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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밑줄 긋기> 한정현의 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세상에서 가장 추앙받고 가장 멸시당하는 사람이 마릴린 먼로인 것 같다고.”(185쪽)

 

마릴린 먼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하자, 한 기자가 비아냥거리듯 물었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스펠링은 알아요?”

 

금발에 ‘백치미’ 캐릭터로 유명했고 사후에도 영원한 ‘섹스 심벌’로 박제된 듯한 마릴린 먼로는 사실 어디에나 책을 들고 다니는 독서광이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자신이 소장한 수백 권의 책 목록이었다고 한다.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도 마릴린 먼로는 웃으며 답했다. “혹시 그 책을 읽어봤나요? ‘그루센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오는데, 나는 그 역할에 아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지하철 환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으로 마릴린 먼로를 기억한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 ‘살롱드마고’에 입고된 한정현의 장편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문학과지성사, 2021) ©달리

 

한정현의 장편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문학과지성사, 2022)에서 마릴린 먼로라는 인물은 이야기의 중심이기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그리고 퀴어들의 ‘초상’에 가깝다. 이야기는 코난 도일의 유명한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 ‘셜록’과 ‘왓슨’에 비유되는 인물들의 추리소설 형식으로, 잃어버린 조각을 하나씩 찾으며 ‘진실’에 다가간다.

 

변방의 몸들

 

갑자기 종적을 감춘 친구 셜록, 결정적인 사건을 둘러싼 기억이 사라진 주인공이자 ‘왓슨’으로 불린 설영. 두 사람은 과거에 공동연구를 하며, 빨치산(partizan,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0년 6·25 내전을 전후로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을 말한다)으로 활동했던 여성들에 대해 조사하다 빨치산 내부에서의 성폭력 문제를 접하게 된다.

 

‘빨치산’(작품에서는 일본식 발음인 ‘파루치잔’도 함께 사용) 토벌이라는 국가폭력과 이후 낙인의 역사에서도 여성과 퀴어의 존재는 더욱 밑바닥 아래에서 감춰지고 삭제된 것이었다. 편하게 주어진 자리도 미루고 지도교수조차 못마땅해하는 연구주제를 고른 셜록이, 설영도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자 셜록은 국가가 인정하지 않은 소수자들, 그 ‘배제의 대상’에 대한 연구가 없음을 지적하며 선택은 충분하잖아. 이젠 배제도 좀 찾아봐야 하지 않겠어?”(31쪽)라 말한다. 어쩌면 기록이란, 배제된 존재에 첫 시선을 보내는 일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특히 과거사 연구는 ‘기억되는 것’ 자체가 목적인 동시에 투쟁에 가깝다. 나는 글쓰기 작업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 역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일다≫ 추앙도 멸시도 아닌, 몸과 기억의 ‘퀴어링’

“세상에서 가장 추앙받고 가장 멸시당하는 사람이 마릴린 먼로인 것 같다고.”(185쪽) 마릴린 먼로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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