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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32) 도서관이 안겨 준 생각들  

 
핸드폰이 들썩인다. 도서반납일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반납일은 왜 이리도 빨리 돌아오는지! 시립 도서관에서 책은 2주 동안 대출 가능하고, 필요하다면 1주 더 연장할 수도 있다. 대출기간이 결코 짧지는 않지만, 책만 보고 살 수는 없으니 매번 대출기간을 꽉 채우고 만다. 이번에도 인터넷으로 반납연장을 해볼까 했는데, 누군가 예약해둔 상태라서 무조건 책을 들고 부지런히 도서관으로 달려가야 한다.
 
매튜 배틀스가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넥서스, 2004)>에서 전하는, ‘도서관이 숨을 쉰다’는 책 관리자의 재미난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거대한 몸이 숨을 들이켜고 내뱉듯, 도서관에 책들이 밀려들고 나간다는 것이다. 생명체처럼 숨 쉬는 도서관이라……. 그렇다면 책을 빌려보는 사람들은 도서관이란 몸의 원활한 신진대사에 책임이 있다. 제 때 책을 반납하지 않아 도서관의 몸에 이상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도서관이란 존재를 아낀다면 말이다.
 
동네 도서관이 좋다 
 

▲ 비키 바이런과 브렛 위터의 책 <듀이(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갤리온, 2009) 표지. 
 
나는 도서관이 좋다. 아니, 우리 동네 도서관이 좋다.
 
물론 그곳에 ‘듀이(갤리온, 2009)’처럼 사랑스러운 도서관 고양이는 없다. 만약 도서관에 나를 매혹시키는 고양이가 있었다면 난 날마다 도서관에 출근했을 것이다. 심지어 휴일에도 도서관 앞을 서성거리며 고양이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서 반납함에 새끼 고양이를 버리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혹시나 그런 일이 있더라도 고양이를 정성들여 거둬 키워줄 ‘비키’ 같은 도서관장이 없어서인지, 애석하게도 우리 도서관에는 고양이가 없다.
 
그렇다고 우리 동네 도서관이 로마의 공공도서관처럼 공중목욕탕의 부대시설도 아니다.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 책을 위해서는 그다지 좋은 발상이 아니겠지만, 만약 동네 온천탕의 한 곁에 도서관을 마련한다면,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정기적으로 그곳을 찾을 것 같다. 즐거운 독서와 따뜻한 목욕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공간,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정신과 육체를 한꺼번에 돌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우리 도서관 옆에는 작은 공원이 있긴 하다. 가끔은 도서관을 들렀다가 산책도 하고, 날씨좋은 날에는 벤치에 앉아 책도 읽을 수 있어 좋다. 물론, 도서관 바로 옆에 공원이 있다는 것이 내가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라도 도서관 나들이를 하는 이유는 아니다.
 
내가 그 어떤 도서관보다 동네 도서관을 좋아하는 까닭은 집에서 가까워 원하면 수시로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도서관을 고려해서 집을 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사한 다음 도서관이 근처에 있어 내심 반가웠다. 커다란 서재를 덤으로 얻은 기분이랄까. 수도사들이 책 욕심을 내지 않고 수양에 정진하도록 마련한 것이 서양의 수도원 도서관이라고 한다. 내게도 집 가까운 도서관은 책 욕심을 덜어줘서 고마운 존재다. 이제 더는 도서관 없는 동네에서 살 수 없을 듯하다.
 
도서관기행에 등장하는 세계적인 도서관들에 비할 때, 내가 드나드는 도서관은 건물도 볼품없고, 역사적으로 대단한 책도 없고, 장서 수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조금 오래되었다 싶은 책은 아예 없고, 최신 책도 드물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모두 구할 수 없어 아쉽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읽기에 책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수년째 도서관을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서가의 책 전부를 파악하지 못했다. 아무리 작은 시립 도서관이라도 한 개인이 소화해 내기에는 충분히 방대한 양의 도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여유롭게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내 눈을 사로잡는 책들은 여전히 많다. 읽고 싶은 책들이 책 읽는 속도를 앞지르며 등장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어느 날, 읽지 못한 책들에 짓눌려 괴로워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읽을거리가 넘쳐 즐겁다.
 
이렇듯 도서관은 호기심을 채워주고 재미를 안겨준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도 제공하고, 꿈과 현실을 이어줘 일상의 행복과 일의 성취감도 맛보게 해준다. 예전에 수도사들이 도서관을 순례하며 영혼을 정화하고 정신을 고양하고, 마음을 다스렸다는데, 공감이 간다. 도서관은 내게도 진실, 진리, 지혜를 향한 길 찾기를 도와주는 신성한 공간이기도 하다. 동네 도서관이라고 다르지 않다.
 
도서관의 나쁜 책 
 
▲ 매튜 배틀스의 책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넥서스 Books, 2004) 표지. 

 
그런데 도서관의 모든 책이 좋다 말할 수는 없다. 서가에서 종이낭비, 환경오염에 불과한 책, 시간낭비, 정신오염을 야기하는 책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서가 공간이 한계가 있어 창고로 옮겨지거나 폐기처분되는 책들이 생겨나는 형편인데……. 불쾌한 책들은 그냥 뽑아서 쓰레기통 속으로 내던지고 싶다. 다행히도 좋은 시민의 양식 있는 행동을 포기하지 못한 나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그 책들을 못 본 척 지나쳐갈 수밖에 없다.
 
내 마음에 드는 책들로만, 아니 적어도 불쾌하지 않는 책들로만 책장을 채우려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매진, 2010)’의 책방주인처럼 하면 될 일이다. 이 유별난 책방주인은 교과서, 학습지, 참고서, 자기계발서, 처세술과 같은 책은 자신의 책방에 발도 못 붙이게 하고, 스스로 읽고 좋다 생각되는 책들만 꽂아둔단다.
 
그러나 공공 도서관은 개인 도서관이 아니라 온 동네 사람을 위한 공간이니 내 불만은 옆으로 밀쳐두는 것이 맞다. 온갖 사람들이 방문하고 갖가지 책을 만나야 하는 곳에 내 가치관이나 취향만 반영될 이유는 없다. 내 생각에 ‘별로다’ 판단되면 존재 자체를 부인하듯 거론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나 같은 평범한 개인이 책을 판단하는 것은 사실 문제도 아니다. 황제, 독재자와 같은 통치자, 광신적인 종교 지도자, 점령자 등이 자기 욕심을 채우고 타인의 정신세계를 통제하기 위해 책을 평가하는 것은 책과 도서관의 운명에 비극적인 재난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앞서 가는 과학이론, 진보적인 정치사상, 자유분방한 이론 등을 담은, 소위 ‘나쁜’ 책들이 한 줌의 재로 사라졌고, 그 책들을 품고 있던 도서관도 가차 없이 파괴되었다. 권력자들에게는 대중을 좌지우지하기에 방해가 되는 책은 모두 나쁜 책이었던 것이다.
 
반면, 매튜 배틀스란 작가는 ‘도서관의 책 대부분이 나쁘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나쁘다’고 단언한다. 그에 의하면, 시대를 거스르는, 시대를 뛰어넘는 책, 즉 한 시대의 통상적인 관점에 갇히지 않은 책이 좋은 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너무 뻔한 시대정신에 갇혀 있기 때문에 나쁘다는 것이다.
 
어차피 좋고 나쁜 책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도서관은 누군가에게 좋은 책이거나 나쁜 책일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을 담아낸 책들이 가득해서 각자가 좋고 나쁜 책을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책은 세상을 담고, 도서관은 세상을 담은 책으로 채워져 있는 곳 아니겠나.
  
도서관을 상상하는 즐거움
  
                                                            
▲ 알렉산더 페히만의 책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문학동네, 2008) 표지.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품은 책들에 둘러싸인 채,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 보면 생각은 손쉽게 날개를 단다. 그런데 도서관과 친해질수록, 도서관에서 상상하는 것을 넘어 도서관 그 자체를 상상하고픈 욕구가 우리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것도 같다.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알렉산더 페히만의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문학동네, 2008)>이란 책도 그렇게 태어난 것일 게다. 작가가 구상했지만 집필하지 못한 책,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원고, 작가가 태워버린 원고, 도둑맞은 원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영영 사라져 버린 책, 글쓰기 장애를 가진 사람의 쓸 수 없었던 책, 권력자에 의해 소각된 원고, 작가의 책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도서관에 보관된 책들, 작가가 비밀장소에 숨겨둔 원고 등, 작가는 우리가 실제로 만날 수 없는 책들로 꽉 찬 도서관을 상상하고 있다. 나는 한동안 이 상상의 도서관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상상의 도서관으로 단연 으뜸은 ‘바벨의 도서관’이라 생각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세상의 모든 책이 보관되어 있는 무한의 도서관을 상상한다. 작가는 아래와 같이 도서관을 묘사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도서관이라 불리는 이 우주는 불확정 수의, 아니 아마도 무한수의 육각 진열실들로 만들어져 있다. 아주 나지막한 난간들로 둘러싸인 이 진열실의 중앙에는 거대한 통풍구들이 있다. 어느 육각 진열실에서나 아래층과 위층들이 보인다. 그것도 끝없이 말이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중에서)
 
공간적으로도 무한하지만 시간적으로도 무한한 이 도서관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한계에 도전하려 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인간에게 아득한 어지러움을 안겨주는 무한의 개념은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없더라도, 그나마 상상력을 동원할 때만이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낼 수 있다. 무한과 만난 도서관이라니, 아름다운 상상이다. 작가가 시력을 잃어 상상의 힘이 더 증폭된 것 같다.
 
그래도 작가처럼 활자의 유혹에 빠져 시력을 잃고 싶지는 않다. 또 생각의 유희에 빠져 ‘세상과 담쌓은 책벌레’가 되고 싶지도 않다. 상상의 도서관도 좋지만, 세상 속의 도서관을 생활의 일부로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
 
얼른 책부터 반납하고 돌아와야겠다. 또 어떤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경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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