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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로라 왁스’와 한국인 ‘김효진’ 사이에서

<해외입양인 여성들의 경험을 듣다>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긴 여행


※ 한국은 오랜 기간 입양을 통해 아동을 해외로 내보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외입양 이슈는 여성인권과 아동권, 빈곤과 차별, 인종과 이주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일다>는 각기 다른 사회에서 성장해 모국을 찾아온 해외입양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들의 경험과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를 듣고자 합니다.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나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걸 알고 있었다. 달처럼 창백한 두 손이 내 어머니의 몸에서 나의 물결을 끌어당긴 그 날 이래로 그것은 의무였다. 피아노의 윤기 나는 검은 건반들에서 내 기억을 찾아다니도록 그녀를 남겨두고. 우리의 나뉨 ― 단조의 노래” ―나


나는 서울에서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다. 붐비는 지하철, 떡볶이를 파는 노점, 한글로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도시. 이 어딘가에 내 친가족이 살고 있고, 동네를 활보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여기 있는 것도, 지난 4년 동안 여기 있었다는 것도 모른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자신들이 내 평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한국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한국인 입양인들이나 한국인 싱글맘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정치적 힘으로 가득 찬 시집을 내지 못했을 것이고, 자아와 가족에 대해 내가 가진 개념에 개인적인 종착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한 얘기를 하기에 앞서, 조금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긴 여행을 시작하다 ⓒ일다(일러스트: 두나)


우울에 갇혀있던 20대, 살아낼 힘을 준 시(詩)


20대 초반에 나는 우울함, 자해, 섭식장애로 바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모두 자존감 결여로 인한 것이었다. 이 시기 동안, 가장 나쁜 것은 슬픔이나 절망이 아니라 무관심이었다. 모든 것이 무감각하게 느껴질 때, 계속 살고 싶은지 아닌지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일들의 목록을 썼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은 모두 지웠다. 남은 것은 시였다. 나는 시를 망치는 부끄러운 상투적인 표현들을 적어두고, 시낭송회를 찾아 다녔다.


시는 사람에게 힘을 준다. 누구든 삶에서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예컨대 시는 트라우마를 가져와서 모든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문법·은유·심상·말놀이의 유희로 기술할 수 있게 해준다.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무한하기 때문에 시의 가능성에 한계는 없다. 단지 시인이 얼마나 깊은 곳까지 기꺼이 마음을 열 것인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사태를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전에는 저항할 수 없다고 느꼈던 일을 분석하고 처리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여기에 낭송하는 시는 또 하나의 어울림을 더한다. 외우고, 낭송하며, 음조를 더하고, 청중과 눈 맞춤을 통해 시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내적인 동시에 외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것은 힘을 북돋아준다. 잘 된 시 낭송을 보았을 때 그 인상은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들이 자기 작품을 함께 나누는 것을 귀 기울여 들었던 첫날밤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 믿게 만든 전환점이 되었다. 그 시구(詩句)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네가 달아나려 하는 모든 것은 이미 네 뒤에 있다.“ ―세실리 슐러


그 뒤 4년 동안, 나는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 자유시를 역동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낭독 공연)에서, 학술 낭송회, 실험 낭송회, 산문, 프리스타일 힙합 및 뭐라고 정의하기 애매한 모든 것까지 죄다 참가했다. 글쓰기, 낭송, 비영리 행사들을 조직하는 일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경험이 가진 좋은 점은, 그 일을 겪고 난 다음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목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내 인생철학이다.


따라서 내가 한국인 입양인으로서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친가족을 찾고,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이 구절이 딱 들어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미국인으로 정의되는지 한국인으로 정의되는지 나는 모른다. 내 혀는 영어로 길들여진 야생 조랑말이다. 내 심장은 로라 엘리자베스 왁스와 김효진 사이의 투쟁이다.” ―나


미지의 땅, ‘모국’으로 가는 편도 티켓을 사다


내 미국 이름은 로라 엘리자베스 왁스이고, 한국 이름은 김효진이다. 나는 1989년 1월 한국의 서울에서 태어나 그 해 8월 입양되어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로 보내졌다. 나는 2014년 6월 한국에 돌아왔고 그 이후로 여기서 살고 있다.


▶ 내 어린 시절 사진. ⓒ로라 왁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나는 “한국인 입양의 목소리”(The Voices of Korean Adoption)라는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기금을 모았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한국인 입양인을 위한 시 쓰기 워크숍을 주최하고 그들의 시를 묶어 시집으로 내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한국에 대해, 그 역사나 문화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었다. 한국어 단어라고는 하나도 몰랐고, 한국인 입양인들이 벌이고 있는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도 전혀 들은 바 없었다. 한국인 입양인이나 한국 싱글맘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몰랐다. 알았던 것은 내가 충동적으로 내 유일한 고향으로 알고 있는 곳에서 모국으로 가는 편도 티켓을 샀다는 사실뿐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 실마리도 없었다.


나는 시애틀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당연하게도) 어느 시 낭송회에 갔다가 주최자들이 자유 공연 시간을 내게 바친다고 공표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친구들이 무대에 서서 곧 닥쳐올 나의 모험을 축하하려고 쓴 시를 읽고 내가 얼마나 그리울지 아카펠라로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실내는 따스함과 격려로 가득했다. 그리고는 너무나 많은 술을 마셨고, ‘락 박스’(Rock Box)라고 부르는 빌린 방에서 가라오케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미래의 빈번한 ‘노래방’ 출입의 싹수를 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리가 파한 뒤에 제일 친한 친구 두 사람과 팔짱을 끼고 비틀거리며 차로 갔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난 못해! 난 못한다고!”라고 목청껏 소리쳤다. 다음 날, 나는 공항 터미널에서 그 두 친구들에게 작별포옹을 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일이 벌어졌다. 미리 환전을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리자 곧장 현금인출기로 갔다. 현금인출기는 라면 한 입 먹듯이 냉큼 내 카드를 먹어버렸다. 나는 아연실색해서 어떤 ‘아저씨’(나이든 한국 남성)가 나를 보고 다가올 때까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분이 한국어로 말했기 때문에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그저 눈살을 찌푸린 채 현금인출기를 가리킨 다음, 손을 들고 꿀꺽 삼키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분은 나를 안내 데스크로 데리고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공항 직원이 현금인출기를 열고 카드를 꺼내주었다.


거기서 서울시 남쪽에 사는 친구와 만날 계획이었지만, 버스는 운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줄을 서 있던 미국사람이 내가 그 친구와 안절부절 못하며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서 내게 공항 찜질방(사우나)에서 자라고 권유해주었다. 나는 그곳으로 짐을 끌고 가서, 2만 원을 내고 수십 명이 바닥에 누워 자고 있는 공용홀로 들어갔다. 아침에 나는 처음 듣는 내 모국어 소리들에 잠을 깼다. 웰컴 투 코리아.


“김치는 갈망이다. 유일한 후천적 취향이다. 내가 한국어로 꿈꾸기 시작한다면 진짜 변화가 생길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


첫 일주일 동안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시낭송회는 모두 찾아갔다. 그것은 나를 변함없이 유지시켜주는 익숙한 위안이었다. 나는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가야 하는 부산에서 열리는 낭송회를 하나 찾아냈다. 거기 갔다가 그 후 몇 년 동안 매달 그곳을 찾게 되었고 한 무리의 친구들도 사귀었다. 필리핀 입양인인 한 친구는 입양과 나 자신의 관계를 다루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할 일과 자아에 대한 탐색을 마무리 짓고 “나는 나일뿐 어떤 틀에도 맞출 필요가 없다”는 의연한 마음가짐에 도달해있었다. 나는 그 친구뿐 아니라 특별히 좋아하는 오빠와 언니들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글을 썼고, 함께 낭송했고, 휴일을 함께 보냈고, 서로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되었다.


▶ 2년 전 부산에서 열린 포에트리 슬램(자유시 낭독공연)에서 시 낭송을 하는 내 모습 ⓒ로라 왁스


해외입양인들과 한국의 싱글맘들이 함께 쓰는 시


한 해가 지난 뒤, 나는 내 에너지의 일부를 이 나라에 되돌려줄 수 있을 만큼 한국에 익숙해졌다. 한 동료 입양인이 한국미혼모가족협회(KUMFA; Korea’s Unwed Mothers’ Families’ Association)라는 단체를 위한 작은 행진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고, 갑자기 나는 시청 앞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한국 싱글맘과 입양인들의 작은 단체에 가입해 복지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표어를 함께 들고 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머지않아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내가 착수할 예술 프로젝트의 전체 과정을 바꾸게 만들 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내 예술 프로젝트는 한동안 중단되었다. 나는 열의를 잃었다. 여러 입양인 단체들을 위한 모임들에 참여하고, 시 쓰기 워크숍을 몇 개 열고, 국외입양인연대(ASK, Adoptee Solidarity Korea, 현재는 한국입양인참여연대 SPEAK, Solidarity and Political Engagement of Adoptees in Korea)를 위한 자선행사를 주최하면서, 내가 현실을 너무 몰랐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 무수한 방식으로 입양인 공동체를 위한 실질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범위는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이 나라의 입양특례법을 개정하기 위한 정치적 활동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입양인들의 시집이 특별히 획기적이거나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작업이 엄청나게 유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왕이면 되도록 중대한 변화를 불러올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이 점에 관련해서 나는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당시 타이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싱들맘들은 어때?” 그래,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집에 돌아온 나는 현재 KUMFA(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인 메기 김(김도경)에게 연락해 만나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우리는 색다른 멋진 카페에 갔고, 거기서 나는 입양인들의 시와 싱글맘들의 시를 함께 싣는 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나는 이 두 이야기들이 함께 실림으로써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 줄 거라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한국에서 입양과 모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의 범위와 다양성을 드러낼 것이다. 또한 사회 변화를 불러올 씨앗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 싱글맘 친구인 메기 김(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오른쪽)과 함께 ⓒ로라 왁스


메기는 내 이야기에 이어서 처음의 소박한 작은 모임에서 시작해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장해온 KUMFA(한국미혼모가족협회)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국가가 실제적으로 아이들을 떼놓으려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의 용기에 대해 말했다. 게다가 국가는 그 여성들에게 수치를 느끼게 하고 그들을 배척하고 있다. 메기가 눈가를 훔치면서 오랜 세월 동안의 조직화와 삶의 기억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 마음의 방어벽은 무너져 내렸다.


친가족 찾기에 실패하고, 양가족과 돌이킬 수 없이 소원한 관계가 된 뒤, 나는 부모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 내게는 어떤 부모도 필요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면서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날 내 앞에 있는 좋은 부모의 완벽한 본보기를 보면서 내 가슴은 창문처럼 활짝 열렸다. 자기 아이들에 대한 메기와 싱글맘들의 지극한 사랑은 내게 위안을 주었고 내가 상실한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책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너를 돌보면서, 나는 내가 아프다는 걸 완전히 잊었단다. 너는 내 활력이야. 나는 약이 아니라 내 아이인 너로 인해 상태가 좋아졌단다.” ―메기 김


지역에 사는 한국인 시인이자 내 소중한 친구가 나를 대신해서 한국어로 싱글맘들을 위한 시 쓰기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 얼마 후, 내 스물여덟 번째 생일이 돌아왔다. 나는 생일 파티 대신 KUMFA(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위한 모금 낭송회를 열기로 결심했다. 메기는 본인이 쓴 시 두 편을 읽는 것으로 낭송회를 마무리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녀가 낭송하러 나가기 전에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메기는 떨면서 대답했다. “정말 떨려요. 좀 부끄럽기도 하고요. 내 시가 중요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나는 그녀가 굉장히 잘 해낼 거라고 안심시켜주었다.


무대의 부름을 받고 마이크 앞에 선 메기는 주로 TV 시트콤을 통해 영어를 배웠다고 고백하면서 오류들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날 밤 내가 굉장히 아름다워 보인다고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물론 내가 그녀의 자매였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인다는 거였다. 그리고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메기는 시를 읽어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은 매기의 시 낭송에 매혹되고 있었다. 그들은 한 단어 한 단어를 모두 귀 기울여 들었다. 사람들은 최대한의 존경을 표하며 주의를 기울였다. 메기가 낭송을 끝내자, 많은 청중들이 일어서서 그녀에게 환호를 보냈다. 나는 메기가 어떤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을 얼핏 보았다. 감사와 칭찬의 말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내 모든 걸 다 걸고, 나는 메기가 내가 시에서 얻은 힘과 치유의 효과를 똑같이 느꼈기를 바란다.


▶ 왼쪽부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의 싱글맘들에게 시를 가르친 시인 준과 나, 새언니 에일린과 나의 오빠 톰. ⓒ로라 왁스


모국, The Motherland!


"…그리고 당신… 당신은 언제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긴 여행을 시작할 건가요?“ ― 루미


오늘은 2018년 6월 16일이다. 내일 아침, 나는 “모국”(The Motherland)이라는 제목의 시집의 최종 편집본을 마무리 짓기 위해 출판사를 만날 예정이다. 이 제목은 자신들의 모국에 대한 싱글맘들과 입양인들의 끊을 수 없는 유대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 있던 시간을 되돌아 볼 때, 이 시집은 내가 성취한 가장 귀중한 목적들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 문화를 배워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내 정체성에 빈곳들을 채워 넣는 것, 새로운 삶을 백지에서부터 독립적으로 창조해내는 것, 선택된 사람들로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배움으로써 가족에 대해 내가 가진 관념을 다시 정의하는 것, 예술과 공동체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도록 하는 것도 내가 성취한 다른 귀중한 목적들이다.


올가을에 나는 내 옆지기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려고 한다. 하지만 내 일부를 여기에 남겨놓는 동시에 이 여정의 일부를 가져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에 한국에 올 때까지 이 시집과 이곳에서 얻은 추억과 관계들이 우리 사이의 불꽃을 찬란하게 유지시켜 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번역: 권호영)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Between the American Laura Wachs and the Korean Kim Hyo-jin

Listening to the experiences of overseas adoptee women (3): The long journey into myself


By Laura Wachs


“I knew I'd come back to Korea. It was an obligation since the day two hands, pale as moons pulled my tide from my mother's body. Left her reaching for my memory in the polished black keys of pianos. Our parting ?a minor song.” -Self


I am writing to you from Seoul, a city full of crowded subways, street vendors selling tteok bokki and neon signs flashing in Hangeul. Somewhere, my birth family is alive and walking through the neighborhood. They don't know I'm here or that I've been here the past four years. They don't know that despite us never meeting, they've influenced my whole life. Without them, I wouldn't have come to Korea, wouldn't have met other Korean adoptees or Korean single moms, wouldn't have published a poetry anthology full of beauty and political power and wouldn't have found personal closure to my concept of self and family. But before elaborating, let's go back a little.


Beginning the long journey into myself.  ⓒIlda (Illustration: Doona)


The poetry that gave me the strength to survive


In my early twenties, I felt anchored down by depression, self harm and an eating disorder all rooted in a lack of self worth. During this time, the worst part wasn't the grief or despair. It was the apathy. When everything feels numb, it becomes vital to decide whether or not you want to live. In my final attempt to live I wrote a list of things that made me feel joy, then crossed out anything dependent on other people. What remained was poetry. I jotted down an embarrassingly cliche break up poem and sought out a poetry reading


Poetry gives a person power. One can transform life experience into a palpable craft. For example, a poet can take a trauma and look at it from every angle until the description of it becomes a game of syntax, metaphor, imagery, and wordplay. With an infinite amount of words to use, there's no limit to a poem's possibility except for how far the writer is willing to open their heart. I believe that in this process, a subjective, emotional event can be viewed from an objective lens. This offers a new method to analyze and process that which once felt overwhelming.


On top of this, performance poetry adds another texture. When one memorizes, recites, adds inflection and gives eye contact to an audience, they are able to embody their story internally and externally at the same time. It is empowering. To witness it done well will leave a permanent impression. The first night I listened to poets share their work in such a light, it was a turning point that not only made me feel, but made me believe I wasn't alone. Lines from those pieces are ones I still remember today.


“Everything you are running away from is already behind you.” -Cecily Schuler


For the next four years, I attended shows from poetry slam, to academic readings, to experimental readings, to prose to freestyle hip hop and all in between. Writing, performing and organizing events for non profits became a core part of my existence. My life philosophy is that the silver lining to all experience, both good and bad, is that once it happens to us we can be a voice to support others who have also gone through or are going through similar situations. Thus when I, as a Korean adoptee decided to move back to Korea in order to learn about the culture, search for birth family and explore identity, I knew this would apply.


“I don't know if I define with American or Korean. My tongue is a wild pony broke in by English. My heart a fight between Laura Elizabeth Wachs. Kim Hyo Jin.” -Self


A one-way ticket to that unfamiliar country of my birth


My American name is Laura Elizabeth Wachs. My Korean name is Kim Hyo Jin. I was born in Seoul, South Korea in January of 1989. That same year in August, I was adopted and sent to Seattle, Washington. I returned to Korea in June of 2014 and have resided here since. 


Me as a child.  ⓒLaura Wachs


Before leaving, I was funded for an art project called, “The Voices of Korean Adoption.” The aim of the project was to host poetry writing workshops for Korean adoptees, and compile their poems into an anthology. At the time I had no knowledge about Korea itself, its history or its culture. I didn't know a single word of Hangeul. I'd never heard of the political activism of Korean adoptees that was taking place. Nor did I know of the plight of Korean adoptees or Korean single mothers. What I did know is that I'd impulsively purchased a one way ticket from the only home I'd ever known to my motherland and I had no clue what to expect.


I can recall my last evening in Seattle vividly. I went to a poetry show (of course) and the hosts gave a surprise by announcing the open mic segment was dedicated to me. I watched friends stand on stage and read poems they'd written in honor of my upcoming adventure as well as had a song sung in acapella about how I'd be missed. The room was full of warmth and encouragement. From there, it was one too many drinks followed by karaoke singing in a rented room called Rock Box. You could say this was a foreshadowing of future norebang outings. After we were done, I remember being linked arm in arm with two of my best friends stumbling to the car. I yelled, “I CAN'T DO IT! I CAN'T DO IT!,” at the top of my lungs. The next day, I hugged those same two friends goodbye in the airport terminal.


Upon arriving in Korea, it was a whirlwind. Immediately after de-boarding the plane I walked to an ATM, as I hadn't exchanged money prior. The ATM machine ate my card like one swift bite of instant ramen. I stared wide eyed with panic until an ajusshi (older Korean man) caught my eye and walked over. He spoke in Korean, so I didn't understand. I just pointed at the machine with furrowed eyebrows, took my arms and made a sweeping chomp gesture. He led me to an information desk and explained the situation. Afterwards, an airport employee opened the ATM and fished out my card. From there I'd planned to meet a friend in a city south of Seoul, but the busses had stopped running. An American standing in line overheard my frantic phone call to said friend and suggested I stay at the airport jjimjilbang (sauna). I dragged my luggage there, paid twenty thousand won and walked into a communal room with dozens of people asleep on the floor. In the morning, I woke to the new sounds of my mother tongue. Welcome to Korea.


“Kimchi is a craving. Alone is an acquired taste. I was told true change will come if I begin to dream in Korean.” - Self


Within the first week I looked up any poetry reading I could find. It was a familiar comfort to keep me grounded. I found one show, a five hour bus ride away in the city of Busan. I traveled there for what would become monthly visits for the next few years and met a group of friends. One was a Filipino adoptee who helped me navigate my own relationship with adoption greatly. He'd already done his own work and exploration of self which had concluded in an unabashed mentality of “I am who I am and I don't need to fit in any box. Along with him, I met two people who became my chosen big brother and big sister. We wrote together, performed together, spent holidays together, and became an integral part of each other's lives.


Reading at a poetry slam in Busan two years ago.  ⓒLaura Wachs


Connecting poems written by overseas adoptees and Korean single moms


After a year passed, I'd acclimated to Korea enough to use some of my energy to give back. A fellow adoptee invited me to participate in small march for an organization called, “KUMFA, Korea's Unwed Mothers' Families' Association,” and suddenly I found myself outside City Hall. I joined with a small group of Korean single mothers and adoptees, and together we held signs to fight for welfare along with justice as we walked about the city. Little did I know that KUMFA would shortly come to change the entire course of the art project I'd set out to do.


My art project had been stagnant for a while. I'd lost motivation. This is because after attending meetings for various adoptee orgs, holding a few poetry workshops, and hosting a benefit show for ASK, Adoptee Solidarity Korea (now SPEAK), I realized I'd been naive. People were already doing substantial work for the adoptee community in a myriad of ways. This ranged from mental health services to political activism to improve the Special Adoption Law in the country. It made me feel like an anthology of adoptee poems wasn't particularly groundbreaking or helpful. It's not to say it would be wholly invaluable, but my desire was to create something that would make as big of a difference as possible. In this, I questioned how. Then during a vacation in Thailand I confided to a friend about my concerns. He replied, “What about the moms?” Yes. What about them?


When I got home, I contacted Megy Kim, the now President of KUMFA and asked if she'd meet for coffee. We went to a quaint cafe where I explained my idea of incorporating poetry from the single mothers alongside the adoptee's. I said my hope was that by having these two narratives stand together, they would strengthen each other. That it would bring awareness, reveal the scope and diversity of narratives related to adoption and motherhood in Korea, as well as act as a seed to bring about social change.


With Megy (right) at the KUMFA fundraising show.   ⓒLaura Wachs


She then went on to share about the history of KUMFA from its initial humble meetings, to its slow, but steady growth. She talked about the courage of the women who battle to keep their children despite a country that logistically works to keep them apart. A country that shames and ostracizes them on top of that. Hearing Megy tell her memories of the organization and life over time as she wiped tears from her eyes made my defenses come down.


After a failed birth family search and permanent estrangement from my adoptive family, I felt bitter about parental figures. I'd built a wall stating that I didn't need nor want any of my own. Yet on that day my heart opened like a window as I saw in front of me the epitome of a good parent. Megy and the single mothers' undeniable love for their children gave me solace and filled the empty places of my own loss. That being said, we agreed to make the book.


“As I watch over you, I forget that I was sick at all. You are my energy. I feel better, not from medicine, but because of you my child.” - Megy Kim


A local Korean poet and dear friend gave a poetry workshop for the mothers in Korean for me. Closely following the workshop, it was my 28th birthday. Instead of a party, I decided to host a fundraising show for KUMFA. Megy agreed to close out the show by reading two of the poems she'd written. Before her performance I asked how she was feeling. She was shaky and answered, “I'm very nervous. I also feel little ashamed. I don't know if my poem is important.” I reassured her she'd do great. When called up on stage she stepped to the microphone, , admitted she'd learned most of her English from TV sitcoms and apologized for mistakes. She talked about our relationship and made a charming joke of how I looked beautiful that night. How, of course I looked beautiful because I was her sister. Then with a deep breath, she read her poems.


Scanning the room, people were captivated. They hung on to each word. They gave the utmost respect and attention. As soon as she finished, many members of the audience stood up to greet her. I caught a glimpse out of my peripheral of Megy crying as she thanked someone, tears streaming down her face. Around her words of gratitude and praise filled her ears. With all my being, I hope she felt the same empowerment and healing that I'd found in poetry.


Joon, a poet who taught poetry workshop to KUMFA moms, me, Eileen and Tom Wachs (my sister in law& brother) ⓒLaura Wachs


"... and you ... when will you begin that long journey into yourself?" - Rumi


Today is June 16th, 2018. Tomorrow morning, I will meet with a publisher to finalize final edits for my poetry anthology titled, “The Motherland.” The title is to honor both the mothers themselves and the adoptees unbreakable ties to their motherland. Upon reflection of my time here, it is one of the most valuable goals I've achieved. The others include filling in gaps to my identity as an Asian American by learning about Korean culture, independently creating a new life from a blank slate, redefining my personal concept of family by learning to believe in chosen family, and keeping my passion of art and community alive. Come this fall I'll be moving back stateside with my partner to start anew, but not without leaving part of me behind and taking part of this journey with me. Until my next meeting with Korea, I trust the anthology, the memories and the relationships will keep the spark between us bright.


English-language blog of ILDASouth Korean Feminist Journal  http://ildaro.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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