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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신의 생활문학’ <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오른쪽 여자 왼쪽 여자]
 
친구 생일날이었다. 안방 텔레비전 위에 놓인 샛노란 장미꽃다발 자랑이 늘어진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사온 거란다. 친구는 얼굴 가득 함지박만한 웃음을 달고서 아랫목에 길게 누워있다. 예비며느리는 탕수육을 만들어 드릴 테니 기다리시라는 깍듯한 인사말까지 한다.
 
자글자글 기름 끓는 소리를 들으며 며느리 볼 나이가 됐음을 실감했다. 까치발이 되어 종종 걸음을 치는 스물 중반의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도 내 뒤태를 보면서 나른한 만족감에 빠졌었을까. 서로에게 연민의 정을 단 한번도 보내지 않았던 우리.
 
남자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는 며느리인 왼쪽 여자였다. 그녀는 아들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순 있어도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오른쪽 여자이다.
 
남자에게서 느끼는 억압된 분노를 전이시킬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거리에 그녀가 있었다. 당신의 아들이 주먹질이나 일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도 알게 하고 싶었다. 남자로 인해 고통과 좌절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금기였다. 그 말할 수 없는 금기에 눈물이 따라 다녔다. 그 눈물을 그녀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아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주기를 조종했다. 내 고통의 절반이 그녀 몫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범이 자랄 때 지나친 체벌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착하고 착해서 나무란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같은 말을 물어보고 같은 말을 들으면서 그녀를 경원시하게 되었다.
 
남자와 만족한 결혼생활에 그녀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시무룩해졌다. 그녀를 만날 때면 조용히 앉아서 파만 다듬다가 내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안녕히 계세요 라며 단정한 인사만 했다.
 
그녀 또한 결정적인 내 약점을 찾아내었다. 며느리가 감히 시집과 다른 종교를 가질 수 있느냐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로 인해 마귀 들린 아범이 가엾다며 시름에 젖은 소리를 했다. 어서 빨리 믿어서 구원 받기를 소망했다. 시험에 들게 했으니 구원받을 때가 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채근하였다. 믿지 않는 행위에 대한 결과로 받아들이기를 설명하고 달래었다. 믿지 않는 며느리가 불행의 원인이 된 것이다.
 
신 새벽 봉고차를 타고 붉은 십자가 아래 엎드렸지만 진심을 가장한 마음에 괴로웠다. 하늘을 울리고 땅을 감동시킬 기도를 할 수 없었다. 두려워하는 남자에 대해 기꺼이 기뻐하고, 그를 위해 전폭적인 희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흉내만 내다가 원래대로 돌아온 나를 보고 그녀는 실망을 했다. 얼음장 갈라지듯 쩍 하니 틈이 생겼다. 기대조차도 할 수 없게 되자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말 수가 없어서 차분하다더니, 곰 같은 며느리가 돼있었다. 집안의 화근덩어리로 전락했다.
 
명절이나 생일처럼 집안 피붙이들을 챙길 때는 믿지 않는 며느리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애가 저 모양이니 아범이 얼마나 힘들겠냐는 장탄식이 이어졌다. 그녀가 믿는 며느리들과 은혜 받은 기쁨을 나눌 때 나는 문지방을 넘지 못했다. www.ildaro.com 

[윤춘신의 생활문학-> 익명의 눈물에 대하여  |  언 땅에서 함께  |  뭐 먹고 살래? K의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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