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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자유롭고 독립적인 싱글맘, 오정
 
[여성주의 저널 일다] 윤정은
“지난해 12월쯤에 들어왔다고? 몇 달 지났는데, 또 어디로 떠나고 싶지 않아?”
 
▲  싱글맘 오정과 아들 성현, 두 사람의 관계는 무척 재미있다.
그녀를 몇 년 전부터 보지 못했다. 그녀는 필리핀으로, 뉴질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 떠났다 했다. 몇 년 만에 마주한 그녀는 여행이 주는 고단한 세월의 흔적은커녕 한층 활기찬 느낌이 배어 나왔다. 안정을 찾은 듯하면서도, 여전히 자유를 찾아 어디론가 훌쩍 떠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나온 첫 질문이 ‘또 어디로 떠날 작정도 하고 있는 거냐?’는 거였다.

 
예감이 적중했다. 돌아온 지 얼마 됐다고 그새 “이제 슬슬 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맨날 집 옮기고, 학교 옮기고, 그래?”

옆에서 있는 둥 마는 둥 얌전히 앉아있던 아들 성현이가 엄마의 대답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바로 일격을 가한다. 그녀는 싱글맘이다. 아들의 성화에 “그러면 좀 어때?”라고 대답하는 엄마.

 
“오~. 맨날 그러면 좀 그렇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엄마의 대화는 가관이었다. 성현이는 ‘한 학교에 오래 다니며, 친구도 오래 사귀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또박또박 말했고, 그녀는 “그러면 다음엔 너 안 데리고 가면 되지” 라고 응수했다.

 
“그렇게 해.”
엄마가 혼자 떠난다는 말에 성현은 서운한 기색도 없이 수긍한다. 삐쳤나 해서 확인해보니, 그렇지도 않다. 어떻게 보니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처럼도 보인다. 이러한 모자의 대화를 처음 봐서 조금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떠난 뉴질랜드 여행

 
▲ 극단 ‘목요일 오후 1시’의 즉흥연극, 오정
‘아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도 있다’는 그녀의 말은 괜한 엄포가 아니다. 몇 년 전 유치원에 다니는 성현이는 두고 혼자 필리핀에서 꽤 오랫동안 지내다 돌아왔다. 그녀가 성현이가 보고 싶어 유치원으로 전화하면, 성현은 “엄마 나 친구가 불러. 가야 해”라고 전화를 뚝 끊기도 했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성현도 함께 갔고, 성현은 그 곳에서 초등학교를 잠시 다녔다. 남들처럼 아이들의 공부와 진로를 위해 뉴질랜드로 갔던 것은 아니다. 오로지 그녀는 여행할 목적이었고, 성현이가 그녀의 여행에 동참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서, 극성스럽게 아이들 뒷바라지 하고 모든 시간과 여가를 아이에게 투자하는 한국 교포사회 이민가정들을 만나면서 정말 놀랐다고 했다. 모든 것을 아이를 중심으로 놓고 살아가는 부모들의 눈엔, 그녀는 이기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됐다. “다음 여행을 갈 때는 성현이는 두고, 떠날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기겁을 하며, 어떤 사람은 그녀에게 “당신 같은 사람을 두고 모성결핍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지금 사교육 열풍이 문제잖아. 내 자식, 내 가족, 내 차 이런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끔 하는 시스템이 문제인 거지.”

 
내 자식, 내 가족만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눈엔 비정상적이다. 그녀를 “이상한 여자로 취급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반대로 혈연으로 똘똘 뭉쳐있는 한국사회의 가족주의를 먼 타국의 땅에서 접하며, 다시 한번 한국의 “결혼제도가 큰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이혼율 증가를 사회적 문제로 보는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싱글맘이다.

 
“여성들은 남성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잖아. 어릴 적에는 아버지, 결혼해선 남편, 그 다음엔 아들에게 의지해서 살지. 지금 내가 싱글맘으로 독립적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아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잖아. 그래서 미래를 위해 세 가지를 준비하려고 해.”

 
지금은 건강한 몸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지만, 노인복지에 열악한 한국 상황을 감안해 미래를 위해 싱글맘 오정이 준비하는 세 가지.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인 독립이다. 연금도 챙기고, 자신을 위한 저축도 해야 한다. 둘째, 정서적인 독립을 위해 친구나 연인을 항상 두어야 한다. 셋째,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관계에 얽매여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 혹은 취미가 있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 그녀가 준비하는 세 가지

 
▲ '사람 넷, 강아지 한 마리'와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한때는 그녀는 통기타 밴드에서 노래를 했고, 한때는 뮤지컬을 했고, 지금은 연극을 하고 있다.

 
현재 오정이 속한 극단은 ‘목요일 오후 1시’, 즉흥연극을 하는 팀이다. 올 여름만 하더라도 12회 공연을 했다. 그녀의 주업은 출판 기획이다. 지난 여름엔 주업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느라 잠 잘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즉흥 연극이라 연습을 엄청 많이 해. 배우들 간 호흡도 중요하고, 관객들의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즉석 공연을 하기 때문에 연습이 많이 필요하지. 그러나 관객들의 말을 듣는 훈련이 제일 중요해. 너무 재밌지. 여름에 인천에서 6회, 프린지페스티벌에서 4회, 안산에서 이주민을 위한 문화행사 2회. 성현이는 작업실에 따라와 같이 놀고, 거기서 자고.”

 
그녀가 결혼을 깰 수 밖에 없었던 지점이 바로 여기 있는 것 같다. 한 개인으로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가는 것이 결혼제도 안에선 도저히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성현이를 낳고 얼마 안돼 대학원을 진학해 공부하는 그녀를 시집에서는 못마땅해 했다. 남편과의 갈등보다는 남편의 가족, 시집과의 갈등이 컸다.

 
“결혼하고 난 후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시어머니는 시집으로 흡수되지 않는 나를 못마땅해하는 그런 갈등이 계속 됐지. 나를 개인으로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

 
학교 다닐 때 락밴드 싱어로, 20대부터 통기타밴드를 하며 공연을 하며 무대에 익숙한 그녀는 결혼을 하고 잠시 방황했지만, 곧 자신을 찾았다. 지금은 무대에서 하는 연극과, 일과, 현재 관계 맺고 있는 공동체 가족을 기꺼이 사랑하며 살고 있다.

 
현재 그녀는 구성원이 “사람 네 명에 강아지 한 마리”인 가족과 함께 산다. 그녀와 성현, 이혼을 준비하는 친구,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성과 공동체를 이뤄 산다.

 
“아주 솔직하게 경제공동체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공동체는 쉽지 않거든. 개인적인 성향, 취향이 다르고. 특히 나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지. 아이는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불편한 존재지. 물론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인정해. 그렇지만 돈이 있다면 보다 편하게 살려고 하지, 함께 살지 않겠지.”

 
공동체라는 말을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그녀는 현실적인 문제를 설명했다. 성현이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이가 어차피 사회에서 살아갈 거면,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이 가족은 한부모 가정에 대해 지지는 보내주고 있는 사람들인데,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적응해? 물론 다른 가족에서처럼 아이에게 오냐 오냐 하면서 받아주지 않을 뿐이지” 라고 말했다.

 
나의 일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들 성현과의 관계가 다른 모자관계와 많이 다른 듯하여, 최근에 다녀온 여행에 대해 질문을 해봤다. 성현이와 다녀온 뉴질랜드 여행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었냐고.

 
“뉴질랜드에 갔을 땐, 뭐랄까. 한국에선 남들이 보기에는 싱글맘 신분이긴 했지만, 굉장히 외롭다거나 열등하다는 생각을 많이 안했단 말이야. 그런데 낯선 뉴질랜드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갔지. 당장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 밤에 갑자기 어둠이 닥치니까 성현이가 밤마다 갑자기 생존의 두려움을 느끼나 봐. 그래서 성현이가 ‘엄마, 만약 엄마가 어떻게 되면 난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묻는 거야. 그러면 나도 너무 막막하고…. 여기에선 아무도 나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야. 그래서 ‘만약 엄마가 어떻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권을 보여줘. 한국대사관에 데려다 줄 거야. 그리고 넌 한국으로 돌아가면 돼’ 라고 밤마다 안심을 시켜야 아이가 잠이 드는 거야.”

 
그녀는 한국에서의 일상은 “자원이 참 많았구나”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 도움을 주는 사람들, 그런 큰 자원이 있었던 거지. 난 참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절실하게 깨달았지. 어디 가든 새로운 문화를 보고 배우는 건 늘 가능하지만, 필리핀 갔을 땐 혼자 갔으니까 엄마의 신분은 아니었지. 뉴질랜드에선 아, 가족을 지지하고 지원해줄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 2008/09/20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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