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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15. “행복하세요?”에 대한 나의 모범답안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 저자입니다. - www.ildaro.com  

▲ 까페 버스정류장.  마당에 조금씩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박계해 
 
“행복하세요?”
모범 답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손님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마음이어서 머뭇거리면 그들은 대개 ‘행복해 보여서요’라는 말을 덧붙여 그 질문은 자신의 느낌을 전한 것임을 알려준다.
 
나를, 나의 과거 행적(?)을 아는 사람인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따라붙는 말도 있다.
“아무데도 못 가고 갇혀있으니 답답하겠어요.”
 
수긍의 뜻으로 고개만 끄덕이거나, 그동안의 방종한 생활에 따른 당연한 감옥살이라 달게 받아들인다며 웃기도 한다.
 
감옥의 기본 상황은 아무래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어수선한 바를 정리하고 오전 열한시가 되면 음악을 트는 동시에 대문을 여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며, 오후 다섯 시쯤 카페 안팎의 조명등을 켜고 밤 열한 시에는 조명등을 끄고 대문을 닫고 문단속을 하는. 계절과 상황에 따른 변화는 있다 해도 일 년하고도 넉 달, 날수로 오백여 일이 대개는 그런 일과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심한 몸살로 드러누웠던 사나흘을 빼고는 꼬박 꼬박 문을 열었으니 모범수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딸아이는 ‘엄마의 빈자리를 기꺼이 메워주지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고 못 박는데다, 자가용도 없으므로 일없이 나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남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외출이라 할 장보기나 도서관 가기, 심지어는 오가는 시간까지 빠듯하게 재어 다니는 토요일의 방과 후 연극수업까지가 내겐 다 가슴 설레는 바깥나들이다.
 
옷가게를 하며 새벽 도매시장 다니던 시절

 
카페 이전의 직업이었던 옷가게를 할 때는 매달, 어떤 달은 매주, 서울의 동대문 도매시장을 들락거렸다. 작은 읍내였지만 하루에 세 번 서울을 오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 때도 마음 가는 대로 여행을 할 형편이 못되었던 나는 차표에 적힌 “가은에서 서울”을 “티벳에서 뉴욕”으로 읽곤 했으며, 도매시장에서 옷을 고르는 일을 명화를 고르는 미술상이 된 듯 우아하게 즐기곤 했다. 손에는 바퀴가 달린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니면서.
 
당시 도매시장은 밤 열 시경에나 개장을 해서 새벽 세시쯤까지 열렸고, 자정을 훌쩍 넘기고서야 일을 마친 나는 밤새도록 영업을 하는 카페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며 첫 차가 다니는 시간을 기다렸다. 본시 여행은 피곤한 법이야, 라고 생각하며.
 
새벽빛이 카페 창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면 나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모자나 두건으로 감추고 지친 뼈와 근육을 격려하며 일어섰다. ‘자, 여행은 끝났다. 이제 집으로 가자’라고 중얼거리며.
 
검은 밤의 외투를 입고 네온의 불빛들로 화려한 치장을 했던 의류시장의 새벽거리는, 쓰레기봉투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들과 쓰레기를 쓸고 있는 환경미화원들과 아직도 바람결에 풀썩거리며 몰려다니는 쓰레기들로 해서 낯설다 못해 그로테스크함마저 느껴지곤 했다.
 
어쨌거나 지금보다 큰 스케일의 나들이를 한 셈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훨씬 처절한 일상이었음은 분명하다.  

▲  까페 버스정류장 앞 텃밭에 심은 보리가 싹을 틔우는 중이다. 
 
나는 그 때도 같은 문답을 자주 들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행복해 보여서요” 라는.
 
그러니 나는 남들에게 그렇게 비치는 사람인 모양이다. 실상은 처절한데도, 초라한데도.
 
아마도 나는, 처절함이나 초라함을 느끼는 신경선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바닥까지 내려가 치고 올라와야 되는 법인데.
 
그래서 나는 여전히 처절하고 언제까지나 초라한, 하나의 습관처럼 그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형태만 다를 뿐 처절하지 않은, 초라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처절함과 초라함은 행복 하냐, 안 하냐에 필수적인 변수는 아니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모범답안은 이렇다.
그건 “이 순간, 행복하세요?”라고 해야 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스스로를 향한 것이며 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도 그 자신뿐이라고. (박계해)
      기사 원문 보기 http://ildaro.com/sub_read.html?uid=6306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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