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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몸 이야기⑯  조각난 경험을 붙여보며 
 
장애여성으로서 아이를 갖고,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될 때가 종종 있었다. 6, 7년 전 딸의 나이가 일곱, 여덟 즈음이었다. 그런데 경험을 말하는 데 있어서 심리적으로 갈등이 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장애여성의 문제를 정책으로나 이슈로 다루기 위해 ‘엄마역할에서의 어려움’에 대해서 얘기하게 될 때였다. 자칫하면 ‘장애여성들이 엄마 역할을 하는 데 있어 부적당하다’고 오해될 소지가 있겠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장애여성들도 비장애여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름의 기쁨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이런 말들은 ‘부족한 엄마에게서 크는 불쌍한 아이’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곤 했다. 특히 TV에서 이미지로 재현될 때 더욱 그랬다. 슬픈 배경음악과 “다리가 불편한, 미안한 마음으로, 힘들게”라는 내레이션이 반복되는 것도 한몫했다.
 
이렇게 동정적으로 그려지는 분위기에서 주위의 장애가 있는 엄마들은 지나친 죄책감을 갖거나 혹은 아이에게 잘하려고 과도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나 또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노력을 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손빨래를 하다가 살갗이 약간 벗겨졌다”는 나의 말에, “난 절대 손빨래 안하는데” 라는 비장애 엄마의 말이 돌아왔다. 아차, 싶었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 갈등하고 검열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왔지만 아이를 낳고 난 뒤 최대의 변화를 맞게 된 내 몸의 이야기는 어쩌면 시작도 못해 본 것 같다.  (일러스트 - 박상은)
 
이런 동정적이고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갖게 되는 딜레마와 달리, 경험을 이야기하며 또 하나 갈등을 느낀 것은 ‘우리들의 엄마노릇이 가치 있다고 과대 포장되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엄마 역할을 힘들어 하면서도 스스로 굉장히 의미부여하는 장애여성들이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아이를 낳을 필요성, 모성에 대한 칭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한때 TV에서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이 다큐멘터리로 다수 방영되었는데, ‘목숨을 건’ 또는 ‘심각한 건강악화’에도 불구한 임신, 출산에 대한 극찬의 내용이 적지 않았다.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이 부정적으로 생각되어 온 데 대해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는 맥락에 대해 점차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개인의 선택의 결과이겠지만, 사회에 속한 이상 그 사회분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이런 엄마역할에 대한 지나친 극찬으로 어떤 이들은 곤란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지 않는 장애인 부부나 혹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미혼 장애여성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나약한 존재처럼 대우되기 십상이다.
 
또한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감탄사는 실제 여러 차별상황에서 결혼과정에까지는 이르기 어려운 장애여성들을 상대적으로 대단하지 않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젊은 미혼의 장애여성들이 엄마가 된다는 것을 너무도 열망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기제인 듯하다. 이는 다른 활동에서 만족을 찾기보다 연예, 결혼 관계에 대한 집착을 낳기도 한다.
 
스스럼없이 편하게 말하기
 

이렇듯 상당히 극단적인 상황에서, 내 경험을 스스럼없이 말하기란 쉽지 않았고 속이 복닥복닥 거렸던 것이다. 흔히 ‘애 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한다’는 말처럼 여러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얘기하고 싶지만, 내 경험은 가위로 오려져 필요한 부분만 스크랩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왠지 상황에 맞춰 한쪽 측면만 말해야 될 것 같은 강박을 느꼈다.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배제되어온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나치게 칭송되는 극단적인 문화가 다른 영역보다 아이와 관련해서 더욱 심해 보인다. 때문에 아이를 선택하거나 하지 않기(못하기)가 상당히 힘이 들고, 실제로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도 부정적인 태도와 극찬의 태도 사이에서 힘이 들어 보인다. 나 또한 그랬듯이.
 
이제 좀 더 유연하고 편하게 선택할 수 있고, 다양하게 사는 삶도 인정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을지, 안 낳을지를 결정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데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소신대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를 선택하고 기르는 데 장애가 큰 걸림돌이 되거나 큰 강박이 되지 않길 말이다.
 
이때쯤 내가 아이를 갖고 낳고 기른 이야기를 맘 편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싸한 눈빛. “자기 몸도 간수하기 어려운데 애도 키운다”며 흘리는 눈물, 나중에 아이가 부모 때문에 맘고생 할 테니 하나 더 낳으라는 말, 이런 것들이 좀 덜해진다면 말하기도 수월해질 텐데.
 
나아가서 웃자고 한 이야기에 같이 웃을 수 있는 소통의 경지까지 오른다면, 아이를 혼자 몰래 업어보겠다고 이불더미에 아이를 올려놓고 ‘쇼를 한 일’, 갑자기 뛰는 아이를 후드 티의 모자 덕분에 간신히 잡은 일부터 장애가 있는 내가 넘어져도 감히 웃음보부터 터뜨리는 지금 우리 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검열 없이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게다. 지금은 검증한 소수에게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살고 있어 아쉽다.
 
갈등하고 검열하면서 어쨌든 많은 이야기를 해왔으면서도, 그 당시 개인적으로 최대의 변화를 맞게 된 내 몸의 이야기는 어쩌면 시작도 못해 본 것 같다. 정책,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부분에서의 경험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도 그리워진 뱃속 발길질 이야기며, 모유 수유할 때의 기분, 불어난 몸무게로 목발이 부러진 경험, 출산 후 회복이 더뎌서 모유수유를 좀 늦게 했다고 시어머니께 한소리 듣고 서러웠던 일, 뱃속에서 아기의 장애가 의심된다고해서 양수검사를 받은 일 등 어쩌면 소소하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했던 일들은 아직도 못다한 그 시절 이야기로 남아 있다.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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