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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왜 창작을 지속하는가?

줌마네 <생존과 공유를 위한 활력담화> 2. 창작 편  여성주의 저널 일다



요즘 세상에 포기하기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어떻게 하면 정신줄 놓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나와 남을 해치지 않으며 먹고 살 수 있을까? ‘줌마네’가 기획하고 15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한 <생존과 공유를 위한 활력담화>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7월부터 시작해 8월 초까지 세 번에 걸쳐 진행된 활력담화에는 각자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고 있는 11명의 패널들을 초대했다. 이야기는 둥그렇게 모여앉아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자기 삶의 화두를 담은 ‘뜨거운’ 질문들을 꺼내어 놓으면서 시작됐다. 고립되지 않고 자립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만난 그 현장의 이야기들을 3회에 걸쳐 나누어보고자 한다.

 

[두번째 담화의 패널 소개]

 

써니데이 (조혜경): <주아 부띠끄>(2016년, 7분) 연출. 마흔 넘어 줌마네 영화워크숍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두 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워크숍’의 맴버이자 유일한 아줌마 생존자. 상영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편집본을 들고 나타나는 뼛속까지 성실한 감독이다.

 

초연 (장윤주): <Cross your fingers>(2011년, 17분) 연출. 여성문화예술기획, 서울여성국제영화제 등에서 일하다 삼십대 중반에 영국에서 영화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작품으로 만든 영화가 호평을 받았으나 그동안은 주로 학원 강사 일을 하며 먹고살았다.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두 번째 영화를 시작했다.

 

향 (이희향): <메타모르포제>(2015년, 9분) 연출. 시각예술을 공부하며 변신소녀를 소재로 한 7편의 짧은 영화를 만들었다. 현재 학교는 ‘졸업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조연출을 맡고 있으며, 그밖에 서너 개의 알바를 하며 산다.

 

하리 (김혜정): <소장님의 결혼>(2014년, 19분) 연출. 첫 영화로 장편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을 연출한 후, 줌마네의 ‘두 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워크숍’에 참여해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지금은 한 다큐 프로덕션에 PD로 참여하며 세 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 이번 <생존과 공유를 위한 활력담화>는 초대된 감독들이 연출한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 줌마네

 

진짜, 영화감독이세요?

 

나는 6년 전에 <출근방해단>이라는 짧은 동화를 써서 등단을 했다. 글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할똥말똥할 때 준비 없이 닥친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간혹 내게 ‘동화 쓰고 있냐’고 물을 때마다 ‘언젠간 … 써야죠’ 라며 말끝을 흐렸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럴듯한 후속작’에 대한 부담은 커지고 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이렇게 좋은 동화들이 많은데 나까지 써야 할까?’하는 마음도 같이 커진다. 두 마음이 항상 대치하는 와중에 영화감독들과 함께하는 <활력담화> 날이 다가왔다. 글쓰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영화를, 물리적인 제작 과정을 거쳐야 하는 영화를 계속하게 하는 힘은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했다.

 

사실 나도 영화제작 과정은 좀 안다. 줌마네에서 연 ‘초봄에 영화’(2013), ‘두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워크숍’(2013~)이라는 두 번의 영화제작 워크숍에 조교를 겸한 수강생이었다. 영화 스텝이 적성에 맞는단 소리를 들으며 다른 멤버의 촬영 현장에서 붐 마이크를 들고, 때론 슬레이트를 쳤으며, 조명 장비의 전선을 감았다. 내가 쓴 짧은 시나리오로 촬영도 한번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 워크숍이 끝나고 본격적인 제작팀을 꾸릴 때 나는 거기에 끼지 않았다. ‘글을 써야 하니까 영화 만들기에 쏟을 에너지가 없다’는 마음이었다. 이번 <생존과 공유를 위한 활력담화>에 초대된 써니데이와 하리는 그때 내가 멈춰선 자리에서 계속 나아간 이들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를 움직일 힘이 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날은 먼저 초대된 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함께 봤다. 써니데이의 <주아 부띠끄>, 초연의 <Cross your fingers>, 향의 <메타모르포제> 그리고 하리의 <소장님의 결혼>까지. 영화가 끝나고 감독들을 소개할 때 향이 대뜸 사과를 했다.

 

“파일을 혼동하는 바람에 검열용 버전을 보냈네요. 영화를 다 보여드리지 못한 실수에 대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모두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향의 해명(?)이 계속되었다.

 

“검열용 버전은 부모님 보여드리려고 만든 거예요. 다 보여드리면 집에서 쫒겨날까 봐 자른 장면이 있어요. 제가 샤워를 하거든요. 제 누드가 나와서 부모님이 아시면 ‘너 시집 못 간다,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하실 것 같아서…. 사실 그 부분이 하이라이트인데… 죄송합니다.”

 

사과의 내용이 큰 일이 아니라서 안도하며 반, 누드가 ‘나와서’가 아니라 ‘안 나와서’ 사과하는 엉뚱함에 반.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향의 영화 <메타모르포제>는 기발함과 싼티로 단박에 우리를 사로잡았다. 연출자 향이 요술봉을 들고 직접 출연하는데 자취방, 전철역 등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 등장한다. 날 것이다 못해 괴이하기까지 한 영화였다.

 

▶ 향이 감독과 배우를 겸한 <메타모르포제>. 변신 장면을 구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을 던졌다.  ⓒ줌마네

 

써니데이는 줌마네 영화워크숍에서 마흔 넘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봄에 영화’ 워크숍으로 함께 시작한 열 명 남짓한 아줌마들 중 유일한 생존자(?)다. 이날 상영한 <주아 부띠끄>는 당시 줌마네가 있던 연남동 골목 의상실 ‘주아 부띠끄’가 무대인데, 러닝타임 7분으로 두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대사는 두 마디. 그래도 하루 낮밤을 촬영한 작품이라고 했다.

 

초연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기 프로그래밍팀에서 일하며 당시 창궐하던 여성문화운동의 수혜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때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서른다섯 즈음 영국의 영화학교에 입학해 <Cross your fingers>를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다.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서 매력적인 동양인 두 주인공이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개봉관은 물론 IPTV에서도, 파일 다운로드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없다. 간혹 도서관이나 동네의 작은 축제에서, 영화제에서, 때론 미술 전시장에서 상영된다. 영화를 보려면 감독에게 직접 파일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초연을 제외한 세 사람은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영화감독이라고 부르려면 작품이 멀티플랙스는 아니어도 아트시네마 같은 독립영화상영관에 걸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분명 작품이 있긴 한데… 이들을 ‘영화감독’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럼에도 이들은 영화를 만들며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것 같다. ‘영화 한편 찍을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하는 걸 보니 분명 재미로 하는 건 아니다. 대체 왜 영화를 만드는 걸까? 계속 영화를 만들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어쩌다 영화를 찍게 되었어요?

 

향의 말은 이랬다.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변신소녀가 나오는 것들에 계속 관심이 있었는데 <메타모르포제>는 그 형식을 현실에 적용시켜서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출연하고 연출한 극영화예요. 변신 장면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싶어서 만들었던 거 같아요.”

 

써니데이는 영화의 시작이 ‘바람’이었다고 했다.

 

“두영팀(두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 워크숍팀)에서 ‘바람’이란 주제로 각자 시나리오를 썼어요. 이 영화는 아팠던 제 지인의 이야기에서 나왔어요. 우선 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인데 평소에 잊고 지냈던 여자로서의 욕망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그게 ‘바람’(wind)이거나 ‘바람’(hope)이겠지 했죠. 영화에선 빨간 원피스가 나오는데 주인공은 오후에 스치듯 본 옷이 마음에 들어왔고, 입고 싶은 바람이 생긴 거죠.”


▶ <소장님의 결혼> 촬영 현장. 감독 하리가 배우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이 영화의 배우들은 줌마네 ‘두영팀’(두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 워크숍팀) 스텝이기도 하다.  ⓒ 줌마네

 

써네데이가 말한 ‘두영팀’(두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 워크숍팀)은 서로 시나리오를 리뷰해주고 영화를 만들 땐 스태프가 되어 영화를 함께 찍는 그룹이다. 하리도 두영팀 멤버로 <소장님의 결혼>을 완성했다. 전문 배우 없이 워크숍 멤버들이 출연하고 스텝 역할을 같이하며 만든 영화다. (이 영화의 크레딧에는 내 이름도 나온다.)

 

“전에 장편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을 마친 후 ‘영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도대체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을 때 이 영화를 찍었어요. 같이 만드는 즐거움을 다시 느꼈죠. 이렇게 즐겁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아비규환 같은 현장을 견디면서 영화를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소장님의 결혼>은 극중 인물과 그의 주변 사람들 이야기가 연결되는 옴니버스 영화다.

 

“2년 동안 워크숍에서 본 멤버들 캐릭터나 일상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결합해 봤어요. 이 상황에서 이 사람이 이렇게 등장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현실화됐던 거죠. 소장님으로 등장한 오솔과는 오랫동안 안 사이인데, <어떤 개인 날> 같은 이혼 영화만 찍던 감독님을 결혼시켜주자! 이런 인물이 결혼을 하면 주변에 어떤 파장이 일어날까, 그런 궁금증. 처음 아이디어는 거기서부터 출발했어요.”

 

일단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향의 경험은 나뿐만이 아니라 그날 함께 했던 감독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저는 보신 것처럼 간단하고 허접하게 많이 했어요. 영상에 초첨이 나가든, 흔들리든 그냥 막 하고, 되게 많이 만들었어요. 일단 돈도 없고 길고 세부적인 프로젝트를 끌어나갈 역량이 제게는 없어요. 제 모토가 ‘무조건 간단하고 빨리! NG나도 그냥해!’예요. 많이 찍을수록 똑같은 것만 늘어나잖아요. 찍었던 화면 중에서 고르는데 파리가 날아다니고 그래도 ‘괜찮네, 이걸로 해’ 그래요. 촬영하는 친구도 딱히 퀄리티에 부담이 없어서 저랑 굉장히 잘 맞았어요. 그 친구에게 30만원을 지불했어요. 5회차에 30만원. 무조건 5시간 안에 끝내겠다 약속하고요.”

 

흔히 단 한 장면을 얻기 위해 같은 씬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을 영화에 대한 애정이라 여기는 영화관객 입장에서 향의 이야기는 신선함을 넘어 놀랍기까지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칭’ 영화제 비정규직, ‘타칭’ 작은영화제 소생술사인 한 참가자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결국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네요. 시작이 되어야 그 다음에 영화제도 노크할 수 있고 사람들이 볼 수도 있고. 향이 물론 젊기도 하지만(웃음),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단 생각이 들어요. 처음부터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고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가도 되는구나 싶어서 저한테도 굉장히 힘이 되요. 영화라는 게 당장 나가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인데, 우리가 덜 두려워할 필요도 있네요. 카메라 하나, 핸드폰만 있으면 찍을 수 있잖아요.”

 

향처럼 용감하지도 않고 젊지도 않고, 함께할 이들도 없다면 두영팀을 곁에서 지켜봐 온 짱아같은 생각도 필요할 것이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못하면 결국 자기 탓을 하게 되잖아요. 난 안돼 이러면서, 그런데 두영팀을 보면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되겠구나!’ 그런 희망 같은 걸 봤죠. 그 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해야 되는 몫이라 생각했는데.”

 

써니데이와 하리가 말을 이어갔다.

 

“왜 영화를 했냐고 물으면 저는 ‘판이 있었기 때문에 했다’고 답해요. 상황이 그랬고 사람이 있어서 했다고. 처음에 영화를 만났던 건 취미였어요. 그러다 두영팀을 만나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판이 생긴 거예요. 사실 용기가 있어서 작업에 들어간 게 아니라, 작업을 하려고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매번 해야 할 어떤 것들이 있었고 그걸 위해 용기를 내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게는 <소장님의 결혼>이 ‘이런 식이라면 계속 영화를 할 수 있겠다’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어요. 같이 하면 쉽게 한 발 뗄 수 있는데 혼자서는 참 안돼요. 막막하고, 금방 좌절하고. 또 게을러서 계획만 세워 놓고 전혀 안하거든요. 그런데 두영팀에서 여럿이 하면 억지로 언제까지 해야 하니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팀원들에게 민폐 끼치면 안 되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판을 애써 만들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판이 만들어졌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어깨를 엮은 힘으로 얼렁뚱땅 묻어가기. 그것도 아니라면 판 바깥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날 활력담화에 함께한 감독들 향, 초연, 써니데이(왼쪽부터)    ⓒ 줌마네

 

영화를 만들 때 제일 두려운 게 뭐예요?

 

그럼에도 취향도 방식도 제각각인 사람들과 협업한다는 것이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영화 워크숍에 참여할 때 내가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공동 작업에 대한 부담이었다. 시나리오는 어찌어찌 완성했는데 촬영 판을 벌이기가 두려웠다. 내 영화를 위해 시간을 낸 사람들이 온종일 나만 바라보고 있을텐데, 내가 액션을 외치면 일제히 카메라가 돌고, 내가 컷!을 외치면 사람들이 정지하고…. 방금 찍은 영상이 OK인지 Keep인지 NG인지를 선언하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게 온전히 나라는 부담. 영화를 찍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백 개도 댈 수 있었다.

 

“힘들었던 기억이 다음 영화를 준비할 때 방해물이 되더라구요. 후반 작업, 사람들과의 부딪힘, 뽀록나서 창피한 기억 이런 것들이 자꾸 떠올라요. 그 때도 못했는데 또 못할까봐. 완벽함에 대한 부담감도 있어요. 처음 해본 거라 내 재주였는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두 번째 영화는 촬영이 잘 안될 수도 있고 연기가 첫 영화처럼 안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런 걱정이 쌓여서 두 번째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원인이 되었어요.”

 

초연이 말을 이었다.

 

“음. 근데 지금 다 내려놓고 나서 보니까 촬영도 그 때처럼 잘하지 못해도 돼, 연기도 더 잘하지 못해도 돼. 얘기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얘기를 하면 되겠어, 여기까지 왔어요. 요즘은 그렇게 생각해요. 다시 영화를 찍으며 똑같이 겪더라도 극복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계산을 해도 답이 안 나온다. 갈 수 밖에 없다.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아까 향이 그랬잖아요. 그냥 한다고. 제게도 그게 필요한 시점인거 같아요. 퀄리티 이런 거 미리 걱정하지 말고 일단 하고 보자.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경험하고자 두 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첫 영화 이후 5년 넘게 두 번째 작품을 시작하지 못하던 초연은 얼마 전 두 번째 영화 촬영을 했다. 2회차 짧은 촬영이었다고 했다. 써니데이 역시 촬영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두영팀에서 촬영할 때는 전과 달리 전문 촬영감독과 배우들이 왔거든요. 촬영, 오디오 감독, 배우 둘 모두 진짜 영화인들이었는데 제가 영화판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제일 힘들더라구요. 감독은 난데 포스는 그 쪽이 더 있는 거 같고. 나중엔 ‘배째라’가 되긴 했는데 처음에는 디렉팅을 못 하겠는 거예요. ‘컷’을 못하고 어버버 하고 있는데 촬영 감독이 ‘감독님, 컷 하셔야죠’ 하더라구요. 현장을 주도하지 못한 거죠.”

 

현재 세 번째 작품을 한창 촬영 중인 오솔이 말을 더했다.

 

“협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자신이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똑같아요. 삶을 살아가는 기술의 부족과 자기 한계를 자기가 보지 못한다거나, 너무 넘겨짚는다거나, 과도한 욕망이나 조급함 때문에 생겨나는 일들이예요. 그래도 영화는 찍으면 결과물이 남잖아요. 영화를 나중에 보면 그 장면을 찍을 때의 자기가 다 기억이 나요. 그보다 더 좋은 자기 돌아봄의 시간이 없어요.”

 

영화 만들어서 돈은 벌 수 있어요?

 

이쯤 되니 영화로 만들어봄직한 ‘아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평상에서 마늘 까는 할머니들의 대화, 엄마와 아이들이 각각 하는 착각, 카페 옆자리에서 들려온 조선족 출신 입주도우미 커뮤니티의 에피소드 등등 피어오른 이야기들은 마침 도착한 피자 향기와 함께 더욱 군침을 돌게 했다. 그 무렵 블랙홀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창작을 해서 결과물을 만들잖아요. 창작으로 내 얘기를 하고 나를 알아봐주고 그런 건 좋은데… 돈이 안 되잖아요. 그건 어떻게…?”

 

차마 묻지 못했던 궁금함이었던 듯 써니데이가 답을 시작하자 모두들 이내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 점심을 대신하여 주문한 피자 앞에서도 열띤 담화는 계속되었다. ⓒ 줌마네

 

“영화를 본격적으로 하자 마음먹으면서 다짐같은 것을 했어요. ‘벌진 못하지만 그 만큼 쓰지도 말자. 허투루 쓰지 말자.’ 사실 누가 ‘너 취미로 영화하는 거지?’ 묻는 거예요. ‘취미 아니야.’ 단호하게 얘기했어요. 취미였다면 그렇게 많은 밤을 한 프레임 씩 붙일까 자를까 고민하며 앉아있고, 상영 때마다 재편집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분명 진지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현실은 내 돈을 써가면서 하는 거죠. (웃음) 뭔가 대단히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안 된 것도 아니야, 그런 상태예요. 아직은. 영화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은 해요.”

 

향은 생계를 위해 가장 많은 알바를 하는 중이었다.

 

“일단 메인으로 작은 다큐 프로덕션에서 조연출 일을 하고 있고요. 사무실 나가지 않는 날은 다른 워크숍의 보조 강사 일을 해요 남은 시간엔 대학 성적입력, 카페 알바 대타, 가끔 영상편집 보조 같은 단기알바를 해요. 한 쓰리 잡, 포 잡을 하는 거 같아요. 그냥 모든 욕망을 제거하고 일단은 생존하고 있어요. 아직은 할 만해요. 저는 장비욕심이 크지 않고 그래서요.”

 

얼마 전까지 영어학원 강사로 살았던 초연이 말을 받았다.

 

“제가 ‘학원 강사는 다시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이젠 견딜 수 없는 한계치에 도달했거든요. 체력이든 정신이든. 그러면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봐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건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면서 최소한의 돈을 버는 방식이 이상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일단은 계속 그런 궁리를 하고 있어요. 옷이라든지 그런 걸 사지 않고 버티면서.”

 

하리의 답은 조금 더 희망적이었다.

 

“어떤 걸 계속 하다 보면 그걸로 먹고 살 길은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영화는 취미, 직업은 백수 아냐?’ 싶었는데 뭐라도 계속 만들고 인정을 받으면 제작 지원을 받는다거나, 하다못해 주변 지인이 영상 의뢰라도 하니까. 강의도 들어오고, 작게 영상 의뢰도 들어오고, 멈추지 않고 하다보면 얻어 걸려서라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들어오더라고요. 물론 백프로는 어렵지만. <소장님의 결혼>도 영화제에서 계속 떨어져도 자꾸자꾸 출품하니 어디선가 한 곳에서 초청이 된 거예요. 그걸 보고 다른 데서 연락이 오고, 그 다음은 좀 더 쉬워지고.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그 때까지 가는 관문, 일종의 진입장벽을 넘어야 하는데, 거기에서 보통 많이 그만 두시죠. 꼭 영화가 아니어도 문화센터에서 취미로 배우며 시작한 일들로 꾸준히 해서 먹고 사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영화를 찍는 이유는 뭔가요?

 

써니데이가 지금 그 진입장벽 앞에 서 있다고 했다. 써니데이는 작년부터 각종 독립영화제에 <주아 부띠끄>를 계속 출품하고 있지만 아직 초청받은 곳은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지원하고 있다. 이번 상영을 위해서도 다시 편집한 영상을 보내왔다. 지켜본 이들이 ‘자신의 영화와 끊임없이 마주하는 성실한 감독’이라고 입을 모으는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작품이 있으니까 출품하는 거예요. (웃음) 영화 끝나면 크레딧 올라갈 때 사람들 이름이 주욱 나오잖아요. 내가 만든 영화라기보다는 거기 이름 적힌 사람들의 영화예요. 그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고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 싶어서 계속 출품하고 있어요. 사실 귀찮거든요. 영화제마다 서류나 작품 제출 방식이 다 달라요. 엄청 귀찮은데 떨어져도 내 경험이다 싶어 계속 내요. 편집을 매번 다시 하는 건… 사실 제가 집요해요. 내가 이걸 못해서 부끄러운 상황이 될까봐. 덜 부끄럽게, 기왕이면 조금 더 해보자. 이런 성향인데 그거는 어쩔 수 없어요.”

 

초연도 영화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자리라서 좋았다며 덧붙였다.

 

“‘첫 작품보다 더 멋진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나의 한계를 보고 말거야’ 하는 괴로움이 있었어요. 오늘 다른 감독님들 영화 보면서 진정성이 있거나 자신의 이야기이거나, 소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되는데 그동안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생각이 되네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저는 계속 회피하고 있었어요. 정치사회적인 얘기를 해야 한단 생각이 많았거든요. 유학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무슨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주변에서는 ‘너를 가두지 마라. 너의 카테고리를 넘어선 다른 얘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아는 이야기는 없고. 지금 다 내려놓고 나서 보니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날 창작의 원천이자 용기의 화신(?) 같았던 향도 말을 이었다.

 

“신기한 게 오늘 본 영화들이 변화나 변신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더라고요. 신체적으로 변하든 감정의 상태가 처음과 달라지든 어떤 식으로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창작자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도 예술 계통으로 갈 마음이 있지만 제가 만드는 게 대단하고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냥 하는 거예요. 근데 그걸 통해서 변하는 게 있다면 저 자신이에요. 그런 식으로 개개인이 자기 자신이 변하게 할 수 있는 통로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뭔가를 계속 만들고 지속한다는 것이.”

 

‘모든 여자들은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이번에 만난 네 명의 감독들처럼 진짜로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이 이들을 영화감독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았고, 그에 맞춰 삶의 방식까지도 정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감독, 작가 혹은 창작자라는 이름은 누가 붙여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 스스로 그렇게 믿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이들은 내게 알려주었다.

 

이번 담화에서 알려준 ‘영화 만드는 몇 가지 방식’은 비슷한 처지의 많은 이들에게 쓸모 있는 힌트가 될 것도 같다. 함께 할 이들을 찾고,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라는 것. 그리고 꼭 완성해서 선보이고 나 자신과 마주하라는 것.

 

내게도 편집을 기다리는 동영상 한 묶음과 시나리오 하나가 있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쓰겠다며 끼적여놓은 몇 개의 동화 구상도 있다. 그럴듯한 후속작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글을 쓴다’는 것인데, 이토록 쉽고 간단한 일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필자 소개] 꽃바람: 자유기고가. 동화작가. 현재 줌마네 회원,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 이 글은 서울시 여성발전기금 후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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