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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서비스까지 파고든 ‘학벌주의’에 기댄 나의 노동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플랫폼 보육노동을 하며



기자단은 7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진행하는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획을 통해 만났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 속에서 ‘일’하며 보고 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이야기할 때 배제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삭제되는 관점이 무엇인지 묻고 논의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의식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했다.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은 그렇게 탄생한 여덟 편의 기사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대에 만난 보육매칭 플랫폼


코로나 19가 대한민국을 뒤흔든 올해 초,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구인공고가 365일 올라와 있던 빵집도 피시방도 공고문을 슬그머니 내렸다. 시간은 많고 돈은 없던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전전했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자기가 하고 있는 시간제 보육노동 아르바이트를 추천해 주었다. 친구가 알려준 사이트 이름을 검색해 보니 “아이들과 두 시간 놀아주고 돈 벌기 좋은 아르바이트”, “비는 시간에 잠깐 일하고 알바비 벌자” 등의 홍보문구가 가득했다. 유동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 없이 회원가입을 하고 오리엔테이션을 신청했다.


시간제 보육노동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어린이들을 만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나의 노동에 대해 돌아보기로 했다.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촬영: 나랑)


그렇게 어설픈 보육노동자가 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어린이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조금 더 철이 들었다. 편의점과 빵집에 비해 높은 수입을 얻으며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중개 플랫폼은 나를 ‘고학벌 여대생 선생님’의 이미지로 소개했고, 그 이미지를 극대화해 이윤을 창출했다. 돈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만나고 싶은 어린이를 알게 해주고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위태위태한 상황에 나를 먹여 살려주는 플랫폼이 때로는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이 보육매칭 플랫폼이 나를 어떤 이미지로 홍보하는지, 그 홍보가 어떤 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여러가지 감정의 교차점에서 내가 서 있는 구조의 매커니즘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①어린이를 돌보는 데에는 학력만 있으면 된다?


내게는 열 살 차이 나는 동생이 있다. 부모가 맞벌이였기 때문에 동생의 어린 시절은 사실상 내가 전담했다.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겨 주고, 분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고.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내며 어린이는 결코 혼자서 자랄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어린이를 돌보는 데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어린이는 9세 남아였다.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고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는 아이는 내게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이거 별 거 아니네. 할 만한데?’란 생각을 하며 여러 공고에 지원했다.


고민이 생긴 것은 아마도 6세 어린이를 만난 직후였던 것 같다. 이론적 기반 없이 6세 어린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보육자가 내게 어린이를 전적으로 맡긴 채로 외출을 해서, 내가 밥도 챙겨주고 용변 후처리도 해줘야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생이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경험도 지식도 없는 사람이면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일거리를 구하는 플랫폼에서는 보육노동자들을 간단한 절차로 뽑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거기에서 일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학 학력만 있으면 되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아주 간단한 면접과 아주 간소한 교육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은 ‘선생님’ 자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보육자에게 그 ‘선생님’들은 마치 전문교사처럼 홍보되었다. 교육을 받을 때에는 어린이가 갑자기 바지에 설사를 할 수도 있다거나 어린이가 자기의 성기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실전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다. 어린이가 자라는 과정을 가장 옆에서 지켜본 나조차도 극도로 당황했는데, 어떠한 경험도 없이 대학교 학력만으로 이 일을 할 자격을 받은 사람들이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그게 너무나 궁금했다.



②고임금 불안정 플랫폼노동자


시간 당 1만5천 원 정도의 수업료를 받으며 일을 했다.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어린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부를 조금 봐주고, 색종이 접기를 함께 해주고,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금세 수업이 끝나 있었다. 편의점에서 노동을 했던 경험을 되살려 보았다. 술에 취해 난동을 벌이는 취객을 상대하거나 ‘진상’ 손님들과 말싸움을 했던 지난 날에 비하면 내가 하는 보육노동은 너무나 쉬운 노동이었다. 심지어 시급은 두 배 정도 되었으니 이토록 좋은 노동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린이가 갑작스레 유치원에 등원하게 되거나 기존의 목표(예: 한글 떼기)를 달성하게 되면 나는 더이상 그 집에 갈 수 없었다. 내가 하는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실업급여도 해고수당도 없었다. 나는 쉽게 버려지는 노동자였다. 공백이 생긴 수업시간을 메꾸기 위해 공고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뿐이었다. 듣자하니 어떤 직장에서는 원하던 바를 이루면 성과급이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몇 달을 노력한 결과로 아이가 한글을 읽고 쓰게 되었더니 내게는 성과급이 아니라 해고 통고가 나왔다.


플랫폼은 보육자와 선생님을 연결해주고 선생님을 대변해준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용자인 보육자가 심경의 변화로 수업 예정일 하루 전에 수업을 취소해도 아무 페널티가 없다. 그러나 선생님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수업 예정일 하루 전에 수업을 취소하면 플랫폼은 선생님에게 경고를 한다. 수업 전 취소가 반복되면 플랫폼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경고다. 지원 후 취소가 불가능하므로 수업에 지원하면 해당 시간을 비워놓아야 하는 선생님의 위치와 수업 예정일 하루 전까지 선생님을 선택하지 않다가 돌연 수업을 취소해버리는 보육자의 위치는 너무도 다르다. 플랫폼은 선생님을 보호하고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말에 불과할 뿐이다.


③‘학벌 프리미엄’이 붙은 보육 서비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은 다른 보육노동 플랫폼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고학벌 대학생’들이 제공하는 보육노동이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지인은 나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나보다 시급을 5천원 더 받고 있다. 고학벌 선생님이 받는 높은 시급에 플랫폼의 수수료까지 더해지면 보육자들이 지불하는 수업료는 2시간 기준 최대 5만 원에 달한다. 국가지원 아이돌보미나 타 플랫폼에 비해 훨씬 높이 책정된 가격은 보육자로 하여금 ‘우리 아이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부유한 보육자는 아이에게 ‘비싼’ 보육을 제공함으로써 자신과 아이의 계급성을 확고하게 인지할 것이다.


 미취학 어린이의 보육 서비스에도 학벌 프리미엄을 붙이는 사회다. (촬영: 나랑)


④모성 신화에 기댄 ‘여대생 선생님’ 이미지


나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는 남성 지인은 수업이 잘 매칭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생 교육봉사를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었으며 나보다 사회적 평가가 높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학벌이 선택의 기준이라면, 그가 선택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경험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어린이를 만나러 간 곳에서 나는 종종 여성, 특히 어린 남동생을 둔 누나의 이미지 속에 갇히곤 했다. 간혹 여자 어린이들의 경우 성폭력에 관한 문제로 여자 선생님을 선택한다는 보육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보육자는 나를 ‘친절한-고학벌-여대생 선생님’ 고정관념에 투영하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여성에게 기대되는 순결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이용해 일을 쉽게 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말이다. 


(이 기사는 일부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보육 서비스까지 파고든 ‘학벌주의’에 기댄 나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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