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괜찮을 거라는 예감 혹은 믿음 13. 미디어 www.ildaro.com 스님이 우려내 주신 발효차를 한 모금 마신다. 찻잔 속에서 찰랑이던 안온함이, 차 한 모금과 함께 내 안으로 쑥 들어온다. 뜨끈한 방바닥 위에 엉덩이를 붙였어도 쉬이 가시지 않던 한기가 그제야 한 발자국 물러서는 듯하다. 몸이 노곤해진다. 스님만 허락하신다면 방 한쪽에 놓인, 날렵한 턱 선을 자랑하는 작은 부처님 상 앞에 누워 한숨 자고도 싶다. 아니, 찬바람 스며드는 문 옆에 앉아 가만히 벽에 등을 기댈 수만 있다면. 그러면 잠보다 더 달고 깊은, 사락사락 눈 쌓이는 소리에 취할 수 있을 텐데. 금대암에다 가려다 안국사에 머물다 ▲ 새 해 첫날, 금대암 가는 길 위에서. ©자야 새 해 첫날 아침, 나와 K는 군고구마와 두유와..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내 생에 충분한 두 가지 가르침 붉고 노란 잎들의 향연이 아랫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11월 초 어느 날. 나는 K와 함께 뱀사골을 찾았다. 며칠 전 뱀사골 인근 마을에서 단풍 축제가 열렸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산은 온갖 색깔로 염색한 천을 휘감은 채 우리를 맞았다. 하염없이 눈부신 그 자태 앞에서, 그런데 나는 왜 약간의 쑥스러움을 느꼈던 것일까. 품은 넉넉하고 속정은 깊을지언정 겉으로는 무뚝뚝하기만 한 사람이, 갑자기 고운 옷을 입고 나타나 다정하게 팔짱을 끼는 것 같아서였을까. 18년 전, 내 등을 떠민 욕망 ▲ 뱀사골 길을 걸으며 지리산이 내게 준 가르침을 떠올려 본다.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자야 그러고 보면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