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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정의 마음이야기] ‘나’란 존재가 흔들리는 정신분열증
 
과거에는 여러 정신장애를 하나의 연속선상에 두고 설명했습니다. ‘현실검증력’이라는 선입니다. 학자 프로이트는 어떠한 경험이 외부 세계에서 온 것인지, 자기 내면에서 비롯된 것인지 구분하는 능력이 현실검증력이라고 했습니다. 즉 무엇이 현실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현실검증력이 손상된 극단을 ‘정신증’이라고 불렀고, 현실검증력이 유지되는 편은 ‘신경증’이라 했습니다. 현실검증력은 정신증이라는 고통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굉장히 오래된 심리학 개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분열증은 ‘정신증’에 해당됩니다. 정신분열증은 여러 정신증의 집합, 즉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아는 망상이나 환각이 정신증입니다. 그런데 정신증은 여러 군데서 나타납니다. 때로는 조울증이나 우울증에 정신증이 동반될 수 있고, 충격적인 일을 겪고 정신증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뇌 손상을 입었을 때 정신증이 올 수 있습니다. 정신분열증의 유형도 여럿이며, 단기적으로 정신증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다른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는 바로 정신증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정신증은 ‘도파민’이라는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관련되어있다는 가설이 가장 강력합니다. 도파민을 조절하는 치료를 받게 되고, 그래서 약물치료가 일순위입니다. 여기서 저는 정신증을 경험한 사람들의 말을 빌어 심리학을 바탕으로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환청과 환시, 숨을 쉴 수 없는 불안감 
  
의 한 장면'>심리학에서는 ‘자극’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감각, 지각, 생각, 감정, 행동을 촉발하는 단서들을 자극이라고 합니다. 자극은 실제 세계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우리 내면에서 만들어진 마음의 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극이 자기 안의 산물인지 외부 존재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 현실검증력이 불안정하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내 것이고 무엇이 바깥 것인지 불분명해지고 혼동된다 합니다.
 
과거 심리학자들은 ‘나’라는 존재가 탄탄할 경우, 외부와 내면을 구분하는 일이 가능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경계가 사라지고 어디서부터가 나이고 외부 대상인지 구분되지 않을 때, ‘외부에 무엇이 있다’와 ‘내면에 무엇이 있다’가 융합됩니다. ‘나’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남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도 바깥에서 들리는 진짜 소리이고 내 눈에 보이는 것도 진짜입니다.
 
정신증을 겪는 분들이 제게 말씀해주기를, 자기가 마치 곧 터져 사라질 듯한 비누방울이 된 것 같다 하고, 자기가 무너지고 있다, 내가 내가 아니다 합니다. 매 순간 위태로운 절벽 위에 서있듯, 한쪽 발을 디디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있다고 호소합니다. 온 힘을 다해 밧줄 하나를 붙들고 있는데, 어느 순간 밧줄을 놓게 될지 두렵다 합니다. 자기가 누군지 자꾸만 확인 받고 싶다 합니다.
 
심층적인 심리평가를 진행해보면 이 분들이 극도의 긴장감, 불안감, 막연한 초조함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학자들은 이를 ‘정신증적 불안’이라고 일컫습니다. 내 존재가 소멸되는데 대한 불안이 과연 어떠한 느낌인지 가늠할 길이 없습니다. 정신증에 막 직면한 한 십대 소년은 압박감이 들고 숨을 쉴 수 없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토록 강렬한 불안감 속에서 자꾸 뭔가를 확인하고 반복하는 행동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불필요하지만 이분들에게는 매우 필요한 행동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나’의 경계를 확인하고 내 존재를 점검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신분열증 치료를 받게 된 소녀가 생각나는데, 그 아이는 반복해서 “난 괜찮아요. 난 다시 시작할거예요”라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곤 했습니다. 자기 작은 존재를 움켜지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과 판단 흔들려, 바깥세상을 왜곡 해석
 
현실검증력이 불안정할 때에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어려워집니다. 내 안의 걱정, 두려움, 공포에 비추어 바깥 세상을 해석하게 되며, 그 세상이 곧 현실이 되고 맙니다. 어떤 분들은 세계를 매우 위협적이고 무서운 공간으로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해칠 것만 같다 합니다. 자기만의 현실이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 현실에 홀로 놓여있습니다.
 
생각을 진행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소한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고 생각이 뛰며, 논리가 부족한 의미들이 연결돼가면서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A에게 B에 대해 험담했습니다. A와 B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B가 내게 오더니 “사람이 뒤에서 호박씨 까면 안될 노릇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찔리긴 하더라도, B가 어디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고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 더 수월합니다. A와 B는 모르는 사이가 확실하니까요.
 
하지만 사고과정이 흔들릴 경우, 나는 ‘A와 B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A와 B가 모르는 사이라는 근거는 약해지고, B가 알고 한 말이 확실해 보이니 그 이유를 어떻게든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명하려 애쓰지만 생각이 흔들리면서 극단적이거나 무관한 근거에 몰두하게 되니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 질뿐입니다. 하지만 비누방울이 터지면서 오류 섞인 생각에 대한 확신은 강해지는 듯 보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경험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적응해보려고 이런저런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현실검증력이 불안정해도 생각이나 행동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다 종교를 찾기도 하고요. 결국 혼란스러움을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힘들어서 죽는 길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강한 감정이 들 때 더욱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고 고립되기도 합니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는데 그걸 못한다고 꾸짖는 보호자들도 만나게 됩니다. 잘 모르시는 경우 그러하지만 탓할 수 없습니다. 이미 보호자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이 분명합니다. 어떤 보호자는 당신이 잘못해서는 아닌지 깊은 죄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릴 때 잘 못 돌봐주었는데 그것 때문은 아닌가, 유전이라던데 우리 집 탓 아닌가 하고요. 깊은 비탄을 마주하기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친구가, 가족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변해버린 것만으로도 그 상실감이 버거울 텐데요. 어떤 경우에는 한 집에 여러 명에게 닥쳐올 수 있는지라, 지치고 무뎌진 가족들은 두 번째 고통 앞에서 더 무기력해지거나 때론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밧줄을 놓아버리기 전에 도움을 받을 권리
 
무엇보다도 저지르지 말아야 할 실수는 정신증이 시작되는 초반에 고통을 경시하는 일입니다. 때론 가벼운 우울이나 꾀병으로 오해하기 쉬워서 더 어렵습니다만, 위태하게 밧줄을 놓아버리기 전에 도움을 받는 건 사람의 권리입니다.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집중력이 크게 떨어지고 행동이 느려지거나 잠만 자고픈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수근 대고 욕한다는 느낌도 많이 들고, 그래서 사람을 경계하고 혼자 있게 됩니다.
 
자꾸 불필요한 반복행동을 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여길법한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어집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나옵니다. 혼란스러움 때문에 직업 기능이나 학업 능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다른 장애에서도 흔히 나타나므로, 전문적인 심리평가와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도움을 받아 오진을 피하고 밧줄을 함께 잡아줄 전문가를 만나길 권합니다.
 
물론 도움을 요청하기 무척 힘이 들지요. 어떤 분은 자신도 설명하기 힘든 경험에 고통이 쌓여가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었다 합니다. 한번은 친구들이 정신과 환자 얘기를 하다가 이상하다거나 웃기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어 크게 상처가 되었다 합니다.  다행히도 어떤 친구에게 용기 내어 말했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 친구가 자기 자신의 고통을 말해주길래 이분도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합니다.
 
정신증을 오래 앓았던 분들은 지긋지긋하다고도 하고, 오류 섞인 생각과 환각에 익숙해하기도 합니다. 정신증이 다소 경감되면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자기 모습은 과거와는 너무도 달리 변해버렸고, 미래는 불확실한데다 어떻게 살아갈지 너무나 불안하다 합니다. 같이 해줄 누군가가 없다면 어떻게 혼자 살지 막막함뿐이라 말합니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대화하기 어려운 분도 많습니다. 말이 금세 끊기고 감정을 나누기가 힘들어 마치 벽과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 정신증이 있으면 서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제게 강했습니다. 하지만 “왜요?”라고 묻기만 했지 그래서 힘들었겠다고 말하지 못했다는 것에 반성한 적이 있습니다. 잘 씻지 않고 머리도 빗지 않았던 한 분이 있었는데요. 머리를 빗어보자 하니 움츠러들며 못생긴 얼굴로 거울 보기가 너무나 힘들어 빗지 못한다 하시더군요.
 
빗질을 해주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소곳이 앉은 모습에, ‘그래서 못 빗었던 거구나’ 싶었습니다. 귀 뒤로 머리칼을 넘기면서 그게 더 예쁘다 했더니, 황급히 머리칼을 내려뜨리면서 못생겼으니 가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 분이 저를 볼 때마다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면서 인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의 대화가 그 분 안에 남아있는 걸까 아닌 걸까 고민하다가, 그 분이 먼저 응답해준 듯한 느낌에 괜스레 풍요로웠던 기억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최현정  

[관련] 실체가 없는 정신적 경험을 이해한다는 것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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