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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23. 양쪽 뺨에 두 아이의 숨결을 느끼며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 저자입니다. - www.ildaro.com 

이마 언저리에 와 닿는 따끈한 햇살을 느끼고 눈을 떴다. 시계바늘이 열시 근처에 도착했다. 손님을 맞을 시간이 겨우 한 시간 남았으니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야 정상인데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양쪽 귀에 들리는 두 개의 숨소리를 좀 더 느끼고 싶어서.   
이 푸근한 순간을 선물해 준 존재는 며칠 전에 제대한 아들이다.
 
지난 밤, 유성우가 쏟아질 거라는 소식에 우린 카페 마당에 돗자리와 이불을 깔고 드러누워 새벽까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머리맡에 옥수수와 수박을 두고 모기향을 피우고.
 
“저기 저 큰 별이 북극성일 것 같다.”
“어디?”
“자, 후래쉬로 비춰줄게. 저기 저거.”
“아!”
“우리, 부산 자취집 옥상에서 새벽까지 별똥별 떨어지는 거 보던 생각나?”
“아, 진짜 재밌었는데, 이불을 몸에 감고 누워서 과자랑 콜라 먹으면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년 전이네.”
“그날 밤에 별똥별 엄청나게 많이 봤었는데........”
“별자리도 공부해 보고 싶다.”
“우리 별자리도 찾아보고.”
 
둘의 얘기를 자장가 삼아 잠에 끌려가던 나는 몸을 일으켜 옥수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우린, 셋 다 물병자리야.”
“아빠는요?”
“술병자리!”
“아하하하!”
 
한이가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와우, 한이 여자 꼬실 때 휘파람 불면 되겠다.”
“아유, 엄마, 한이가 7080이야? 촌발 날리게.”
한이가 휘파람 불기를 멈추고 물었다.
“엄마, 그 때, 남자들이 데이트 할 때 휘파람으로 어떤 노래들을.......”
“와! 저기, 저기!”
 
나라가 소리를 질렀다. 그 별똥별은 보지 못했지만 이어서 여기저기 별동별이 떨어졌기에 우린 계속해서 ‘저기!’ ‘저기도!’ 를 외치며 별들이 우주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새벽 다섯 시에야 방으로 들어와 누웠고 모두 늦잠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  밤이 깊은 까페 버스정류장의 마당 한 켠.   © 이한 
 
아들은 카페 문을 열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던 2011년 11월 1일에 군 입대를 했다. 아들이 입대를 할 당시 나는 카페 개업 준비로 거의 제정신이 아니어서 훈련소에서 택배로 보내온 아들의 소지품 -군복으로 갈아입기 전에 걸치고 있던 옷가지와 핸드폰 등이 담긴- 상자를 열어보지도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바빠서만은 아니었다는 고백을 해야겠다. 함께 살지 않은 기간이 10년이 넘었으니 아들의 부재가 너무나 익숙해서, 아들의 체취를 맡고 싶은 어미의 애틋함이 부족했다고.

그 상자는 한 달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이 외출을 하기위해 운동화를 찾는 바람에 열게 되었고,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아들의 체취는 고약한 냄새로 변해 있었다.  
 
누나는 한 달이 멀다하고 동생의 면회를 갔다. 사실은 매 주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동생이 ‘다른 군인들 보기에’ 미안하다고 해서 자제를 한 것이다.
 
부모의 귀농으로 두 아이는 십대 중반부터 팔년 동안 함께 자취를 했다. 그러다가 동생이 서울의 대학에 가게 되어 각자 자취를 하게 되었고, 누나는 혼자 일 년을 더 지내다 엄마 곁으로 왔다. 함께 자취하면서 집안일 분담이나 생활태도, 성격차이 등을 이유로 많이 다투기도 했다지만 부모의 그늘을 서로가 대신하다보니 정이 깊은 편이다.
 
 누나
                              이 한
 집에 갔습니다.
 어서 오라며 반겨줄 누나가 있는
 집에 갔습니다.
 
 누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웃으며 반겨줘야 할
 누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어디 간다는 연락도 없이 어딜 간 걸까?
 누나가 걱정 되서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네요.
 
 어? 누나가 들어오네요.
 웃으면서.
 남은 열심히 걱정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웃으면서 말이죠. 
 
누나라는 단어가 놓인 자리에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자연스러울 법한 이 시를 읽으면, 좁은 원룸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살았던 어린 그들과, 어떻게든 집세며 생활비를 보내느라 전전긍긍했던 내가 생각나 짠하다.
 
양쪽 뺨에 느껴지는 두 아이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크게 심호흡을 해 본다.
 
‘걱정 마, 이제 모든 게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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