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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오브젝트> 단추: 불안한 삶을 잇고 여미는 방식

 열두 가지 재밌는 집 이야기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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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긴 오르막길 끝에 겨우 평지를 만나 숨을 돌리나 했더니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집과 길과 계단이 산처럼 우뚝 앞을 막아섰다. 몇 개의 마을이 부챗살을 나누어 가지며 잇닿아 있는 풍경이었다. 여기가 마을들의 공동 입구는 맞는 것 같은데, 우리가 가려는 마을이 어느 쪽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입구라고는 해도 시멘트벽에 우둘투둘 마을 이름 몇 개가 적힌 게 전부였다. 거기에서 시작되는 계단길이 세 방향으로 휘어져 자취를 감추었고 그 위로는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또랑또랑 파랬다.

 

사진작가 P는 지도앱을 곰곰 들여다보더니 70% 정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여기가 맞아요, 했다. 그의 성격상 70%면 절대로 맞다는 말이었지만 그건 나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얀 페인트가 흘러 남긴 흔적처럼 ‘구름마을’이란 네 글자가 벽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쪽 계단일까요?

 

그는 말없이 다시 지도앱을 열었다. 세 번째 걸음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나는 묻진 않았다. 지도에서 구름마을은 부채의 왼쪽에 있었다. 그럼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려면 되려나, 하고 시선에 힘을 주려는데 그 옆 계단에서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다. 동시에 P의 표정이 달라졌다. 마을 예술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회화작가 K였다. 그는 P의 등을 툭툭 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P가 나를 K에게 간단히 소개했고, 그와 나는 서로를 향해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 하마터면 왼쪽 계단으로 올라갈 뻔했어요.

- 여긴 열 번을 와도 헷갈려요. 

- 구름방에 다들 모여 계신가요?

- 그렇기는 한데 요 며칠 뭘 찾으신다고 좀 어수선해요.

 

▲ <여성과 오브젝트> 단추: 불안한 삶을 잇고 여미는 방식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앞선 K를 따라 10분 정도 굽이굽이 계단을 오르자 뜻밖에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낮고 작은 집들이 평지를 둘러싼 모양이 어쩐지 다정해보였다.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 말고도 프로젝트가 진행된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마을의 최고령자인 90세 노인의 말이 파란 담장 한가운데 적혀 있었다. 카메라를 든 P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하늘이 아까보다 더 가까워져 있었다. 구름도 마찬가지였다. 왜 구름마을인지 알 것 같았다. 구름 바로 아래에서 개들이 겅중겅중 저들끼리 장난을 치며 뛰었다. 평지는 그들 차지였다.

 

그제야 나는 근래 사나워진 마음을 알아보았다. 화와 슬픔은 자주 혼동되었다. 왜 자꾸 화가 나나 했지만 실은 슬펐던 거였다. 15년의 인연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녀석이 먹던 사료나 간식, 옷과 산책줄이 아직 우리가 함께 머물던 공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는 일이 자꾸 미안한 일이 되었다. 그러다 이런 곳에 오게 되었네. 나는 몽실한 구름이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마을 한가운데 서서 바닥에 신발 밑창을 쓱쓱 문질렀다. 연신 뾰족해질 구실을 찾는 마음의 모서리를 가는 것처럼.

 

- 뭘 찾는데 그래요?

- 중요한 거래. 

- 중요한 거면 찾아야지.

- 그런 걸 왜 여기 뒀대?

 

아무도 대답은 하지 않고, 앉은 채로 동그란 몸을 스르륵 움직여 무언가를 찾던 노인 넷이 우리의 인사에 고개를 쓰윽 들었다. 그 모습이 송이버섯들 같았다. 너무 검어 어색한 염색머리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다. 그중 우리가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를 눈으로 찾고 있는 노인을 K가 소개했다. 담벼락의 그 할머니요. 아! 날카로운 눈매와 앙 다문 입술이 인상적인 마을의 최고령자였다. 안녕하세요. 노인은 내 인사에 말없이 손을 위로 들었다 내릴 뿐이었다. K의 말에 대꾸하는 것도 다른 노인들이었다.

 

- 오늘도 못 찾으셨어요? 벌써 며칠째래?

그 덕에 우리가 매일 여기 모여서 이러고 있네.

 

뭘 찾으시냐고 내가 묻자 마치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듯 노인들은 대꾸 없이 아랫목으로 스르륵 모였다. 부엌에 있던 노인들까지 모이길 기다려 열 명 남짓 앞에서 K는 나를 모 재단의 지원을 받는 마을 예술사업 관련 인터뷰 때문에 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서울에서 뭐 할라고 여기까지 왔느냐, 늙은이들 보러 여기까지 왔냐, 이른 아침부터 고생했겠다 등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노인들의 인사말 끝에는 늘 그렇듯 이런 질문이 따라왔다.

 

- 밥은?

 

듣고 보니 배가 고픈 것도 같았다. 정오를 막 지났고, K는 아침도 못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부엌에서 나왔던 노인들이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장마철에나 쓰는 커다란 고무 함지에서 비벼지기 직전의 대량 비빔밥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이른 아침 먹고 아침드라마를 보거나, 저녁 후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려고 삼삼오오 모이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마을회관 격인 구름방에 지금처럼 노인들이 집에서 각자 하나씩 담당해 만들어온 나물들을 한꺼번에 넣어 점심을 공동으로 해결하는 일명, ‘비빔밥 구름 회동’이 시작된 건 마을의 최고령자 정순 씨 때문이었다. 하루에 꼭 필요한 말만, 그것도 같이 사는 개, ‘수명이’에게만 한다는 정순 씨의 한 마디, “중요한 건데…”가 노인들을 매일 구름방에 모이게 만들었다.

 

각자의 집에서 가져온 자질구레한 살림들과 잡동사니로 채워진 그곳에서 노인들은 아주 느릿느릿 앉은 자세로 움직이며 무언가를 함께 찾다가 누군가 내일은 비빔밥이나 해먹을까 했고, 오늘 콩나물 무친 거 남았다고 한 명이 대꾸하면, 내가 무생채 무쳐올게, 또 다른 노인이 말을 받았다, 시금치도 넣어야지. 달걀 후라이는 여기서 하는 게 낫겠지? 참기름은 미선네 것이 좋아. 그런 식으로 착착 재료가 모였다. 고구마줄기 넣으면 더 맛있지, 가지볶음도 같이 비비면 더 맛있지 하며 매일 점점 재료가 풍성한 비빔밥이 만들어졌다. 열흘이 지나도록 정순 씨의 중요한 무언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열 번째 비빔밥에는 박나물이 들어갔다.

 


<여성과 오브젝트> 단추: 불안한 삶을 잇고 여미는 방식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P와 나는 6인상 구석에 앉아 구름방의 열한 번째 비빔밥을 점심으로 받았다. 평소 맛보기 힘든 깻잎양념찜이 반찬으로 놓였다. 사업단의 작가들 몇몇도 어느새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내가 받은 밥그릇 위에 올라간 계란 노른자를 보고 P가 웃었다. 처음 온 손님이라고 대접하시나 보네. 할머니들 귀엽죠? 귀엽다 하거나 말거나 옆 노인들은 부추를 넣길 잘했다 아니다를 두고 말이 오가느라 바빴다. 비빔밥은 정말 맛있었다. 놀라서 고개를 들던 나와 맞은편 노인이 눈이 마주쳤다. 구름마을 예술사업 관련해 마을 쪽 실무자인 혜옥 씨였다.

 

- 우리 마을이 뭘 먹이는 데는 옛날부터 유명했어.

 

하늘 가까이에서 늙다 죽을 노인들만 겨우 몇 집을 지키고 있던 마을이었다고 했다. 근처에 공장이 생기는가 싶더니 그곳의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하나둘 마을에 짐을 풀었다. 가로등을 새로 여러 개 설치한 것처럼 갑자기 마을이 훤하고 따뜻해졌다. 그 시절에 혼자 살던 노인들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먹이려고 음식을 하고 함께 나누던 바로 그 장소가 여기 구름방이라고 말하며 혜옥 씨가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공장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재잘재잘 꿈 많던 젊은 여성들이 모두 울며 마을을 떠나는 걸 보는 게 마음 아팠다고도 했다.

 

- 그런 다음엔 무덤 속 같아졌지. 구름마을은 무슨, 먹구름 마을이 되어버렸어.

 

그때 꼭 그들처럼 마을에 들어온 사업단의 젊은 예술가들이 마냥 예쁘면서도, 또한 그들처럼 떠날 걸 알아서 그냥 정 주기가 무섭다고, 늙으면 이런 게 제일 무섭다고 혜옥 씨는 좀 떨어져 앉은 예술가들을 의식한 듯 크게 말했다. 그중 한 명이 뭘 들었는지 물었다.

 

- 네? 어르신 뭐가 무섭다고요?

- 으응. 만나고 헤어지는 거. 그게 제일 무섭지.

 

그 말을 두 번 듣는 셈인 나는 어쩐지 얹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을 가지러 일어서는데 갑자기 아랫목 자리가 어수선해졌다.

 

- 아니, 이걸 찾은 거였어요?

- 열흘 넘게 찾은 중요한 게 겨우 이거라고?

- 이 형님 이제 다 살았네, 노망이네 노망이야.

 

다른 노인들까지 합세해서 한 마디씩 거드는 통에 정작 열흘 내내 찾던 중요한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진정된 기미를 틈타 겨우 보았다. 정순 씨 앞에 놓인 커다란 단추 하나를. 보석이라도 박혔나 했다. 아무리 봐도 흔한 플라스틱 갈색 단추였다.

 

- 그거네 그거. 수명이 겨울옷 단추네.

- 온 마을 노친네 총출동해서 열흘 내내 개 식구 겨울옷 단추 찾은 거야?

- 수명이가 사람 나이로는 자네보다 어른이네.

- 잘 찾아드렸네 그러면. 개나 사람이나 늙으면 추워.

 

그러고는 언제 어이가 없고, 노망 운운했냐는 듯 웃어버리는 노인들 사이에서 나만 눈물이 고였다. 정순 씨가 느릿느릿 마루로 나가자 늙은 개 한 마리가 옆에 와 가만가만 꼬리를 흔들었다. 수명이 길어라 해서 수명이. 정순 씨가 한복을 수선해 만든 듯한 색동조끼를 입고 있는 수명이. 정순 씨 말을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수명이. 정말로 정순 씨는 수명이에게만 딱 한 마디 했다.

 

- 찾았다. 가자.

 

▲ <여성과 오브젝트> 단추: 불안한 삶을 잇고 여미는 방식 (이미지 출처: pixabay)

 

아, 인터뷰! 떠올렸을 때는 이미 정순 씨와 수명이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필요하면 연락해보겠다는 K에게 괜찮다고 했다. 내가 수명이가 아닌 바에야 정순 씨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게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왜 그런 바람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정순 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수명이뿐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바랐다.

 

그러는 동안 구름방에 남은 사람들은 단추 하나로 만들어진 열하루의 시간을 더듬고 있었다. P가 흡족한 표정으로 내게 카메라를 내밀었다. 화면에 정순 씨와 수명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둘의 그림자까지도 한 쌍으로 잡힌 사진이었다. 내가 물었다.

 

- 어쩐지 단추 수프 이야기의 다른 버전 같지 않아요?

- 아, 세상에! 수프 대신 비빔밥인 거였네요.

- 전 비빔밥 쪽이 더 좋네요.

- 저도요, 저도요.

 

단추 수프 이야기에서 수프를 끓이는 이는 이런저런 게 있으면 더 맛있는 수프를 먹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했지만, 정순 씨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노인들이 온갖 비빔밥 재료를 알아서 들고 모이게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고수였다고 할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그건 단 한 명이 떠올린 묘책이나 지혜가 중심이 될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단추 수프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더 맛있는 수프를 여러 명에게 먹이고 싶어서 재료를 들고 오는 마음일지 모르고, 단추 비빔밥 이야기의 핵심은 다양한 재료를 넣은 비빔밥을 먹이고 나누고자 했던 여러 명의 그 마음들이 만든 열하루의 축제 같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는.

 

다른 점이 있긴 하다. 단추 수프의 단추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추 비빔밥의 그 단추는 17년째 세상을 살고 있는 노견의 겨울옷에 다시 달렸다. 어떻게 아냐고? 그해 겨울 두 사람의 앞모습을 찍은 사진을 P가 보내줬으니까. 저도 만나고 헤어지는 게 제일 무서워요. 사진을 보고 그 말을 하지 못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구름마을 노인들이 뜨개질과 바느질로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해온 내용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속적으로 기부를 해온 이유는 그냥. 그게 답의 전부였다. 그들이 아직 잊지 못하는, 울면서 마을을 떠났다는 여성들이 떠올랐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긴 인사와 웃음을 뒤로 하고 얼마 걷지 않아, 마을에 들어올 때는 일별하고 말았던 벽화 속 글귀가 벽을 벗어나 성큼 내게 걸어왔다. 한 번도 듣지 못한 정순 씨의 말이었다.

 

부족함 속에서도

나누며 살아야 해.

그게 내 평생의 경험으로

느끼고 배운 거야.

 

구름 가까이 위로 더 위로 올랐다가 인간을 떠받들고 있는 가장 낮고 불변하는 마음의 본체를 목격해버렸네, 하고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을까. 안나 칭의 『세상 끝의 버섯』(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속 다양한 생의 얽힘과 그 얽힘으로 생존하는 송이버섯에 대해 읽으면서 내가 한참 올랐던 그 계단 끝의 마을과 버섯 같던 노인들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구름과 마을을 떠난 여성들과 늙은 개가 활짝 열린 ‘잠재적 공유지’를 형성하고 있던 그곳에 나는 나의 죽은 개를 비로소 묻고 온 것 같았다. 요즘도 어쩌다 비빔밥을 먹을 때면 내게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힘이나 마음을 모으는 단추처럼 그들을 떠올린다. 몸을 낮추고 누군가의 중요한 무언가를 함께 찾던 노인들을.

 

[필자 소개] 김지승. 작가. 비영리단체 매체 기획자.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노인 서사에 관심을 두고 개인 연구와 여성/노인 대상 예술 수업을 진행 중이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을 썼다.  일다 

 

▶ 애정결핍과 공동의존의 회복 『남은 인생은요?』

 

남은 인생은요?

국계 이민자, 90년생 성sung이 시카고에서 쓴 트라우마 치유 에세이한국과 미국 두 문화를 가로질러 살아가는 세대의 이전에는 없었던 다른 목소리와 놀라운 서사『남은 인생은요?』는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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