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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어도 우린 “아름다운 인생”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DRD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아름다운 인생 (Disability Research and Capacity Development Center)

 

2005년 12월에 창립된 <아름다운 인생>(DRD)은 장애인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활동하는 호치민시의 비영리단체로, 베트남과학기술연합회(VUSTA)에 소속돼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장학사업, 취업과 창업 지원, 청년장애인 지원, 장애인 네트워크 구축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병원, 학교, 은행, 버스회사 등 공공기관에 장애인 인권 문제를 호소하는 사회운동을 펼치며, 베트남 장애인 인권운동을 해나갈 활동가 양성에도 힘쓴다.

 

▲  휠체어 장애인 버스 탑승 체험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인생>  © 아맙 
 

휠체어를 보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버스

 

부릉, 버스가 또 지나갔다. 휠체어에 앉은 찐이 손을 번쩍 들었지만 이번에도 버스는 매정하게 정류장을 그대로 지나쳤다. 뙤약볕 아래 버스를 기다린 지 반 시각, 다시 버스가 멈췄다. 휠체어를 보고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 운전 기사. 사람이 많아 탈 수 없다며 문을 닫는다. 버스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멀어져 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류장까지 내려온 버스 차장과 승객의 도움을 받아 찐은 드디어 버스에 올랐다. 매연과 먼지, 땀으로 범벅된 찐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아름다운 인생>의 장애인 버스 타기 체험이 힘겹게 마무리되었다.

 

센터로 돌아온 찐은 부센터장 로안과 <뚜오이쩨> 신문에 보낼 체험기 내용을 이야기했다. 신문에 기사가 실리면 버스 타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해질까. 아니다,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찐과 로안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다음 번 아이템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다음에는 버스 터미널로 가볼까? 아니면 공원, 극장? 에라 모르겠다, 큰 맘 먹고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청사로 돌격? 찐과 로안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름다운 인생>의 조용한 행진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장애를 갖게 된 소녀, 카운슬러가 되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한국 신문에서 <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 <아름다운 인생>을 방문한 내용이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영문 이름의 약자인 DRD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르우 티 안 로안(아름다운 인생 부센터장. 이하 ‘로안’): 네, 원래 영문 이름을 먼저 지었습니다. 미국 포드 재단의 지원을 받아 센터를 열었거든요. 영문명 약자에 맞춰서 베트남 이름을 고민하다가 ‘아름다운 인생’(Doi Rat Dep)이라고 짓게 되었지요.
 

▲ <아름다운 인생> 부센터장,  르우 티 안 로안.    © 아맙 
  

수정: 어떤 계기로 <아름다운 인생>에서 일을 하게 되었나요?

 

로안: 저는 어린 시절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되었어요. 친구들로부터 놀림도 많이 당하고 직장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죠. 그러던 중 호치민시 8군의 한 병원의 상담치료실에서 카운슬러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맡은 일은 병원에서 사고 직후 장애인이 된 환자들을 상담하는 일이었어요.

 

선천적인 장애와 달리 사고나 병으로 후천적인 장애를 갖게 되면 정신적 충격이 매우 심합니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낙담과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가 우울증에 빠지고 심하면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죠. 저는 그들이 좌절을 이겨내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안게 된 저의 경험담을 그들과 나누기도 했지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5년부터 <아름다운 인생>의 창립위원으로 함께 일을 하게 되었지요. 2010년부터 2년간은 미국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밟고 돌아와 다시 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름다운 인생>의 잡 코치(Job coach)

 

수정: 장애인과 관련하여 각 단체마다 벌이는 사업들이 아주 다양한데요, <아름다운 인생>이 중점을 두고 진행하는 사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로안: 2005년 창립 당시의 베트남 사회는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 동정하고 무조건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보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어요. 장애인의 가족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장애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었습니다. 장애인 문제와 관련한 토론회나 세미나를 열었고, 언론을 통해 이를 알려 대중들이 장애인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장애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그 다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아일랜드 외교부 개발협력부(Irish Aid)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들이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익히고, 인터뷰 방법, 자기 소개서 쓰기, 취업정보를 얻는 방법 등을 알려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죠. 모두 877명이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그 중 217명이 취업에 성공했어요.

 

최근에는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창업 준비를 하는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영, 회계, 마케팅, 디자인 등 창업에 필요한 기본 요건들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하고, 장애인들이 팀을 꾸려 창업 신청서를 제출하면 센터에서 이를 심사하여 지원하죠.

 

▲  청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취업, 창업 교육 등 다양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아맙 
 

수정: <아름다운 인생>은 단순한 일자리 소개를 하거나 취업 훈련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취업에 성공한 후 일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로안: 장애인들은 출퇴근 문제부터 직장 내에서의 소통 문제, 이동 문제 등 다양한 장벽에 직면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그러한 어려움을 상사나 회사 측에 말하지 못하고 계속 불편을 참고 견디며 일을 하고 있죠. <아름다운 인생>은 취업 후 3개월 동안 장애인의 ‘잡 코치’(Job coach)를 두어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고 적응 상태를 파악한 후 장애인들이 개별적으로 말하기 힘든 요구들을 회사에 대신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저희에게 장애인 노동자를 위해 어떠한 지원을 하면 좋겠는지 자문을 구할 때도 있어요. 휠체어를 탄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라면 화장실, 복도, 책상 등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장애인에게 적합한 노동 강도가 무엇인지, 비장애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불편을 감수하며 회사생활을 하는지 등을 사업주에게 상세히 알려 줍니다.

 

장애인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려내는 일

 

수정: 일자리 문제와 더불어 장애인에게는 자립이 정말 중요한 과제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에서는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어떠한 지원을 하고 있나요?

 

로안: 일본재단(Nippon Foundatioin)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일본 최초의 자립생활센터인 휴먼케어협회(Human Care Association)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아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입니다. 장애인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가 필요한 것을 표현하고 요청하는 방법을 찾고, 자신의 삶을 개선할 의지를 갖도록 돕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상담 프로그램으로, 장애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다른 장애인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자립에 필요한 심리적, 정서적 발판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이죠.

 

세 번째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리는 프로그램입니다.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예를 들면 학교나 병원, 공공기관에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복도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서 등을 제출하는 일을 합니다. 당장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장애인의 존재와 요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죠.

 

그리고 일정한 주제를 갖고 장애인의 사회 진입을 막는 여러 가지 장벽들을 체험해보고 이를 공론화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실제로 버스 탑승 체험을 해보고 승차 거부나 버스 탑승의 어려움, 안전 문제 등을 알리는 글을 신문사에 투고하는 방식입니다. 버스 회사에는 개선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고요. 지난 5월에는 <아름다운 인생>에서 진행한 휠체어 장애인 버스 체험기가 베트남의 대표적인 일간지 <뚜오이쩨>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수정: 장애인들의 그러한 요구에 각 기관들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한데요.

 

로안: 장애인 대학생들이 각 학교를 방문하여 장애인 학생들에게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개선이 필요한 점이 무엇인지 정리하여 의견서를 제출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이것을 ‘대학 투어’라고 불러요(웃음). 당장 학교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더라도 비장애인 학생들이 장애인 학생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학교 측의 반응은 꽤 호의적이에요.

 

학교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관공서는 비교적 열린 태도로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죠. 하지만 학교와 같은 곳은 자체적으로 예산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학교의 변화를 위해 어떻게 재정 지원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공중화장실에 장애인 전용 칸을 설치해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고 있는데요, 호치민시 인민위원회나 후원자들에게 직접 의견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부릉부릉, 장애인 전용 오토바이 택시!

 

수정: 한국에서 지원을 받아 장애인을 위한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로안: 버스 정류장에 장애인이 서 있으면 버스 기사들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요. 버스가 정차하더라도 탑승이 쉽지 않고요. 그렇다고 택시를 이용하기에는 교통비 부담이 너무 큽니다. 장애인들도 지각을 밥 먹듯이 하게 되니 학교와 직장에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죠.  

 

▲  <아름다운 인생>의  장애인 전용 오토바이 택시 거리 홍보 장면  © 아맙 
  

장애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교통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도입하게 된 사업이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입니다. 한국의 코이카(KOICA)로부터 지원을 받아 2013년 7월부터 사업을 시작했어요. 일반 오토바이를 삼륜 오토바이로 개조해 뒷좌석을 넓혀 안정성을 높이고 휠체어 거치대를 설치했어요.

 

현재 오토바이 택시는 시범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고 서비스는 무료입니다. 오토바이 택시에 대한 장애인들의 반응이 좋은데 택시가 8대밖에 되지 않아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입니다. 예산 문제가 관건인데 코이카도 오토바이 택시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앞으로 이 사업이 더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정: 청년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나요?

 

로안: 청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소프트 스킬 강의, 리더십 고양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는데요, 장학 지원 혜택을 받은 학생은 청년 장애인 커뮤니티에서 영어, 수학, 컴퓨터를 가르치는 과외 수업 등을 하면서 다른 장애인 학생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센터에 행사가 있을 때는 스텝이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하고요.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청년 장애인의 학업이나 취업 증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장차 베트남의 장애인 인권 운동의 지도자나 활동가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멘토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학업, 취업, 진로 등과 관련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멘토를 두고 있어요. 영어나 컴퓨터를 배우고 싶을 경우 센터에 계획서를 제출하면 그와 관련해 멘토를 지원해주는 방식이죠.

 

일방적인 지원은 하지 않습니다. 장애인 스스로가 고민하고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것이 원칙이죠. 그리고 한 번의 지원이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수 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어요. <아름다운 인생>의 사업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느낄 때

 

수정: <아름다운 인생>에서 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 회원들이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나요.

 

로안: 문화회관은 장애인들의 공연, 예술 활동 그리고 놀이, 축제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센터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음악의 밤 행사를 열고 있어요. 이때 이벤트를 벌여서 축제를 열고 기업 관계자를 초대하는 등 후원자를 모으기도 하죠. 휠체어 댄싱 팀이 있어 공연을 하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장애인들에게 휠체어 댄스를 교육하기도 해요.

 

<아름다운 인생>에는 공연지원 팀을 두고 있는데요, 장애인이 공연 관련 계획서를 제출하면 그를 도와 하나의 공연 팀을 꾸려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죠. 

 

▲  <아름다운 인생> 문화회관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정기적으로 ‘음악의 밤’ 행사를 연다.   ©아맙  

 

수정: <아름다운 인생>의 모든 이야기에는 ‘사람’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인생>과 함께하면서 이 일이 참 ‘아름답다’라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로안: 여행 가이드가 꿈이었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가 있었어요. 장애인이 되어 깊은 좌절감에 빠진 그 친구는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지속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하다 급기야는 자살을 기도했죠. 어머니가 신문에서 <아름다운 인생>의 광고를 보고 연락을 주었어요.

 

처음에는 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고집을 부리며 마음의 빗장을 꽁꽁 닫아걸었지요. 그래도 상담 프로그램에는 빠지지 않았는데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하고 물리치료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재활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금 그 친구는 과거의 저처럼 병원에서 카운슬러로 일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제게 생일축하 카드도 보내주었죠. (웃음)

 

<아름다운 인생>의 활동가 중에도 비슷한 친구가 있죠. 17살에 소아마비로 하반신 장애인이 된 후 모든 것을 포기했던 친구인데, 역경을 딛고 공부해 일자리를 얻었어요. 또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애 끝에 결혼을 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에서 독립생활 프로젝트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죠.

 

절망의 늪에 빠졌던 사람이 다시금 희망을 찾아 올라 살아가는 매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이 일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곧 코이카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그곳에서도 저마다의 ‘아름다운 인생’을 걷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공정여행 팀장)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연락처: 070-7554-5670 (베트남 사무소)

<아맙> 후원 계좌: 신한은행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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