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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정체성과 권한을 되찾는 음악적 목소리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사커 마미(Soccer Mommy)



내슈빌(Nashville, 미국 남부 테네시주 중부에 있는 도시)이라고 하면 보통은 컨트리 음악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사커 마미(Soccer Mommy)라는 독특한 이름을 쓰는 내슈빌 출신의 음악가는 인디 록을, 그것도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사와 분위기의 록 음악을 선보인다.


사커 마미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2016년 처음 선보였던 데모 형태의 앨범 [For Young Hearts]는 빌보드 US 히트 차트 5위, US 인디 차트 30위를 차지했다.


사커 마미(Soccer Mommy)가 2016년 처음 선보인 데모 형태의 앨범 [For Young Hearts] 커버.


비범한 시작은 운이 아니었다. 그는 ‘내슈빌 스쿨 오브 아츠’(Nashville School of Arts)라는, 우리로 치면 특수목적 고등학교에 다니며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웠다. 이후 뉴욕대학교에 진학하여 음악 비즈니스를 공부한다. 그 과정에서 사커 마미는 내슈빌에서 뉴욕으로 자연스럽게 활동 반경을 넓히며 음악적 영향을 받는 공간이 옮겨졌고, 첫 앨범을 계약한다.


단숨에 스타로 떠오른 것은 아니다. 2016년에 데모 앨범을 발표한 이후, 2017년에 [Collection]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하나 더 발표했는데 정식 앨범은 아니었다. 혼자 작업한 것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추려서 발표한 것이고, 사커 마미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즈음 학교를 자퇴하고, 이후 2018년에 비로소 첫 정식 앨범 [Clean]을 발표한다.


“난 네 개가 아니야” 


앨범은 그 해 말 20개의 매체에서 2018년의 앨범 중 하나로 꼽았다. 뉴욕 타임즈의 필자 존 카라마니카(Jon Caramanica)는 그 해의 앨범들 중 1위로 꼽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존 카라마니카는 “내면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새롭게 힘을 발견하게 되는, 그 순간의 긴장감을 포착하는 가운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포악한 울부짖음을 들려준다”고 설명했다.


사커 마미(Soccer Mommy)가 2018년 발표한 첫 정식 앨범 [Clean] 커버


앨범에 대한 평에서 알 수 있듯이, 사커 마미의 음악은 밝고 평화로운 무언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곡 자체는 거부감이 들거나 어렵지 않다. 팝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다만 메시지와 정서, 가사가 거칠 뿐이다. 첫 앨범의 타이틀곡 “Your Dog”을 들으면 알 수 있다.


“Your Dog”은 “난 네 빌어먹을 개가 되고 싶지 않아, 네가 끌고 다니는”(I don’t wanna be your fucking dog, that you drag around)으로 시작한다.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곡은 서정적이고, 묘하게도 그 감정을 어렵지 않게 전달한다. 이후 후렴에서는 “이마 키스는 내 무릎을 부러뜨리고 다시 너에게 기어가게 놔두지”(Forehead kisses break my knees and, leave me crawling back to you)라고 말한다.


“난 네가 키우는 작은 동물이 되고 싶지 않아 / 모든 침대 끄트머리에서

 넌 자고, 몸이 뻗고 / 난 아마 소파에 웅크리겠지” 

-Soccer Mommy “Your Dog” 중에서



뮤직비디오는 좀 더 영리하게 접근했다는 느낌이 들고, 인상적이다. 친밀함 속의 학대적인 관계를 이야기하며 남성이 여성을 학대하는 방식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이 노래를 두고 매거진 피치포크(Pitchfork)는 “(관계에서) 손실과 상처로 정착하는 악순환에 갇힌 이들을 위해 대담한 앤썸(찬가, 주제가)을 제공한다”고 평했다.


더하여 미 공영 방송국 NPR은 “이 노래는 다른 사람의 거들먹거림, 통제, 학대에 의해 빼앗긴 정체성과 권한을 되찾으려는 노래이다. 그리고 그녀가 존중에 대한 강력한 임파워링(힘 모으기)을 할 때, 앞으로 우리가 의지할 중요한 음악적 목소리를 확고히 한다”라고 말했다.


사커 마미는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직접 말했다. “이 노래는 다른 사람의 세계에서 당신이 졸개처럼 느껴지는 지점까지, 관계에서 마비된 느낌으로부터 나온다. 이 노래와 영상은 누군가가 이탈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빠른 동기 부여를 터트리는 것일 뿐이다. 그건 오랜 기간의 약점 속에서 힘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남성 지배적인 음악 신에서 “여성들의 연대”


사커 마미(Soccer Mommy)의 두 번째 앨범 [Color Theory] 커버. 2020년.


2020년 사커 마미는 두 번째 앨범 [Color Theory]를 발표한다. 음악적으로는 좀 더 세련되게, 다채롭게 성장했고 그 안에 담은 이야기는 더욱 뾰족해졌다. NPR 인터뷰에 따르면 앨범에는 암 투병을 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비롯해 더욱 깊숙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하며, 음악적으로도 변화했음을 말한다. 


사커 마미는 2018년부터 파라모어(Paramore)와 같은 대형 밴드의 투어 오프닝을 맡았는데, 그 중 파라모어의 헤일리 윌리엄스(Hayley Williams)와의 일화가 인상 깊다. 헤일리 윌리엄스는 그간 남성이 지배해 온 음악 신(scene)에서 "특히 음악과 예술에서 여성성의 그 어떤 표현에 관하여 여성 간 커뮤니티의 연결을 갈망하던” 시절에 발견한 "자랑스러운 자매"처럼 느껴졌다고 사커 마미에게 메일로 말했다고 한다. 멋진 여성 음악가들이 연대하는 장면을 텍스트로나마 만난 순간이었다.


사커 마미의 두 번째 앨범 역시 지난 해 말, 8개 매체에서 2020년의 베스트 앨범 중 하나로 꼽았으며, 8개 매체에서 80점 이상의 점수를 줬다. 이 앨범은 어릴 적부터 영향을 받아온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의 흔적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인 동시에, 인디 록에서 좀 더 팝 음악으로 장르적 확장에 성공한 작품이다. “circle the drain”의 뮤직비디오에는 에이브릴 라빈이 2000년대 초반에 곡의 가사나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보여주었던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담겨 있다. 한편, 7분이 넘는 “yellow is the color of her eyes”는 복수의 매체가 사커 마미의 ‘음악적 성취’라고 꼽았다.


*Soccer Mommy - circle the drain https://youtube.com/watch?v=DTc1w32Vbeo

*Soccer Mommy - yellow is the color of her eyes https://youtube.com/watch?v=NEjOzDFzx10


사커 마미 “royal screw up (demo)” 뮤직비디오에서 캡처. 


미국 월간지 베니티 페어(Vanity Fair)에 따르면, 사커 마미는 외롭고 조용한 시간이 많았던 투어 기간에 새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썼고, 불면증과 환각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슬픔의 파란색, 질병의 노란색, 죽음의 회색을 통해 세 가지 반복되는 주제가 일련의 색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고 한다. 그래서 앨범 제목은 [Color Theory]가 되었다.


예민함의 절정에서 생겨난 작품은 그러나 무작정 날카롭기만 하지 않다. 오히려 천천히 들어볼 수 있을 만큼 정교하고 멋지다.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하다. 사커 마미의 유튜브 페이지를 챶아보면 유튜브에서만 공개하는 더 많은 곡, 더 재미있는 영상이 많으니 감상해보자.


*Soccer Mommy 유튜브 https://youtube.com/c/SoccerMommy/videos


필자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2019)이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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