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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꽃을 던지고 싶다> 29. 다시 상담의 과정을 거치며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30회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www.ildaro.com]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올해 초 상담선생님께 상담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가끔씩 힘들 때마다 연락을 드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친절하게 받아주셨던 선생님이다.
 
당시는 내가 여성단체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나의 내담자들을 가끔씩 선생님에게 연계했던 차라, 다시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는 것이 조금은 망설여졌다. 선생님 앞에 좀더 멋진 모습으로 서고 싶었는데, 자존심이 무너져버리는 듯했다. 기억들이 나를 잠식해 맨 정신으로 살아낼 수 없다고 말씀 드렸다.
 
약속 날을 정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던 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소로 향했다. 상담을 다시 받는다는 것은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상담을 받고자 한 건 다시 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올라서 그 동안 살아내고자 했던 나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항상 그러하듯 친절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그녀는 더욱 영민하고 멋있어진 것 같았다. 다시 상담을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의 내 마음상태를 어떻게 하면 잘 설명드릴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상담원이 되고 내담자를 지원하면서 나의 고통은 사사로운 것쯤으로 여길 수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내담자의 고통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고통을 들을 때 나의 고통은 잠시 미루어 둘 수 있었지만, 때때로 내담자를 통해 겹쳐지는 나의 피해들이 극심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어릴 적 부모의 방임과 학대를 경험한 내담자를 대하는 순간 나는 무너져 내렸다. 그 친구가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하루 세끼 밥을 먹고, 그런 소박한 일상이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이 결국은 내가 그러지 못했던 억울함으로 몰려왔다. 그 억울함의 끝에는 언제나 성폭력 피해 당시의 고통과 기억이 따라왔다.
 
상담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상담원에게도 상담이 필요하다며 애써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전에 상담을 진행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나의 문제행동에 대한 인지행동치료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NET’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자고 하였다. ‘내러티브 노출치료’(Narrative Exposure Therapy)는 과거의 피해로 인한 공포와 불안,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반복적인 감정 때문에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느끼고, 사건과 관련하여 ‘신체화 증상’이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환자’, ‘정신병’, ‘치료’라는 단어들을 세심하게 피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조심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다시 상담소를 찾은 이유는 그녀의 그런 민감성과 환자를 평등하게 대하는 태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용기 내 함께하자는 상담선생님의 격려를 받으며
 

▲ <Tell  me : 이제 내게 너의 이야기를 해줘>  © 일다-정은의 빨강그림판 
 
기억을 정리해보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불안했다. 떠오르는 기억들로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그 기억들을 그 당시로 되돌아가서 아주 세세하게 증언하고, 그것이 기록되고, 그 기록을 다시 읽어내야 하는 과정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기억을 잊기 위해서 상담을 진행하고 싶은데, 오히려 나의 기억을 세세하게 끄집어내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무서웠다.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안해 하는 내 눈빛 탓인지, 선생님은 나의 속도에 맞추어서 진행이 될 것이며, 또 마음공부를 동시에 진행해서 고통을 다스리는 것을 함께해나갈 것이고, 그 과정을 함께해주겠다며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간의 상담을 통해 나는 그녀의 말이 진심임을 알고 있다. 기억을 정리하고 살펴보는 것이 곧 기억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고, 이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치료의 핵심이기에, 자유로워지길 바란다는 그녀의 말 속에는 나에게 용기를 내어 함께하자는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 것 같았다.
 
나는 괜찮아지고 싶었다. 괜찮아지기 위해 했던 그 동안의 방법들, 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원이 되고,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성폭력에 대해 재해석하는 것들이 나에게 힘이 되었지만 순간순간 기억들에 무너지는 감정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때때로 9살, 12살 때의 공포로 인하여 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견뎌내야만 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은 나의 기억들을 정리해내고, 그와 함께 마음의 고통들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할 때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힘든 과정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상담을 받는 그 순간들은 나의 기억과 감각을 온통 피해 당시의 고통으로 끌고 가는 것이므로 두려웠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믿지 못하지만 그녀를 믿기에, 힘든 여정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기억을 정리해내는 상담의 과정을 거치다
 
첫날은 트라우마 진단을 위한 검사지를 받았다. 그 검사지에 담긴 질문들은 어떤 시험문제보다도 어려웠다. ‘어릴 적 누군가 당신의 허락 없이 당신의 몸에 손을 댄 적이 있는가?’, ‘부모 형제에게 학대를 받은 적이 있는가.’ 질문지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답답해오고 눈앞이 흐려졌다. 먹먹한 기분. 난 여전히 어릴 적의 고통에 빠져있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차원의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진다는 진단. 어쩌면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진단일 것이다, 라며 쓸쓸하게 자조하게 되었다.
 
검사가 끝나고 선생님은 긴 끈과 돌과 모조품 꽃들이 담긴 상자를 가지고 왔다. 검사지를 바탕으로 나의 기억에 있는 사건들을 고통의 크기에 따라 끈이라는 시간 속에 차례로 배열해 보라고 하였다. 커다란 고통은 커다란 돌로, 작은 상처는 작은 돌로, 때때로 선물처럼 기쁨으로 기억되는 순간은 꽃으로, 그리고 앞으로 희망하는 삶까지.
 
그렇게 배열하고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다. 죽음, 배신, 저주, 운명 등 그 돌들에게 이름을 붙이면서 내 삶에 일어났던 사건들에게 이름이 생겼다. 내가 배열한 것들을 가지고 다음 회기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저주’라는 이름이 붙은 나의 탄생을 시작으로 상담은 시작되었다. 항상 하고 싶었던 질문, 나는 왜 태어난 것일까? 어릴 적 교통사고의 기억, 엄마의 손을 놓치고 울었던 기억, 엄마가 맞던 기억, 엄마와 헤어졌던 기억. 온통 엄마의 기억이 가득하다. 여전히 분리되지 못한 나의 상처들.
 
삼촌이 나의 몸에 손을 댄 그 날은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도서관에서 ‘강간당한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고민하던 순간은 ‘혼란’으로, 또다시 가해진 폭력은 ‘저주’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스님의 기억은 ‘운명’으로 이름을 부여했다.
 
선생님께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글을 쓰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선생님은 좋은 결정을 했다며 지지해주었다. 기록을 하는 것이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도움이 되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기록의 속도와 상담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내가 혹시 겪게 될 지 모르는 고통들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나는 너무 지쳐갔다. 특히 아동기 때의 성폭력의 기억. 선생님은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내가 맡은 냄새는 무엇이었는지, 내가 입고 있었던 옷, 그리고 감정들, 생각들을 세세하게 떠올리라고 하였다. 그 지옥에 나보고 다시 들어가라고? 당신 미쳤어?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가 나를 고통 속에 집어넣으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기에.
 
상담의 과정 중 어떤 날은 두려움에 내 팔을 할퀴고, 아무 말도 못하겠다고 거부해보기도 하고, 고통 속에 온 몸이 떨리기도 했지만, 회기가 거듭될수록 그 고통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은 감정공부를 선생님과 따로 진행하였다. 감정공부를 통해 명상도 하고, 기억이 떠오를 때 내 감정들을 느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갈수록 나는 기억을 지울 수도, 사건을 잊을 수도 없지만, 그 기억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낼 수 있음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내러티브 노출치료’는 3월부터 8월까지 중학교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중단하게 되었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기억과 고통은 아동성폭력을 겪었을 때의 기억들이었고, 그 기억들로 인해 통제불가능 상태로 빠져들었던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과정을 마친 것이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치유를 선택하고 가는 과정 중에 상담을 받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일부를 무사히 마친 것이다. 또한 나에게 드러나는 증상에 따라 상담도 달라져야 하기에, 이번 상담은 가장 심각한 증상 중의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플래시백’(전쟁이나 심한 폭행 등 충격적인 과거의 경험을 생생하게 다시 체험하게 되는 현상)으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고, 오랜 시간 함께했던 섭식장애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고통에 찬 비명으로, 원망으로 가득했던 그 때의 기억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나는 악몽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지만, 그 기억 속에서도 살아내는 법을 조금씩 연습해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간당했던 그 순간, 나는 무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진행되는 그 고통에는 굴복하지 않고 나의 방식들로 싸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기에 어쩌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일지라도, 허망하게 나의 삶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거쳐가고 있다.

하나의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조금씩 나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리 자랑스러운 삶은 아닐지라도, 나의 삶도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 한 번도 꿈꾸어보지 못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너울)

   *성주의 저널 <일다> 창간 10주년을 축하하는 독자들의 응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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