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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오브젝트> 가발: 덧씌우거나 제거된 정체성의 기록

 

어떤 말에는 주술적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실보다 바람의 효용이 센 병실에서 오고가는 말들이 주로 그랬다. J언니의 수술실 밖에서, 치료차 입원한 병실에서, 어둡고 습했던 그의 지층 집에서 내가 한 거의 모든 말에도. 다른 누가 아닌, 말하는 자신이 듣고 믿고 싶은 말들. 그런 말들은 꼭 두 번씩 발화된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검사 결과를 전하는 J언니의 목소리가 너무 덤덤해서 내가 뭘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두 번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걱정 좀 덜하고 살 걸…”

언니의 그 말에도 주술적 기원이 실리지 않았을까. 몽땅 다 거짓말이어서 앞으로 걱정 덜하고 살게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는. 몇 번의 경험을 지나온 지금에야 무거운 소식을 들은 이가 취해야 할 말과 행동을 모자란 대로 준비할 수 있지만 그때는 J언니도, 나도, 더불어 연결된 사람들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예상과 상상의 범위가 좁다 보니 경제적·정서적·언어적 배려 모두에서 자주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다. 미안함보다는 일말의 부끄러움으로.

 

 

“인모는 많이 비싸요. 요즘은 인조모도 잘 나오니까 다양하게 보기로 해요.”

오랜만에 만난 디안의 한국어가 부쩍 편해져 있었다. 디안이 J언니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 우리는 처음 인사를 했다. 그게 벌써 1년 반 전이다. 언니나 나나 자신을 제일 낯설어하며 살던 시기라서 외국인이나 외계인에게 느낄 법한 이질감이 신기할 정도로 없었다. 디안의 낮고 꾸준한 기운이 좋았다. 그렇긴 해도 J언니 없이 단둘이 만난 건 처음이어서 형식적인 어색함과 함께 얼마간의 침묵을 지켰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 디안은 인도네시아 가발 공장에서 일을 했다. 디안에게 동행을 부탁하면서, 언니가 최소 1년은 병원을 오가야 하니 나와 한국어 공부를 이어가면 어떻겠냐고 문자로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고마워요.

 

“한국 사람들은 가발 많이 쓰나요?”

“음… 잘 모르겠어요.”

패션가발을 쓰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이나 나나 한국 사람들이라는 대표성을 갖기는 어려웠다. 가발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지금은 세상에 없는 할머니와 관련된 일화 정도였다.

대여섯 살 때였나. 할머니 집에서 눈을 뜬 날에는 잠에서 깨고도 한참 꼼지락거리면서 할머니가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고. 쪽 진 머리에 비녀를 꽂는 걸 훔쳐보곤 했다. 비녀에는 덧대어 넣을 수 있는 딴 머리, ‘다리’가 달려 있었다.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때는 몰라서 귀신머리라고 했다. 까맣고 윤기가 나는 귀신머리에서는 진한 동백기름 냄새가 났다. 내 말에 디안이 반색했다.

“아아, 우리 할머니도 그런 부분 가발을 넣어서 머리를 길게 땋았는데!”

“혹시 디안 할머니도 그랬어요? 그러고 나서 꼭 손바닥으로 주변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모으는 거예요. 인상을 쓰면서.”

“맞아요. 좀 전까지 바로 자기 머리에 붙어 있었던 것들을 쓰레기처럼.”

어린 아이에게는 신기하고 의심스러운 장면이었다고 우리는 입을 모았다. 할머니 머리에 아직 붙어 있는 모발과 비녀에 달린 가짜 모발, 바닥에 떨어진 모발은 서로 어떻게 다른 걸까. 어쩌면 할머니가 시장에 갈 때마다 내 옆에 꼭 붙어 있어라,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할머니에게서 떨어지는 순간 나도 떨어진 머리카락처럼 버려지는 건가 조금 불안했던 기억도 났다. 내 머리띠는 땅에 떨어져도 내 것인데…

 

▲ <여성과 오브젝트> 가발: 보이지도 말해지지도 않았던 어떤 시간의 결 (copyright-게티 이미지)

 

디안이 얘기한 대로 인모 가발은 예상보다 가격이 높았다. 우리가 생에 대해 참 터무니없이 무지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생의 아이러니는 그 무지가 만드는 건지도 몰랐다. J언니가 디안과 함께 소아암 환자 가발에 쓸 머리를 기부한 게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 2년을 염색 한 번 하지 않고 길렀다고 들었다. 얇고 푸석푸석 날리는 내 머리에 비해 둘의 머리는 굵고 윤기가 흘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싶었지만 의미 없었다. 이럴 줄 몰랐고 모르는 채로 많은 게 흘러가 버렸으니까. 인모 통가발 앞에서 망설이고 있자니 직원이 다가왔다.

“인모도 단점이 있어요. 모가 잘 빠지고 무거운 편이고요. 여러 사람의 모발을 가공해 가발 하나를 만드는 거라…”

“여러 사람의 머리요? 아, 한 사람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계세요.”

디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서로에게 J언니는 어떨까, 묻고 있었다. 모발 기부까지 한 사람이 거부감을 갖지는 않겠지 했지만, 2차 항암 후부터 식성과 감정의 변화가 현저했기에 언니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전화를 받는 언니 목소리가 묽었다.

“내가 가발 쓰고 갈 데가 있나 뭐.”

“보온용이야. 감기 걸린다고 꼭 쓰래. 민머리에 모자만 쓰면 정전기 일어나서 더 불편하다잖아.”

“흐흐. 그래. 그럼 사람 머리 아닌 걸로 사와.”

“우리 돈 많아.”

“싫어서 그래. 남의 머리 닿는 거.”

굳이 말하자면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순간부터 생명력을 잃은, 죽은 모발들이라고 직원은 말했다. 죽음 이후에는 주인이 없었다. 언니가 인모를 내켜하지 않는 이유야 달랐어도 어쩐지 직원의 설명에 쓰인 ‘죽은’이 걸려 나도 인조모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뜻밖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디안이었다.

“인모가 좋아요. 자연스럽고, 오래 써도 피부에 문제가 적고. 머리카락에 살균, 소독, 코팅 다 해요. 깨끗해요. 남의 것 아니에요.”

내게는 인조모도 괜찮다고 했던 디안이 얼굴이 상기된 채 두 손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J언니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디안의 표정에서 언니의 대답을 읽어낼 수 있었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도 많지만 멀쩡하게 이상한 사람도 많았다. J언니 곁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다. 언니가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는 6인실의 환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착하게 생겼는데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렸냐부터, 미혼이라니 그 가슴 써보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어쩌냐까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내 얼굴을 병실 평화를 위해 언니가 여러 번 두 손으로 가려야 했다. 인류의 평화가 유지되는 원리가 또한 그런 식이었다. 누군가가 내내 무례하면, 누군가는 내내 참으면서. 그렇게 지켜지는 평화 따위, 하고 어느 날 디안이 벌떡 일어나기 전까지만 유지된 평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디안은 용감했다. 6인실 평균 나이 60세 이상, 한국의 그 나이대 여성과 맞선다는 건… 언니도 나도 다급해져 디안의 팔 한쪽과 허리를 붙잡았으나 이미 병실의 모든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린 후였다. 디안을 결정적으로 자극한 건 아마도 “아픈 사람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말의 주인은 70대 고관절 수술 환자였는데, 사이 좋아 보이는 우리를 나름은 칭찬한답시고 말을 꺼냈다가 디안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70년 경험 어딘가에 박혔다가 자기도 모르게 굴러떨어진 듯해서 약간 슬펐다. 디안의 기세를 느낀 장년 반 노년 반 여성들은 말의 주인을 향한 타박과 우리를 향한 구슬림을 노련하게 섞어 분위기를 바꿨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들이 나눠준 귤과 곶감과 두유가 우리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언니는 민머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웃었다.

 

▲ <여성과 오브젝트> 가발: 덧씌우거나 제거된 정체성의 기록 (copyright-wakswigs)

 

그날 우리는 턱선 정도 내려오는 길이의 밝은 갈색 인모 가발을 사서 병실에 들렀다. 숍에서 한 번쯤 그냥 가발을 써볼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가 그러지 않았다는 자각이 돌아오는 길에 들었다. 어떤 의식 이전에 이미 ‘암’이라는 강력하고 무거운 한 글자가 태양처럼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나는 그걸 느끼며 혹은 외면하며 걸었다. 외면하고 있다는 걸 잔뜩 의식한 그런 외면이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언니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일절 연락을 끊은 사람들, 마치 감기에 걸린 사람을 대하듯 무심하고 무지했던 이들, 자기 삶의 비극적 사건으로 언니의 일을 소비한 이들에게 그 한 글자를 외면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듯했다. 언니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차라리 서운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낼 때가 좋았다. 그럼 같이 화를 내고 못된 소리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쓸쓸한 혼잣말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픈 사람을 누가 좋아해… 힘들다는 호소를 누가 계속 듣고 싶어 하겠어?”

 

언니의 얼굴색과 손톱색이 까맣게 변할 즈음 우리의 언어도 달라졌다. 온통 까맣거나 하얗게. 막막하게 힘들다와 막연하게 괜찮을 거야를 오고가면서. 가능하다면 나는 언니에게 나의 운을 주고 싶었고, 언니의 고통은 가져오고 싶었다. 내가 간절하게 옮겨오고 싶었던 건 언니가 느끼는 모든 종류의 통증이었다. 가발을 쓰고 앉은 언니 뒤에서 천천히 빗질을 하다보면 특히 그런 마음이 자주 들었다. 지친 목과 어깨가 가까웠다.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지?”

“응. 찾아보니까 중국이나 베트남 여자들의 모발로 많이 만드나 봐. 신기하지. 잘린 모발이 최소 25cm는 되어야 팔든 기부하든 할 수 있거든. 그 여자들이 머리를 감고 말리고 빗질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더라.”

그들 삶에서 언니에게 온 25cm의 머리가 자란 시간이 더는 언니와도 나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언니는 그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네. 그렇지?

 

디안과 셋이 있는 날에는 웃을 일이 더 많았다. 유럽에서 남성 가발이 유행하게 된 건 매독과 관련이 있다고 디안이 운을 뗐다. 16세기 후반 흑사병 이후 창궐했던 매독의 증상 중 하나가 탈모였다. 이를 가리려고 가발에 의존한 남성들이 당시 가발 유행을 주도하게 됐다고 했다. 체면 때문에? 체면 때문에요. 셋이 한꺼번에 웃음이 터졌다. 가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었다. 바닥에 떨어진 가발을 주워들며 언니가 “아이고, 내 머리” 해서 또 웃었고. 모르겠다. 그 폭발하는 듯한 웃음에 가려진, 두렵고 외롭다는 신호를 혹시 내가 외면하지는 않았을까.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이 주변의 다른 두려움들과 쉽게 결합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지고, 그게 우리의 웃음을 삼켜버리고, 언니가 슬픔을 종합하는 몸이 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았을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자주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타인과의 어떤 경계를, 절단면을 극복해보려고 선뜻 몸을 움직였던 생에 드문 경험이어서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언니의 가슴 한쪽이 사라졌다. 다음으로는 윤기 나던 모발이. 연이어 내가 기억하던 언니의 몸이. 그 안에서 많은 일을 하던 여성 호르몬까지도. 몸의 기억을 완전히 깨뜨려버리는 잔인한 시간이 흘렀다. 언니의 많은 부분이 여성이기를 그만두었다. 너는 내가 나 같아? 거울 앞에서 가발을 쓰다 말고 언니가 나를 돌아보며 처음 물었던 날을 기억한다.

“가발이 여전히 어색해?”

“아니.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게 신기해서. 전혀 상상해본 적 없는 이 모습까지도 ‘나’라는 게 너무 신기하잖아.”

언니는 시종일관 ‘이상하다’가 어울릴 자리에 ‘신기하다’를 썼다. 언니의 가발을 고쳐 씌워주며 디안이 다정하게 말했다.

“다행이에요. 슬프지 않고 신기해서.”

침묵이 부드럽게 흘렀다. 중국 여성, 베트남 여성, 어쩌면 한국 여성의 머리카락이었을지 모를 언니의 가발도 부드러웠다. 어느덧 그 가발까지가 언니였다. 언니가 디안에게 가발 공장에서 제일 힘들었던 일이 뭐냐고 문득 물었다.

“위도와 경도를 맞추는 일요. 가발도 수많은 선으로 이루어지잖아요.”

언니가 가발을 벗어 뒤집어 보였다. 촘촘하게 얽힌 망의 위도와 경도, 그 선을 지나는 얼굴 모르는 여성들의 가닥 가닥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 몇 가닥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인상을 찡그리며 그것들을 주워든 언니가 잠깐 멈칫하더니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 순간 언니는 다시 언니가 된 것 같았다.

 

 

언니의 항암치료가 끝난 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그러니까 언니와 나와 디안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 몸이 온갖 분비물로 뒤범벅되어 부패한 상태를 꿈이나 흔한 상상 속에서 여러 번 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무엇부터 무엇까지인지 내내 궁금했다는 공통점 하나로 우리는 잠시 나란했다. 언니가 내 말에 깃든 모든 주술적 기원을 독차지한 동안에. 언니는 비체(卑體; abject)였다. 

 

[필자 소개] 김지승. 작가. 비영리단체 매체 기획자.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노인 서사에 관심을 두고 개인 연구와 여성/노인 대상 예술 수업을 진행 중이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을 썼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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