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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핏”

[머리 짧은 여자 조재] 편의점 식사와 닭꼬치



찐 고구마 3천원어치를 샀다. 주먹보다 작은 밤고구마 여섯 개를 봉지에 담아 달랑달랑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유독 배고픈 아침이었다. 카페 오픈 전, 황급히 고구마를 하나 까먹고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니 이내 고구마를 산 게 후회됐다. 생활비가 쪼들려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부터 3천원을 쓴 게 괜히 아깝다.

 

처음부터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한 건 아니었다. 일터 주변에서 밥을 먹으려면 기본 7천원은 필요했다. 매일 그만큼 식비를 지불하기엔 부담스러웠고, 그나마 저렴한 김밥○○ 같은 곳에서 5천원짜리 밥을 먹었다. 그마저도 부담스러워 3천원짜리 김밥을 사먹기도 했다. 결국 줄이고 줄여 편의점까지 온 것이다. 편의점에서는 2천원이 안 되는 돈으로 삼각김밥과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속이 조금 더부룩하긴 해도 꽤 든든한 한 끼 식사다.

 

카페에서 일하면 하루에 한 잔씩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카페 근무 최고의 메리트인 셈이다. 겨우 커피 한 잔이지만 무려 커피 한 잔이었다. 2천원으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2천원짜리 커피라니. 보통 커피를 마시는 건 카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지만 이 커피는 커피를 위한 커피다.

 

이런 나의 상황이 딱히 슬픈 건 아니다. 다만 이것저것 고려해가며 고민하는 게 성가시고 피곤할 뿐이다. 나 스스로를 돌보고 먹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엔 에너지가, 돈이 부족하다. 임금노동은 나를 돌보는 일을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지만, 어느 순간 임금노동을 위해 나를 돌봐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불균형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내가 더 ‘노오력’할 필요가 있는 걸까. 애초에 ‘노오력’으로 해결될 문제이긴 한 건가.

 

▶ 포장마차 앞에서  ⓒ머리 짧은 여자, 조재

 

퇴근길 버스정류장. 이곳엔 길거리 포장마차가 빽빽이 들어서있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꼭 닭꼬치를 사먹는다. 일종의 보상심리다. 내가 하루종일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닭꼬치 하나를 못 사먹어? 돈 아끼겠다고 점심을 그렇게 때우고 퇴근길에 맨날 닭꼬치를 사먹다니 웃기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튜핏”(하지 않아도 될 소비를 할 때 쓰는 말)이다. 그래도 먹는다. 일하기 위해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만 먹고 살기엔 하루가 너무 팍팍하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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