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이 칼럼은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www.ildaro.com 아버지의 경기장 우리 아버지는 김연아 선수를 좋아한다. 마흔이 된 나는 일흔이 넘은 아버지 옆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퇴직을 한 아버지에게 텔레비전은 한 세상이다. 소치올림픽 중계를 밤새 보고 낮에도 채널을 바꾸어가며 보고 또 본다. 벽에 걸린 액자 속에는 젊을 때 아이들과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이제 집을 사느라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되고, 학비며 부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버지는 노년의 시간을 보낸다. 다리는 걷기 불편해지고 혈압약을 먹어야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소중한 ..
모순을 극복할 힘을 얻다 (정보름)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대안담론을 만듭니다.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 www.ildaro.com 애증의 존재, 아버지 이라는 시가 있다. “밖에선 /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 집에만 가져가면 / 꽃들이 / 화분이 // 다 죽었다”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중) 볕도 잘 안 드는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따닥따닥 붙어살던 시절, 내 인생의 첫 모순은 아버지였다. 재료만 있으면 잡다한 장식품부터 커다란 책장까지 이것저것 뚝딱 만들고, 트로트부터 팝송까지 시원시원 잘 부르는데다 온갖 친구들이 주변에 모여드는 좋은 사람. 책에서 찍어낸 것처럼 멋들어진 손 글씨를 쓰고 모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