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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 지키기 운동 왜 필요한가…토종씨앗은 “오래된 미래”
 

한영미(42) 횡성여성농업인센터 대표 ©일다

강원도 횡성의 여성농민 한영미씨 인터뷰
 
전국 곳곳에서 여성농민들이 최근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시작했다. 토종씨앗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먹거리 안전을 지키는 기반이자, 종묘회사들에 의해 거의 지배당한 우리 농업이 그 족쇄를 끊고 기사회생할 수 있는 미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귀한 운동의 싹을 틔운 장본인은 한영미 횡성여성농업인센터 대표. 농부이자 여성농민운동가인 한영미(42)씨는 인터뷰를 통해 토종씨앗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산자와 소비자가 왜 이 운동에 함께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한국의 농업현실과 패러다임, 그리고 소중한 미래의 가치와 철학이 담겨있다.
 
“더 늦기 전에 할머니들의 지혜를 전수받아야 해요”
 
-횡성 여성농민들이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2005년에 시작했어요. GMO반대생명운동연대라고, 소비자 쪽에서 GMO(유전자변형식품)에 반대하는 단체가 있는데요. GMO반대의 대안이 토종씨앗에 있다고 하여, 우리에게 심어줄 것을 제안했어요. 친환경농업 하시는 분, 여성농민들, 텃밭에 한번 지어보겠다 하는 분들 20분 정도 모여서 토종종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각지에서 받아온 토종씨앗을 나누어드렸어요. 수확한 결과는 참담했죠. 거의 안 가져오셨거든요.
 
유일하게 (채종하여) 가져오신 분들은 혼자 농사짓는 나이든 여성농민들이었죠. 젊은 사람도, 남자도 아닌 할머니들뿐이었어요. 그분들은 100% 증식을 해서 주셨어요. 이분들에게 지혜를 빨리 전수받아야 한다, 할머니 세대가 끝나면 채종하는 것도 이제 끝이구나, 우리가 종자주권을 상실했다고 하는데, 더 늦기 전에 빨리 씨앗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마음이 급해졌죠.
 
할머니들에게 받은 씨앗을 이듬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중앙위원회 때 나눠드렸어요. 전여농 회원들 역시 시행착오를 겪었죠. 심는 걸 잊어버린 회원도 있고, 새가 알곡을 다 먹어버린 경우도 있고. 그런 어려움을 겪고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보자 하고, 2007년엔 전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토종종자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국제포럼도 열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방향이 잡혔어요. 우리 지역에 토종씨앗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실태조사도 벌였고, 점차 살이 붙어가고 있는 거지요.”
 
-GMO작물 반대와 ‘토종씨앗 지키기’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잖아요? 그 연관성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부근 지역의 농민에게서 받아 나눈 토종참외씨앗

“GMO가 우리나라에 식품가공원료로 들어와서 유통된 거잖아요. 콩이나 옥수수가 식품가공품에 거의 다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요. 소비자 쪽에선 식품원료 표시제를 강화하면서 ‘소비자의 알 권리’를 확산시키는 운동을 한다면, 생산자 쪽에선 GMO종자가 우리 땅에 심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나마 다행인 게 공식적으로는 GMO종자가 밭에 심어지진 않죠. 그런 점에서 일본도 우릴 부러워해요. 우리는 연구 개발하는 단계인데, 현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승인만 떨어지면 심겠단 사람도 많을 거예요. GMO는 한번 심어지고 나면 토양을 오염시키거든요. 자기가 심지 않더라도 옆의 것 때문에 종자가 오염되고, 그래서 GMO안전지대란 말도 생긴 겁니다. 안전지대를 두어서 서로 교배되지 않게끔 막는 제도도 생겨나고요.
 
그렇게 되기 전에(GMO종자가 승인되기 전에)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이미 우리가 종자주권을 상실한 상태라면 속수무책으로 주는 대로 심을 수밖에 없잖아요. 하지만 토종씨앗 찾아서 복원해내고 현장에서 심고 있으면 대체를 할 수 있으니까. 토종씨앗은 그런 의미에서 GMO에 대항하는 싸움꾼이 될 수 있는 거고 무기가 될 수 있는 거예요.”
 
GMO의 대안, 빼앗긴 종자주권 되찾는 일
 
-토종씨앗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 육종품종을 이용하고 있는데, 자가채종(씨앗을 받는 일)이 어려운 일인가요?
 

“잡곡은 수월한데 채소종류는 좀 어렵죠. 하지만 채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왜 못하게 되었냐 하면요. 육종한 품종들은 국가나 종묘회사에서 좋은 것들을 교배해서 농민에게 보급한 거예요. 수십 가지를 교배하는데 ‘잡종’이라고 하죠. 그런 종자는 올해는 수확량이 많고 모양도 좋지만, 다음에 씨를 받아 심으면 어떤 형질이 나올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 농민들이 채종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정부가 보급하는 것이나 종묘회사 것을 사서 쓸 수밖에 없는 거죠.
 
이제 모든 종자는 받아 쓰는 게 아니라 종묘회사에서 사서 심고, 기술센터에서 보급하는 걸 심는 거라는 인식이 되어버렸어요. 토종은 수확량이 낮고 관리하기 어렵고, 육성품종을 선호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육성품종은 거름이나 비료를 많이 쳐야만 수확이 많이 되요. 기후적응을 못해 병충해가 깔리니까 농약도 많이 쳐야 되죠. 씨앗을 사다 심기 시작하면서 농민들이 빚더미에 앉게 되었어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자가채종해서 그 씨앗으로 농사 지어야 합니다.
 
지금은 거의 토종종자를 잃어버린 거라서, 찾아가는 중이에요. 60,70년대 보릿고개 거치면서 박정희 정권 때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 것을 다 놓쳐버렸잖아요. 통일벼 심으라고, 재래종 심는 걸 공무원들이 와서 못 심게 막고. 우리 생산방식을 바꿔놓은 게 불과 30년 전 일이에요. 세계적으로 이렇게 급격하게 변한 곳도 없다 하는데, 앞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 호흡으로 하고 있어요.”
 
-과연 토종씨앗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건지,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토종종자 지키기 운동을 설명하는 한영미씨

“사실 토종 이야기하면 싫어하는 분들도 있어요. 토종이라는 개념이 원산지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콩 이외엔 별로 없다는 거예요. 여성농민들 중에서도 토종의 기준이 10년이냐, 30년이냐 묻는 분들도 계시고요.

우리가 정의한 것은 ‘토착화된 종자’예요. 설사 정부가 보급한 육종된 품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농민들이 (씨앗을 갈무리해서) 계속 심으면 첫해 수확량에 비해 두 번째는 확 떨어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심어온 분들이 있어요. 그렇게 몇 년 지나고 나면 안정적인 수확량이 나오는 시기가 있어요. ‘형질이 고착화된다’는 표현을 쓰거든요. 그럴 때 토종은 자가채종이 가능한, 즉 재생산이 가능한 토착화된 종자라는 개념이고요. 계속 심어나가야 한다고 하는 거죠.”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지으면 농약이나 비료를 덜 쓰게 되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개량종은 물과 농약, 비료에 반응을 해요. 빨리 자라니까 물도 많이 먹고 비료도 많이 먹고 농약도 많이 치죠. 토종은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아요. 여성농민들은 누가 잡곡농사를 농약 치고 하냐고, 그거야 말로 무농약이라고 말해요. 또 비 안 오고 땅이 농사 못 짓게 되었을 때 잡곡농사 짓는다고 하죠. 그만큼 우리 잡곡은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남고 가뭄에도 견딜 수 있는 품종이라는 얘기에요. 투입재도 덜 들어가고요.”
 
씨앗은 사고 파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
 
-육종된 씨앗이나 묘종은 사서 쓰지만,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에서는 씨앗을 팔지 않고 나누고 있는데요. 거기에 원칙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할머니들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씨앗은 나누는 거다’라고, 돈 주고 사고 파는 거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세요. 한 되 두 되 장날에 가지고 나오신 분들에게는 돈 주고 사는 게 맞지만, 동네에 들어가서 나눠주세요~ 하면 돈으로 계산되는 게 아니라 종자는 서로 좋은 걸 교류하는 것이라고 하세요. 그건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토종종자네트워크에서 2007년부터 강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토종씨드림’이라는 활동을 하는데, 회원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씨앗은 나누는 것이라고. 택배 비용 부담이 되지 않도록 회신봉투에 ‘무슨 씨앗 가지고 싶어요’ 하고 보내면, 반송봉투에 씨를 넣어서 주는 식으로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심은 토종씨앗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운동의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전여농이 전국 각지의 농민들에게서 모은 다양한 토종콩

“올해 전여농에서 토종종자 채종포(씨앗을 받기 위해 조성한 밭)를 기본 300평 기준으로, 그곳이 거점이 되어 교육사업도 하고 전시도 하고 증식도 하는 장으로 운영사업을 하고 있어요. 작년에 토종옥수수에 이어 토종콩까지 500평 정도를 심도록 조직하고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1농가 1품종 토종 갖기’라고 우리가 표현하는데요. 여성농민이 한 품종 이상 지켜나간다는 의미입니다.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의 당면한 문제는, 기존에 있던 농사관행을 전환해야지만 가능한 거잖아요. 농민들이 쉽게 전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거에요. 지금은 운동차원에서 기존의 방식과 병행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교육을 통해 계속 심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안착화되어서 내 생활이 되게끔 하는 데에는 시일이 걸릴 거라고 생각해요.”
 
-공급이 있으면 그만큼 수요가 있어야 하고, 농법을 바꾸어 수확량이 떨어졌을 경우엔 보조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어떤 대책이 있나요?
 
“그 부분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아무리 의미가 좋아도 돈이 되지 않으면 삶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할 수가 없죠. 그래서 판로를 많이 모색해봤는데요. 작년에 토종옥수수가 소비자 쪽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그 힘으로 해마다 한 품종씩 늘려가자고, 소비자들과 함께 토종씨앗 농사를 짓는 ‘국민운동’으로 전개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여성농민들도 힘이 나서 농사지을 수 있어요.
 
10년 이상 되면, 여성농민이 생산한 토종씨앗 10개 품종이상은 어디에 내놔도 자타가 공인하는 안전한 농산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비자와 함께 농사짓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준비된 생산자와 준비된 소비자가 만나서 서로가 서로를 살릴 수 있도록 연결 망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제가 꿈을 꾸고, 꼭 함께했으면 싶은 것이요. 아이들이 생물다양성에 대해서 마음 속으로, 머리 속으로 다 알게끔 해주고 싶어요. 광활한 대지가 근사하게 보이잖아요? 사진으로 찍어도 멋있고. 그런 걸 멋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어른들한테 그 안에 다양한 것들이 심겨지고, 다양해야만 우리가 유지된다는 것, 인류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발 딛고 살 수 있는 게 얘네들 때문이다, 농민들 때문이다, 종자 때문이다, 땅속에 있는 미생물 때문이다, 이런 것을 알게끔 하는 교육현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도시가 되었든 농촌이 되었든지 간에요.” 
조이여울 기자 일다는 어떤 곳?  [관련] 대안사회의 씨앗 뿌리는 여성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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