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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차 사회복지사 원혜미를 만나다
 
사회복지사 원혜미씨는 사회초년생이자 신입직원인 내게 도움을 많이 준 동료다. 내가 무언가 필요할 때면 나타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곤 했다. 그녀를 생각하면 재빨리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어딘가에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짱가’라고 부르곤 했다.

 
그런 그녀에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그녀는 요즘 사회복지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내가 재차 제안하자, <일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본 그녀는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전해왔다. 그럴 줄 알았다. 그녀는 이번에도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경제활동을 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복잡한 가족문제로, 라면만 먹으며 생활한 적도 있는 그녀. 음식점 서빙, 전단지 배포, 공장 단순작업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 없이 대학등록금을 마련했다. 학비 납부 마감일을 맞추지 못해 행정실을 찾아가 사정한 적도 많아 “저 사회복지학과 01학번 원혜미인데요” 하면 직원 모두 알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 그녀는 “내가 벌어먹고 살아야겠다”는 경제적 자립의지를 확고히 했다. 곁에서 지켜본 그녀의 생활력은 동갑내기로서 숙연해질 정도다. 노후에 고생하지 않으려고 20대 후반인 지금부터 연금보험과 생명보험도 붓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정작 직업선택에 있어서는 돈벌이를 기준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3년 차 사회복지사다.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기까지 배경은, 구체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 혜미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중학교 1학년 때 간질발작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었다. 낯선 발작과 수업 중 배변을 하던 그 친구를 좋아하지도, 불쌍해하지도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친구이기에 도와주곤 했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들은 혜미씨를 그 친구와 3년 내내 같은 반으로 배정해주었다. 또 졸업식 땐 봉사상을 타기도 했다.
 
혜미씨는 자신도 그 친구를 꺼려하고 부담스러워했는데, 상까지 타게 되니 굉장히 미안했다고 한다. 그때의 미안함으로 그녀는 사회복지사가 된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
 
그런데 지금 그녀는 이제껏 가져 왔던 사회복지사에 대한 상(象)이 흔들린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느냐고 물었다.
 
“클라이언트의 고맙다는 말씀 한마디요. 감사표현은 내 일에 대한 포상이기도 하고요. 우리의 성과는 클라이언트의 만족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거면 됐어요.”
 
수급자의 고맙다는 말 한 마디로, 행복하다는 그녀. 그럼에도 혜미씨는 요즘 사회복지사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사회복지사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자원봉사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도와주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들어요.”
 
그녀는 즉각적으로 사람을 도와주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인생 전반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고민하고 지원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복지수급권자를 칭하는 말)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사회복지사는 주저앉아 있는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줄 뿐이고, 실제로 일어서는 건 클라이언트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지요.”
 
지금 그녀는 지난 3년 동안의 일을 되짚고 있다.
 
“정규직 되는 건 두 번째 문제에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집회에 몇 번 다녀왔다는 얘길 듣고, 나는 그녀를 ‘투쟁소녀’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살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운동가 아니에요. 다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표현하는 것뿐이에요. 같은 사실을 언론사마다 다르게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함을 느끼고, 서울광장이 전경차로 진압되고 통제되는 것을 보며 ‘뭐가 무서워서 이럴까?’ 의심하게 되고요. 늘 사회에 대해 고민하며 살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잖아요.”
 
그녀가 직장에서 겪는 일도 마찬가지다. 혜미씨의 표현에 따르면, “사회 돌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나는 직장에서 (계약직 직원으로서) 힘이 없으니까, 내 주장이 옳아도 조직에 별 영향을 못 미치죠. 그러면 직원으로서 역량발휘를 제대로 못하게 되고, 결국엔 직장 전체가 발전할 수 없다고 봐요.”
 
좋아서 하는 일로 돈을 벌고 생활 또한 유지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그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하며 욕심 없는 생활을 일구어가는 것이 혜미씨의 꿈이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되는 건 두 번째 문제에요. 난 내가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뤄갈 수 있는 구조를 원해요.”
 
당신의 계속되는 독립을 응원한다!
 
10여 년 동안 경제적으로, 공간적으로 독립을 일궈 온 20대 후반의 원혜미씨. 3년 차 사회복지사인 그녀는 지금 자신의 일을 돌아보며 성장통을 앓고 있다.

 
그녀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와, 질문 어렵다. (웃음) 나에게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모여 있는 개체에요. 우리 가족은 참 개인주의적인데, 실제로 지금까지 따로 생활한 시간이 많았어요. 이제 생각해 보면, 가족들과 부딪혔던 문제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아요.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고, 언니가 내게 간섭하는 게 싫어 이사한 것도 그렇고.”
 
어쩌면 그녀의 독립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인가보다. 가족과의 부딪힘에서, 직장생활을 고민하면서, 혜미씨는 자신의 생활력을 키우고 사회인으로서 능력을 만들어가며 계속해서 독립하고 있다.
 
동갑내기 친구로서, 동료 사회복지사로서 그녀에게 기사를 통해 애정 담은 응원의 말을 건네며, 그녀 인생의 행복을 빌어 본다.
 
“클라이언트, 나 같은 직장동료, 당신의 친구와 가족에게 늘 달려가 도움을 주었던 당신이 이제 스스로를 돕고 보살피며 성장통을 이겨나가기를, 당신의 더욱 멋진 독립을 응원해요.”  
당근 / 일다 www.ildaro.com

[이 시대 20대] 정직한 행복을 찾아서 | 취업전선 그녀의 좌충우돌기 | 내가 제일 좋아하는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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