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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연구가 에다모토 나호미에게 듣다 (상)

 

일본의 요리연구가 에다모토 나호미(枝元なほみ) 씨는 따뜻하고 편안한 웃음과 말솜씨로 맛있는 요리를 뚝딱 소개해준다. 요리만 연구할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일본의 농업이 처한 상황에 마음 아파하고, 비영리법인 ‘빅이슈기금’ 공동대표를 맡아 빈곤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에다모토 씨 자택을 찾아가서 부엌을 안내받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 요리연구가 에다모토 나호미 씨. 농부와 소비자를 잇는 사단법인 ‘팀 무카고’ 대표이자, 비영리법인 ‘빅이슈기금’ 공동대표.  ©오치아이 유리코

 

“히피 문화에 푹 빠져 있던 대학 시절은 일본 학생운동의 끄트머리였는데,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에 가담했어요. 그런데 빨간 장화를 신고 있던 탓에, 제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기동대가 발로 차서 내쫓더라고요. 우리가 젊었을 때는 다들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잖아요.”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던 고등학생은 대학에 가서는 연극의 길을 걸으며 배우 겸 새참 요리를 담당했고, 그 후에는 무국적 음식점에서도 일했다. 극단이 해체된 후, 요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Q.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얘기해주세요.

 

“요리연구가라면 농업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농사짓는 분들과 왕래했어요. 그러면서 농부들의 수익 구조가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예를 들어 무 농사를 지으려면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싹이 나면 옮겨 심고, 수확해서 세척하고, 물기를 제거하고, 새 상자에 담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수고를 들이는데, 농부의 수입은 (판매액의) 3분의 1 정도라고 해요. 나머지는 유통이나 소매 경비로 든다고요. 무 한 개에 3천 원이니… 못할 짓이죠. 제가 무 농사를 지으면 2만원 정도 쳐주지 않으면 절대 안 팔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래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소비자를 연결하고, 이런 문제를 공유하고 싶어서 ‘팀 무카고’를 만들어 농업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무카고는 주아主芽, 자라서 줄기가 되어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 싹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일본형 사회·경제 시스템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정치와 경제(기업)의 모습이나, 하드웨어에는 돈을 들이지만 사람의 노동에는 돈을 지불하지 않는 시스템 말이에요.”

 

▲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는 에다모토 나호미 씨. 고양이들은 인터뷰 중에도 책상에 올라오거나 다리 주위를 맴도는 등, 낯을 가리는 기색이 없었다.  ©오치아이 유리코

 

Q. 지금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하셨는데요, 농업과 관련하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가령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세 등 세계적인 경제유통 시스템을 정하고, 소비자에게 ‘수입육을 싸게 살 수 있다’며 먹이를 넌지시 던지지만, 국가와 기업은 이익을 더 내는 것을 우선시하여 ‘식(食)’이라는,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을 비즈니스 장사거리로 삼으려고 합니다. 먹거리를 경제 논리로 이야기하다니요,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죠.

 

2020년에 개정된 종묘법도 같은 논리에요. 지금까지 농가에서 해온 종자 자가채취 권리를 빼앗으려는 거죠. 전 세계 농작물의 씨앗을 겨우 너댓 개 다국적 대기업이 독점하려고 하다니 무서운 일입니다. 생산자를 무시하는 일이고요.

 

그리고, 세계적인 유통과 상업거래가 이뤄지는 아마존(amazon) 같은 시스템에도 의문이 듭니다. 팀 무카고에서 인도네시아 카카오로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었어요. 카카오든 설탕이든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이 듭니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판매를 하면 아마존 측이 판매가의 40%나 낚아채요. 이익의 분배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데, 여기 있던 물건을 저쪽으로 옮기는 일을 하고는 이렇게 큰돈을 벌다니. 생산물을 싸게 하려면 일하는 사람의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어요. 제대로 된 물건을 제대로 된 가격을 지불하고 사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행복하지 않으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익을 끌어올리려는 시스템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미래를 물려줄 수도 없고, 올바른 가치관도 남길 수 없죠. 경제도, 사회도 순환 가능한 형태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예전부터 “우리가 사회의 주역”이라는 말을 해오셨는데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지금은 ‘식품 손실’(food loss)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의뢰를 받았어요. 제가 요리연구가이니 “가정에서 식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다 쓰자, 이런 식으로 활용하자” 같은 캠페인을 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자칫 ‘집안에서 버려지는 식품을 없애기 위해 개인(여성)들이 노력하자’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아 답답했어요.

 

거대한 사회구조와 나의 부엌, 양 방향에서 사회를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가령 도쿄올림픽 때 스태프 도시락을 대량으로 폐기하거나, 편의점에서 시간이 지나면 도시락을 휙 처분해버리는 일을 계속해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가 뭐라도 해야죠. 이따위 정치를 위해 세금 내고 있는 거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이건 잘못됐어, 저것도 잘못됐어 하며 하나씩 저항하고 바꾸려다간 제가 망가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밤의 빵집’ 같은 작은 행동이라도, 우리가 좋고 원해서 추진하는 일이 앞으로는 사회의 주류가 될거라 믿고 가슴 펴고 당당하고 명랑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밤의 빵집’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빅이슈 사업으로 노숙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업 취지에 동의하는 빵집들에서 팔고 남은 빵을 빅이슈 판매자들이 픽업하여 판매하는 구조다.)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모두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품 손실’에 관한 어느 대담에서 들었던 말이 있는데요. “물이 점점 넘쳐 흐른다면 우선은 물을 완전히 잠궈야 한다”는 얘기에 감이 왔어요. 물을 완전히 잠그는 일, 넘쳐 흐른 물을 정리하는 일, 모두 해야죠. 어떻게 ‘물을 흘려보내지 않는’ 사회시스템으로 바꿀지 작전을 짜야 합니다.

 

지금 코로나 19로 빈부 격차가 더 커지고 빈곤이 확산되고 있죠. 그에 대한 불안도 크지만, 다른 사람에게 문제 해결을 맡기지 말고 사회구조를 제대로 깨닫는 일이 가장 필요한 것 아닐까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보이콧을 하기도 하는 거죠.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겠지, 같은 미적지근한 생각으로 참지 말고, ‘쎄게’ 가보자, 바꿔보자 얘기하고 싶어요.”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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