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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조로가 만난 사람] ‘요술사’ 맹규리 

얼마 전 일식조리사 자격증을 딴 내 친구 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양식에 이어, 일식까지 도전해서 해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복어요리 자격증까지 준비한다고 하니, 여기까지만 들으면 누구라도 그녀가 요리사일 거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단순히 ‘그녀의 직업은 요리사!’라고 땅땅땅! 끼워 맞추기엔 귤은 그 틀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손을 가지고 있다.

 
“일다 사이트에 들어 가봤어? 인터뷰는 봤어? 어땠어?”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질문을 던져댔고 귤은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대답을 했다.
 
“인터뷰 올라온 것들 읽어보니까 연령도, 하는 일도 다양한 사람들이더라. 초점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세대에 따라 직면해있는 문제나 과거와는 다른 앞으로의 문제들을 여러 사람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 같았어. 무엇보다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서로서로에게 멘토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인터뷰의 첫 시작부터 귤은 ‘멘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이것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샛길인생…세대 간 유대가 필요해
 
이십 대 후반의 그녀는 자신의 삶을 ‘샛길인생’이라고 표현한다.

  
“이제 스물아홉 살이 되고, 남들처럼 직장에 다니거나 결혼을 해서 사는 것도 아니니, 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거겠지. 중앙 차로가 아니라 샛길 같은 것?”
 
새해를 맞이해서 스물아홉이 되는 자신의 인생을 단어로 표현해보라고 했더니, 나의 질문에 귤은 ‘비포장도로 샛길’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이때부터 왠지 우리의 인터뷰가 심오해질 것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내가 샛길로 빠져서 가고 있는 것 같이, 우리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이런 것 같아. 중앙 차로 만으로는 갈 수 없는 것. 정규직이라는 것은 이미 굉장히 많이 없어지고 있고, 정년이나 평생직장 개념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은 직장을 계속 옮길 수밖에 없고, 한 가지만 잘해서는 누구도 채용하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라서, 이런 상황에 내가 아무리 정규직 쪽으로 맞춰간다고 한들 과연 이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라는 것이지. 내가 보기엔 앞으로 고용시장에서 정규직이라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증가할 텐데 그런 상황에서 나이 많은 비혼 여성은 아마도 취업전선 맨 뒷줄로 밀려나게 될 거야.”
 
정규직, 비정규직. 생각만 해도 골이 지끈지끈한 문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나의 물음에, 귤은 웃으면서 “어떻게 해야 될까-는 대답해줄 수 없고, 같이 고민해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런 것을 함께 겪고 있는 세대 간의 유대인 것 같아. 얼마 전에 어디서 들은 얘긴데, 우리나라는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긁어먹고 사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 처음엔 ‘알바’라고 하다가 ‘계약직’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비정규직’을 대놓고 하나의 고용체제로 고정시키려고 하잖아.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듯해. 윗세대들로부터 혹사를 당한다고 해야 되나.”
 
맞다. 사실 나도 얼마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수습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고 하면서, 정규직의 80%도 안 되는 월급을 주며 일을 시키곤 막상 계약할 때 되니까 얼렁뚱땅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너무 분노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내 자신이 서러워서 한동안 침울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된 건, 정부든 국민이든 모두가 멀리 보지 못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 같아. 신입사원들을 일을 할 수 있게끔 할 때까지 드는 비용이 아까워서 계약직으로만 굴리고 말이야.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결국 회사가 더 힘들어질 텐데.”
 
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런 고민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했고, 서로를 통해 위안과 용기, 그리고 조언을 얻기를 바랐다.
 
요리와 미술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그래서 작년에는 반짝반짝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어.”

 
“반짝반짝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건데?”
 
“예를 들면 빨간색, 파란색 같이 고유의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랄까. 이미 찾은 사람도 있고 색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역시 미술을 하는 아이여서, 비유도 색을 쓰는 것인가! 아, 귤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요리는 스물여덟 살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배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요리사와 미술선생님을 겸하는 그녀에게 ‘요술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로 혼자 결심했다.
 
“남들이 보기엔 미술과 요리는 전혀 다른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 음악, 미술, 체육분야에서 제일 중요한 게 ‘창조성’이잖아. 그 부분에 있어서 요리도 일맥상통하는 듯해. 예를 들어 손을 그린다고 하면, 어떤 방법을 쓰던지 기본적으로 손의 구조를 알아야 손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요리도 마찬가지야. 생선을 자를 때 생선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면 효과적으로 다듬지 못해. 칼이라는 도구는 입체적인 것을 썰잖아. 칼이 써는 재료의 입체적인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썰 때와 알고 썰 때의 차이는 분명히 있거든.”
 
이렇게 한참을 요리와 미술, 운동의 공통점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요리를 시작한 특별한 이유에 대해 말해달라’는 나의 요청에, 귤은 자신이 꿈꾸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요리를 시작한 이유도, 사실은 내가 꿈꾸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야. 아까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공간’을 꿈꿔 
  
“사람들은 흔히 ‘공간’이라는 곳이 그냥 네모 사각형이라고만 생각해. 하지만 공간이라는 것은 되게 복합적이잖아. 네모 사각형은 그저 공간의 틀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공간은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시간, 추억, 향기를 담고 흘러가는 그릇이야. 내가 꿈꾸는 공간도 시간과 기억과 감정이 함축되어 있는 곳이고.”

 
아~ 뭔가 멋진 말인 것 같은데, 어떤 공간인지 도무지 감은 오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과 그 자취들이 남아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그만큼 소통의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삶의 단순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누굴 만나면 대부분은 그 사람과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잖아. 요즘엔 사진도 많이 찍고. 이런 단순함부터 시작이 아닐까.”
 
꿈꾸는 듯 아련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귤을 보며, 나는 그녀가 꿈꾸는 공간 역시 단순히 정의될 수 없는 귤의 직업처럼 커피숍, 음식점처럼 단순한 이름을 붙이기엔 어려운 공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자기 공간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어해. 집이 없는 노숙인들도 자기 구역이라는 것이 생기듯이, 삶과 공간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귤은 이런 말을 했다.
 
“늙어서도 열린 사람이 되고 싶고,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 거야. 내가 줄 수 있는 것으로 멘토가 되어서 같이 지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네. 더불어 사는 게 참 중요한데…. 훗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좀더 현명하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자가 되고 싶어. 우리 나이 또래들이 서로 비아냥거릴 게 아니라, 뭉쳐서 이끌어줘야 되는데 그럴 수 있는 매개체가 별로 없어. 내가 생각하는 공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 언젠간 네가 꿈꾸는 그런 공간을 꼭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정말로 필요하다고-나는 귤의 넓은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다독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눈을 감고 그려본다. 세상 살기 진짜 팍팍해서 반짝반짝한 빛을 잃어가던 사람들이 ‘요술사’ 맹규리의 판타스틱 카페에서 알록달록한 자신의 빛을 찾아내고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그런 상상. (데조로)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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