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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의 발견] 워킹맘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다 _ 강선미 (민우회 여성노동팀)  
 
익숙한 것이 낯설어질 때, 그 순간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그것을 우리는 ‘발견’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발견 중에서 일하는 여성의 공백 문제 즉, 경력 단절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고 “공백의 발견” 인터뷰로 담아냈다. 그러면서 여성노동자가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일을 그만두어 ‘경력 단절’이라고 불리는 기간을, ‘단절’이 아닌 일과 일 사이의 ‘공백’ 혹은 ‘연결’의 시간으로 보게 되었다.

 

경력 단절 이전에 공공기관, 대학강사, 학습지교사, 공장 생산직노동자, 교사, 자영업 등으로 일하다 지금은 직업상담사, 성교육 강사, 사회복지사, 가정관리사, 급식 조리원 등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일 경험을 들어보았다. 총 19명의 여성들을 만났고, 그 중 10명의 이야기가 기사로 실렸다.

 

“공백의 발견”을 연재하면서 경력 단절 여성들의 경험이 더 많이, 더 자세히 이야기되어야 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회적인 해결책을 찾는 방안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노동의 경험, 힘들어도 ‘의미 있다’

 

‘경력 단절’ 여성들의 인터뷰 속에는 지난한 노동과 차별의 문제뿐 아니라, 일을 통해 얻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활동함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하였고, 이 자신감이 일을 지속하는 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용기를 내는 게 힘들었어요. 처음에 지원할 때도 너무 망설여지는 거에요. 전업주부로 너무 오래 있다 보니까. 생협 일을 하면서 많이 성장했죠. 조합원들한테 (참여를) 권유해야 하는데, 그런 전화도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집에만 있다가 그런 걸 어떻게 해보겠어요.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이제 다 극복됐고. 자연스럽게 했던 재고 관리도 굉장히 전문적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하나씩 배워가면서 성장했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전업주부로 살아오다 용기를 내어 생활협동조합에 취업해 일했던 경험에 대해, 50세의 여성 P님은 ‘하나씩 배워가며 성장했다’고 노동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기분 좋게 일하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상황에 막 웃을 일도 없는데 회사에서는 깔깔 웃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기분 좋게 잘 지내고 있어요.” (가, 40세, 생산직)

 

“아직까지는 다 긍정적이에요. 자꾸 사람을 만나니까 좋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거,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거. 내 용돈도 벌고 사람 만나는 게 좋아요. 아이들에게도 친구가 중요하다고 자꾸 말하고요.” (나, 46세, 보험설계사)

 

이혼을 준비 중인 (가)님은 자신의 현재 상황이 ‘웃을 일이 없는’ 형편이지만, 웃으며 기분 좋게 일을 하면서 힘을 받는다고 했다. (나)님의 경우도, 일해서 버는 수입이 소중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임금노동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지금 일하면서 좋은 점은, 한 달이 주어졌을 때 얼추 가늠하여 융통성 있게 시간 조절을 해 가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정도하고, 나도 사람들과 어울려 일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응이 되었다는 거에요.” (다, 49세, 정수기 방문판매원)

 

현재 정수기 방문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는 (다)님 역시,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경험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유아 전문 방문교사로 일하는 36세의 여성 (라)님은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 환경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이 일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다른 일도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자신감. 다른 것도 해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약직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54세의 여성 (마)님 역시 노동시장에 나와 일하며,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심리적인 기반을 만들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나 혼자서도 살 수 있다는 느낌. 내 몸 하나는 내가 건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출근할 때도 기분 내서 옷 잘 입고 다니고 헤어스타일도 좀 바꾸고.”

 

일을 통해 얻는 것: 자신감, 인간관계, 사회적 욕구

 

경력 단절 기간이 짧든 길든, 다시 노동시장으로 들어와서 적응하는 과정은 향후 일을 지속해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이들의 경험이 시사해주는 것은, 추상적인 준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을 해나가면서 사회 적응력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일을 통해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감을 얻으며, 이전보다 삶의 주체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험이 또 다른 일에 대한 욕구와 희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시 노동시장으로 나온 여성들은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만의 인간 관계망을 만들어 넓히고,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감을 가지면서,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며 삶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자신감’이란 단순한 감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사회적 기여를 한다는 것, 사회적 관계 맺기를 배우고 확장하는 것, 자기 삶의 주체성을 더 확보해나가는 것 등을 포괄한다.

 

여성에게 ‘일’이란 가족 내에 다른 생계부양자가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에서 어느 때에나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사회가 이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경력 단절되지 않을 환경을 마련해야 

▲  여성노동권이 약화될수록 경력 단절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일다 
 
경력 단절 여성들이 지속 가능한 노동을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한 조건이나 요구들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먼저, 애초에 경력 단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번다고 계속 다니냐는 말은 안 하지만, 사람이 눈빛으로 말하는 것도 있잖아. 하지만 공무원이거나 학교 선생님이면 아깝다는 식으로 뭔가 방법들을 만들어냈겠죠. 안 그만두지. 이런 생각 항상 하고 있었어요. 딸을 키우고 있으니까.” (K, 47세, 회계사무직)

 

학교 교사와 같은 공무원은 임금이나 처우 면에서 노동 조건이 좋은 직업으로 상징된다. 그러나 이렇게 ‘아까운’ 일자리가 아닌 경우엔, 여성노동자가 출산을 하게 될 경우 ‘얼마 번다고 계속 다니냐’는 말을 들으며 갈등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일을 그만두고 직접 아이를 돌볼 것이냐, 낮은 임금과 처우를 받는 일을 지속할 것이냐’ 경우의 수가 두 가지뿐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가혹한 선택이다.

 

여성노동권이 약화될수록 여성들의 경력 단절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여성들의 일자리가 그만두기에 ‘아까운’ 일자리라면, 혹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인 기반이 갖추어져 있다면, 경력 단절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재취업하기 위해 이전의 경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여성 유망 직종”의 유행을 좇으며 각종 자격증을 따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부는 “여성 유망 직종”들을 소개하고 재취업을 알선하는 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상당수 일자리가 프리랜서나 창업을 유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여성노동자의 공백을 채워준다기보다는 값싸게 여성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진단하게 될 때가 많다.

 

나이든 사람은 원치 않는 노동시장의 벽

 

여성들이 재취업을 하고자 나섰을 때 겪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나이 장벽’이다.

 

간호조무사였다가 간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까지 진학했던 (바)님은 출산 후에 곧바로 다시 일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는 문제를 제외하고도 재취업을 하기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나이 든 노동자를 선호하지 않는 노동시장에 있었다.

 

“결혼하고 경력 단절이 심하게 되고, 재취업하기도 상당히 어렵고, 취업하려고 하면은 병원은 거의 젊은 사람을 원하지 나이든 사람은 원치를 않아요. 사실 저는 애들 갓난애기 때부터 일하고 싶었어요.” (바, 45세, 공공근로, 의류판매직)

 

현재 프리랜서 성교육 강사로 일하고 있는 A님도, 공백을 겪고 나니 38세의 나이에 직업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이전에 일했던 경력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A님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 경력 단절은 곧 ‘경력 없음’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었다.

 

“신문을 보면서 유망직종이라고 하는 직업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공백 기간을 겪고 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금 당장 직업이 없더라도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TV에 수공예 같은 것만 많이 나오고. 내 적성이나 경력 이런 것은 상관없었어요.” (A, 38세, 프리랜서 성교육강사)

 

재취업 희망 조건은 ‘야근 없는, 안정된 일자리’

 

재취업한 여성들 상당수가 다시 일을 그만두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일센터를 통해 취업된 여성의 고용보험 취득 자료”에 의하면, 2011년 한 해 동안 재취업을 하여 고용보험에 가입한 여성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이들이 6개월 내에 고용보험을 해지했다. 재취업 후 다시 일을 그만 둔 것인데,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의 질이 열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회계 쪽, 세무 쪽 이런 데가 야근이 많아요. 아이 땜에 야근을 못하니까. 아무래도 그런 걸 선호하는 회사는, 그런 걸 꼭 해야 하는 회사는 못 가죠.” (K, 47세, 시민단체 반상근)

 

“힘드니까 파트타임도 많이들 그만둬요. 애들 유치원 보내놓고 왔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자꾸 빠지게 되는 게 미안한지 방학하면서 그만 두겠다고. 그래서 두 분인가 그만두신 분들이 있어요. (중략) 여기선 빠져도 빠진 만큼 ‘무임금’이라 눈치 안보고 빠질 수 있긴 해요. 대신 다른 조리원 분한테 양해를 구하면 되죠.” (M, 43세, 계약직 학교 급식조리원)

 

“야근을 안 하기 때문에. 직장이 멀어도 다녀야겠다 싶어요. 휴가도 미리 얘기하면 굉장히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그렇게 바쁘지 않으면 꼭 나올 필요 없다고 하니까. 일 있으면 얘기하라고.” (S, 45세, 사회복지사)

 

노동 조건과 관련하여, 재취업 여성들의 요구는 그리 큰 것이 아니다.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눈치를 보지 않고 정해진 휴가를 쓸 수 있는 회사, 급한 일이 생겼을 경우에 잠깐 나갔다 들어와도 괜찮은 융통성이 발휘되는 일자리이다.

 

그리고 계약 만료 때문에 항상 새 일자리를 알아보고, 새 자격증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없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길 희망했다. 퇴근 시간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운영하는 보육시설이 있었더라면, 애초에 경력 단절되지 않고 노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왔을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정부 정책과 괴리된 ‘경력 단절’ 여성들의 경험

 

경력 단절 여성들의 요구 앞에 ‘그나마’를 붙여 행간을 좀더 읽어내어 보았다. 그나마 야근을 하지 않는 곳, 그나마 칼 퇴근이 가능하고, 그나마 적정 임금을 주는 곳. 이런 조건은 사실상 출산 여부를 떠나, 성별을 떠나, 누구나 원하는 노동 환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도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직장 내 차별을 개선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노동시장의 변화를 통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현재 정부 정책이 대상으로 삼는 ‘경력 단절 여성’은 아이를 양육하다 ‘남는’ 시간에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여성이다. 그런 상황에 있는 여성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공백의 발견” 인터뷰를 통해 만난 재취업 여성들은 ‘전일제 일자리’였기 때문에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없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과도한 야근, 불안정한 일자리, 낮은 임금, 보육 시설의 미비 등의 환경이 지속 가능한 노동을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백의 발견”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경력 단절 여성이 과연 누구인지, 여성들의 노동 경험이 어떠한지, 정부 정책과의 괴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 문제 의식을 던져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현실 속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기를, 그리고 이들의 경험이 더 많이 길어 올려지기를 바란다.  ▣ 강선미  www.ildaro.com 

 

※ 이 기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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