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이 칼럼은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www.ildaro.com 아버지의 경기장 우리 아버지는 김연아 선수를 좋아한다. 마흔이 된 나는 일흔이 넘은 아버지 옆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퇴직을 한 아버지에게 텔레비전은 한 세상이다. 소치올림픽 중계를 밤새 보고 낮에도 채널을 바꾸어가며 보고 또 본다. 벽에 걸린 액자 속에는 젊을 때 아이들과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이제 집을 사느라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되고, 학비며 부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버지는 노년의 시간을 보낸다. 다리는 걷기 불편해지고 혈압약을 먹어야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소중한 ..
[박푸른들의 사진 에세이] 집주인 할아버지와 나의 공유지 우리 집 앞마당은 집주인 할아버지가 요긴하게 쓰는 옥상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할아버지가 놓아둔 60여개 엇비슷한 화분들과 3개의 큰 빨래건조대로 빽빽하다. 도시농부인 할아버지는 한 해 동안 이 화분들에 상추, 토마토, 고추, 배추, 무를 차례로 길러낸다. 늦가을 무를 수확하고 나서, 그나마 겨울동안 이곳은 내 차지가 되었다. 추위가 가시자 화분 흙 사이로 지난 해 거두지 못한 대파 밑단에서 싹이 삐쭉 올라왔다. 아쉽지만 이제 할아버지와 나의 공유지로 바뀌게 되는 시기이다. 요새 할아버지는 옥상에 올라와 볕 좋은 날 빨래를 널기도 하고, 겨우내 눈과 바람을 맞아 지저분해진 화분을 닦아내고, 굳어버린 흙을 갈고, 동네 한약방에서 얻어온 한약찌꺼기와 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