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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위협, 성희롱, 전망없음’ 
 
최근 한 취업업체(스카우트)의 설문조사 결과, 20-30대 기혼여성 중 52%가 직장 내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조사 결과, 이들이 주로 경험하는 직장 내 차별의 내용은 퇴사 권고(36.1%), 연봉동결 및 삭감, 승진 불이익의 순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기혼여성의 70%는 퇴사했으며, 2세 계획이 없는 기혼여성 5명 중 1명은 이 같은 이유로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답했다.”(매일경제)

맞벌이 부부를 선호하고 기혼여성의 재취업이 장려되는 가운데 이번 설문 조사는 기혼여성이 직장에서 받는 차별 현실을 통계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M자형 곡선 설명의 한계

우리 나라 여성의 취업곡선은 전형적인 M자형을 그린다. 결혼 전까지는 상승했던 취업률이 출산, 양육을 하는 연령대에 급격히 감소했다가 40대 이후 다시 상승하는 것이다. M자형 곡선에 대한 기존 연구들의 설명은 기혼여성의 이중노동부담, 즉 가사노동과 양육부담을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해왔다.

그러나 가사노동과 양육부담이 줄어든다면 M자형 곡선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위 설문결과처럼 기혼여성은 이중노동부담 외에도 직장 내에서 겪는 차별을 겪고 있는데, 현재 M자형 곡선을 설명하는 논리에서는 이 같은 부분이 빠져있다.

최근 발표된 이현숙씨의 여성학 석사 논문, <기혼여성의 노동단절과 지속에 관한 연구>는 여기에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현숙씨는 “기존의 M자형 곡선을 설명해온 연구들은 산업별, 직종별 노동 단절률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단일화해 온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산업에 따라 다양한 차별의 내용과 성격을 밝힘으로써, 이제까지 간과돼온 여성노동단절에 작동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차별적 요소들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경의 이직률 상대적으로 낮아

<기혼여성의 노동단절과 지속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이직률이 낮은 공공부문의 여자경찰관(이하 여경)들의 경험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여경들은 육체적 힘듦과 양육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타 직종에 비해 이직을 적게 한다. (노동부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 평균 이직률이 3.0%인데 비해, 서울시 여경의 평균 이직률은 0.8%로 낮게 나타났다.)

여경들이 이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현숙씨는 가장 큰 이유로 “경찰 조직 내의 구조조정을 비롯한 암묵적인 해고나 퇴직 위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결혼 퇴직 관행 등 암묵적인 해고 위협이 존재할 때 여성들은 노동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

농협과 알리안츠 제일생명 사내부부 해고 사건에서처럼, 가부장제 사회 구조에서 기업의 구조조정 시 여성이 일차적으로 퇴직을 강요 받게 되는 현실은 여성을 노동의 주체, 또는 ‘생계부담자’가 아닌 ‘보조자’로 간주한다.

둘째로, 전망에 대한 기대와 승진에 대한 기대도 중요하다. 노동에 대한 의욕은 ‘전망 있음’, 곧 승진과 관계된다. 다수 남성에 비해 여성의 승진 선례가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노동의욕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승진이 불가능하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직장이 될 전망이 없는 상태라면 누구든 자포자기하게 되거나 일에 대해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

“경찰 조직 내에는 역할 모델이 존재하며, 업무 계량화가 용이하고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적은 승진 지침이 마련되어 있어, 이러한 승진 지침이 엄격하게 적용됨으로써 여성노동자들로 하여금 승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여경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결과다. 또한 “차 심부름, 복사 등과 같은 비공식적 업무를 여경이 전담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업무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승진에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다.

셋째로, 경찰이라는 정부공공기관의 특성상 ‘명시적이고 제도적인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우선 기본급이나 호봉산정 등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져, 남성과 여성간의 임금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성희롱과 같이 경찰 업무에서 다루는 법적인 부분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선 문제해결 인식과 수준이 다른 분야보다 높다고 볼 수 있다.

이현숙씨는 “여경은 성희롱과 관계된 부분에서 차별에 대한 민감도가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었다. 경찰의 업무 자체가 고소나 고발 등 법적인 절차를 담당하는 것이며 실제 여경이 성희롱 사건조사 등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런 업무의 특성상 다른 직장에 비해 성희롱에 대해 남자직원들이 조심하는 편이다”라고 밝혔다. 즉,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의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라는 점이다.

기혼여성들에게 '좋은 노동환경'이란?

기혼여성이 노동을 지속하게 하는 ‘좋은 환경’에는 가사나 양육부담 외에도 비공식적 업무에서 배제되는 것, 동료로 인정 받는 것, 일상적 차별이 발생할 소지가 적다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현숙씨의 논문은 다소 안정적이라 보이는 경찰 조직의 여경이 이직하지 않는 이유를 통해 ‘기혼 여성이 노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살피고 있다.

위와 같은 모든 요인들이 여성들의 노동지속에 주요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고용안정성’이라는 개념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정의돼야 한다는 게 이현숙씨의 주장이다. 예컨대, 결혼 퇴직 관행 등의 암묵적인 해고 위협이 존재할 때 여성들은 노동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여성들의 고용안정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현숙씨는 “논문 인터뷰 대상자들도 가사와 양육문제가 자신들이 현 직업을 수행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순수하게 양육문제로 노동단절을 고려하고 있는 경우는 한 사례도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가사와 양육부담이 여성의 노동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사, 양육이라는 이중부담 때문에 기혼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는 기존의 연구들은 산업별, 직종별로 기혼여성이 받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간과해버릴 수 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와 이현숙씨의 논문은 ‘기혼여성에게 좋은 노동조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단절 경험이 있는 기혼여성을 노동시장 내로 다시 진입(재취업)시키는 데만 신경을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안에서 실제로 어떤 차별이 작동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간과했으며, 단지 모성보호와 육아휴직 보장만이 문제의 해법인 것처럼 강조해왔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암묵적으로 합의된 직장 내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국가적, 제도적 개입 역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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