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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소수자와 돌봄] 돌봄자가 손해보지 않는 사회

 

※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가 돌봄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내었고, 서로 돌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돌봄 사회를 위하여,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돌봄 현장을 조명하고, 다양한 돌봄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일다 - https://ildaro.com/9382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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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케어러’들과의 만남

 

이제 ‘영 케어러’(young carer)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바로 검색만 해도 관련 기사가 여럿 나오고, 일상에서도 영 케어러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 그 뜻을 안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난다. 검색창에 ‘영 케어러’라고 치면 텅 빈 기사 목록을 마주해야 했던 몇 년 전이 새삼스럽다. 영 케어러 개념을 소개하는 기사, 지자체마다 영 케어러를 발굴하고 지원에 나서겠다는 기사, 영 케어러들의 힘겨운 사연이 담긴 기사 등이 눈에 띈다.

 

지난 2월에는 정부가 영 케어러를 ‘가족돌봄 청년’으로 번역해서 호명하기도 했다. 돌봄과 관련된 기존의 법률 용어인 ‘가족돌봄 휴가’, ‘가족돌봄 휴직’을 고려한 결과다. 구태여 원어에 없는 ‘가족’이 앞에 붙는 게 어색하기도 하지만, 일단 부를 말이라도 생긴 게 어디냐는 마음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효’라는 가치로 돌봄 경험을 환원하며 돌봄을 사적인 영역에만 가두는 ‘효자, 효녀’라는 말보다는 중립적이다. 또한 이 사회에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과 청년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퍼트릴 수 있는 말이고, 돌봄과 생계, 진로 이행이 겹치는 어려움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호명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 지난 2월 14일 보건복지부는 ‘가족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방안’을 발표했다. 제6차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발표 자료 중.

 

영 케어러, 가족돌봄 청년 등 무엇보다 이제까지 침묵하던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말이 생겼다.

 

‘영 케어러’라는 말은 영 케어러들이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장소가 되었다. 내가 쓴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2019)를 읽거나, 이후 출연한 방송과 강연을 보고 “나도 영 케어러(였)다!”라는 연락을 해온 이들이 있었다. 그런 만남 덕분에, 과거 영 케어러였거나 현재 영 케어러인 7명의 생애를 기록한 책 『새파란 돌봄』(2022)을 쓸 수 있었다. 영 케어러 자조모임을 운영하는 이들, 자조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마치 먼 타지에서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서로의 공통점을 하나하나 확인해갔다.

 

혼자 삼키고 삭히던 돌봄 경험을 나누며

 

많은 이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돌봄을 겪는다. 부모나 조부모, 형제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거나 원래 앓던 지병이 큰 질병으로 악화된다. 간병을 어떻게 해야 하고 복지는 무엇을 신청해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고, 막대한 병원비와 간병비로 휘청거리며, 복지와 의료, 사보험 등 행정 업무에도 시달린다. 그러는 사이, 죄책감과 분노를 오가며 돌봄을 이어간다. 학업을 뒤로 미뤄두거나 포기하게 되고, 준비하던 일을 멈추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이 하루에 많은 시간을 차지해도 또래들과 나눌 수 없었다. 또래들에게는 잘 실감 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집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혼자서 삼키고 삭혔던 경험을 함께 나누며 공통점을 맞댔다. 그렇게 모아진 공통점은 간담회나 그룹 인터뷰 등으로 정부 부처에 전달됐고, 지난 2월 14일에 발표된 ‘가족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방안’의 기초 자료가 됐다.

 

“제가 한 돌봄 경험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쓸모’가 있다고 느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치매가 시작된 할머니를 13년간 돌보았던 푸른(가명)이 남긴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영 케어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은 경험이 많은 이들이 경청하는 경험으로 바뀌는 경험이었다.

 

어찌 보면 정말 ‘영 케어러’라는 단어 하나가 시작이었다. 혼자서 삼키고 삭히던 돌봄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 관계를 만든 것도, 그렇게 찾은 공통점이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기초 자료가 된 것도 말이다.

 

▲ 필자가 아버지를 돌본 9년을 기록한 『아빠의 아빠가 됐다』(이매진, 2019)와 ‘영 케어러’ 7명의 생애를 기록한 책 『새파란 돌봄』(이매진, 2022) 표지 이미지.

 

돌봄을 ‘차별’의 순간으로 본다면?

 

‘영 케어러’라는 말로 경험들을 맞대며 공통된 문제를 확인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영 케어러’로 수렴할 수는 없다. 영 케어러는 청(소)년 문제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돌봄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생애 과업을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돌봄이 왜 삶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버렸느냐다. 이제까지 돌봄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고, 또 앞으로 받지 않을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돌봄을 받거나 돌봄을 하는 사람은 예외적이고 불쌍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런 시선은 돌봄을 하면서 얻은 긍정적인 요소를 우습게 만들어버렸다. 분명 돌봄을 하면서 슬픔과 함께 기쁨이 있었고, 고통과 더불어 보람을 느꼈다. 상실만큼이나 배움도 컸다. 다만 한 감정을 압도하는 다른 감정이 있었을 뿐이다. 자조모임에서 슬픔과 고통, 상실을 함께 다 꺼내놓고 보면,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기쁨과 보람, 배움을 발견할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영 케어러와의 대화에서 ‘차별’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눈이 번뜩했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기, 청년기의 경험을 ‘차별’의 관점으로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많은 이들이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곧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무시할 근거를 주지 않기 위해서 돌봄 경험에 대해 침묵하는 편을 택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와상(臥牀) 상태인 어머니를 돌본 하진(가명)은 자신이 어머니를 돌본다는 사실을 세상에 말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혹시 제가 공개적으로 말했다가 나중에 내가 들어가고 싶은 직장의 면접관이 저를 알아보고 채용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분명 휴가를 자주 쓰고 능률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회사에서 부담스러워할 거 같아요.”

 

조현병과 알츠하이머가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은영(가명)은 초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에게 그 사실이 알려졌다. 며칠 후 담임은 반 아이들 앞으로 그를 불러냈고 ‘효행상’을 건네줬다. 그에게 그 순간은 ‘차별’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상이 마치 낙인처럼 느껴졌어요. 선생님은 저를 위하려고 했지만, 제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냥 똑같은 학생으로 있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어요.”

 

단지 돌봄으로 힘들었던 순간이 아니라 ‘차별’의 순간으로 다시 경험을 회고해보니, 어쩐지 바꿀 수 있는 부분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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