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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싸움 아닌 안전의 문제이기 때문에”
간접고용에 맞선 KTX 여승무원, 대법원 패소 여파 

 

 

지난 2월 26일,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인 코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코레일과 KTX 여승무원들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던 원심과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한 것이다.

 

공공부문 외주화, 비정규화에 맞선 상징적 투쟁

 

여승무원들은 KTX가 개통될 당시인 2004년, ‘2년이 지나면 정규직 시켜주겠다, 준공무원 대우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코레일 측이 고객서비스 업무를 위탁한 홍익회와 비정규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홍익회는 같은 해 12월 승무원들의 고용 계약을 한국철도유통에 인계했다.

 

그러나 2년후 코레일은 고객서비스 업무를 다시 한국철도유통에서 계열사인 KTX관광레저(현 코레일관광개발)로 넘기면서, 여승무원들을 KTX관광레저 직원으로 고용하겠다고 했다. 여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자신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며 직접 고용을 요구했고, 한국철도유통은 승무원 280여명을 무더기 해고했다.

 

여승무원들은 열차 내에서 고객 서비스뿐 아니라 승객 ‘안전’ 업무를 해왔으며, 일 전반에 걸쳐 열차팀장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맺고 있고, 코레일 측의 관리를 받아왔기 때문에, 코레일이 자신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코레일에 ‘직접 고용’을 요구한 KTX 여승무원들의 싸움은 당시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업무를 ‘주변적인 업무’로 치부하고 외주화 등 간접고용의 형태를 확산시키려는 데 맞선 상징적인 투쟁이었다. 여승무원들은 4년 넘게 장기 농성을 벌였고, 시민사회 각계에서 광범위한 연대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비제조업 분야나 공공부문에서 간접고용이나 외주화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또한 KTX 여승무원들의 업무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안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라는 점에서 ‘안전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  3월 7일 서울시청 동편 광장에서 열린 '차별과 폭력 없는 좋은 일자리를 위한 107주년 세계 여성의 날 맞이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발언하는 KTX 여승무원들.  © 일다 
 

열차팀장 혼자 9백명의 승객 안전을 책임진다?

 

3월 11일, 대한불교조계종 템플스테이 정보관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노동위원회와 기독교교회협의회, 원불교인권위원회 주최로 <KTX 여승무원 대법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김영준 철도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열차팀장과 여승무원이 각각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 대법원의 판결은 “사실과도 다르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열차팀장은 안전 업무를, 승무원은 승객 응대 업무를 각각 독자적 수행한 것으로 보이며, 여승무원이 화재진압 및 승객대피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했다. 대법원이 열차팀장의 독자적인 업무라고 본 것은 ‘출입문 개폐, 신호상태 확인, 제어안전장치 취급’ 등이다.

 

그러나 KTX를 타 본 사람들 중에는 출입문을 개폐할 때 열차팀장이 여승무원과 수신호를 주고받는 장면을 목격한 이가 있을 것이다. 김영준 국장은 “열차팀장 혼자서는 승객들의 승하차 여부,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KTX는 열차 길이 4백미터에 좌석이 929개이며, ‘자유석’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제한 없이 입석을 발행한다. KTX 한 대당 열차팀장은 한 명뿐이기 때문에 실제로 서울-부산 간 KTX를 운행할 때 열차팀장은 왕복 1회를 순회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승객에게 안전과 관련한 일이 발생하면 열차팀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란 말인가? 승객들이 안전과 관련된 일은 열차팀장에게, 서비스 사항은 여승무원에게 각각 구분해서 요구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편법 외주화를 합법으로 인정해준 꼴

 

김홍영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업무가 구분된다는 이유로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도, 파견 관계도 부정되어 노동자 보호가 불가능해지는 게 이번 판결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대법원은 열차팀장과 여승무원의 하나하나의 구체적 업무를 따지기보다는 코레일의 사업 계획에 따른 업무로 포괄적으로 판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불법 파견 판정을 피해가기 위해 승무 업무를 쪼개기 시작했다. 안전 업무 중 이건 열차팀장의 업무, 이건 여승무원의 업무, 이런 식으로 업무를 나누고 후자의 업무를 비핵심 업무라고 규정하여 외주화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를 나누고,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하는 방식의 구조 조정은 이미 공공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다. 코레일 역시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한다면서 처음에는 식당과 차량 청소를, 이후에는 선로전환 유지보수 업무, 차량 중정비 등 안전과 관련된 업무도 외주화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업무 구분’과 이를 통한 외주화 등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해 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매뉴얼을 어기고’ 안전 업무를 하는 승무원들

 

▲  KTX 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   © 일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로 KTX에 탄 승객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철도공사는 ‘불법 파견’ 판정을 피해가기 위해 안전 매뉴얼에서 여승무원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축소해놓았다. 열차에서 불이 나도 여승무원은 소화기를 사용할 수 없으며, 비상시 구급약도 열차팀장에게 받아와야 하는 실정이다.

 

또한 신규 승무원들은 소화기 사용법, 비상 사다리 설치 방법 등 기초적인 내용의 안전교육 조차 받지 않고 있다. ‘각각 독립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고 내세워 불법 파견 판정을 피해가기 위해, 열차팀장과 여승무원이 비상 대비 훈련도 함께 실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승객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13년 12월, 철도노조 코레일관광개발지부가 KTX 승무원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92명 중 77%가 ‘지난 1년간 단 한 차례도 비상 대응방법 교육을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대부분인 95%가 ‘신규 승무원들에 대한 안전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비상 상황에 대한 대처가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승무원들이 안전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2014년 10월, 운행 중인 KTX 화장실에서 불이 나자 여승무원은 ‘매뉴얼에 따르지 않고’ 직접 나서서 불을 껐다. 코레일과 코레일관광개발은 여승무원이 매뉴얼을 어긴 것을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해당 승무원을 포상했다.

 

김홍영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승객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실 책임이 있는 코레일이 안전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자신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과의 거래로 수익은 올리면서 고객과의 접촉은 자회사에 떠 넘겨 노동법상의 책임은 모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간접고용 확대로 노동시장 양극화 가속 우려

 

이번 대법원 판결은 KTX 승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노동 시장 양극화’와 맞물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특히 ‘비제조업 분야, 공공부문 등에서 간접 고용이 확대되는 것을 법원이 열어준 모양새’라는 비판이 거세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애초에 철도공사가 KTX 승무 업무를 외주화한 것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는 여승무원들의 노동 조건을 악화시켰다.

 

간접 고용 승무원들의 노동 조건이 악화되면서 매년 승무원 이직률이 20%에 달하고 있다. 또 간접 고용 KTX 승무원의 경우, 노동 시간이 직접 고용 승무원(열차팀장 등)보다 20%가 길다. 게다가 과도한 복장 단속이나 무릎을 꿇고 서비스해야 하는 등 근무 환경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김영준 철도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제조업의 고용 창출 능력이 축소되고, 일자리 질이 나쁜 민간 영세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공부문에서마저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고 기존의 일자리조차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나쁜 일자리로 교체되고 있다”고 밝혔다.

 

“철도에만 간접 고용 노동자가 4천5백명에 달한다. 직접 고용 노동자들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도, 간접 고용 노동자의 경우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라서 시간외 근무를 20시간씩 해도 월급이 130만원에 그친다.”

 

김혜진 활동가는 “ILO(국제노동기구)가 필라델피아 선언(1994)에서 간접 고용을 엄격하게 금지한 이유는 노동자를 노예 상태로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정리 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는 것처럼 간접 고용은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하는데, 대법원이 간접 고용 확대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끝까지 이 싸움을 놓을 수 없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은 “직장으로 돌아가고자 한 노력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지만 아직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승무원의 문제가 철도공사의 외주화, 공공서비스 부문의 파견직 확산과도 연결되어 있는 만큼 다시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김영선 조합원은 “20대를 다 바쳐서 10년을 싸워왔는데 이 모든 게 다 무너져서 사회에 대한 불신감이 커졌다”고 말하면서도, “끝까지 이 싸움을 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로, 끝까지 남아 소송을 제기했던 34명의 여승무원들은 그동안 받았던 임금을 다시 반납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2008년, 법원은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확정판결 때까지 코레일 측에 매달 180만원의 급여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2012년 사측이 임금 지급을 중단할 때까지, 4년간 승무원들이 받은 임금은 고스란히 빚이 되었다. 거기에 소송 비용까지 더해져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1억 원에 달한다.

 

KTX 승무원들은 앞으로 투쟁하고 있는 간접 고용 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이며, 향후 1인 시위와 촛불집회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나랑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elecs.tistory.com BlogIcon Justin T. 안녕하세요. 작성하신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내용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어 바로잡고자 합니다.
    현재 한국철도공사의 영어 명칭이 코레일이며 현재도 회사명은 한국철도공사입니다.
    즉, (구 한국철도공사)라는 표기는 잘못되었음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2015.03.19 11:4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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