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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트만두와 위성도시에서 ‘일하는 아동’을 만나다 (상편)

 

한 달 반 전인 2021년 12월 13일,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였다. 72시간 전 코로나 검사 음성 확인서, 전세비행기 예약, 비자 받기 등 이전 여행과는 달리 준비해야 할 것이 유달리 많은 여정이었다. 가방은 마스크와 방역제품으로 가득 채웠다.

 

▲ 네팔의 어린이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단체 <바보들꽃>의 김요한 간사가 지난 12월 13일 네팔을 방문해 20여 일간 70명의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 현지의 상황을 조사했다. 사진은 마스크 30개~50개, 소독젤 2개, 책 3-5권, 사탕과 비스킷이 든 방문 키트.  ©바보들꽃

 

나는 <바보들꽃>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2005년부터 네팔의 어린이노동자들에게 학교에 다닐 권리를 보장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희망의 언덕’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번 네팔행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1년 11개월만의 방문이었다. 펜데믹이 장기화되어 해외 출장은 여전히 여의치 않았으나, 점점 더 악화되는 네팔의 상황을 보며 아이들과의 만남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

 

카트만두 공항에서 나와 링로드에 들어섰다. 링로드는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의 외곽 고속도로로, 중국 자본에 의해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이동하는 곳에 고속도로를 만들어, 차들은 고속으로 달리는데 사람들은 옛날처럼 도보로 건너다 많은 희생자를 낸 도로라는 오명을 안고 있기도 하다. 링로드에는 전보다 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많아져 정체가 빚어지고 있었다. 네팔의 부자들은 코로나 기간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고자 차를 더 많이 샀고, 중산층은 좁은 버스를 타지 않기 위해 은행 빚을 내서 오토바이를 샀다고, 현지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 말했다.

 

달걀 한 판의 무게, 더 커진 빈부 격차

 

현지에 있는 간사 두 사람과 함께, 우리가 지원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출발했다. 약 20여 일간 70명의 아이들 가정을 방문하였다. 방문 지역은 카트만두와 그 위성도시들인 랄릿뿌르, 벅다플 3개 지역이다. 시골은 코로나의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는 방문을 생략했다.

 

우리는 먼저,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나누어줄 방문 키트를 만들었다. 마스크 30개~50개, 소독젤 2개, 책 3-5권, 사탕과 비스킷, 그리고 달걀 한 판으로 구성하였다.

 

▲ 방문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달걀 한 판씩을 사들고 갔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기 직전인 2년 전의 달걀 가격은 3,500원 정도였으나, 지금은 4,600원에 살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선 6,000원까지 부르는 곳도 있었다.  ©바보들꽃

 

달걀은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영양공급원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의 영양공급을 위해, 아동 가정을 방문할 때면 달걀 한 판을 사가는 경우가 많았다. 1년 11개월 전, 아이들을 방문할 때 달걀 가격은 한화 3,500원쯤 하였다. 당시에도 달걀 가격은 네팔 사람들에게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다. 네팔의 평범한 가정집에서 달걀을 판으로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 알에 200원쯤하는 달걀을, 필요할 때마다 근처 상점에서 한 알씩 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값이 더 올라서 4,600원에 팔고 있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상점에서 6,000원까지 부르는 곳도 있었다.

 

오른 것은 달걀 가격만이 아니다. 땅값과 집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집을 가진 사람들, 땅을 가진 사람들은 네팔에서도 환호성을 지른다. 1년 전에 비해 카트만두 외곽 땅값은 거의 6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값 상승은 임대료 상승을 의미한다. 해마다 아이들이 사는 곳을 방문할 때, 거주면적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이번에 방문한 70명의 아동들이 사는 공간은 약 2평~5평 정도였는데, 평균 임대료는 45,000원쯤 하였다. 한 가족이 평균 4인 규모고 수입은 평균 90,000원이다. 즉 임대료를 빼고 남은 돈 45,000원 정도로 4명이 한 달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개인당 하루 375원으로 식량을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형국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부유한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침입을 경계하여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게 되었다. 일자리를 잃은 가난한 사람들은 시골로 돌아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봉쇄령이 풀린 2021년에 일부가 도시로 돌아왔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지원하는 아이들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업을 빠지고 옥수수를 파는 소녀, 어쳐나

 

어쳐나 파라쥴리는 올해 11살로 카트만두의 나라데비에 살고 있다. 엄마 엠비카 파라쥴리(45세)와 언니 시레스나 파라줄리(15세)와 함께 산다. 4년 전까지는 아버지도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는데 술에 취하면 엄마와 딸들을 자주 때렸다. 그래서 어쳐나는 차라리 아버지가 없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

 

▲ 아이들에게 줄 달걀을 사기 위해 가게 앞에 서 있는 <바보들꽃> 현지 활동가들. 인신매매 위험이나 학대로 인해 긴급구호가 필요한 아동의 경우, 쉼터에 옮겨 보호한다.  ©바보들꽃

 

아버지 사망 후 엄마, 언니와 함께 어쳐나는 사원을 돌아다니며 근처에서 옥수수 파는 일을 했다. 사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사원의 비둘기들에게 먹일 옥수수를 사가기 때문이었다. 한 봉지에 200원인 옥수수를 팔아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복도, 체육복도 갖출 수 없었던 어처나는 차라리 학교 수업을 빠지고 엄마와 옥수수를 팔러 다니는 것이 더 속 편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고, 그해 3월부터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어쳐나 가족에게 생활은 그야말로 고통이었다. 두 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멀건 달(녹두콩 스프)만 들이켰다. 임대료도 밀리게 되었다. 주인이 월세를 내라고 매번 닥달했지만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버티다 못해 9개월 후, 방세도 지불하지 못하고 어처나 가족은 지금 살고 있는 나라데비로 도망쳐 왔다. 집은 고작 2평 정도인데, 월세는 45,000원이나 내야 한다.

 

완전한 봉쇄가 사람들을 잡겠다고 생각했는지, 2021년이 되면서 네팔 정부는 이전 형태의 완전한 봉쇄를 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 후 어쳐나와 가족들은 다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옥수수를 팔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자리를 잃은 가난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옥수수를 팔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통에 수입은 이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대신 옥수수를 파는 좌판들 간에 싸움만 늘었다. 서로 좋은 자리에 앉으려 하고 조금이라도 많이 팔기 위해서 경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한 날에도 집에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하누만 도까에서 장사를 했는데, 장사꾼 사이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어쳐나는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두 번만 학교에 가고 엄마와 함께 옥수수를 팔러 다닌다. 지금 이 소녀에게는 학교에 가는 것보다는 당장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5살 때부터 일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언니

 

우리의 네팔 지원 대부분은 여성과 아동들에게 집중되어있다. 남편을 잃은 여성과 아동,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 나온 여성과 아동, 현재 폭력을 겪고 있지만 아이들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버둥대는 여성과 아동, 그리고 부모의 폭력을 피해 도주한 아동 등. 사연은 다양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빈곤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 빈곤 국가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내몰린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온 여성들이 구할 수 있는 일은 파트타임 가사노동이나 건설 현장의 일용직이다. <바보들꽃>에서 지원하는 어린이노동자 성기타, 성기타의 언니, 그리고 성기타의 엄마는 모두 가사노동자이다. 사진은 성기타의 어머니가 최근 이사한 집으로 안내하는 모습. 집이라기보다 방이라고 불러야 할만큼 좁은 곳에서 세 모녀가 살고 있었다. ©바보들꽃

 

이번에 만난 이들 대부분은 일거리를 찾아 시골에서 도시로 온 사람들이다. 도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사노동이나 건설 현장의 일용직 뿐이다. 그 중 네팔 여성과 아동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파트타임 가사노동이다. 때문에 우리가 지원하는 가정들은 엄마도, 아이도 가사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격일제로 아침 저녁으로 2시간씩 4시간 일하면 한 집당 한달에 3만원을 받는다. 두 집을 뛰면 6만원, 세 집을 뛰면 9만원인데, 대부분 이런 일을 하는 가구의 수입은 9만원 정도였다.

 

학교 등교 전이나 후로 나누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이 집안 살림에 보태기 위해(집안 살림을 축내지 않기 위해) 많이 선택하는 노동이기도 하다. 그들은 음식 그릇을 씻고, 옷을 빨래하고, 집을 청소한다. 성기타와 성기타의 엄마 그리고 성기타의 언니도 그에 속한다.

 

성기타의 집은 카트만두의 야채시장인 깔리마띠에서 북쪽으로 3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 일행은 일주일 전에 이사했다는 성기타의 집을 찾을 수 없어, 큰 길에서 성기타의 어머니를 기다렸다. 얼마 후 나타난 그녀의 얼굴은 몹시 어두웠는데, 요 며칠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꼬불꼬불 구부러진 좁은 길을 꽤 걸은 뒤에야 성기타가 살고 있는 방에 도착했다. 여지없이 성기타의 방도 다른 아이들이 사는 방처럼 비좁았다. 성기타는 다음날부터 학교 시험이 시작된다며, 작은 침대에 책과 노트를 펼쳐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성기타 네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1년 전 카트만두를 떠나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고향에는 땅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친척 집에 잠시 의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잠시 다녀올 거라 생각했지만 1년 동안 카트만두로 돌아올 수 없었다. 2021년 카트만두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은 1년간의 방값을 지불하라고 재촉했다. 할 수 없이 친척들에게 40만 원이나 되는 큰 돈을 빌렸다. 그 돈으로 2개월분을 제외한 임대료를 모두 지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주인은 돈을 다 낼 수 없다면 나가라고 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집을 찾아 이사해야 했다.

 

성기타의 엄마는 카트만두에 돌아온 후에도, 많은 집들이 파트타임 가사노동자를 잘 쓰지 않아 일자리를 찾기가 몹시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말 다행히도 그녀는 2개월 전에, 월 8만 원을 벌 수 있는 정규 일자리를 찾았다.

 

 
‘어린이 가사노동’(Domestic Child Labour)은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에 의해 ‘최악의 형태의 어린이노동’에 속한다. 입주 아동 가사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한다. 좋은 집주인을 만나면 학교에 보내주지만, 보통은 식사와 주거지를 제공하는 것을 은혜로 생각하라는 식이다. 성폭력과 아동학대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사진은 집주인 자녀의 가방을 들어주는 가사노동자의 모습이다.   ©바보들꽃

 

우리가 방문하기 15일 전에는, 5세부터 남의 집에서 입주 가사노동자로 일한 성기타의 언니가 10학년을 졸업하고 완전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다. 네팔에서는 입주 아동 가사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는 법이 거의 없다. 좋은 집주인을 만나면 학교에 보내주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 주인을 만나면 일을 시키면서도 ‘식사와 주거지를 제공하는 것을 은혜로 생각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쩌겠는가? 삶은 지속되고,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일다

 

[필자 소개] 김요한: 3세계의 일하는 어린이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긴급구호가 필요한 현장을 지원하며, 아이들의 교육권과 인권을 보호하는 단체 <바보들꽃>에서 일한다. 문의: 02-337-1978 이메일: merosathi@naver.com 후원계좌: 국민은행 438901-01-300620 (예금주: 바보들꽃) 정기후원 약정: https://url.kr/yuts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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