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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춘신의 생활문학’ (7) <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엄마는 내게 신신당부한다. 홀로 살게 된 서른 중반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당부한다.

 
여자 혼자 자식을 키우려면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는 게 아니란다. 입을 것 다 입고서 철마다 꽃놀이 단풍구경은 하지도 말라고 했다. 어미는 품 안에 새끼 커가는 재미로 사는 것이라고도 했다.
 
사내 뒤 꼭지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할 때면 약속이라도 하듯 다짐을 받곤 했다.
 
부모아래 자식 치고 청개구리 아닌 사람 있던가. 나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백화점 할인행사 전단지를 들고 인파 속을 헤집다가 자장면 집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친구들이 떠나는 동남아 여행길은 또 얼마나 부러웠는지. 아이가 다니는 보습학원 수강을 끊고 따라 나서고 싶었다. 성적도 오르지 않는 아이를 가자미 눈으로 한참을 흘겨보았었다.
 
직장 상사인 조 과장의 중저음 목소리는 질책조차도 감미로웠었다. 노총각인 사내가 연속극에서처럼 키다리아저씨가 되는 환상을 품기도 했다. 사내 뒤 꼭지는 올려다보지 말라 했으니 발꿈치 정도만 흘끔거리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엄마 눈치를 보았다.
 
말하고 싶은 욕구나 사랑이 주는 친밀감 따위를 생각하는 일은 잘못한 일중의 하나로 생각 되었다. 나는 자신의 몸을 충분히 통제하고 억압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로 학습했다.
 
‘소녀 더렵혀진 몸이 오니 죽어 마땅하옵니다.’ 사극에 자주 나오는 여주인공 대사다. 무방비 상태로 듣게 되는 저 말은 늪이다. 엄마는 내게 죽어 마땅한 일이라 알려 주지만 내 딸에게는 죽어 마땅한 일은 아니라고 되짚어 준다.
 
근래에 엄마가 섭섭하다. 내가 사는 마을의 갑돌이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에 갔다. 연탄난로를 끼고 둘러앉은 마을사람들이 갑돌이에 대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틈에 대고 담배 사러 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담배 사러 갔다가 라면을 사 들고 되돌아오는 걸음이 허방을 짚은 듯 휘청거렸다.
 
두 해 전에 아내와 사별한 갑돌이는 홀몸이다. 장성한 자식들한테서 자손을 보았으니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그가 재혼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 선을 보러 간다고 한다.
 
남자는 혼자 사는 게 아니지요. 밥도 못해먹지요. 외로워서 안 되지요.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대낮에 갑돌이의 외로움에 마을 사람들이 깊게 개입하고 있었다. 갑돌이는 나처럼 당부하는 엄마가 없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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