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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작업자의 하청인생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엔진룸 도장 일을 하는 손경자씨 이야기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는 곧잘 잊지만, 어디에나 여자들은 있다. 더 자주 잊어버리지만, 어디에나 여자들 해야 할 일은 있다. 우락부락 남성들만 있을 것 같은 조선소에도 여자 할 일은 있다.

 

이 사실을 안 것은 2010년 희망버스 때다. 당시 한진중공업에 들어간 사람들 중 일부는 여성 탈의실을 숙소로 사용했다. 여자도 있나 보네, 그러니 여자 탈의실이 있겠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느 탈의실과 다르지 않게 줄지어 선 사물함부터 보였다. 특이한 것은, 사물함마다 작은 거울이 달렸다는 점이다.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이, 부러 붙인 게였다. 게다가 거울은 죄다 아래쪽에 붙어 있었다. 사람 다리쯤 오는 높이에 있는 거울. 사물함 앞에 주저앉아 봤다. 그제야 거울에 얼굴이 비치는 게 높이가 딱 맞았다.

 

배에서 내려와 샤워를 마치고 탈의실 바닥에 주저 앉아 로션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는 여자들이 떠오른다. 제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 잠깐을 땅에 철푸덕 앉아버리는 여자들. 고됐구나.

  

▲  "남성들만 있을 것 같은 조선소에도 여자들이 하는 일은 있다."    © 제공: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조선소 엔진룸의 도장 담당 하청업체에서 8년

 

조선소 여자들의 일은 고되다.

 

“하루 종일 청소만 하고, 하루 종일 칠만 해봐요.”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시큰거린다. 주로 붓이나 롤러를 가지고 하는 페인트 칠(도장)이나 청소, 정리정돈이 여자들의 일이다. 남자들이 스프레이로 페인트 칠을 하고 나면 여자들이 미처 못 메워진 부분을 메우고, 이음새를 메운다. 남자들이 도장 작업을 하기 전 청소도 여자들의 몫이다.

 

“여자들이 확실히 세심한 부분에는 낫잖아요.”

도장 일을 하는 경자씨는 여자들의 일을 그렇게 설명했다. 그러다 에라, 싶은 얼굴로 말한다.

“이 시급에 남자들이 하겠어요?”

 

남자들은 안 할 일을 손경자 씨는 하루 8시간도 하고 12시간도 했다. 일이 많을 때는 그랬다. 그러나 여자 일이 진짜 힘든 건, “남자는 일이 끝나면 진짜 끝이지. 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는 힘들어요.”

나는 마구 고개를 끄덕인다. 퇴근한 그녀들을 기다리는 것은 식구들의 저녁밥.

“대단하죠, 여자들이.”

 

그 대단한 여자로 사는 일은 피곤하다. 피로하도록 대단하도록, 일을 하고도 여자는 “집에서 논다”고 표현한다. 집에서 밥을 하고 그릇을 씻고 걸레질을 하고, 칭얼거리는 애를 들쳐 업고 시장에 가도 여자들은 스스로를 집에서 논다고 표현한다. “사지 멀쩡한 데 신랑 벌어주는 거 앉아서 받기 그래서” 경자씨도 조선소로 왔다.

 

들어간 곳은 조선소 엔진룸의 도장 작업을 담당하는 하청업체였다. 업체는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 그랬죠.” 그녀 나이 48세였다. 우리는 45세 이상은 안 받지만, 아줌마는 소개로 들어온 거니 특별히 봐준다. 업체는 말했다. 첫 날 그녀 손에 들린 건 빗자루였다. 며칠을 계속 청소만 했다. 시작부터 도장 일을 시키면 다 도망간다고 했다. 기술 필요 없는 일만 시킨다.

 

처음으로 들어가 본 조선소는 엄청 났다. 크고, 시끄럽고, 위험했다. 남편도 조선소 밥을 먹었다. 남편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돈을 가져다 주는 구나, 마음이 짠했다. 감상도 잠시, 조선소는 정신을 잠시라도 안 차리면 다치는 곳이었다. 처음 족장(높은 곳을 작업하기 위해 달아놓은 발판)에 발을 디딘 날, 그녀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은? 뛰어다닌다. 이미 도장 8년 차이다.

 

8년 차 선배이지만 여전히 청소 일을 한다. 예전에는 신입만 하던 일이다.

“사람들이 나가면 다시 들어오질 않아요. 돈이 적으니까.”

 

조선소에서의 업무가 청소, 정돈, 마무리라 그런가. 그녀의 소속감은 함께 일하는 조선소에게 있지 않다. 하청업체 남성들도 아니다. 같이 일하는 여성 중 정규직이 있느냐? 물어보니, 본관 청소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제는 안 뽑아서 거의 없죠. 다른 사람들은 계약직인가. 본관 거기는 일이 훨씬 쉽잖아요.”

 

본관이라면 조선소 안 건물 사무실을 말한다. 경자씨는 건물 청소를 하는 여자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조선소 사람들에게서 보던 기능공이라는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돈을 번다는 자부심이 있다. “과일 하나를 사먹어도 맘 편히, 눈치 보지 않고 사 먹으려” 일을 한다는 그녀는 스스로 벌이를 한다는 당당함이 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들은 자존심이 있잖아요.”

 

남편도 미안하고 고마워할 것임을 안다. 그러면서 경자씨는 남편이 고맙다고 했다. 야근을 하든, 특근을 하든 남편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이 많을 때는 밤 11시까지 일을 한다.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아침 8시에 들어가서 사방이 막힌 답답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계속하려니 죽을 둥 살 둥이다. 내일 애들 먹일 반찬도, 어질러진 집도 생각나지만 업체 반장은 일이 밀렸다고 으름장을 놓고, 내가 내 집에 보탬 되려 온 거지 여기 일만 하러 왔나? 대거리하고 싶어도 얼굴 맞대고 일하는 사이에 얼굴 붉히는 것이 꺼려진다. 불편한 속으로 잔업을 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일하고 와도, 남편이 뭐라 하지 않는 것이 고맙다. 여자가 참 그렇다.

 

불도, 환풍시설도 제공되지 않는 위험한 ‘하청 인생’

 

여자 일 고되지만, 조선소 고됨의 절반은 위험이다. 경자씨가 꼽은 위험은 탱크에 들어가 하는 작업이다. 배는 참 높다. 아파트 몇 개를 붙여놓아도 선박 크기에 못 미친다. 그 커다란 배 바닥으로 내려가는 길이 맨홀처럼 좁고 깊다.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일자 사다리에 발을 디딘다.

 

“내 몸만 가나. (페인트) 깡통도 들고 가야지. 간격이 요만한데, 사다리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해봐. 아래를 쳐다보면 아찔해요. 탱크가 무섭지. 떨어지면 죽어요.”

 

한 손에 페인트 통을 들고 어두운 터널을 내려간다. 불이라도 커주면 좋은데, 불을 넣기 위해서는 반장과 한 판 붙어야 한다. 그냥 목에 건 랜턴 불빛에 의존해 일할 때도 많다. 어둠 속에서 작업을 한다. 페인트 신나 냄새가 통풍되지 않은 좁은 굴에 가득 차면, 눈물이 난다. 눈이 아파 정신을 못 차리다가 재수 없으면 숨 막혀 쓰러지기도 한다.

 

“반장이 귀찮아서 환풍 시설을 안 넣어주는 거죠.”

 

사람 쓰러지는 걸 두고 볼 정도로 귀찮거나, 아니면 그걸 염두에 둘 여유가 없을 정도로 분주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원래 하청 인생, 거기서도 밑바닥을 차지하는 하청업체 여성작업자 목숨이 파리 목숨이거나.

 

“사실 사장은 자기 책임 안 지려고, 뛰지 마라. 뭐 설치하고 일해라 그러거든요. 그러면서 뒤로는 반장들에게 (작업자들) 조져라. 일을 막 정신 없이 시켜놓고, 사고가 나면 거봐라 내가 뛰지 말라 하지 않았냐. 사장은 그러는 거죠. 반장들이 가운데 끼는 거죠.”

 

앞에서 윽박 놓는 반장도, 뒤에서 반장 옆구리 찌르는 사장도, 모두 돈을 쫓는다. 인부들은 그냥 돈이다. 돈을 벌어다 주는 인부들은 그런데도, 밥이다. 을이다. 여자들은 반장에게 김치도 가져다 주고, 영양제도 챙긴다. 떡 한 쪼가리, 밥 한 끼 넘어가는 일이 없다.

 

“일하느라 내 식구도 못 챙기는데, 반장에게 그러고 싶지 않다.”

경자씨는 단호하다. 그러나 안다. 다른 여자들이라고 못 챙긴 가족 생각이 안 날까. 그러나 쉬운 작업 어려운 작업 나누어 배치하는 것도 인사권이라고, 반장에게 미운 털 박히고 싶지 않아 상납하듯 음식들이 간다.
 

▲ 원청-하청, 정규직-하청용역, 조선소 내 권력관계 밑바닥에 용역 여자들이 있다.  ©제공: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경자씨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고 싶지 않아 직접 묻지 않았지만 반장, 정규직, 심지어 같은 하청업체 남성들까지, 이 사회에서 힘을 가질 수 있는 지위에 놓인 이들이 조선소 하청 여성에게 던지는 폭력과 다를 바 없는 음담패설과 반말 짓거리는 익히 들었다.

 

착하거나 순하거나 여리거나 힘 없는 여자는 그것을 묵묵히 듣는다. 그러나 여자들은 끊임없이 생존하려 애쓴다. 때로 더 큰 권력을 이용하기도 한다. 원청(조선소 기업)의 안전요원. 컴컴한 작업장에 불이나 통풍 장치를 안 넣어주면, 여자는 원청 안전요원을 찾는다.

 

작업 속도를 높이는 것도, 이를 용인하는 이도 원청이지만, 원청 또한 하청업체 사장처럼 앞에서는 점잖을 떤다. 지엄하신 원청 말에 불이 들어오고 통풍 장치가 들어온다. 조선소 권력 제일 밑바닥에 놓인 잡부 용역 여자들은 원청-하청, 정규직-하청용역으로 말해지는 조선소 내 권력 관계를 이용할 줄도 안다.

 

‘알찐 돈’ 챙기면서도 월급 미루는 회사

 

스스로 싸워 얻어내기도 한다.

 

“반말을 막 하는 거예요. 나이도 어리면서 소장 반장이라고.”

 

경자씨는 회사에 말한다. 반장 삿대질 못하게 해라. 욕설 못하게 해라. 말하면 한 번에 해결되나. 그것도 아니다. 총무실을 거치고, 소장을 팀장을 거치고, 사장에게 오르기까지 몇 단계를 가는 동안 당한 여자는 이야기하고 또 한다. 막 대하지 말라는, 고작 그 요구를 하기 위해 얼마나 품을 팔아야 하는지.

 

“몇 번이나 해야 해요. 그러니 나만 까다롭다 하지요.”

 

어느새 까탈스러운 여자가 되어버린 경자씨는 얼마 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어차피 그만 둘 날도 몇 해 안 남았다. 미움 받는 것 따윈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반복해 말했다. 옛날 같지 않다고.

 

“사람들이 옛날하고 다르잖아요. 다 배운 사람들이에요. 옛날에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하라면 하고, 요새는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따지지. 반장들이 일 시키기 힘들 게 됐지. 요즘 사람들은 다 알죠 알고. 덤비는데 재간이 있나.”

 

정규직 문을 바늘구멍처럼 만들어놓자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배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정규직이 될 가능성을 위해 하청업체에도 사람이 몰린다.

 

업체는 할 말 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노동조합도 당연히 싫다. 여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했을 때, 사장은 안전교육 시간에 안전 대신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나이가 몇 살인데 노조 가입이냐. 얼마나 잘 되는지 두고 보겠다.’

 

그녀는 안다. 회사가 왜 그러는지. 다른 여자들 들으라고 하는 거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저런 소리 듣는다. 잔업도, 주말 특근도 주지 않는다. 경자씨는 회사에 따졌다. 따져 다시 얻어왔다.

 

옛날하고 다르다 했지만, 여전히 엉망이다. 경기가 조금만 어려워져도 회사는 월급을 미룬다. 지난 달에도 70% 밖에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회사 잘 나갈 때는 잔업에 특근을 해줘도 콩고물 하나 떨어지는 일이 없더니, 회사 어려울 때는 바로 티가 난다.

 

회사가 어렵다는 말이 믿기지도 않는다. 그녀가 보기에는 ‘알찐 돈’이 많다. 가라 사원증. 퇴사한 직원들을 퇴사 처리하지 않고, 원청 조선소로부터 인건비와 장비 비용을 받는다. 조선소 하청업체에 만연한 편법이다. 사람이 없어도 나오는 인건비가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가는지. 인건비는 나오는데 실제로는 없는 사람들의 몫까지 누가 일하는지. 하청업체 사람들은 빤히 안다.

 

“업체는 그러는 거죠. 억울하면 출세해라. 너거가 사장해라. 엉망이에요. 안 들키면 그만이고. 들키면 모른 척 무시하거나 돈 주고 입 닦아 부리고.”

 

그래도 눈만 굴릴 수 밖에 없다. 월급이 나오지 않아도, 눈 부라리며 화낼 사람이 없다. 찍힌다.

“남자들은 더 안 움직이죠. 입 꾹 다물고 있어요. 가정이 있어 그런가.”

 

그래서 경자씨가 노동조합에 들었다.

  

▲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월급이 나오지 않아도, 눈 부라리며 화낼 사람이 없다. ©제공: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증권사의 꽃’에서 조선소 저임금 노동력이 되기까지

 

조선소 일부터 노동조합 가입까지, 돌이켜보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내가 조선소에서 일을 할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지요.”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교장 추천으로 증권사에 들어갔다. 당시 은행이나 증권사는 일등 취직 자리였다. 명동 한복판에 있던 증권사. 이제는 통폐합되어 사라진 증권사에서 여직원으로 살았다. 10년을 일했고, 벌이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야 할 옷 사고, 먹고 싶은 거 먹었다.

 

“직장의 꽃이라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니 써먹을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결혼한 여자를 증권회사는 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자씨는 남편이 하는 귀금속 일을 함께 했다. 남편은 귀금속을 만들고, 그녀는 팔았다. 자영업자로 10년을 잘 지냈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왔다. 장사가 안 됐다. 사람들이 돈이 없어 귀걸이를 사지 않는 문제가 아니었다. 홈쇼핑이 생겼다. 도심에 대형 귀금속 판매점이 생겼다. 백화점이 들어섰다. 대자본이 들어온 것이다. 동네 장사 하던 그녀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인클로저 운동. 근대 초기 양들이, 아니 그 양을 다량으로 사들일 수 있는 돈 있는 자들이 소작농을 땅에서 몰아냈다.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도시의 공장으로 갔다. 거대 자본은 그렇게 잉여 노동력을 만들어 냈다. 노동력 밖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공장으로 와 값싼 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경자씨도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거대한 조선소 공장이 있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년이, 일년이 2년이 되고 그리 산 거지요.”

 

여자 하나 없을 것 같은 조선소에서 일하는 그녀의 삶은, 그러나 전형적인 여자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기업이 원하는 꽃이 되었고, 한창 나이 때는 육아에 전념했으며, 그 아이들이 사회와 국가로 나와 새로운 노동력이 될 쯤에는 공장으로 들어가 저임금 노동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녀인 이유는, 자신의 권리를 지킬 줄 알기 때문이다. 경자씨에게는 지켜야 할 권리가 있고, 동시에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 가족과 권리는 충돌하기도, 나란히 가기도 한다. 과정에서 그녀는 늘 선택한다. 굽혀야 할 때, 더 큰 힘을 이용해야 할 때, 맞서 싸워야 할 때를 판단하고 선택한다. 당당함을 잃지 않는 선에서. 이 또한 어느 여자들과 다르지 않다. ▣ 희정 (르포 작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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