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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새로 짓다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집의 역사②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별채 공사를 끝내고 나니 아쉬운 것이 있었다. 별채 화장실이 없는 거였다. 화장실과 세면대, 차를 달여 마실 수 있는 작은 개수대가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손님이 와 별채에서 하룻밤을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을 공간이 되었으면 했다. M에게 그저 작은 공간 하나 덧붙이지고 했으나 그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년쯤 지난 뒤 그는 별채 뒤쪽에 작은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간 구상을 머릿속에서 하고 또 하는 시간이 이년여가 걸린 것일까?

 

그리고 드디어 2013년 6월 8일부터 별채 뒤에 덧대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집’을 짓기 시작했다. 두 달쯤 뒤 상량식을 올리고, 그로부터 또 이년 쯤 걸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답고 장엄한 한 공간이 탄생했다. 당시 ‘상량식 초대문’과 ‘상량문’이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 새로 짓는 집.  ⓒ김혜련

 

상량식 초대문

 

1. 별채 뒤 공간에 작은 집 한 채를 짓습니다. 8월 1일 목요일, 늦은 7시에 상량식을 올립니다. 함께 참석해주시면 아름다운 의식, 작은 축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2. 젊은 친구들을 위해 상량식이 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하지요.

 

집짓기는 ‘開土’(땅을 열다)에서 시작됩니다. 땅을 열어 기둥을 세울 기초를 준비하는 거지요.(이 때 地神께 ‘개토제’라는 제사를 지냅니다.) 땅을 열었으면 그 다음 덮는 행위를 합니다.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고 하는데 그 최종적인 것이 종도리(마룻대)를 거는 것, 즉 상량(上樑)입니다. 종도리는 집의 중심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래서 天地神明께 고합니다. 그 제(祭)올림이 상량식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집의 의미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집을 지을 때 하는 여러 제사들은 이제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건 상량식입니다. 아파트나 일반 건물들을 지을 때도 상량식을 올립니다. 그만큼 집 지을 때 중요한 의식인 거지요.

 

<중세의 가을>(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의 저서)에서도 봤듯이 삶의 형식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인데, 상량식 또한 형식이 있습니다. 종도리에 쓰는 문자라든가, 제사 때 쓰는 음식이라든가, 상량문(축문)이라든가 등등… 요즘은 그런 형식을 다 따져 하지는 않지요.

 

3. 웬 상량식인가, 의아할지도 몰라서 올리는 한 말씀~

 

별채 뒤 공간에는 별채에 딸린 부수적 공간을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별채에 방만 있으니 여러모로 불편해서 화장실과 부엌, 창고 공간을 작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벌써 4년쯤 된 것 같네요. M선생님한테 부탁드린 거구요. 그런데 그동안 M샘이 구상한 것이 별채의 부수 공간이 아니라 작은 독립적 공간이었네요. 방과 마루와 다락과 부엌, 화장실과 세면실이 다 갖추어진 여섯 평 정도의 작은 집 말입니다! 그 설계를 하느라 2년여의 시간이 걸린 모양입니다. 하하하. 그 설계대로라면 작고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운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집을 새로 짓는 거지요. 그러니 하늘에 고(誥)하는 의식을 하는 겁니다.

 

▶ 상량식. 여럿이서 마룻도리를 올리다.  ⓒ김혜련

 

4. ‘공부모임’을 초대하는 이유 몇 말씀~

 

상량식 때는 친지나 친구, 주로 이웃들을 초대하지요. 제게 이웃은 공부모임이니 당연 초대를 해야겠지요. 그리고 우리가 하는 공부와도 깊은 연결이 있기에 같이 경험을 나누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가 단지 텍스트나 관념으로만 끝나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하고, 일상의 자리에서 실천적으로 행하는 공부, ‘몸을 뜯어’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공부이기에 말입니다. 제게 집을 고치고 짓는 일은 제 공부의 중요한 한 부분이고, 집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알고 그 의미를 새기는 것은 여러분에게도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집은 ‘평화와 안도, 존귀함의 공간’이고 ‘인간의 모든 창조의 원형’이며 집짓기는 ‘존재에 대한 신뢰, 삶에 대한 궁극적 신뢰’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인간은 집을 지을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새가 세상에 대한 본능적 믿음으로 둥지를 짓듯 인간 또한 마땅히 그러합니다.’

 

물론 이 때 집은 작은 방(房) 하나라도 마찬가지겠습니다. 집은 말 그대로 하나의 우주이며 신성한 공간이고 우주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황막하고 떠도는 외로운 정서는 많은 부분 이러한 집의 의미의 상실에서 오기도 할 것입니다.

 

오십 여년을 도시의 떠돌이로 살다가 이곳에서 집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낡은 집을 고치고, 새로 짓고 하는 제 행위는 존재의 근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소중하고도 경건한 행위일 겁니다.

 

5. <인간과 공간>(독일의 철학자이자 교육사상가 오프 프리드리히 볼노의 저서)에서 집에 대해 말한 것들 중 우리 집과 연결되는(또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이야기 두 개를 첨부합니다.

 

“집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을 표현하며, 공간으로 변한 그 사람의 일부가 된다…. 집이 삶의 확고한 지속감을 전해주려면 오랜 과거까지 비추어주어야 한다. 집에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사용했던 흔적이나 약간의 훼손조차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집에서 진행되는 단계적인 증축은 인생사의 표현이며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진정한 집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서서히 자라나며, 완만한 성장에서 오는 확실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친근감은 항상 문을 열어 놓는다. 물론 아무에게나 열어놓지는 않는다. 친근감은 삶에 의미를 보장해준다. 친근감을 선사하려면 마음과 정신을 도야할 필요가 있다. 편안하고 친근한 타인의 집은 오로지 마력으로만 우리를 사로잡진 않는다. 그런 곳은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되찾게 함으로써 우리를 변화시킨다.”

  

▶ 상량문 ‘집의 하늘을 이루다.’  ⓒ김혜련


6.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이 집은 M샘 혼자의 힘으로 지어집니다. 한옥을 지을 때, 개토에서부터 시작해 집이 완성될 때까지 수십 가지가 넘는 전문가들이 각 부분마다 자기의 파트를 맡게 됩니다. 집 하나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이 그렇게 많은 거지요.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기둥과 보를 다듬고 끼우고, 지붕을 덮고, 벽을 치고, 바닥을 깔고, 보일러나 구들을 놓고, 각 공간마다 필요한 부품들을 넣고, 미장을 하고, 문과 창문을 만들고, 전선을 연결하고, 도배와 장판을 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의 손으로, 현대식 기계의 힘도 거의 빌리지 않고 한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입니다. M샘은 인문적 공부를 꾸준히 오래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 혼자 집을 완벽하게 짓습니다. 이 맹렬한 더위 속에서 지치지도 않고 부지런히, 때때로 거의 희열에 차서 일을 합니다.

 

“집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어보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짓고 부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공부란 이런 거라는 것을 살아있는 실체로 보여주는, 참 드물게 만나는 인물을 보는 것. 그 인물에 대한 감동으로 내가 변화하는 것. 그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축복이라는 걸, 그 축복을 함께 더 누리고 싶은 것도 초대의 이유이겠습니다.

 

7. 아주 홀가분하게, 상황과 여유가 되면, 즐기러 오셔요. 남편이나 애인, 친구랑 같이 와도 좋고요. 말은 이리 길게 했지만 상량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떡과 편육과 과일, 술, 밥이 있습니다. 더워서 늦은 시간으로 잡았으나 저녁은 드시지 말고 오시고요.

 

남산에서 늦은 밤 올립니다.

 

상량식 날엔 비가 왔다. 그런데 상량식을 하는 동안 잠시 비가 그쳤다. 우리 모두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고 환한 얼굴들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날의 상량문이다. 상량문의 가장 기초적인 형식을 빌려 썼다.

 

상량문(2013년 8월 1일)

 

유세차 서기 이천 십 삼년 팔월 초하루 늦은 저녁, 경주 남산 신령한 땅 동쪽마을, 양피 못과 신라 쌍 탑이 동과 서로 서 있는 작고 아늑한 옛집에 깃든 저 김혜련은 한여름 내내 홀로 기쁘게 집을 짓는, 놀라운 M선생님과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모여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 천지신명께 고하다.  ⓒ김혜련

 

오늘 여기 집의 원형처럼 작고 아름다운 집을 상량하여 우주의 중심을 이루고자 합니다. 비록 조촐하지만 맑은 술과 떡과 과일을 정성껏 마련하여 천지신명께 올리오니 부디 흠향하시고,

 

평생 평화를 구했으나 실은 헛되이 전쟁만을 치른 어리석고 지친 영혼에게 깊은 쉼과 평화를 줄 이 작은 집이 아무 사고 없이 순조로이 지어질 수 있도록 기원 드립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집이 봄에는 연두 빛 어린 생명의 부드러운 기운으로 가득 하게 하시고, 여름에는 쇠를 녹이는 뜨거움일지라도 깊은 계곡 솟아나는 샘의 청량한 기운으로 가득 차게 하시고, 가을에는 속 깊이 여문 열매들 같은 깊은 사유의 충만한 사리들로 가득하게 하시고, 겨울에는 피를 얼어붙게 하는 차가움일지라도 병아리 품에 감싸는 어미 닭 가슴 깃털 같은 안온한 기운으로 가득 차게 하소서.

 

천지신명이시여,

그리하여 이 작으면서도 큰 한 칸 집이 언제나 허실생백(虛室生白)하는 신성한 맑은 빛의 공간이 되어, 여기 한 순간이라도 머문 뭇 생명들의 심신의 고단함이 그 빛 속에 녹아 부드러운 평화 속에 있게 되기를,

 

오늘 집의 마룻도리를 올리는 날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가 올리는 맑은 음식을 받으소서(尙饗) 

 

(*허실생백: ‘빈 방에 빛이 생겨나다’로 읽어도 되고 ‘방을 비워 빛을 생겨나게 하다’로 읽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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