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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14)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레즈비언 스즈키님의 과거지사(過去之事)

인터뷰 칼럼의 열네 번째 주인공은 재한일본인 레즈비언, 스즈키님입니다. 스즈키님과 저는 비슷한 시기에 30세 이상 레즈비언 친목모임인 <그루터기>에 회원 가입을 하였답니다.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2년이면 짧지 않은 기간임에도 스즈키님과 저는 단 한 번도 마주보고 앉아 진중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칼럼'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어 봤죠.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우리는 서울에 위치한 모 대학 교수연구실에서 만났습니다.
 
먼저, '공식 질문'을 드렸습니다. "스즈키님은 왜 레즈비언인가요?"
 
"박통님이 사람들에게 물었다던 그 질문에 관해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그 질문, 진짜 이상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이지 진짜 이상한 질문이에요. 나에게도 물었으니 대답은 할게요.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말 안 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런 의문이 들어요. 더 이상한 것은 그 질문, 문장 자체가 이상해요. 문장에 동사가 없잖아요. "왜 레즈비언으로 살기를 선택했어요?"도 아니고, "왜 레즈비언으로 살고 있어요?"도 아니고. 동사가 없는 문장, 비문이에요."
 
제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해주신 스즈키님의 답변, 비문에 관한 지적은 정말 신선했어요. 스즈키님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국어 수업을 들어왔던 사람으로서, 잠시 민망해진 저는 선수를 친다며 이렇게 말했어요. "철학적이지요?"
 
"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질문 자체는 참으로 어색하고, 맞지 않은 문장이다 싶어요."
 
맥락 없이 선수를 쳐 보았지만, 본전도 못 뽑았달까요.
 
"하지만 문장이 어색하다보니 그래서 더 좋은 질문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생각을 하게 하더라고요. 그 질문에 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다행입니다. 본전은 뽑았습니다.
 
"내 스스로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을 '레즈비언'으로 부를 뿐이죠. 그냥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이름일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반드시 어떤 이름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동성애자, 트랜스 젠더, 레즈비언 등 몇 개의 선택지가 있는 가운데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이름이 '레즈비언'일 수는 있어요. 그래서 나는 레즈비언인 것이지요."
 
그렇죠. 그래서 스즈키님도 저도 일단은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레즈비언인 것이지요. 레즈비언 스즈키님의 과거지사(過去之事)가 궁금했어요. 스즈키님에 관한 정보가 너무 없었거든요.
 
"나에게 맞는 이름이었어요"

"'내가 소위 말하는 동성애자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은 대학생 때였어요. 대학 다닐 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요.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고요. 교제를 하였는데, 우리와 같은 사람을 '동성애자', '레즈비언'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중에 '나는 레즈비언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위해 이름을 하나 지어준 거죠. 나에게 맞는 이름이었어요."
 
스즈키님은 대학 입학 후에 처음으로 동성과 교제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도대체 뭘까?'. 동성 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를 가지고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하는 개인적인 고민은 없었다고 해요. 그저, 애인과 함께 '우리가 나누고 있는 이 감정은 무엇이지?'에 관해 생각해 보고, 어떻게든 관련한 자료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합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는데요, 90년대 일본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찾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백과사전들을 찾아보거나 하면서 정보들을 모으고는 했어요. 애인과 함께 자료들을 찾고 함께 연구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시에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 분과 그 분의 남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어요. 그 남편분도 목사님이었는데, 그 분의 제자 중 한 명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이면서 목사 안수를 받았던 사람이었죠. 그래서였는지 그 분들에게 커밍아웃도 하고, 이런저런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개신교 안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만연해 있는데, 아무래도 목사님이 열려 있는 분이다보니 내 마음이 다소 편안해지고는 했어요. 나름대로 특이한 환경 속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시기에 스즈키님은 이런저런 정보를 찾을 겸,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만나볼 겸해서 일본의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인 '아카(OCCOUR)'를 찾았다고 합니다.
 
스즈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이나 한국이나 1990년대 동성애자들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네요. 도서관에, 지인들에, 단체에. 스즈키님과 저의 경험에서 차이가 있다면, 스즈키님은 '백과사전'에서, 저는 '레이디 경향 밀봉 페이지'에서 관련 정보를 찾았다는 것뿐이네요. 뭐, 그래도 관련 내용을 찾기는 찾았으니 다행이긴 합니다.
 
일본 동성애자 인권단체 '아카'에서 활동하다
 
스즈키님이 '아카(OCCOUR)' 활동을 했다고 말씀하였는데, 단체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보았습니다.
 
"95년부터 4년 정도 '아카'에서 활동했었어요. 당시에 '아카'는 게이 중심이었어요. '아카' 안에 여성들의 모임이 있었죠. 저는 주로 여성들의 모임에서 활동을 했어요. 게이 중심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레즈비언과 게이가 함께 기획하고 활동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죠. 오래 전 일이어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카'는 정치성이 짙은 조직이었고, 오래된 활동가들이 이미 튼튼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신입 활동가들이 다소 불편해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나를 지치게 하기도 했고요. 그러던 시기에 내가 한국에 오게 되어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죠."
 
'아카(OCCOUR)'라는 단체 이름을 처음 들어 본 분들이 많이 계실 줄로 압니다. 그래서 약간의 설명을 드리려고요. '아카'는 1986년에 창립한 일본 도쿄의 게이, 레즈비언 단체입니다. 일본에서 HIV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왔고요, 우리나라에서는 '후추 청년의 집 재판'으로 알려져 있는 단체이기도 합니다.
 
'후추 청년의 집 재판'은요, 도쿄도립 교육 시설인 '후추(府中) 청년의 집'에서 숙박했던 '아카'회원들을 타단체 회원들이 모욕했던 사건, 이후에 '후추 청년의 집'에서 동성애자의 공공시설 이용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던 사건 등을 계기로 '아카'가 도쿄도(都)를 상대로 진행했던 재판을 말합니다. 1990년 2월에 발생한 이 사건은 무려 7년 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법정 투쟁의 장에 있었지만, 결국 '아카'의 승리로 끝이 났답니다.
 
이런 일이라면 한국에서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지요. 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는 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는 '소마 미술관'에서 동성애자 관련 행사를 개최하면 국가기관으로서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 것이 우려된다며 동성애자 관련 인권 행사 개최를 불허했다고 합니다.
 
그런 자기들의 결정이 오히려 국가기관으로서의 이미지에 손상을 주는 행위라는 것을 왜들 모를까요. 아이고, 너무 샛길로 빠졌네요. 다시, 스즈키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재한 일본인으로서 스즈키님의 한국생활
 
재한 일본인 레즈비언인인 스즈키님, 레즈비언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태우지 않아서 일본에서 레즈비언 바(Bar)에 가거나 모임 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일본 신주쿠(Shinjuku)에 레즈비언 바(Bar)가 많이 몰려 있었는데, 제가 소음에도 약한 편이고해서 여러모로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죠. 다른 레즈비언들을 만나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으니 기회가 없고, 그래서 레즈비언 친구들은 그리 많지는 않아요. 오히려 '아카' 활동하면서 알고 지내던 게이 친구들이 훨씬 많아요."
 
스즈키님은 한국생활을 하면서도 동성애자 친목모임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술, 담배 안하는 스즈키님이 편안하게 활동할만한 모임을 찾기 어려웠다고 하네요. 그래도 결국 괜찮은 모임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그게 바로 저와 스즈키님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그루터기'인 것이지요.
 
"아는 사람이 '그루터기'를 소개해 줬어요. 가입 후 활동하면서 느끼는 것은 일단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고, 술을 강요하거나 하는 분위기가 없고, 담배도 일단 모임 안에서는 태울 수 없으니 그게 참 좋아요. 아, 강제로 춤을 추게 하거나 하지 않아서 그것도 참 좋고요.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공간을 찾은 것 같아요."
 
스즈키님은 현재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강사 생활을 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계속 한국에서 살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하네요. 그럴 계획이 없다기보다는 정확한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운 조건에 있다고 합니다. 계약직이기 때문이지요.
 
"미래가 너무 막연해서 우울할 때가 많아요. '내가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울해지고는 하는 거죠. 직업에 있어서 조금 안정되고 싶어요. 제 일 자체가 너무 불안정하거든요. 계약이 연장되지 않아 일이 없어지면 내 비자도 없어지잖아요. 비자가 없어지면 집도, 신분증도, 휴대폰도 다 없어지고요. 하지만 이런 생각하다보면 끝도 없이 우울해지니까 일단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을 할 수 있으면 열심히 일을 하면 되는 거고, 일이 없어지는 상황이 되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부디, 스즈키님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스즈키님이 그렇게 갑자기 한국을 떠나게 되면, '그루터기' 하고도 이별해야 하고, 이제야 인사 제대로 나누고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스즈키님이 하고 있는 일이 안정되지 못하여 감정적으로 다소 우울하기도 하지만, 스즈키님을 우울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그루터기' 회원들이 깜짝 놀랄 이야기인데요, 시작하겠습니다.
 
8년 간의 연애, 8년 간의 이별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스즈키님은 대학 재학 시절에 첫 교제를 했는데요, 당시의 애인과 무려 8년을 사귀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애인이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잠시 떠나 있는 동안에 스즈키님이 한국에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갑자기 얻게 되어 한국으로 떠나오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서로의 사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이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지고 나서 오랜 시간동안 스즈키님은 힘들었다고 해요. 뭔지 모를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 꿈에 당시의 애인이 매우 자주 등장하고는 했답니다. 이별 후 8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전 연애 관계에 너무 마음을 써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상태는 연애 자체에 용기가 안 생긴다고 하네요. 다행스럽게도 작년에 드디어 헤어진 애인과 연락이 닿아 만남을 가졌다고 합니다.
 
"작년 12월에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아서 만날 수 있었어요. 8년 만이었죠. 8년. 8년 만에 만나서 계속 말없이 앉아 있었어요. 그러다가 진심으로 미안하다 사과하고 그렇게 헤어져 돌아왔어요.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잘 정리되었다고 생각해요."
 
첫 연애를 8년을 하고, 또한 이별을 8년 동안 한 셈입니다. 이, 웬 영화 같은 이야기란 말입니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왔던 스즈키님은 언제나 웃는 얼굴로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짠!'하고 나타나는 씩씩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우울하기도 하고, 이런 영화와도 같은 러브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치가 잘 안 되면서 약간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래서 참 재미있기도 했고,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었지만, 이렇게 말하기 쉽지 않았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어요.
 
스즈키님에게 제가 "정말 영화 같은 스토리에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스즈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요? 그럼, 적당히 '로만~틱'하게 써줘요."
 
그래서 나름대로 '로만~틱'하게 쓰려고 애를 써 보았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스즈키님과 저는 '우울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우울증을 잘 알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스즈키님은 제게 "우리는 우울증 친구네요"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네. 뭐, '우울증 친구'면 어떻습니까. 제 평생 일본인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는데요, 이렇게 스즈키님 덕분에 제 인간관계가 글로벌하게 확대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이제 스즈키님께 감사 인사드리며 글을 정리해야겠습니다. 스즈키님, 다시 한 번 감사인사 드립니다. 조금 더 스즈키님을 알 수 있도록 시간 내주셔서, 다른 분들에게 스즈키님을 소개할 수 있도록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7월, '그루터기' 정기모임에서 만나요.  (박김수진 / 일다)
 
[다른 인터뷰] 공무원 장수생 레즈비언 로마님의 도전  여성운동하는 레즈비언 아자님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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