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22. 거리 예술이 꽃피는 도시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 님이 프랑스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편지입니다.  www.ildaro.com 
 
끌뢰네 마을, 밀란의 사진을 보며 걷는 길
 
내가 살고 있는 끌뢰네 마을 거리에는 로베르 밀란(Robert Milin)이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이 커다란 게시판에 인쇄되어 설치돼 있다. 

▲  끌뢰네 마을에 있는 로베르 밀란의 사진작품 <리디의 창문>   © 정인진 
 
‘끌뢰네: 그의 사람들’(Cleunay: ses gens)이라는 제목의 연작이 ‘끌뢰네 길’(Boulevard de Cleunay)과 ‘게리내 길’(Boulevard de la Guerinais), 그리고 ‘위젠느 포티에 길’(Rue Eugene Pottier)에 걸쳐 전시되어 있다. 시작과 끝 지점, 양 옆으로 이 연작의 제목이 인쇄된 게시판이 두 개 세워져 있고, 그 사이에 6개의 이미지가 담긴 이 프로젝트는 4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우리 집은 마침 ‘끌로네 길’에 위치해 있어서 늘 이 작품들을 보면서 다닌다. 다른 두 길 또한 아삐네 호수를 오갈 때나 장을 보러 슈퍼를 갈 때 지나는 길이라, 이 작품들을 자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세피아톤으로 개성 있게 표현된 밀란의 사진들은 이 마을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든다.
 
내가 이 연작을 특히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는 작품의 소재 때문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끌뢰네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웃아주머니 같은 ‘오데트’(Odette)와 옆집 개구장이 소년일 것 같은 ‘쥘리앙’(Julien), 또 ‘베르나르와 이베트’(Bernard & Yvette)는 마을 어디서나 지나쳤을 만한 커플의 모습이다.
 
게다가 ‘리디의 창문’(La fenetre de Lydie)은 ‘혹시 우리 집 창인가’하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될 거고, ‘샤를르의 야채밭’(Le potager de Charles)에 그려져 있는 키 큰 떡갈나무는 마치 우리 집 앞에 있는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낯익고 친근하다.

▲ 사진작가 로베르 밀란의 작품 <오데트>    © 정인진 
 
서민들의 전통적인 단독주택들이 자리해 있는 그저 평범한 동네인 끌뢰네는 렌의 다른 곳처럼 농민들의 가옥과 야채밭들이 있던 곳이다. 끌뢰네는 옹기종기 단독주택들이 모여있는 기존에 존재해 있던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20세기에는 가장자리로 넓게 확장되었고, 그곳에 2~3층 규모의 낮은 아파트들과 병원, 양로원, 복지관과 같은 사회시설들이 건설되었다. 이렇게 확장된 구역의 길가에 밀란의 작품들이 설치되었다.
 
밀란은 확장된 지역과 기존 지역간의 조화로운 결합을 소망하며, 자기 작품을 설치할 곳으로 옛날 지역과 새로운 지역이 중첩되어 있는 길들을 선택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이런 소망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데, 이곳 끌뢰네에는 기존에 살고 있던 백인들과 가톨릭신자들, 또 이주해온 다양한 유색인종들과 이슬람신자들이 아무 탈 없이 조화를 이루며 잘 섞여 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소망을 담아 거리에 그림을 세워놓은 작가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또 관광객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유적이나 구경거리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끌뢰네 마을에 밀란의 이 작품은 새로운 관심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끌뢰네 마을에 있는 이 작품은 한국의 우리 동네 안양에 전시된 것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안양에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서로 연결점도 없어 보이는 세계 유명작가의 작품들이 주변 경관은 아랑곳하지 않은 생뚱맞은 모습으로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이 작업은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국민의 세금이 새어나가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될 지경이다.
 
끌뢰네에 있는 밀란의 작품을 보며, 우리 동네 안양도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면서도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룬 작품들로 도시를 꾸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낙서화가’들의 창작활동을 인정해주는 곳
 
밀란의 작품과 성격은 다르지만, 끌뢰네 곳곳에는 개성 있고 멋진 거리예술 작품들이 많다. 물론, 이 그림들은 게시판에 전시되어 있지 않다. 그저 공장이나 낡은 건물의 시멘트 벽이나 공공시설 담벼락에 그려진 젊은 낙서화가(graphiste)들이 그린 그림들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위에 다른 것이 덧그려지거나 변형되기도 하는 등 변화를 겪다가 결국은 다른 그림으로 바뀌고, 건물을 허물면서 사라지기도 한다.

▲ 우리 집 근처 옛날 공장건물 벽에 그려진 낙서화.  이 그림은 공장과 함께 철거되었다.  ©정인진 
 
실제로 지난 가을에는 우리 집 근처 산책로에 있는 한 옛날 공장건물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 사라졌다. 한 흑인아이와 코끼리가 그려져 있어, 마치 아프리카 어딘가를 생각나게 하는 그 그림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공장건물을 허물면서 그 그림도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곳곳에 그림이 있고, 계속 새롭게 그려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니 걱정할 것은 없다.
 
끌뢰네 마을뿐 아니라, ‘낙서화’(graffiti)라고 불리는 ‘거리 예술’ 작품들을 렌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렌시는 지난 2002년부터 낙서화가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렌시는 시멘트 벽으로 된 칙칙한 도시를 낙서화를 통해 색색으로 물들일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당국은 시내 곳곳에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장소들을 정해주었고, 낙서화가들은 더이상 경찰과 숨바꼭질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렌에서는 훤한 대낮에 거리에서 스프레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젊은이들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때로 그들은 사다리 위에서 계획서를 들고 신중하게 그림을 그린다. 또 작품에 사인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낙서화가들의 창작 활동을 인정해줌으로써 더욱 예술성 높은 작품들로 도시가 채워지고 있다.

▲ 렌에서는 대낮에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인진 
 
젊고 풍자적인 예술로 채워지는 도시
 
낙서화가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허락된 곳은 빌렌느 강변도로 벽과 철도 담장, 옛날 공장과 공공건물 벽 등 매우 다양하다. 길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설비박스 같은 데에도 재미있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도시 시설물에도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한 듯하다.
 
낙서화가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허락된 10년이 지난 오늘날, 렌에는 23개 장소가 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고, 시에서는 10여 군데를 더 늘려주기 위해 새로운 장소를 열심히 찾아 다니고 있다. 특히, 시는 자주 낙서되고 있는 벽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된 벽에는 표시가 되어 있다.

▲ 렌 시내 생-미셀 광장(Place Saint-Michel) 한 건물 보수현장, 보호막 위 낙서화.  ©정인진  
 
렌시가 정성을 다해 낙서화가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바로 ‘wiki rennes metropole’(www.wiki-rennes.fr.)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에서 렌의 낙서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카테고리(Categorie) Art에서 Graffiti를 클릭하면 작가 별로 정리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 그들의 작품을 담아놓은 것은 금방 사라지는 낙서화들을 보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미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낙서화들을 시민들이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작가 양력과 함께 작품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시에서 벌이는 공사장에 쳐진 보호막 위에는 어김없이 낙서화가의 작품이 주문되며, 지난 2012년에는 쟈크-꺄르티에(Jacques-Cartier) 지하철 역 근처에 ‘낙서화 공원’(graff park)도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낙서화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도록 높이 2.5미터에 100미터에 달하는 나무 판이 U자 형태로 세워졌다.
 
오늘날 도시를 예술작품으로 꾸미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또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발견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예술가로 인정해주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의 창작활동을 범법 행위로까지 취급하는 낙서화가들의 작품을 렌시처럼 높이 평가해주면서 지원하는 도시를 직접 경험하기는 처음이다.
 
무엇보다 렌에서는 풍자적이고 도발적인 젊은이들의 낙서화들이 이미 예술로서 그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인진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