 

여자중학교에 다녔던 친구들과 나는 여자애들의 잠자리 소문을 수군거리는 걸 즐겼다. ‘쟤 남자친구랑 잤대’, ‘어느 고등학교에 어떤 언니가 임신을 해서 자퇴를 했다더라’, ‘걔 걸레래’, ‘더러워.’ 그런 더러운 짓을 내가 했다. 게다가 친구들도 있었던 그의 집에서. 소문이 나지 않을까? 내 몸이 역겨워서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몸과 나를 분리시키고 싶었지만, 밖으로 돌출된 남자의 성기와 달리, 어둡고 눅눅한 동굴 속 질 벽은 이미 오염된 것 같았다.

 

어느 날 친구가 나를 불러 세우고 물었다. “너 OO이랑 잤어?” “아니, 걔랑은 손만 잡았어”, “진짜? 너 걔랑 잤다고 소문 쫙 났어.” 친구는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듯 건조하게 나를 바라봤다. ‘쿵!’ 나는 그때 ‘쿵’ 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쩍 갈라지고, 땅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쿵’ 소리. 하늘은 맑았고 땅은 미동도 없고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나는 ‘쿵’소리를 들었다.

 

친구들도 뒤에서 나를 욕할 것 같았다. 학교에서 나는 걸레로 낙인찍힌 걸까? ‘더러움’은 집요하게 내 등 뒤에, 귀에, 다리 사이에 서 맴돌고, 새겨졌다. 그가 나와 잤다고 말하고 다닌 걸까? 그에게 따져 물을 수도, 그럴 기운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거니까. “더러운 년.” 익숙한 말이다. 아빠는 엄마의 귀가가 늦어지는 날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더러운 년. 걸레 같은 년. 가벼운 년. 너넨 남자들이랑 더러운 짓 하고 다니지 마.” 귀가가 늦는 내게 아빠는 엄마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쏘아붙였다.

 

연인이었던 그와의 관계는 계속됐다. 가끔 술에 취하면 그를 찾아갔다. 우리는 몇 번의 섹스를 더 했다. 망쳐버린 첫 경험을 다시 제대로 하고 싶었다. 나를 ‘따먹은’ 게 아닐 거라는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그와 섹스해주지 않으면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될까봐 걱정했다. 그와 멀어진 후 다른 사람과 몇 번의 연애를 했다. 10대 때 했던 섹스에서 오르가즘을 느낀 적은 없다. 그저 살을 부비는 느낌이 좋았고, 나중에는 섹스를 하면서 스스로 정복당하는 ‘여자’ 역할에 도취했다.

 

강간 판타지는 학습되는 것이다

 

13살 때 클리토리스를 만지작거리다가 우연히 오르가즘을 느꼈다. ‘클리토리스 자극만으로도 우주로 날아가 버리는 쾌감인데, 이걸 느끼려고 어른들은 (굳이) 섹스를 한단 말이야?’ 라고 생각했다. 섹스는 14살 때부터 야동으로 자주 접했다. 야동의 종류는 ‘백인여자, 일본여자, 한국여자’와 하는 ‘모자이크 없는 혹은 모자이크가 있는’ 것으로 분류됐다. 핫한 야동은 교복 입은 여고생을 따먹는 스토리다.

 

처음에는 야동을 보면서 흥분을 느끼지 않았다. 흥미진진한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나와 다른 여자들의 천편일률적인 몸매를 보면서 ‘저게 말이 돼?’ 생각했다. ‘남자의 성기를 여자의 성기에 찌르고, 때리고, 쑤시는 것이 섹스구나.’ 삽입 섹스는 불쾌하고 더러워보였다. ‘저 거시기가 내 질 속으로 들어온다고? 아플 것 같아. 더러워.’ 하지만 반복되는 장면을 보면서 나중엔 흥분을 느끼게 됐다. 고통과 환희 중간의 신음소리를 내는 여자와 정복하는 남자의 사정이 ‘섹스’하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강간 문화, 강간 판타지는 남성과 여성 모두 학습될 수 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습관적으로 야동에서 학습한 흥분대로 섹스를 했다. 침대는 남자 역, 여자 역의 연애 역할극에서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 무대였다. 청소년의 성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의제강간’(기준이 되는 연령 이하의 사람과 성관계할 경우 강간으로 간주해 형사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것) 기준 연령을 상향 조정한다고 하는데, 그게 대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스무 살이 지나서 한 다른 친구들의 첫 경험은 열다섯 살의 내가 했던 첫 경험과 별로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그보다 좋지 않은 경험도 많았다. ‘좋은’ 첫 경험은 흔치 않다. 많은 여성의 첫 경험은 강간이라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은 사실이다.

 

내 글을 보고, 내가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성적 자기결정능력’이 없을 만큼 ‘미숙’해서 이런 첫 섹스를 하게 된 거라고 판단할까봐 걱정된다. 나는 자기 주장이 강했다. 억압적인 학교와 집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고집하고, 저항했다. 하지만 섹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정말 ‘나이’, ‘미성숙’의 문제인가? ‘성숙’한 여성도, 나이 많은 여성도 강간을 경험한다.

 

내가 10대 때 접할 수 있는 섹슈얼리티는 ‘네 몸을 지키라’는 성교육비디오와 야동,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성적 뒷담화와 음담패설, 무성한 소문이 전부였다. 성교육은 “싫어요!”만 가르쳤다. 내가 원하는 섹스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은 ‘보물’이니까. 남성이 만들고 남성이 보고 남성이 즐기고 남성이 사정하면서 끝나는 ‘야동’은 섹스에 대해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였다. 여자는 수치심과 욕망 사이를 줄타기했고, 신음소리로 오르가즘을 연기했다. 성교육, 야동, 왕왕한 소문 사이를 헤집던 내 몸은, 그러니까 여자의 몸은 어디에서도 주인인 적 없었다. 내 신음소리에서도 내 욕망은 소외당했다.

 

열다섯 내가 페미니즘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나를 괴롭게 했던 ‘첫 키스’, ‘첫 경험’ 판타지와 ‘순결’ 이데올로기의 실체가 뭔지 알았다면. ‘여성혐오’와 ‘강간 문화’라는 용어를 알고 있었다면. 내 몸은 ‘보물’이 아니라, 고통 받고 욕망하고 살아 움직이는 ‘비체(abject. 여성학자 이현재는 <여성혐오 그 후>에서 기존 질서를 비껴난 존재, 분비물처럼 더러운 액체성을 가진, 혐오의 타겟이 되는, 대상이 아닌 페미니즘 주체로 명명)라는 걸 알았다면.

 

▶ <비체·abject> 2016  ⓒ 홍승희

 

[열다섯 나에게]

 

“쿵.” 너는 분명 그 소리를 들었어. 하늘이 쩍 하고 갈라지고 땅이 진동하는 소리를.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너는 그 소리를 들었어. 너는 네가 못된 짓을 했으니까, 심판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어.

 

너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 자고 싶은 만큼 잠을 자고, 완벽한 무언가가 되라고 멱살 잡힌 내 오늘을 풀어주고 싶었어. 그러려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티비에서 나오는 예쁜 연예인들은 섹시하거나, 귀엽거나, 청순한 아이콘으로 분류되었고, 나는 그 중 어떤 스타일의 여성이 되어야 할까 고민했어. 여자가 된다는 건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어른 여자는 섹스를 두려워하면서도 즐긴다고 배웠어.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묵었던 머리 푸는 반전이 있는 여자가 진짜 여자라고 배웠어. 너와 친구들은 모여앉아 ‘어떻게 하면 남자친구가 좋아할까, 남자들은 이런 걸 싫어할까, 저런 건 좋아할까’ 하며 고민을 나눴어.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거기에 우리의 욕구는 없었어. 왜 너는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만 고민했을까. 그가 어떤 애무를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네가 어떤 자세로 있을 때 오르가즘을 느끼기 좋은지, 너는 어떤 방식으로 자위를 하는지 왜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함께 봤던 여자 종류별로 나왔던 야동 때문일까. 순결한 여자와 발랑 까진 여자로 나누던 그 선생님의 말 때문일까.

 

섹스를 ‘감행’한 미성년자인 너는 ‘보물 같은 네 몸을 지키라’는 말에 반항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일탈하고 싶었던 걸까. 사람의 체온이 그리웠던 걸까. 사랑해서 그랬을까. 무엇이어도 괜찮아. 네가 원하는 섹스를 마음껏 해도 괜찮아. 다만 ‘그’들의 포르노그래피에 너를 가두지 마. 여자라는 섹스인형이 너를 대체하도록 두지 마. 너는 쉬운 여자도 아니고, 어려운 여자도 아니야. 지금 나처럼 고통 받고, 욕망하고, 실수하고, 성장하는 인간이야.

 

네가 그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든, 그 남자가 너를 ‘따먹었다’고 하든, 너는 더러운 존재가 아니야. 너의 몸은 섹스할 때마다 닳아버리는 ‘보물’이 아니니까.  (홍승희)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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