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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17. 귀농을 꿈꾸는 당신에게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 저자입니다. - www.ildaro.com 
 
카페가 있는 함창은 상주시에 속한다. 상주시는 주력 사업 중 하나가 귀농인구 늘이기여서 귀농학교 운영에도 적극적이다. 그 덕에 나까지도, “귀농하여 농사대신 카페를 차린” 이야기로 강의를 한다. 그 인연으로 들리는 손님들도 있다. 
 
어제도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귀농했다는 부부가 다녀갔다. 그들은 아직 이삿짐도 다 풀지 못했지만 감자는 심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존재의 충족감에서 번져 나온 완전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잊지도, 잃지도 않기를 바라며 띄우는 편지.
 
귀농을 꿈꾸는 당신에게     
 
귀농을 꿈꾸는 당신. 당신이 꿈꾸는 것은 농사가 아니라, 돌담을 기어오르는 호박덩굴 아래서 졸고 있는 개와 고개를 끄덕이며 벌레를 쪼아 먹는 장닭과 접시꽃과 봉선화와 채송화가 핀 마당이 있는 집이 아닐까.
 
어린 것이 맨몸으로, 맨발로 뛰어다니고, 형광등 불빛도 무서워 선크림을 바르는 피부 고운 여자가 아니라 햇살에 눈이 부셔 찡그린 눈가에 실주름을 지으며 웃는 아내가 싸리문을 열고 들어서는 집, 마당 끝에서부터 성큼 성큼 걸어오는 소나기와 바람이 불면 쏴아~ 소리를 내는 대숲에서 청회색 산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집. 

당신은 어쩌면 그 집에 살던 어린 것이었다. 알몸으로 놀다가 배를 쑥 내밀고 마루 끝에서 마당으로 오줌 줄기를 뿜던, 엄마가 싸리문을 열고 들어오면 괜한 서러움에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알사탕 하나를 얻어내던.
      
당신은 다시 어린 날의 그 행복했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시멘트와 철근에 외양만 화려하게 치장한 지금의 집은 집이 아니라고, 엘리베이터와 지하철과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운반되는 이 삶은 삶이 아니라고.
 
당신은 지금,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는 월급에 더 이상 영혼을 저당 잡힐 수는 없다고 중얼거린다. 온 가족이 각자 스마트 폰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인간소외의 예고편을 체험하는 집과 감당할 수 있는 체온을 벗어난 높은 교육열에 터무니없는 대가를 치르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내가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살았던 곳은 섬진강변의 흥룡이라는 작은 동네였다. 우리 집은 대숲에 둘러싸인 커다란 초가집이었다. 싸리대문 곁에는 집채 만 한 바위가 있고 뒤꼍에는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으며 울타리는 탱자나무로 빙 둘러쳐져 있었다. 옛날이야기 책에 삽화로 그려진 그림과도 같은 시골집. 그러나 누군가 고향에 대해 물으면 나는 꼭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악양 집을 떠올린다.
 
악양은 객지에서 홀로 밥을 끓여 드시며 체신 공무원 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드디어 우체국장이 되어 부임한 곳이다. 새끼들을 한 번 안아볼 새도 없이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엄마는 드디어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가족이 함께 밥상에 둘러앉은 날들, 대나무 평상에 누워 옥수수를 먹으며 별을 바라보다 잠들던 여름밤, 출근 전에는 꽃밭을 가꾸고 퇴근 후에는 집 구석구석을 반듯반듯하게 돌보던 부지런한 아버지는 내가 넘어져 피가 나면 꼭 입으로 핥아서 닦아주었다.
 
엄마가 회초리로 때려도 죽어라고 잘못을 빌지 않는 나를 꼭 안아주며 ‘잘못했다고 해라’하던 아버지. 다섯 남매를 먹이고 입히느라 돼지와 닭과 콩나물을 키워 팔며 지아비의 월급을 축내지 않으려 애썼던 엄마. 아버지와 엄마가 행복하여서 우리도 행복했던 집.
 
오년 후 엄마는 넓은 집을 사는 대신 면장사모님의 교육열에 자극을 받아 어려운 형편을 무릅쓰고 자식들을 모두 도시로 내보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우리 가족의 행복은 끝이 났다. 면장사모님의 교육열 때문에, 한글을 모르는 엄마의 한 때문에,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을 처음 내뱉은 어떤 사람 때문에, 남부럽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각오와 희생정신 때문에. 정확히는 철학의 부재 때문에.
 
당신과 나는 그렇게 도시로 보내진 금쪽같은 자식들이다.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죄의식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갔던 가련한 당신. 그렇게 힘껏 달렸으나 당신보다 좋은 집에 살고 당신보다 비싼 차를 타는 이웃집 때문에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는 당신. 심장과 위장과 마음보다 얼굴과 몸을 더 많이 가꾸고 돌보아야 하는 당신. 자식을 큰물로 보내기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했던 당신은, 자신의 역할을 끝낼 즈음에야 부모의 한을 되풀이 한 자신을 발견하고 달리기를 멈추게 된 것이다.
 
엄마가 건네준 알사탕 한 알이면 금방 행복해졌던 어린 당신. 달리기를 멈춘 당신이 되찾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어린 것의 마음이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그 단순하고 순박한 마음을 다치게 하고 병들게 한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었다. ‘다 너를 위해서야’ 라는 말로 자신의 희생을 정당화 시켜버리는 이기적인 부모들로 하여 어린 것은 방향도 모르는 채 달리기 시작했고, 달리는 무리가 늘어날수록 뒤처지기 시작했다. 사탕 따위에 행복해지지는 않게 되었고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열등생이 되었고, 일등인 아이는 전전긍긍 불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한 때 그 어린 것이었던 당신은 이기적인 부모가 되어 자신의 강박증을 자식에게 물려주었다. 모던타임스의 한 장면처럼 모두가 미친 듯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 악순환의 톱니바퀴에서 누군가는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안다.
 
이제 당신은 알사탕 하나에 행복해져 버리는 그 아이로 돌아가기로 했다.
당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계해)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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