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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20)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김수진  
 
 
지난 주, 서울 홍대 근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칼럼]의 마지막 손님인 안쏘니님을 만났습니다. 안쏘니님과의 만남은 지난 번 정현님의 인터뷰에 이어 진행한 저의 '이성애자이거나, 이성애자일지도 모를' 지인 인터뷰 2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안쏘니님과 저의 관계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안쏘니님과 저는 대학에서 만나 12년째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사이입니다. 제가 먼저 졸업을 하고 레즈비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안에 안쏘니님이 졸업을 하였지요.
 
졸업 후 안쏘니님을 서울의 한 여성단체에 소개할 기회가 있었고, 안쏘니님은 그 단체에서 지금까지 7년째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가끔씩 단체 활동이 힘들다고 툴툴대면서 저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활동을 시작하던 그 처음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씩씩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멋진 친구입니다. 지난 정현님과의 인터뷰에서처럼 안쏘니님에게도 제가 지금까지 써 왔던 [인터뷰 칼럼]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아 온 대답은 "아니. 읽은 적 없어"였답니다.
 
"나는 언니가 일다에 칼럼을 쓴다고 생각을 못 하고, 논문 같은 것 쓰는 데에 필요한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줄 알았어."
 
연초부터 미리 부탁을 하고, 중간 중간 인터뷰를 부탁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는데도 다 잊어버리고는 그냥 무작정 인터뷰를 한다며 제 앞에 앉아 있던 것이지요. 정현님과 아주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이 친구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제가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무턱대고 승낙부터 하고보는 사람들이었네요. 저도 이번 칼럼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았습니다. 정말 고맙고, 제게는 유익한 사람들이지 뭐에요. 인터뷰의 목적을 다시 설명하고는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너는 이성애자니?"
 
"대체로 이성애자인 것 같아. 남자들만 만났거든."
 
안쏘니님은 두 명의 여성을 짝사랑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저도 짝사랑의 상처를 안고 눈물을 안고 살던 시기의 안쏘니님의 얼굴과 표정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만난 친구를 말도 못 하게 좋아했었죠. 그 친구는 남자 친구가 있는 상황이었고 말입니다. 변변한 고백 한 번 해보지 못 하고, 오랜 시간동안 가슴앓이를 했어요. 몇 년 전에도 사회에서 만난 한 여성을 짝사랑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 역시 그저 짝사랑으로 끝나버렸고 말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여자들을 좋아하던 시기도 있잖아. 무려 두 번이나. 그런데도 너는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응. 나는 이성애자인 것 같아. 대상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말이지, 남자 90%, 여자 10% 정도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남자의 몸을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 좋아하는 게 분명해."
 
"남자의 몸을 좋아 한다"는 민망한 이야기가 나와서 재빨리 주제를 옮겨 보았습니다. 제가 '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좌불안석하는 괴상한 질병을 앓고 있거든요. 안쏘니님은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남자 친구가 있느냐?" 혹은 "사귀는 사람이 있느냐?" 물으면 "없다"고 대답한다고 해요. 갑자기 안쏘니님의 '남자관'이 궁금했어요.
 
"나는 남자와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야. 그런 교류, 남자들과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나는 그런 게 정말 귀찮아. 연애를 하면 서로에게 맞추려고 하는 욕심도 생기고, 그 욕심들 때문에 서로를 구속하게 되고 하는 것들이 정말 싫더라고. 나는 보통 남자들이 원하는 여자로 살 생각이 없어. 상대방은 항상 나를 자신의 방식에 맞게 변화시키고 싶어 했고,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그 관계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어. 상대방은 나에게 '너는 나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냐?', '왜 연락도 없이 그렇게 늦게 들어가고 그러냐?' 등 일일이 너무 간섭하려 들어. 나는 친구가 더 중요해. 나는 나의 일과를 감시하는 감시자가 필요한 게 아니야. 그런데도 이런 일들로 상대방이 감정이 상하면, 그걸 또 풀어주느라 진땀을 빼거나 하는 과정이 내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아."
 
안쏘니님은 이성 관계에서 정서적인, 감정적인 교류가 가능할 거라는 기대가 아예 없다고 했습니다. 남성과의 1:1 결합 안에서 어떤 '안정감'을 느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어요.
 
"남자들이 원하는 '안정'과 내가 원하는 '안정'의 의미가 다른 것 같아. 나는 나 생긴 그대로의 삶을 존중해주고, 나의 가치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원해. 서로의 바운더리가 분명하게 있고, 그 바운더리를 넘나들지 않을 수 있도록 협조하는 사람. 나는 애초에 결혼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계획이 없어. 임신, 출산은 더더욱 싫고. 나는 나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 결혼은 둘만의 결합이 아니고, 가족 간의 결합이기도 하잖아. 그 안에 내가 놓여 있다는 상상만 해도 괴로워.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협조해줄 수 있는 남자는 아마 없을 거야. 만일, 내가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된다면, 그건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거야."
 
안쏘니님은 이미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결혼' 생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하더군요. 고향 학교 후배들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는데요, 한 명은 남자 후배이고, 다른 한 명은 여자 후배라고 합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그 동생들이 내 가족이야. 내 동생들은 나를 구속하지 않아. 내가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기는 해도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냐?', '왜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느냐?'며 타박하지 않아. 여자 동생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 '언니, 정말 결혼하지 마라. 우리 지금처럼 이렇게 같이 살자'고.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나중에 혼자 살게 된다 하더라도 큰 걱정은 없어. 다행히 여성운동을 하면서 혼자 멋지게 사는 분들을 많이 만났거든. 나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어 준 많은 분들이 계셔. 그리고 공동체 논의도 꾸준하잖아. 나중에 여성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
 
잠시 커밍아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안쏘니님에게 커밍아웃하던 당시의 안쏘니님의 얼굴 표정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찌나 착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저의 이야기를 들어 주던 지요.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인자하고 편안한 얼굴을 지어주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 참 고마운 얼굴이었다고 할까요. 안쏘니님과도 오랜 시간 동안 저의 커밍아웃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커밍아웃의 소감을 안쏘니님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네게 커밍아웃했던 것 기억하니?"
 
"응. 기억해. 빈 강의실에 앉아서 언니가 내게 커밍아웃했었어. 언니가 동성애자라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 나는 언니가 동성애자일 것 같았어. 바이브레이션을 느꼈지."
 
역시 저는 '걸어 다니는 레즈비언'이었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안쏘니님처럼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말해 준 친구들이 적지 않았거든요. 제가 안쏘니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정신이라는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정신이와 저는 대학 때 매우 다정했던 친구 사이였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렇게 저를 다정하게 대해주던 친구가 2주간을 저를 피하더라고요. 2주 정도 흐르니 자기도 후회가 되던지 다시 제게 돌아 왔고요. 그 이야기를 안쏘니님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내가 커밍아웃하고 정신이가 한 2주 정도 나를 피해 다녔어. 알고 있었니?"
"아, 정말? 정신이 언니가 언니를 피해 다녔어? 이런. 나는 언니가 내게 커밍아웃해줘서 정말 좋았는데.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한테 해주니, 언니가 나를 믿는다는 느낌이 가득 들면서 기분이 좋던데, 정신 언니는 왜 언니를 피하기까지 했을까. 나는 고맙기까지 하던데."
 
이런 기특하고, 고마운 친구가 어디에 또 있을까요. 고맙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울컥하더라고요. 갑자기 '남자에게는 아무런 기대가 없다'던 안쏘니님의 말이 떠올라 이런 질문을 해보았어요. "기회가 되면, 여자랑 소개팅 한 번 해볼 의향도 있어?"
 
"응. 해볼 생각 있어.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 아무도 소개를 안 해줘 그렇지. 나는 워낙에 결혼 생각도 없고,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떤 건지 내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여자도 만날 수 있어.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럼요. 당연한 얘기죠. 안쏘니님은 그 누구보다 마음과 생각이 열려 있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멋진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 역시 단 한 번도 안쏘니님에게 소개팅 하자는 제안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자에게 별 기대를 갖지 않고 있으니, 그럼 앞으로는 여자에게 '별 기대'를 가져보라 적극적으로 권해봐야겠습니다. 왜 진작 신경 써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나하는 제 자신에 대한 원망이 다 드는군요.
 
인터뷰 글을 마무리 하면서 안쏘니님에게 작은 약속을 하나 해보렵니다. 안쏘니님, '말이 통하는, 평등과 서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멋진 여성'을 찾아 자리를 한 번 만들어 보겠으니 기대해 주세요. '남자'에서 못 찾으면, '여자'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제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리라 생각합니다. 뭘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인터뷰 부탁 흔쾌히 들어 준 그 마음,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마지막 인터뷰 칼럼]을 정리하면서 여러분들께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지난 1월부터 스무 명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여러분들께 그 한 사람, 한 사람과 나눈 짧은 이야기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로부터 격려의 말씀도 많이 들었고, 부족한 부분에 관해 이런저런 중요한 지적들도 받았습니다. 격려도, 지적도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저의 '기록 작업'들에 반영하며 조금 더 나은 작업을 해낼 수 있도록 좋은 거름으로 쓰겠습니다.
 
부족한 글 만나기 위해 잊지 않고 [일다]에 들러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사람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시고, 마음 속 이야기들을 용기 내어 들려주신 나의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존경하는 활동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좋은 사람들 다시 한 번 만나 속 깊은 대화 나눌 수 있는 기회 만들어 주신, 그네들의 삶을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내어 주신 [여성주의저널 일다]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박김수진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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