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싼 카나파니의 소설을 다시 읽다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다
아부 까이스, 아싸드, 마르완. 팔레스타인 작가 가싼 카나파니(Ghassan Kanafani)의 단편집 <불볕 속의 사람들>에 실린 단편 「불볕 속의 사람들」의 주인공 이름들이다.
언뜻 보기에 낯설다. 아마도 그 낯섦은, 아랍소설을 국내에서 접하기 흔치 않다는 점을 알려주는 듯 하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쉽게 접어버리기 어려운 묵직한 감동을 지니고 있다.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 <인디스월드>에서 소년은 런던에 가기 위해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동안 배의 창고에서 견디는 지옥의 항해를 견딘 바 있다. 아부 까이스, 아싸드, 마르완 또한 돈을 벌 수 있는 쿠웨이트로 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여행을 떠난다.
가싼 카나파니 소설의 특징은 옮긴이가 지적하고 있는 바대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최대한 숨긴 채 등장인물의 이야기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혹은「하이파에 돌아와서」처럼 2차대전 이후 유대인들에게 고향을 내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십 년 뒤 다시 고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팔레스타인의 정치 사회적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물린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무덤 속의 손」이나 「송골매」처럼 일상에서 일어나는 인상적인 사건의 주인공들도 있다.
「불볕 속의 사람들」은 쿠웨이트 밀입국을 둘러싸고 온갖 사기극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들에게 그나마 선행을 베풀고자 했던 마음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 난폭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부 까이스 일행을 트럭에 태운 아불 카이주란은 밀입국 중개인들이 모두 사기꾼이라며, 15디나르보다 더 싸게 10디나르만 내면 쿠웨이트로 보내줄 수 있다며 선심 쓰듯 말한다. 그러나 그 또한 완벽하게 선한 의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밀입국으로 돈을 빨리 벌어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고자 했던 것뿐이었다.
아불 카이주란의 트럭에는 뜨겁게 달아오른 물탱크가 있다. 아부 까이스 일행은 이 물탱크에서, 아불 카이주란이 초소를 통과하는 몇 분간만 견디면 됐다. 그러나 아불 카이주란의 계산과는 달리, 마지막 초소를 지키는 군인들이 아불 카이주란의 약점을 건드리며 그를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25분이나 지나버린다.
「하이파에 돌아와서」는 1947년, 5개월 된 아기 칼둔을 놔둔 채 하이파를 등진 팔레스타인 부부 싸이드와 싸피야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칼둔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싸이드와 싸피야가 살던 하이파의 집에는 유대인 부부 미리암과 이브라트가 칼둔을 키우며 살고 있다. 카나파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복잡한 역사를, 이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부부의 대면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려고 한 듯하다.
부부는 하이파로 돌아오면서, 칼둔을 잠시 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1차 중동전쟁의 기억을 떠올린다. 하이파라는 공간은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깊은 패배감’으로 그들을 짓누른다. 한편 미리암과 이브라트 또한 유대인이기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리암 부부는 싸이드 부부에게 잘 대하려고 애쓰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상처가 될 뿐이다.
지금 이스라엘 수비군에서 일하고 있는 칼둔의 존재는 싸이드와 싸피야의 마음에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칼둔은 싸이드 부부을 부모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놔두고 간 싸이드 부부를 비겁하고 나약하다고 몰아붙인다. 싸이드 부부와 아들 사이에는 그때 그 시절을 아무리 설명해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싸이드는 “누구든 간에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은, 단 한 순간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나약함과 실수가 자신에게 그들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권리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어떤 전쟁이건 반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현실의 상처들을 덮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애써 벌리지도 않는다. 칼둔을 남겨둔 채 두 번째 아들 칼리드가 팔레스타인군으로 입대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는 싸이드의 모습은 이들 사이의 갈등이 결코 쉽게 사그라질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슬픈 오렌지의 땅」에서 ‘나’는 전쟁이 일어난 뒤 더 이상 즐겁게 살 수 없으며, 아버지가 ‘너희들의 머리에 총탄을 박아버리면 좋겠다’고 중얼거릴 만큼 극단적인 상황이 쉽게 닥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에게 일상은 쉽게 변하지 않은 채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 오랜 상처가 남긴 흉터’처럼 남아있다.
이런 냉정함은 급진적인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동참했던 지은이의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여전히 진행형인 이상 <불볕 속의 사람들>은 오래도록 읽힐 가치가 있다. [일다] 김윤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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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2008/12/31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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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태 2008/12/31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트랙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