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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이야기 -자유롭지 않은 가슴]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은아)
 
몇 해 전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네 가슴은 왜 밑에 있니?”
“뭐라고? 내 가슴이 밑에 있다고?”
“아니, 쳐졌다는 얘기를 하는 거야.”

자기 가슴은 여기(?)에 있는 데 네 가슴은 왜 거기(?)에 있냐는, 생각도 해본 적 없던 그런 얘기에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의 가슴을 살피기 시작했다. 정말 내 가슴은 다른 곳에 위치하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균형 잡힌 가슴 모양과 크기, 위치가 어떤 것인지도 찾아보았다. 거울 앞에서 내 가슴을 들여다봤다. 균형 잡힌 아름다운 몸인가?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제 친구들을 비롯하여 지나가는 여자들의 가슴까지 보는 것은 물론이고 아침에 일어나 윗옷을 입으면서 거울을 보게 됐다. 이렇게 강박적인 상태가 되었는데도 누군가에게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더욱 못난이가 되어 버리고 내 가슴에 타인의 시선이 머무를 것 만 같아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괴로운 일이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가슴이 화두가 될 때가 있다. 화장이나 옷, 몸매를 가꾸는 것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유행)에 맞춰 자신의 결점(?)을 감출 수 있는 묘안을 찾기도 한다. 가슴의 크기나 모양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며, 어떻게 하면 성적인 매력을 가진 예쁜 가슴으로 보일지에 대해 함께 머리를 모으기도 한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사람에겐 가슴이 처질 것을 우려해 브래지어 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슴 이야기는 어딘가 많이 불편하다. 가슴이 작은 친구들은 이성 파트너로부터 “한번쯤 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어(그러기엔 네 가슴이 너무 작아)”라는 얘기를 듣고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친하다는 명분으로 “야! 너는 어디가 뒤냐?”같은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큰 가슴이 부끄러워 어깨를 움츠리고 다녔던 여자들도 얼마나 많았던가. 가슴 크기와 지적 수준이 반비례한다는 얼토 당토 않는 가설이 유행하기도 했다. 가슴에 대한 기준에는 여성의 욕구보단 다른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반영돼 있다.

브래지어만 해도 그렇다. 내게 브래지어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교복 안에 꼭 갖춰 입어야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속옷검사까지 했다. 집안에서조차 남자가 있으면 해야 했다. 가정시간에 브래지어가 몸에 좋지 않으니 밖에서야 ‘어쩔 수 없이’ 해도 잘 때는 풀고 자라는 말을 듣고서 비로소 조건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브래지어의 불편함을 참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잠자는 시간 외에도 브래지어 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어느 겨울 내 등을 만지던 남자친구는 마땅히 걸려야 할 것(?)이 없자, 당황하며 “안 하면 가슴 쳐지잖아”라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여자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듣고 있다. 주름이 생기고 가슴이 쳐지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노화현상 아니던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북함은 도드라지는 젖꼭지가 낯설고 성애화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으면 ‘볼륨 업 된 가슴’이란 판타지 대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봐야 하는 불편함 때문인 것 같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얇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것을 상상해 보자. 지나가는 뭇 남성들의 시선은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보다 더 뜨거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가슴이 예뻐야 여자지”라는 말에서 나와 내 친구들의 가슴이 족쇄를 풀고 자유로울 수 있을 날이 과연 올까. 월경축제를 통해서 월경에 대한 금기를 조금씩 깨고 폐경이 아닌 완경으로 다르게 이름 붙였던 것처럼 가슴에 대한 금기를 깨는 축제라도 벌여야 하는 걸까. [은아 | 여성저널리스트 그룹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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