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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없는 머시기마을 이야기④ <지리산게더링>과의 만남

 

땅도 없고 돈도 없지만 우리는 ‘머시기마을’이라는 이름 안에서 계속 생존신고를 하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나는 대전 지역에 살고 있으니 스스로 ‘대전 사람’이라 여기면서 동시에 ‘머시기마을 주민’이라고 스스로 정체화한다. 머시기마을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바람은 머시기마을이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번진다.

 

그 길목에서 다른 청년 대안 공동체를 만나보고자 했다. 기존 주류 미디어가 요새 밀고 있는 청년에 대한 이름표는 ‘MZ세대’인 것 같던데. 청년 당사자인 우리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는 ‘MZ세대’라는 타자화된 말 대신 ‘탈서울’, ‘탈자본’, ‘기후위기’, ‘페미니즘’ 등을 훨씬 더 많이 이야기한다. 있어 보이는 말로는 ‘지속가능성’을 논할 때 필요한 이야기들이고,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계속 살고 싶다’는 이야기다.

 

지금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답습한다면 우리 세대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몸으로 말하고 있는 ‘지리산게더링’ 팀을 작년 가을 만났다.

 

▲ 구례 ‘지리산게더링’ 베이스캠프. 직접 요리해 먹는 부엌이다. 왼쪽부터 상이, 온빛, 아라, 감자, 하무. (사진 제공: 지리산게더링)

 

‘지리산게더링’의 다섯 사람을 만나다

 

머시기마을 웅 이장과 함께 대전 빵집 ‘성심당’에서 비건빵을 사들고, 지리산게더링 팀을 만나러 전남 구례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2시간 여 달리고, 굽이진 지리산 자락을 올랐다.

 

“안녕하세요...!”

약간 어색하게 인사하며 도착한 그곳에는 감자, 상이, 아라, 온빛, 하무가 있었다.

 

“저는 노래하고 글 쓰며 사는 머시기마을 유진이고, 지리산게더링 인스타그램 팔로워입니다.”

이 글 서두에서 이런저런 의미 부여를 했지만, 사실 그냥 관심이 가는 친구들이었고 그것을 티 내고 싶었다. 사심 섞인 소개를 하며 그들 개개인의 소개를 부탁했다.

 

영상작업을 하며 지내다 지역에서 환경운동가로 데뷔한 지 3년 차인 ‘감자’, 산 타는 걸 좋아하며 민화 그리기가 취미인 ‘아라’, 성폭력근절을위한지리산여성회의 대표이자 농사 지으며 사는 ‘상이’, 산내마을에서 청년 활동을 오래 해온 ‘하무’, 나눔꽃이라는 자원순환가게를 운영하는 ‘온빛’. 요약하자면 이랬다.

 

세상이 변화하려면 우리 삶의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

 

이들이 모인 시작을 이야기하자면, 감자가 하동에서 환경운동가로 데뷔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다큐 작업을 하다 3년 전에 고향 하동에 왔어요. 처음엔 앞으로 뭐 해먹고 살까 이런 고민하면서 부모님 집에 있었던 건데, 이곳에 댐이 건설된다고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함께 투쟁을 했고, 그때 하동 살면서 화력발전소 근처 사는 주민들이 암에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어요. 농촌 지역이 도시의 식민지처럼 수탈당하고 있는 현실을 깨닫게 된 거죠.”

 

댐 건설은 주민들의 반대 투쟁으로 인해 기적적으로 무산되었지만, 그때 갖게 된 도시민으로서의 부채의식은 감자의 삶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개인적인 일로만 여길 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그즈음부터 그의 삶은 ‘지역 활동가’로 재편되었다. 그러면서 당시 지역 활동가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하무와 알게 됐고, 그 인연은 상이, 아라, 온빛과도 이어졌다.

 

이들 모두 ‘세상이 변화하려면 우리 삶의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가졌다. 이런 생각에 영향을 크게 준 건, 일본에서 진행하는 ‘표주박시장’이라는 생태적, 탈자본주의적인 게더링(Gathering)이다. 그곳에 직접 다녀온 건 상이와 하무 둘이지만, 한국에서 열린 표주박시장 설명회 내용을 들은 이들 모두가 마음이 꽂혔다. 이때 마침 하동에 감자 부모님이 땅을 내어주신다고 하여, 그 땅을 기반으로 ‘지리산게더링’을 시작한 것이다.

 

▲ 숲에서 하루 낮과 밤을 오롯이 혼자 보내는 ‘비전퀘스트’를 마치고 함께 모여 모닥불을 피웠다. (사진 제공: 지리산게더링)

 

숲에서 한 달 살기, ‘모두의’ 게더링

 

“<지리산게더링>은 생태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이들을 위한 게더링(Gathering)입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지구의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서로를 해방하는 모습을 꿈꿉니다. 생태적 삶을 모색하며 지금 이곳에서 안전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내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연 속에서 순환 가능하며 누구나 환대 받을 수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공유지의 복원을 지향합니다. 숲에서 열리는 게더링을 통해 자연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새롭게 관계 맺으며, 기후위기 시대의 전환을 상상하고 실천합니다.”

-지리산게더링 소개글 중 (출처: 인스타그램 @jirisan_gathering 프로필 링크)

 

2020년 9월. 지리산게더링 이름을 공개적으로 알린 시기다. 이때 생태적 전환을 바라는 친구, 친구의 친구들이 지리산 하동 숲에서 한 달을 함께 살았다. 지리산게더링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갖추어진 곳은 아니다. 숲에서 밤을 주워 밤조림을 하고, 산에서 장작으로 쓸 나무를 주워오고, 직접 흙 등으로 만든 화덕에 불을 피우고 요리를 해 먹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때로 모닥불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고 모닥불 연기에 콜록거리고, 지리산 계곡에서 맨몸으로 자유를 감각하는 물놀이도 하고 말이다. 그런가 하면, 지리산게더링으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연대해 지리산을 둘러싼 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운동도 했다.

 

지리산게더링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모두가 안전하려면 모든 행위가 용납되어선 안 된다는 것 또한 이들은 안다. 그래서 이들은 약속문을 정했다.

 

▶지리산게더링은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공간입니다. 비인간동물을 죽이고 착취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기본적으로 경어를 사용하고, 상호 동의 없이 반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이 등의 위계에 의한 호칭 문화를 지양합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행동을 할 경우 강제 퇴장 당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게더링 약속문 중 (출처: 인스타그램 @jirisan_gathering 프로필링크)

 

“이곳을 안전한 장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논-비건 음식은 가져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알림도 미리 하고요. 우리가 가진 가치관을 언어화해서 이곳이 모두에게 안전한 장이라는 것을, 이곳이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어요.”(온빛)

 

“약자나 소수자를 먼저 고려하는 게 모두를 위한 것의 첫 발자국이라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어요.”(상이)

 

하동에서 구례로, ‘여성해방 마고숲밭’

 

재작년 지리산게더링의 기반이 경남 하동 땅이었다면, 작년부터 이들은 구례 땅에 터를 잡았다. 하동 땅이 감자 부모님의 땅이라 계속 게더링 장소로 사용하기에 한계가 있었고, 지리산게더링 팀을 눈여겨본 구례 주민이 땅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 구례 땅에 직접 디자인한 ‘여성해방 마고숲밭’ (사진 제공: 지리산게더링)

 

새롭게 터를 잡은 땅에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여성해방 마고숲밭>이다. (마고라는 이름은 우리 창세신화의 주인공이자 여신 마고할머니에서 딴 것으로, 가부장 질서에 의해 억압되어온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많이 언급된다.) 이들은 지리산에서 함께 살아보면서 식량을 자급해보자는 욕구가 있어, 이곳에서 공동경작도 한다. 공동경작을 하는 이들은 지리산게더링 팀 다섯 명과, 올해 초 퍼머컬쳐(Permaculture)를 함께 공부한 지역 주민들이다.

 

퍼머컬쳐(Permaculture)란, 영속적이라는 의미의 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의 합성어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꿈꾸는 농법이자 운동이며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들은 관행농 방식을 지양하고, 땅이 고루 순환할 수 있는 농법을 배우고, 밭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지닌 의미를 담아 모양도 여성해방의 무늬, 마고할머니가 품는 모양으로 밭을 디자인했다. 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가지, 토마토, 케일, 양상추는 작년 구례에서 연 게더링 안에서 함께 요리해먹었다.

 

그들에게 ‘자연과 연결된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자연의 일부로 순환하는 것과 같다. 직접 땅을 일궈 농사를 짓고, 음식을 해먹고, 남은 부산물을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고, 땅에서 나고 자란 음식을 먹고 싼 오줌과 똥도 밭에 다시 퇴비가 되어 흙이 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보고 행하는 것 자체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숲을 우리 삶의 중요한 기반으로 여기고 서로가 서로를 함께 돌봅니다.”

 

지리산게더링 약속문 중 하나다. 공동체를 일궈내는 과정에서 늘 염려가 되고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공동체 구성원이 ‘번아웃’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지니 ‘좋은 방법 있으면 연락 달라’는 답이 가장 먼저 되돌아온다. 그만큼 어렵다. 그리고 중요한 이슈다.

 

“어떤 프로젝트나 일이 중요하기보다는 우리가 좀 더 사람들을 지켜내거나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일을 벌리지만 말고,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각자가 마음 나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잘 안 되는 부분은 못 한다고 인정하고. 다 재밌으려고 하는 거니까. 누군가 약간 휘청한다 싶을 때 우리가 먼저 살피고 조치를 취한다든지 힘든 것에 대해 신호를 보내준다든지. 그래서 같이 지지를 해주는 시간을 가지고요. 이런 얘기를 계속하고는 있어요. 쉽지는 않아요.”(감자)

 

▲ 직접 만든 티피 앞에서 찍었다. 티피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왼쪽에서부터 아라, 온빛, 감자,하무, 상이  (사진 제공: 지리산게더링)

 

이들이 직접 만든 티피(인디언텐트) 안에서 얘기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렸다. 어둠 속에서 마지막으로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는 지리산게더링이 자신의 일상과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지역에서 오래 살면서도 도시적 생활양식을 유지해왔어요. 지리산게더링을 하면서 어떤 전환의 씨앗 같은 게 생겼는데요. 이곳 땅이 우리 것도 아니고 평생 지낼 수도 없겠지만 마고숲밭에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거니까.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자는 생각을 해요. 2022년에는 집 짓고 싶어요.”(상이)

 

“자본주의를 생각하면 미래가 불안하고 매일 답답함이 드는데, 게더링에서 와서 친구들과 모여 살다 보면 그 자본주의에 압도되는 불안감을 내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함께 배워가는 것들을 실천할 수 있고. 그리고 재밌어서 좋아요.”(아라)

 

같은 하늘 아래

 

“그냥 재밌게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꺼낸 그들에게 묻는 두 번째 질문은 조금 무거울 수 있겠다는 걱정도 살짝 들었지만 그래도 준비한 질문이기에. 중요한 질문이기에 물었다. “백 년 후 미래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 보이더니 이내 하무가 입을 열었다.

 

“백 년 후에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자연과의 재연결’ 캠프를 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대멸종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고 하는데, 이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지키고, 또 어떤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평화라는 게 사실 전쟁 막고 멸종 막고 과학기술로 기후위기를 막는 방법 찾고 이런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내면에 가진 힘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 같이 캠프에 참여한 수수라는 친구가 얘기한 건데, 이게 계속 기억에 남아요.

 

백 년 후에 살아있는 사람들이라면 서로를 잘 돌보는 사람들일 거예요. 예전에는 재난은 항상 90%의 가난한 사람들한테 먼저 오니까, 가난한 사람들 다 죽고 부자들만 남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요즘에는 ‘부자들은 자기가 먹는 토마토 하나 기를 줄 모르는데 그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을 해요. 서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들이 결국엔 살아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백 년 후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뭐 해줄 말 없이, 이미 충분히 대단하고 멋있는 사람들일 것 같아요.”

 

미래 세대에게 메시지를 던지라고 하면, ‘미안하다’ 등의 대답이 사실 으레 나올 수도 있었는데. 재난은 왜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걸까 분노하고 이내 냉소에 빠지고 무력하던 시기가 아주 길었는데, 사실은 나도 그 감정에 꽤 지쳐있었던 모양이다. 하무의 대답이 아주 많이 와 닿았고 고마웠다.

 

지리산 자락을 빠져나와 다시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지금, 그들과 나눴던 대화를 곱씹어본다. 그날 그들과 한 차례 만나고서 친밀한 사이가 된 것도 아니지만,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에 마음 한편에 안도감과 든든함이 차오른다.

 

※이 글의 제목에 쓴 ‘지구 세대’란, ‘지구와 내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세대’라는 의미로, 2020년 6월 창립한 어쓰플러스에서 언급한 단어를 차용했다.

 

[필자 소개] 유진. 글 쓰고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살다가, 작년 농사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두부두루치기와 샹그리아를 좋아한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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