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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그 후③ 
 
모 신문에 밀양의 ‘죽음 퍼포먼스’를 우려하는 내용의 사설이 실렸다. 구덩이를 파고 목줄을 걸어놓는 밀양의 퍼포먼스가 “공사가 강행되면 올가미에 목을 걸고 시신을 무덤에 내려놓으라는 선동과 압박이 아니고 무엇인가”라며, “가뜩이나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시대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따라 배울까 겁부터 난다”고 했다.
 
생명에 대한 교육관(?)이 투철한 이 사설이 말한 대로, 사람 죽는 것은 큰일이다. 심지어 “내가 죽어야 송전탑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일흔 넘은 노인이 목숨을 끊은 기억을 가진 밀양에서 죽음은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그런데도 밀양 주민들은 765kv송전탑을 세울 거면 ‘나를 죽이고 해라’ 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퍼포먼스’로 보이는 행위를 한다. 목줄을 매고, 무덤 같은 구덩이를 파고, 휘발유를 품고, 포크레인에 몸을 묶는다. 그네들에게는 목숨 잃는 일만큼이나 두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수천 년간 산사태가 난 적이 없던 산이…’

▲ 밀양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송전탑 건설을 막겠다고 한다. ©사진-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
 
산사태로 폐허가 된 집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밀양 주민이 두려워하는 것은 분명했다. 송전탑이 세워진 후 산사태가 잦아졌다는 지역에 서서 그녀는 경악했다. 나는 이곳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는 땅에 송전탑이 들어설 것이었다.
 
산사태 피해를 겪은 주민은 말했다.
 
“이번에 송전탑 세우면서 산사태가 두 번이나 났어요. 그 중 하나는 송전탑을 세우면서 났어요. 수천 년 있던 산이에요. 산사태가 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송전탑 세우는 공사를 하면서 25미터 정도를, 이 집보다 크게 땅을 파요. 콘크리트를 붓는데, 거기에 다이너마이트를 써요. 폭발을 하니까 산이 울어버리잖아요. 폭우가 내리니까 산이 버티질 못하고 산이 흘러내려가지고 집을 완전히 덮쳐버렸어요. 제 예상은 그거 밖에 없어요.”
 
산사태가 난 지역은 경기도 광주 부근이다. 전국에 설치된 송전탑의 많은 수가 수도권으로 모여들기에, 수도권의 길목인 경기도에는 다양한 송전탑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중 765kv 송전탑이 세워진 지역을 밀양 주민들이 직접 방문했다. 전자파가 백혈병도 만들고 암세포도 키운다는데, 한전은 그런 일 없다고만 했다. 말로만 떠도는 환경, 건강, 재산상의 피해를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보게 된 것이 반쯤 무너져 버린 집이었다. 산에서 흙이 구르고 커다란 돌덩이가 쏟아져 단단한 돌벽을 뚫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진 집주인 부부가 그때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공무원들은 그저 자연재해라 하지만, 부부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뒷산에 송전탑을 올리기 위해 흙을 깎아 내리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
 
지역 주민은 말했다.
“공사라는 것이 아무리 잘한다 해도, 이 거대한 자연을 건드려 놨을 때 따라올 재앙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요. 산등성이를 군데군데 까놓고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은 송전탑만 건설하면 된다? 그건 절대 아니에요.”
 
자연은 무서웠으나, 오직 비용만이 고려 대상이었던 공사는 신속하게 자연을 훼손했다. 세운 사람은 따로 있는데, 피해는 자연과 그 자연에 얽혀 살아온 사람들 차지이다.
 
농협도 송전탑 인근 땅은 대출금 안 내줘
 
다른 지역도 피해를 호소하긴 마찬가지였다. 안성의 한 마을에 갔을 때였다.
 
“여기 물이 1급수 정도 되요. 골짜기마다 돌만 하나 쳐들면 가재가 바글바글 할 정도로 많았었는데, 이제는 가재가 없어요. 그런 거 자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봐야죠.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걸 보면, 우리가 모르고 살아서 그렇지. 우리도 그런 게 아닌가.”
 
주민들은 모른다면서도 말했다.
“건강하셨던 분들이 연세 많지도 않은데 요 근래 많이 돌아가셔가지고. 암으로다가 많이들 돌아가셔서. 예전에는 남자들이 꽤 많았었는데 지금은 10명 정도 되요. 마을이 28가구인데.”
 
한전과 정부는 송전탑을 세우기 전후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비교 점검하지 않는다. 건강검진조차 없다.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리 없다. 지역 주민들만 불안해할 뿐이다. 비가 오는 날은 멧돼지 울음소리를 낸다는 송전선을 불길하게 올려다보다, 일상에 잊고 산다. 어느 날 문득, 그 많던 가재는 다 어디 갔지? 해도 소용없다. 아픈 몸을 부여잡고 원인이 뭐지? 물어도 대답해주는 사람 없다.
 
확연히 눈에 보이는 피해도 있다.

“여기 마을 집들이 안 팔리니까 경매를 하는데, 7억2천에 시작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 1억 8천 까지 떨어졌어요. 지금 송전탑이 생기면 땅값은 없어진다. 그것만큼은 확실해요. 송전탑이 보이기만 해도 땅값이…. 저 아래 땅이 여기(송전탑 인근 집)서 200미터 떨어졌죠. 저기 땅 하나가 엊그저께 매매가 됐더라고요. 그런데 13년 전 가격으로 거래가 됐어요.”
 
산다는 사람이 없으니 땅값은 내려만 간다. 농협은 땅을 담보로 하는 대출을 거부한다. 우리가 만난 농협장은 그 자신이 송전탑 건설 반대 대책위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송전탑 인근 부지에 대출을 해주지 못했다.
 
“송전탑이 작은 것도 아니고 큰 거니까, 그 전자파나 이런 것들의 폐해를 국민들이 많이 알고 계시잖아요. 그러니 송전탑 주위에 있는 땅을 사질 않잖아요. 매매 자체가 안 되니까. 우리 농협에서도 대출을 해줄 수 없죠. 농협이 평가를 얼마를 해줄 거예요? 만원을 해줄 거예요? 십만 원을 해줄 거예요? 예전에 평당 20만, 30만원 하던 땅을 지금은 5만원 정도? 5만원에도 안 사니까 어쩔 수 없어요. 지금까지 대출을 해준 땅이 없어요.”
 
이미 밀양에서도 몇몇 땅에 농협이 대출금을 내어주길 거부하고 있다. 대출을 받아야 다음해 농사를 짓고, 애들 학비를 보태고, 아프면 병원도 가는데, 가격조차 매길 수 없는 땅이 된 것이다.
 
한평생 일구어온 삶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보다 더 겁이 난다. 안 쓰고 안 입고 안 먹고, 돈이 생기면 땅부터 샀다. 그렇게 모은 전 재산이다. 다시 시작하면 되지, 하고 일어설 수 있는 젊은이들도 아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일흔을 훌쩍 넘었다. 쉰이면 청년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런 이들이 한평생 살아오면 쌓아둔 것을 졸지에 잃게 된다. 욕심을 부리다 투기를 하여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가만가만 살던 인생에 갑자기 송전탑이 들어왔다. 국책 사업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했다. 당장 가슴 붙잡고 쓰러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 주민들은 “그렇게 살아온 한평생 삶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묻는다. 땅은 삶 자체이다. ©희정
 
산사태가 난 집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이는, 밀양 여수마을의 김영자 씨였다. 그녀는 송전탑 반대 대책위의 총무를 맡고 있다. 올해로 58세의 나이로, 밀양에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 그녀에게 왜 이렇게까지 송전탑을 막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 실려 가고 있었다.
 
“어릴 적에 나는 내 위장도 미제고 내 허리도 미제인 줄 알았어예. 우리 클 때는 미제가 제일 좋았거든요. 국산품은 짝퉁. 요새 말하자면 중국산 짝퉁 정도 되었지. 요즘은 이양기 가지고 모를 심잖아요. 옛날에는 전부 손으로 엎어져서 심었잖아요. 그렇게 심을 때도 다른 사람은 허리가 아파 죽는다고, 엎어져 있다가 일어났다 해도, 나는 하루 종일 모를 심어도 허리 아프다, 이런 소리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내 허리는 미제인 줄 알았고, 내 위장도. 다른 사람들은 고구마 감자 먹으면 속 따갑고 하는데, 나는 밀가루 음식 많이 먹어도 속 안 따갑고. 내 속도 미제인 줄 알았어.
 
참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위장도 짝퉁 비스무리하고, 허리는 완전 짝퉁, 이렇게 되었어. 이렇게 몸이 참 망가지도록 일을 해 가지고. 진짜, 내가 시집 와 가지고 한 해 이렇게 살림을 살면은예, 빚내 가지고 썼던 그 이자 갚을 돈이 없었어요. 진짜 물하고 밥하고 김치하고 된장하고 밥 먹을 때가 있었어요. 진짜 어려웠어요. 이렇게 살기까지는 내가 일을 얼마나 했겠습니까. 내 손으로 일을. 진짜 잠 안자고 일했다 할 정도로 일을 해서 땅도 저렇게 조금 사게 되고. 그렇게 참 이룬 살림살이입니다. 이게 지금 대출도 안 내주는 제로 상태잖아요. 이 나이에도 그걸 포기를 못 하겠는데, 나이 드신 분들, 지금 꼬부랑해 가지고 허리도 다리도 못 써가지고 찔찔 밀고 다니는 그런 분들이, 과연 내 살림, 내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땅 한 떼기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살던 걸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밀양 주민들은 “그 돈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온 한평생 삶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물었다. 땅은 이들의 삶 자체였다.
 
밀양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여수마을이 지키는 송전탑 122번 공사 현장에 경찰 병력이 늘고 공사 장비가 계속 오르고 있다. 역시 주민들은 농성장을 지킨다.
 
농성을 하다 늦은 저녁, 마을로 내려온 김영자 총무는 배추에 약을 뿌려야 한다며 집이 아닌 밭으로 갔다. 송전탑 문제 때문에 돌보지 못한 배추에 벌레가 생겨 속을 파먹고 있다고 했다. 일일이 손으로 배추 속을 열고, 약을 쳤다.
 
판매를 하려 키운다 하기에는 밭 면적이 작았다. 몇몇 언론에 의해 외부세력이라 지칭되는 ‘밀양두레기금 너른마당’ 회원들에게 김장하라고 줄 배추라 했다. 판매용도 아닌 배추를 벌레가 먹을까, 종일 농성장에서 버티던 마른 몸을 해가지고 배추건 뭐건 보이지도 않는 깜깜한 밤에 약을 친다. 이게 농민이고 농사구나. 그녀의 뒷모습이, 그녀가 잃을까 두려워하는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혹여 송전탑이 세워져 농토 가치가 0이 되고, 수확물이 반 토막 나도, 농민들은 그곳에 농사를 짓고 살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삶이므로. 다만 한평생 땅을 일구며 사는 삶, 그 삶이 피폐해질 것이다.
 
여수마을의 감나무들은 빨갛게 익은 감을 땅에 뚝뚝 떨어트렸다. 일손이 농성장으로 간 까닭이다. 공사를 막는다.
 
“우리는 공사 막는 데 인생을 걸었다. 마지막 한 사람 남을 때까지 끝까지 막을 것이다. 경찰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들 겁주려고 하는감?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랬어요. 우리는 돌아서 가지는 않는다. 그것만 알아라.”
 
인생을 걸고 싸운다. 일부 언론이 밀양 극렬분자들의 ‘생명 경시’를 염려하지만, 그래도 싸운다.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 앞에서 생명을 들먹이며 훈장 노릇을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밀양의 주민들은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안다. 한평생 지켜온 삶 자체가 무너지는 일이다. 그 삶을 지켜내고 있다.▣ 희정_르포작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후원계좌 <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농협 815-01-227123 이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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