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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맞았는가? 라는 질문은 어리석고 우습다
<꽃을 던지고 싶다> 2. 
 
[칼럼 소개: 성폭력 피해생존자 너울의 세상을 향한 말 걸기, <꽃을 던지고 싶다> 연재가 계속됩니다. -편집자 주  <일다> www.ildaro.com]
 
사건 하나.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폭력
 
폭력에 대한 기억은 원인이 없이 결과만 남을 뿐이다. 내가 가해자가 아니기에, ‘왜’라는 질문 자체가 너무도 쓸모 없고 어리석은 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가해자에게는 변명의 여지를 주며, 피해자에게는 또다시 가해지는 학대가 된다.
 
당신은 왜 맞았는가? 당신은 왜 강간당했는가? 어떠한 사람도 강간당하거나 폭력을 당하고자 하는 의지나 사고 자체가 없기에, 왜라는 질문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날의 폭력에 대한 기억 또한 ‘왜’라는 질문이 우스운 것은, 거기엔 어떤 이유(사람들이 말하는 폭력 유발론이나 원인론)가 있을 수도 없거니와, 설령 폭력의 이유를 억지로 만든다 하더라도 그 피해와 상처는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화창했던 봄날, 오빠와 나는 그 날도 오빠의 야구방망이와 글러브를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 가난했기에 특별한 장난감이 없었던 우리에게, 오빠가 생일 선물로 받은 야구 방망이는 그 어느 것보다 특별하고 즐거운 놀이기구였다.
 
당시 7살이던 난 바로 위의 2살 터울인 오빠를 둔 탓으로 동네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딱지치기, 구슬치기, 야구 등을 즐겼다. 그 날도 오빠와 야구놀이를 하고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유난히 눈이 부신 햇빛이 세상을 평온하게 비치는 그런 날이었다. 소박한 밥상에 마주 앉아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었을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범한 그런 저녁을…….
 
가해자가 야구방망이로 엄마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4명이나 되는 우리 형제가 울며 매달렸지만 구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가해자는 너무 강했으며 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조건 가해자에게 매달려 빌기만 했다.
 
폭력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우리 형제의 울음소리, 엄마의 악다구니와 비명에 찬 저항만이 가득했다. 가해자의 하얀 피부보다 더 하얀 그의 러닝셔츠에 빨간 피가 묻고, 엄마의 저항이 멈춘 후에야 폭력은 정지되었다.
 
그 날의 폭력이 왜 시작되었는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중요하지도 않다. 크고 작은 육체적 구타는 일상적인 것이었고, 언어폭력은 매일 반복되었다. 반찬이 형편없다는 것부터 남자를 무시한다 등등 매번 수많은 이유들이 만들어졌다. 내가 10대를 넘어가는 시기에는 심지어 나의 치마 길이까지도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유는 다를지라도 명확한 것은, 가부장제에서 아내는 자신의 소유물이며 자신의 물건에 대한 폭력은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웃에서 흔히 일어나니 일이기에 의례 사소하고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는 아내구타는 그것을 보고 자란 나에게도 심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나의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혀 있는 그 날의 사건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다른 가정폭력보다 나에게 힘의 관계를 선명하게 인식하게 해주었다.
 
나에게 있어 폭력이란, 힘이 강한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통제와 화풀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도, 설명도 없이 나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며, 어떠한 저항도 폭력의 강도만 높일 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놀이기구를 잃었으며, 엄마가 살해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두려워했다. 야구방망이를 가져다 버리고, 나도 언제가 엄마가 당한 만큼 꼭 그만큼만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집이라는 공간에 ‘아빠’라는 사람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사람만 사라진다면 누구보다도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꿀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바람은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상처를 남긴 후에, 한참 후에나 가능했다.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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