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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푸른들의 사진 에세이] 파꽃

 

입하(立夏)가 지났으니 아직 밭에 남아있는, 농민 속도 모르는 대파도 꽃을 금세 터트릴 것이다.

 

따뜻했던 지난 겨울을 보낸 채소들은 대부분 풍작이었다. 때문에 가격을 내려도 좀처럼 팔리지 않던 그것들은 간간이 팔리거나, 보다 못한 농민들에 의해 뽑히지도 못하고 흙과 함께 갈아졌다. 그리고 팔리지도 못하고 갈리지도 못한 것들은 밭에서 꽃을 피운다.

 

▲  '농민 속도 모르고'    © [박푸른들의 사진 에세이] 파꽃 
 

평당 12kg가 수확되어 한 관인 4kg에 6천500원~8천원에 팔릴 거라는 계산에 심겨진 어느 농민의 6백평 유기농 대파는 십분의 일도 채 팔리지 못했다. 대파를 팔아 밀린 농자재 비용과 품삯도 주고, 아이들도 키우고, 유기농업운동도 해야 하는데 날이 풀리고 꽃이 피니 팔릴 대파들이 줄어들어 마음이 급하다.

 

계약재배를 했다는 소비자단체가 마치 가격만 계약한 것 같이 드문드문 주문을 하면 농민들은 꽃이 피지 않은 대파를 뽑아 포장해 팔 뿐이다. 농민은 이런 게 무슨 계약재배냐고, 공허하게 한탄한다. 그러다가 꽃 핀 게 많아져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싶을 때 결국 밭을 갈아엎는다.

 

농사는 풍작이든 흉작이든 쉽게 웃기 힘들다. ▣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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